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필연보다 우연에 의해 좌우되었고, 세상은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우스꽝스러운 곳이었다.
(10/318p)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인해 회복된다는 사실이다. 고(故) 신영복 선생은 말했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11/318p)

후회해도 내 인생이고, 만족해도 내 인생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까지 피해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정도면 훌륭했다고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칭찬해 주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아무리 준비한들 미래에 찾아오는 노화와 상실까지 막을 수는 없다. 구체적으로 준비하되, 불안한 마음은 현재의 즐거움으로 달래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
(13/318p)

정신분석학자 아들러에 따르면 열등감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우월한 존재로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23/318p)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가장 적절한 잣대는 그 사람이 일평생 살아온 방식이 되어야 한다. (28/318p)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미루지 말고 찾아가고,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야 한다. 젊을 때 같으면 내일로 미뤄도 되지만 중년에 이르면 생각나는 대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내가 보고 싶은 그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전화 한 통으로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도 없다. (31/318p)

열심히 일한다는 것.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일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자에게만 허락된 보람이자 성취다. (41/3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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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지막으로 내게 남은 기회를 잡기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결심하게 되었다. (8/381p)

방향이 맞지 않는 노력은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해도 헛된 것이다. 그렇게 젊음과 인생을 낭비하는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10/381p)

문제나 답을 유형별로 인식하고 그에 맞게 지식을 입력하고 출력하는 패턴 공부법은 조밀한 계획과 실행 방법이 필요하다.
(13/381p)

자신은 행복해지기 위해 공부를 선택했고 또한 그 목표를 이룰 것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금의 (전략적) 이기심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36/381p)

그러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점수 일부를 버리더라도, 내가 선택한 교재나 강의를 100퍼센트 소화하지 못하더라도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72/381p)

비슷한 맥락에서 공부할 때 나는 이해가 잘되지 않는 부분은 나중으로 미루어두었다. 지금 알 수 없는 것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쏟기보다 공부할 수 있는 것을 탄탄히 쌓은 후에 어려운 부분으로 나가고자 했다. 현재 얻을 수 있는 지식을 확실하게 챙긴다는 전략이었다. (73/381p)

저자 의도를 파악하려는 행위 자체가 수험생을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에 눈으로 단순히 텍스트를 스치며 읽는 일을 줄여준다.
(110/381p)

바로 ‘책을 읽고, 시험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지식을 먼저 습득하고, 책을 읽는 것’이다. 이것은 시험에 필요한 지식을 체계화하면서도 입체화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다.
(114-115/381p)

요약하자면 제시되는 문제를 먼저 익히고 이후에 교과서를 정독하면서 지식을 체계화시켜 나갔다. (117/3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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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상품이 교환되는 비율을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요소를 노동시간으로 본 것이죠. (65/369p)

끝없는 이윤 추구 욕망이 M—C—M′의 순환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거래의 수단인 화폐가 자본이 되면 화폐는 ‘수단’에서 ‘목적’으로 격상되죠. (80/369p)

끝없는 이윤 추구 욕망이 M—C—M′의 순환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거래의 수단인 화폐가 자본이 되면 화폐는 ‘수단’에서 ‘목적’으로 격상되죠. (80/369p)

상품 교환(물물교환이든 화폐를 매개로 하든 상관없이)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일반적으로 유통과정이라고 합니다. 유통과정과는 별개로 ‘생산과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생산과정은 말 그대로 원료, 기계 등을 이용해서 노동자가 상품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요컨대 상품을 만드는 과정이 생산과정이고, 상품을 시장에서 화폐나 다른 상품으로 교환하는 과정이 유통과정입니다.
(84-85/3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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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rial resembles a play in that both begin and end with the doer, not with the victim. A show trial needs even more urgently than an ordinary trial a limited and well-defined outline of what was done and how it was done. In the center of a trial can only be the one who did-in this respect, he is like the hero in the play-and if he suffers, he must suffer for what he has done, not for what he has caused others to suffer.
(9p)

Thus, the trial never became a play, but the show Ben-Gurion had had in mind to begin with did take place, or, rather, the "lessons" he thought should be taught to Jews, and Gentiles, to Israelis and Arabs, in short, to the whole world.
These lessons to be drawn from an identical show were meant to be different for the different recipients. Ben-Gurion had outlined them before the trial started, in a number of articles designed to explain why Israel had kidnaped the accused. (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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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하는 참상의 중압감 아래 무너진 것은 바로 이재판의 연극적 측면이었다.
재판이란 희생자가 아니라 행위자와 함께 시작되고 끝나는 연극과 흡사하다. (56p,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It was precisely the play aspect of the trial that collapsed under the weight of the hair-raising atrocities.
A trial resembles a play in that both begin and end with the doer, not with the victim. (8-9p, Eichmann in Jerusalem)

재판의 중심에는 행위자만이 존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행위자는 연극의 주인공과 같다.
따라서 만일 그가 고통을 받는다면 그가 행한 일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지, 그의 행위가 야기한 타인의 고통 때문에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 (57p,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In the center of a trial can only be the one who did
- in this respect, he is like the hero in the play
- and if he suffers, he must suffer for what he has done, not for what he has caused others to suffer. (9p, Eichmann in Jerusalem)

따라서 이 재판은 결코 연극이 되지는 않았지만, 벤구리온이 처음에 염두에 두었던 쇼, 즉 그가 유대인과 이방인, 이스라엘인과 아랍인, 간단히 말해 전 세계에 가르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교훈’을 담은 쇼는 이루어졌다.
바로 이 쇼에서 얻은 교훈은 교훈 받을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했다. (57p,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This, the trial never became a play, but the show Ben Gurion had had in mind to begin with did take place, or, rather, the "lessons" he thought should be taught to Jews and Gentiles, to Israelis and Arabs, in short, to the world.
These lessons to be drawn from an identical show were meant to be different for the different recipients. (9p, Eichmann in Jerusalem)

시간의 회오리바람 속의 낙엽처럼 그는 마법으로 차려진 식탁에서통닭이 입으로 날아드는 환상세계인 슐라라피아(더 정확히 말하자면, 학위와 보장된 직업과 세련된 유머의식‘을 가진, 가장 큰 악덕이란 농담 섞인 장난을 치고 싶어 참을 수 없어하는 충동인, 존경받는 속물들 의 모임)에서, 정확히 12년 3개월간 지속된 천년제국의 행군 대열로 달려갔다. 어쨌든 간에 그는 신념을 가지고 당에 가입한 것도 아니었고, 또 어떤 신념에 설득된 적도 없었다. 당에 가입한 이유를 말해달라고하면 그는 언제나 베르사유 조약과 실업‘과 같은 똑같은 진부한 표현들(clichés)을 반복했다. 또는 그가 법정에서 ‘어떠한 기대나 사전 결심 없이 그냥 당에 의해서 집어삼켜진 것과 같았습니다. 너무도 빠르고,
갑작스럽게 일어났습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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