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나 잡지, 영화 등의 매체가 덜 발달되어 있던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노래와 이야기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경향이 강한데, 그리스의 경우 이를 종합한 것이 연극 공연이었던 것이다.《해리 포터》의 덤블도어 교장의 모델이었다는 영국의 고전학자 와이즈맨Wiseman은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극 공연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극장이야말로 그 공동체가 공유하는 신화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산실이라고보았다. 공동체가 공유한 경험을 재생산하는 극의 재현은 한 집단의 공동 기억을 효과적으로 재생함으로써 사회적 응집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게 마련이었다. 또한 고대 지중해 사회처럼 ‘명예와 수치’에 관한 코드가 강하던 지역에서는 ‘가십‘의 역할이 상당했으리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가십이나 루머를 퍼뜨리는 기능에서도 극장은 오늘날의 뉴스 미디어를 능가하는 효과적인 장소였을 것이다. (340-341p)
이와 관련하여 한 흥미로운 연구는 갈랜드Garland의 《새로운 신 모셔오기Introducing New Gods》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 갈랜드는 어떤 새로운 신이 고대 그리스의 한 나라로 영입되는 과정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의 도래-사람들의 거부-새로운 신의 분노와 이를 보여주는 기적-신탁의조정-새로운 신의 수용‘ 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파악했다. (323p)
전쟁이 일어났을때 대처하는 여러 종교적 관행이나 기제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했던 것이에보카티오evocatio 의식이었다. 에보카티오는 ‘불러내다‘ 라는 라틴어 evoco 에서 나온 단어로, ‘신 모셔내기‘ 혹은 ‘신 불러내기‘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에보카티오 의식은 전염병, 흉년, 특히 전쟁 같은 불가항력적인 국가적 위기를 맞았을 때, 이를 타개하기 위해 도움을 줄 신이나 영웅을 영접하는 의식이다. 특히 전쟁 시에는 적국의 신을 회유하기 위해 더욱 빈번하게 행해졌다.(311p)
이 가운데 농경사회의 제의에서 비극이 나왔다고 본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어 드라마의 어원이 된 ‘드라오drao(행하다)‘라는 단어에 주목하면서, (의례를) 행하는 데서 드라마가 나온 것이라고 보았다. 즉, 드라마는 농경사회의 집단적 제전행위에서 나온 것으로, 파종, 경작, 흉년 등 농사지을 때의 고통이나 슬픔에서 비극이, 수확 등의 기쁨에서 희극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268-279p)
극장theatron의 어원
오늘날 극장을 뜻하는 영어 ‘theater’ 혹은 ‘theatre’는 고대 그리스어 ‘theatron’에서 나왔다. 테아트론은 ‘보다thea‘와 ‘도구tron‘의 합성어로 ‘보는 도구’, 즉 ‘볼 수있는 자리‘ 라는 의미이다. 이는 일종의 좌석이나 장소의 개념이므로 ‘보는 이’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단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테아트론이라는 원래 단어에 공연 무대(스케네 skene)라든가 입장 공간(파로도스 parodos) 등의 모든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은 적다. (25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