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유명한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은 다음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계급이란 역사적으로 일정한 사회적 생산체계에서 사람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생산수단에 대한 그들의 관계(대개는 법적으로 고정되고 성문화되어 있는)와 사회적 노동조직에서 그들이 맡은 역할에 의하여, 따라서 사회적 재화 중에서 그들이 차지하게 되는 몫의 분량과 그 취득 방법에 의하여 서로 구별되는 사람들의 큰 집단을 말하는 것이다.
계급이란 사람들의 집단인데 그중에서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의 노동을 착취할 수 있는 것은 일정한 사회경제 제도하에서 사람들이 차지하는 지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259/352p)

인류 역사에 등장한 여러 사회의 생산양식에서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 사이에 착취와 피착취 관계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264/352p)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계급과 소유하지 못한 피지배계급으로 나뉘는 계급 사회는 인류 역사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수준에 따른 산물입니다.
(265/352p)

이렇게 잉여 생산물을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죠.
(267/352p)

계급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사회를 변혁하는 근본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273/352p)

마르크스는 국가를,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기 위한 기구, 곧 지배계급의 권력기구로 보았습니다.
(276/352p)

국가라는 것은 해당 사회의 경제적 토대 위에 존재하는 정치적 상부구조입니다.
노예제 사회의 경제적 토대에 맞는 노예제 국가가 존재하고,
봉건제 사회의 경제적 토대에 맞는 봉건제 국가가 존재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토대에 맞는 자본주의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278/352p)

신자유주의자로 악명 높은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과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내세우기 시작한 ‘작고 강한 정부’론은 이제는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모든 국가가 이상적인 모델로 상정하는 정부 형태다. 우리나라에서도 신자유주의가 전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역대 정부들은 예외 없이 ‘작고 강한 정부’를 주장해왔다. (281/352p)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을 진짜 ‘혁명’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지배계급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봉건 귀족 계급은 권력을 잃고 신흥 자본주의 계급이 권력을 얻게 되었죠.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서도 기존의 보수 권력이 무너지고 진보적인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얻었습니다.
(289/352p)

왜 하필 자본가 계급이 혁명에 성공했을까요?
그것은 자본가 계급이 새로운 생산력 발전을 담보한 계급이기 때문입니다.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이 혁명의 원동력입니다.
상공업의 발전으로 새로이 등장한 자본가 계급이 생산력의 발전을 이끄는 계급이었습니다.
반면에 봉건 지주 계급은 낡은 생산관계를 대변하는 계급이었고요.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의 모순은 자본가 계급과 봉건 지주 계급 사이의 모순으로 나타났습니다.
(292/352p)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야말로 진정한 인민의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체제라고 보았습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소수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자본가 독재 체제였습니다. (298/352p)

하지만 저는 궁극적으로 역사는 진보한다고 생각합니다.
잠시 낡은 계급이 지배권을 회복하고 때로는 더욱 강화할지라도,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은 그대로 존재하니까요.
모순과 갈등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이 존재하잖아요. 우리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통해서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311-312/352p)

아무튼 예방의학, 사람이 아프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어요. 자본주의 의료에서는 예방의학이 발달하지 않아요. 왜? 병을 고치면서 돈을 버는데 병에 안 걸리게 예방하면 돈을 못 벌잖아요. 그래서 쿠바 의사들이 베네수엘라에 가서 예방의학과 그 체계를 전수하는 거예요. (342/352p)

그래서 제가 차베스 대통령의 이 말을 참 좋아해요.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누가 누구한테 시혜를 베푸는 게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 자체가 주인이 돼야 가난을 근본적으로 끝장낼 수 있다는 거죠. 항상 누가 누군가에게 시혜를 베풀어야만 돌아갈 수 있는 사회는 어딘가 병들고 잘못된 사회죠.
베네수엘라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에콰도르나 볼리비아 같은 나라들은 차베스식 혁명, 제헌의회를 통해서 자원을 국유화하는 방식의 혁명을 똑같이 하고 있어요.
(344/3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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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공동체 생활을 잘해야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게임의 법칙이 있는 곳이 원시공동체 사회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는 ‘생존’ 자체가 ‘함께 도와가면서 사는’ 삶이 될 수밖에 없죠. 그런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와 같은 ‘이기심’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얻은 지식과 정보를 빨리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자신이 구한 먹을거리도 함께 나눠 먹는 것이 상식입니다. ‘이기심’은 그 사회에서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238/352p)

