유대교는 민족종교national religion예요.
그런데 정치적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많은 유보 조건을 붙일 때에만 타당해요.
유대인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고통을 받았던 이 무세계성worldlessness은, 그리고─사회에서 버림받은 모든 이들과 함께─집단에 소속된 이들 사이에서 특별한 온기를 창출해낸 이 무세계성은 이스라엘state of Israel이 건국됐을 때 바뀌었어요.

(84/297p)

Wenn des Liedes Stimmen schweigen
Von dem überwundnen Mann,
So will ich für Hectorn zeugen…

참패한 이를 위한
노랫소리가 침묵이라면,
나는 헥토르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리니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승전 축하Das Siegesfest>에서─원주.

(92/297p)

당신은 현대사회의 특유한 현상으로 대중의 뿌리 상실uprooting과 고독, 그리고 단순노동과 소비의 과정에서 만족감을 찾아내는 인간 유형의 승리를 지적합니다.

(93/297)

개인적 경험 없이 가능한 사유 과정이 존재한다고는 믿지 않아요. 모든 사유는 뒤늦은 사유afterthought예요.

(93/297p)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정치인이라면 전문가들을 소집하는데, 그 전문가들의 관점은 서로서로 대립해요. 문제를 모든 측면에서 봐야만 하니까요. 그렇잖아요, 그렇죠?
정치인은 전문가들의 견해 사이에서 판단을 해야만 해요. 그런데 이 판단은 대단히 불가사의한 과정이에요─그 과정에서 상식이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내죠.
아렌트가 ‘상식(common sense, Gemeinsinn)’이라는 말로 뜻하는 것은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성인들이 반복해 보여주는 무의식적인 신중함(gesunder Menschenverstand)이 아니라, 칸트가 말했듯 "모든 이가 공통으로 가진 감각…… 심사숙고를 통해 모든 타인의 표현 양식을 고려하는 판단 능력"이다.
R. 베이너(R. Beiner)가 엮은 아렌트의 『칸트 정치철학 강의Lectures on Kant’s Political Philosophy』(시카고대학교 출판부, 1982) 70~72쪽에 인용된 이마누엘 칸트의 『판단력비판』 §40─원주.
대중과 관련해서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공공의 이익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97-98/297p)

당신은 야스퍼스에게 바치는 헌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성은 혼자 힘으로는 절대 획득되지 않으며, 누군가 자신의 작업을 대중에게 바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성은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를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venture into the public realm’에 바친 사람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 실린 「카를 야스퍼스 찬사Karl Jaspers: A Laudatio」─원주.

(100-101/297p)

내게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은 명확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일개인으로서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거죠.
사람이 자의식에 사로잡혀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행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은 그가 보여주는 모든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요.
말하기도 행위의 한 형태예요. 그게 하나의 모험이죠.
다른 모험으로는, 우리가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는 게 있어요.

(101/297p)

모든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것에 대한 신뢰─만들어내기는 힘들지만 꼭 필요한 신뢰─말이에요.
그게 없다면 그런 모험은 행해질 수 없을 거예요.

(102/297p)

우리는 어떤 범죄자를 떠올릴 때 범행 동기가 있는 사람을 상상해요. 그런데 아이히만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아무 범행 동기가 없었어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범행 동기라고 이해할 만한 게 없었다는 거죠.
그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조하기를 원했어요. 그는 ‘우리we’라고 말하고 싶어 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조하기’와 ‘우리라고 말하고 싶어 하기’만으로도 역사상 가장 극악한 범죄가 자행되게 만들기에 충분했죠.
사실 히틀러 지지자들은 결국 이런 종류의 상황에 전형적인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타인의 지지가 없다면 무력해질 거예요.

(109/297p)

내가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남들에게 동조하는 것─많은 사람이 함께 행동하는 데 끼고 싶어 하는 것─이 권력power을 낳는다는 거예요.
혼자 있을 때는 당신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늘 무력해요.
함께 행동하는 데서 유발되는 이런 권력의 느낌은 그 자체로는 절대로 그릇된 게 아니에요. 그건 인간이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이에요. 그렇다고 선한 감정도 아니에요. 그냥 중립적인 감정이에요. 그건 단순히 하나의 현상이라고 기술할 필요가 있는 보편적인 인간적 현상이에요.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극도의 쾌감이 느껴지죠.

