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특수부대 병사들은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과거를 꿈꾼다는 걸 알고 싶을지도 모르지. 우린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라는 걸 알아. 우리가 죽은 사람을 짜깁기해서 만들어졌다는 걸 알아. 거울을 보면 그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있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그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 그들이 영원히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그래서 우린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을지 상상해. 그들의 삶, 그들의 아이, 그들의 남편과 아내를 상상하고, 그중 어느 것도 우리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지

-알라딘 eBook <노인의 전쟁>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중에서 - P295

나는 아내의 무덤 앞에 마지막으로 섰던 날, 한때 그녀였던 무엇은 땅속 구멍 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아무 회한 없이 무덤에서 등을 돌렸던 날을 돌이켜 본다. 나는 새로운 삶에 들어와서 그녀를 다시 찾아냈다. 온전히 다른 사람인 한 여자 안에서. 이 삶이 끝나면 이번에도 회한 없이 등을 돌리리라. 그녀가 또 다른 삶에서 나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기에.
제인을 다시 보지는 못했지만, 다시 보게 될 것을 안다. 곧. 이제 곧.

-알라딘 eBook <노인의 전쟁>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중에서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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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궁극적으로 자네들이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자네들이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 만큼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CDF가 노인들을 병사로 삼는 이유 중 하나다—자네들 모두가 은퇴했으며 경제적인 방해물이라서 데려오는 게 아니다. 또한 자네들이 자기 목숨을 넘어서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 만큼 오래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네들 대부분은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과 손자들을 키워 보았을 것이고, 자신의 이기적인 목표를 넘어서는 일을 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있다. 스스로 개척민이 되어 본 적이 없다고는 해도 자네들은 개척행성이 인류에게 좋다는 사실과 개척민을 위한 싸움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 이런 개념을 열아홉 살짜리의 뇌에 박아 넣기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자네들은 경험으로 안다. 이 우주에서는 경험에 의미가 있다.

-알라딘 eBook <노인의 전쟁>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중에서 - P198

"여기엔 안정적인 기반이 없어. 내가 정말로 믿을 만한 것이 없어. 내 결혼 생활도 누구나처럼 오르락내리락이 있었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바닥이 단단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 난 그 안정감이, 그리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그리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들에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의미인지,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가 포함되어 있어. 난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사람이었던 시간이 그리워. 날 인간답게 했던 부분이 그리워. 그게 결혼 생활에서 그리운 부분이야."

-알라딘 eBook <노인의 전쟁>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중에서 - P264

수잔의 죽음은 내 머리를 맑게 해주었다. 인간도 어느 외계인 못지않게 비인간적일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사건이었다. 투산 호에 타고 있었다면 나 역시 수잔을 죽인 개자식들을 게이퍼에게 먹이는 데 동참했을 것이고, 그러면서 조금도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이 나를 코반두와 싸웠을 때 내가 그렇게 될까 두려워했던 무엇보다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지, 더 나쁜 존재로 만드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나는 전보다 덜 인간다워질까 걱정하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노인의 전쟁>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중에서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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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 엘리만이 어떤 시기에 정말로 살았던 사람인지, 혹시 어느 작가가 문단을 농락하기 위해 혹은 문단에서 도망치기 위해 만들어낸가명이 아닌지 의심할 수는 있었지만, T.C. 엘리만의 책이라는 강력한 진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의혹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의 책을 읽고 나서 덮는 순간에 우리의 영혼을 향해 삶이 거칠고 순결하게 역류해왔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18

문학에 대한, 아마도 삶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놓은 작품은 T.C. 엘리만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 이것이 책의 제목이었고, 우리는 샘물을 마시러 가는 바다소들처럼 그 책으로 돌진했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18

제일 먼저 예언이 있었고, 왕이 있었다. 그리고 예언이 왕에게 말하길, 땅이 너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주리라. 하지만 그 대가로 늙은 사람들의 유해를 내놓아야 했다. 왕은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곧바로 자기 왕국의 노인들을 불태워 죽이기 시작했고, 그들의 유해를 자기 왕궁 주변에 뿌렸다. 그 자리에 곧 숲이 우거졌다. 그 음산한 숲을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라고 불렀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19