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이 다른 누군가가 노동한 덕분입니다. 물론 저 자신이 하는 노동도 누군가를 돕게 되지요. 이렇게 우리는 한순간도 다른 사람의 노동 없이는 살아나갈 수 없습니다. 사실 ‘돈’이라는 것은 각자 노동한 성과물들을 교환하는 데 중간에서 매개 구실을 하는 것일 뿐이죠. ‘돈’이 무슨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나요? 모든 가치는 ‘노동’이 창출하는 것입니다.
(245/352p)

이렇게 자본주의에서 모든 것을 ‘화폐’에 대한 환상으로 바꿔버리는 현상을 마르크스는 《자본론》이라는 책에서 ‘물신주의’라고 불렀습니다. (246/352p)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의료와 교육은 국가가 제공하고, 토지는 개인이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인 거죠. (249/352p)

자본주의적 ‘토대’가 그에 어울리는 ‘상부구조’를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인간성까지도 규정할 수 있다는 얘기가 핵심이었습니다. 자본주의적 토대가 자본주의적 ‘인간형’까지 만들어내는 것이죠. (252/3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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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은 지식 추구를 방해하는 네 가지 착각, 즉 4대 우상(偶像)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 중심적 사고로 인한 착각은 ‘종족의 우상’,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처럼 좁은 경험으로 인한 착각은 ‘동굴의 우상’, (잘못된) 언어로 인한 착각은 ‘시장의 우상’, 권위에 기대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갖게 되는 착각은 ‘극장의 우상’ 이라고 각각 명명했다. 이런 베이컨의 통찰을 토대로 내 나름대로 수학 공부를 방해하는 4대 우상을 정리했다. (15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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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진리를 인식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실천’이라는 개념을 사용합니다. (146/364p)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양재혁 옮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돌베개, 1992, 109쪽의 번역문을 조금 다듬었다.

(149/364p)

요약하면,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의 과정을 통해서 어떤 이론이 도출되고, 그러한 이론이 실천을 통해 검증되는 끊임없는 과정, 곧 이론과 실천의 무한한 변증법적 과정이 인간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죠. (151-152/364p)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진리란 인간이 절대로 파악할 수 없는 피안彼岸의 세계에 존재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상대적 진리란 절대적 진리의 일부 측면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론과 실천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우리는 절대적 진리를 조금씩 더 알게 되는 것이지요.
(157/364p)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160/352p)

이렇게 사회의 구성원이 함께 공유하게 되는 의식을 ‘사회적 의식’이라고 합니다.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가 ‘사회적 의식’을 공유하게 되는 까닭은 그들이 놓인 환경이 같기 때문입니다.
(164/352p)

역사 유물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변수들 가운데 역사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요인을 찾아내서,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입니다.
(179/352p)

생산력 = 노동력 + 생산수단
생산수단 = 노동대상(원료) + 노동수단(기계)
(182,184/352p)

생산관계란, 인간 사회에서 생산 활동이 이루어질 때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를 말합니다.
Ex.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
(184/352p)

생산양식 = 생산력 + 생산관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역사 발전을 낳는다.
(192/352p)

자본가 계급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면 더 많은 토지와 노동자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봉건적인 지주-농노 생산관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가로막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입니다.
상공업의 발달로 나타난 자본주의적 생산력 발전과 기존의 봉건적인 생산관계 사이에 모순이 빚어진 것이지요.
(194-195/352p)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에는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는 통일되어 존재하지만, 그 사이에 언제든지 모순과 갈등으로 자라날 수 있는 씨앗을 품고 있지요.

생산력의 점진적인 양적 변화가 생산관계의 질적 변화로 전환된다? 바로 ‘양질 전화의 법칙’이죠.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바뀌는 시기를 우리는 역사에서 ‘혁명’이라고 부르지요.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는 ‘혁명’을 낳습니다. 그래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죠.

(199-200/352p)

마르크스는 이런 주기적인 공황이 일어나는 원인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으로 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소유의 사적私的 성격 사이의 모순’이라고 얘기하지요.
(207/352p)

마르크스는 기업이 자본가의 사적인 이윤 추구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전체 사회 차원에서 계획되지 않는 ‘생산의 무정부성無政府性’ 때문에 과잉생산에 따른 공황이 발생한다고 본 것입니다. (215/352p)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변화 발전을 거쳐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생산력의 사회적 성격이 생산관계의 사회적 성격과 맞아떨어져서 공황이라는 파괴적 현상이 없어지고, 자본가가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222-223/3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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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프로젝트는 본격적으로 우주 환경에 인간의 신체를 맞추는 판트로피(Pantropy)의 일환이었다. (281/3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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