(110/297p)

기능하기functioning는 정말로 변태적인 행위 양식이고, 이런 기능하기에는 항상 쾌감이 따른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그렇지만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남들과 함께 행동하기, 즉 함께 상황을 논의하기, 어떤 의사 결정에 도달하기, 책임을 받아들이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사유하기 등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기능하기에서는 제거돼요.
당신이 거기서 얻는 것은 그저 관성대로 굴러가는 것freewheeling일 뿐이죠.
이런 단순한 기능에서 얻는 쾌감이, 이런 쾌감이 아이히만에게서 꽤나 눈에 잘 띄었어요.
그가 권력에서 특별한 쾌감을 얻었느냐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전형적인 공무원이에요. 그런데 공무원은 공무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일 때 정말이지 대단히 위험한 신사gentleman예요.
여기에서 이데올로기는 그다지 큰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봐요.
내 눈에는 이게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여요.

(110-111/297p)

우리의 총체적인 신화는, 또는 우리의 총체적인 전통은 악마를 타락 천사로 봐요. 타락 천사는 당연히 늘 천사로 남아 있는 천사보다 훨씬 더 흥미로워요. 후자는 우리에게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지 않으니까요.
달리 말해 악惡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특히, 그 자체만으로도 진정한 깊이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철학에서도 동일한 상황을 보게 돼요. ‘부정the negative이야말로 역사를 추동하는 유일한 존재다’와 같은 상황을요.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대단히 멀리까지 논의해나갈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우리가 누군가를 악마로 묘사한다면 우린 스스로를 흥미로운 존재로 보이게끔 만들 뿐 아니라, 남들은 갖지 못한 깊이를 우리 자신에게 몰래 부여할 수 있어요.
그러지 못하는 이들은 지나치게 얄팍한 사람들이라서 가스실에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지 못해요. 지금 나는 일부러 이런 예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그게 현실이 되었죠.
어쨌든 악마적인 아우라aura를 자기 자신에게 조금도 부여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했다면, 그건 바로 헤어herr 아이히만이었어요.

(113-114/297p)

자, 오해 중 하나는 이거예요.
사람들은 평범한 것은 아주 흔하다고도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말하려던 바는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고, 우리 각자는 아이히만과 같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려던 게 절대 아니에요.
내가 하려던 말은 오히려 그 반대예요!
나는 내가 누군가를 꾸짖으면 그들이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그래서 전혀 흔하지 않은 말을 하는 모습을 완벽하게 상상할 수 있어요. 그러면 나는 "너무 평범해banal. ‘진부하다’라는 뜻도 있다" 하고 말해요. 아니면 "별로 안 좋아" 하고 말하거나요. 그게 내가 말하려던 뜻이에요.

(118-119/297p)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지적이었지만 이 측면에서는 멍청했어요.
너무도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평범성이라는 말로 뜻하려던 게 바로 그거예요.
그 사람들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 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에요.

(122-123/297p)

아이히만 자신도 재판 중에 가끔 칸트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일평생 칸트의 도덕 계율을 따랐으며 칸트의 의무duty 개념을 그의 지도 원리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123/297p)

결국 칸트의 총체적인 윤리학은 모든 사람은 행위를 할 때마다 자기 행위의 규범이 보편 법칙general law이 될 수 있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으로 종합돼요.

(123-124/297p)

칸트철학에서는 어느 누구도 순종할 권리를 갖지 않아요.
아이히만이 칸트에게서 취한 유일한 것은 경향성inclination이라는 치명적인 개념이에요. 칸트의 도덕철학에서 경향성이라는 개념과 의무라는 개념은 늘 대비된다─원주.

(124/297p)

내가 말하는 바는 칸트가 말했듯이, 칸트가 한 말을 지금 그대로 인용해도 된다면요, "다른 모든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이 무능력이에요. 그래요, 그런 무능력……. 이런 종류의 멍청함.

(125/2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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