물론 그 전까지 T.C. 엘리만을 전혀 몰랐다는 말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이미 이름을 들었다. 식민지 시절부터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학생들의 문학 교재로 사용된 『흑인 문학 개설』 속에 그 이름이 있었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20

세네갈은 여자를 유혹할 때 여전히 시가 가장 믿을 만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였다. 여자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4행시를 외우고 혹은 직접 짓던 시절이었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21

다시 말해보자. T.C. 엘리만, 그는 너무 일찍 빛을 발한 재능 있는 작가였다. 어쩌면 천재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재능을 절망을 그리는 데 바쳤다. 지나치게 비관적인 엘리만의 책은 폭력적이고 미개한 암흑의 아프리카라는 식민주의적인 관점을 더욱 강화했다. 오래전부터 너무 많은 아픔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며 앞으로도 겪게 될 아프리카 대륙은 그 품에서 태어난 작가들이 좀 더 긍정적인 모습으로 자기를 그려주길 바랄 권리가 있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23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는 다른 문학사(어쩌면 진정한 문학사)에 속했다. 시간의 통로에서 길을 잃어버린 책들의 역사, 저주받은 책들이 아니라 그저 잊힌 책들, 그 주검과 해골과 고독이 간수 없는 감옥의 바닥에 흩어져 있는 책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이 무한히 이어지는 얼어붙은 길들 위에 방향 표지석을 세우는 책들의 역사.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24

검색을 통해 새로 알게 된 내용 중에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의 첫 대목이었다. 마치 칠십 년 전 책이 전부 사라질 때 오직 그 대목만이 구조되어 살아남은 듯했다. 제일 먼저 예언이 있었고, 왕이 있었다. 그리고 예언이 왕에게 말하길, 땅이 너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주리라. 하지만 그 대가로 늙은 사람들의 유해를 내놓아야 했다. 이하 생략.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25

엘리만은 문학의 깊은 밤에 단 한 번 성냥을 그어 밝힌 불길이었다. 나는 서서히 엘리만과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잊었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27

어차피 삶은 ‘그럴 수-있다peut-être’ 속의 연결선에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단어를 만드는 가느다란 선 위를 걷고 있지. 내 무게 때문에 선이 끊어진다면 할 수 없지 어쩌겠어. 뭐가 살아남고 뭐가 죽었는지는 그때 가서 보는 수밖에.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27

어쨌든 나는 나를 포함하여 입 거친 인간들이 게토라고 부르는 파리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문단에서 어느 정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내 책을 읽지 않았고 이후에도 절대 읽지 않을 사람들이 〈르몽드 아프리카〉의 짤막한 기사 덕분에 내가 n번째로 등장한 유망주 작가임을 알게 된 것이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29

그때였다. 시가 D.가 부부4의 소매를 걷기 위해 팔을 움직이느라 몇 초 동안 옷의 틈새로 가슴이 보였다. 어두운 터널 끝에서 혹은 대기실 복도 끝에서 어른대듯, 그렇게 시가 D.의 가슴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가 D.는 자신의 유방에 대해 기념비적인 구절들을, 에로틱한 글들만 모아놓은 가장 뜨거운 선집에 들어갈 만한 찬사의 시를 썼다. 다시 말해 나는 후세 문학에 전해질 가슴을 보고 있었다. 많은 독자들이 머릿속에서 시가 D.의 가슴을 보았고, 둥글게 솟아오른 그 가슴에 대해 굳건한 환상을 품었다. 나 역시 품었던 환상이 되살아났다. 시가 D.가 팔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가슴은 비밀로 되돌아갔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33

시가 D.의 젖가슴 앞에서 내 두 손은 우스꽝스러우리만큼 무해하고 작았다. 내 손은 욕망이 불가능한 손, 퇴화된 날개였다. 혀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다. 시적인 유두가 이미 내 혀를 납으로 봉인해버렸다. 망했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39

난 거의 찾을 뻔했지. 가까이 다가갔어. 하지만 너무 험한 굽잇길이었고 멀기도 했고 때론 목숨이 위태로웠지. T.C. 엘리만을 찾다보면 갑자기 발밑에 침묵의 절벽이 열리거든. 마치 하늘이 거꾸로 놓인 듯하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내 앞에 그런 구덩이가 열렸고…… 난 비틀거렸어. 추락했는데…… 그때……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50

아마도 우리가 이 책을 공유하게 될 거야. 우리의 만남은 좀 엉뚱했지. 신기한 지름길로 왔달까. 어쨌든 이리로, 그래, 이 책으로 왔어. 아마 우연일 테지. 운명일 수도 있고. 하지만 우연과 운명이 꼭 반대되는 건 아니야. 우연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운명일 뿐이거든. 보이지 않는 잉크로 이미 적혀 있는 운명.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54

사람들은 책이라면 꼭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디에간, 뭔가에 대해 말하는 건 보잘것없거나 시시하거나 진부한 책들뿐이야. 위대한 책은 주제도 없고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아. 단지 무언가를 말하려고 혹은 발견하려고 애쓰지. 그 단지가 이미 전부야. 그 무언가가 이미 전부이고.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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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만은 그의 밤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미련 없이 태양과 작별한 엘리만에 매료되었다. 승천한 그의 그림자에 매료되었다. 그의 운명의 신비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엘리만은 해야 할 많은 말을 두고 왜 침묵했을까? 나는 무엇보다 엘리만처럼 할 수 없어서 괴롭다. 침묵하는 사람, 진정으로 침묵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늘 자신의 말의 의미—그 필연성—를 묻게 된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말이 어줍잖은 객설은 아닐까, 혹시 언어의 진흙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14

T.C. 엘리만 덕분에, 젊다고 할 수 있을 내 세대의 아프리카 작가들이 경건하고 유혈이 낭자한 문학적 기마창 시합을 치렀다. 엘리만의 책은 대성당이자 투기장이었다. 우리는 신의 무덤에 들어가듯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갔고, 끝날 때는 무릎을 꿇고, 우리의 피를 걸작을 위한 헌주로 바쳤다. 그의 글 한 쪽만으로도 우리는 진정한 작가를, 사용된 적 없는 희귀한 단어를, 문학의 하늘에 단 한 번 떠오른 별을 보고 있다고 확신했다.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85096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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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식사를 함께 한 무리는 점심에도 다시 모였고, 이번에는 제시와 그녀의 룸메이트 매기도 합류했다. 해리는 이제 우리가 공식적인 도당을 이뤘다면서 ‘늙은 방귀쟁이들’이라고 명명하더니 옆 식탁과 음식 던지기 싸움을 벌이자고 했다. 그의 제안은 부결되었다. 적지 않은 이유는 토마스가 말한 대로 집어던지는 음식은 먹을 수 없게 된다는 데 있었고,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이지만 점심 식사는 아침 식사보다 더 훌륭했다.

-알라딘 eBook <노인의 전쟁>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중에서 - P80

그 말대로였다. ‘늙은 방귀쟁이들’은 놀랍게 일소되었다. 토마스와 해리와 앨런은 모델이나 다름없었다. 넷 중에서라면 분명 내가 제일 못생긴 오리새끼였는데 그 나도 근사했다. 여자들 쪽으로 말하자면 제시는 넋이 나가게 미인이었다. 수잔은 그보다 더 매력적이었고, 매기는 솔직히 여신 같았다. 바라보기가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알라딘 eBook <노인의 전쟁>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중에서 - P138

짝이 없거나 건강과 성적 에너지가 떨어져서 전반적으로 성생활을 별로 하지 못했던 사람들 한 무리를 젊고 매력적인 데다가 기능도 뛰어난 신품의 신체에 밀어 넣은 다음, 그들이 알던 모든 것과 사랑했던 모든 사람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우주에 내던져 보라. 이 세 가지 조합이면 바로 섹스라는 처방전이 나온다. 우리는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섹스가 외로움을 몰아내 주기 때문에 했다.

-알라딘 eBook <노인의 전쟁>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중에서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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