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어떤 술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맥주를 좋아합니다.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약 5퍼센트쯤 됩니다. 디딤돌 효과가 맞다면, 제가 맥주를 몇 년 마시다 보면 맥주에 내성이 생겨서 전혀 기분이 좋아지지 않고, 결국 맥주를 증류시킨 위스키(40퍼센트)에 손을 댔다가 중독이 돼야 합니다. 막걸리를 좋아하면 소주중독자가 되고, 와인을 좋아하면 브랜디중독자가 돼야 하는 거죠.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가요?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90/374p)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금지론자들이 걱정하던 디딤돌 효과는 오히려 완전히 금지를 할 때 더 많이 나타납니다. 실제로 금주법 시행 전과 금주법이 폐기된 이후를 비교했더니, 독주 소비가 훨씬 많아졌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금주법 이전에는 도수가 낮은 술들을 마시다가, 금주법 동안 독주를 마시다 보니 그 술에 익숙해진 거죠. 이 수치는 금주법이 해제되고 한참이 지난 1980년대가 되어서야 금주법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192-193/374p)
중독의 대표적 이론은 ‘물질대사metabolism 불균형론’입니다. 마약은 기본적으로 화학물질이고, 몸에 흡수되면 여러 가지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 마약이 특정 신경물질을 대체하기도 하고, 신경물질을 자극해 과하게 반응하게도 합니다. 이런 마약 작용이 몸에 익숙해지면, 마약을 하지 않았을 때 신경물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작동하더라도 더 많은 신경물질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마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유지될 수 없게 되는 거죠. 단순히 심리적 요인이 아니라 신체적으로 마약을 갈구하게 된다는 겁니다.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을 찾듯이, 마약 사용자가 마약을 찾게 되는 거죠. 그리고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을 끊을 수 없듯이, 마약 사용자도 마약을 끊을 수 없게 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06/374p)
제대로 성장한 사람은 자아의 3요소(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 ego)가 조화롭게 기능하지만, 미성숙한 사람은 이 3요소가 서로 파괴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12/374p)
UN 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리포트에 따르면 2015년 1년에 1회 이상 마약을 복용한 이는 대략 2억 5,500만 명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는 마약 가능 인구(15세에서 64세)의 5.3퍼센트에 해당합니다. 이들 중 대다수는 한 달에 한두 번, 마약을 가볍게 복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가운데 마약중독이라 할 만한 이들은 대략 3,000만 명 정도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18-219/374p)
정확히 통계에 잡히진 않지만, 연간 3,000억 달러(350조 원)가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위가 너무 커서 감이 안 오는 분들을 위해 비교를 하자면, 할리우드를 포함한 전 세계 영화시장 규모가 연간 1,000억 달러밖에 안 됩니다. 불법 마약시장이 전 세계 영화시장보다 세 배나 큰 거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19/374p)
미국은 겉으로는 마약에 강경한 입장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뒤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죠. 미국은 냉전시대 내내 전 세계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친미 조직들의 마약판매와 무기 구입을 용인했습니다. 중요한 건 체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3세계 국가의 공산화를 저지해야 했죠. 그래서 친미 성향의 반군 단체들이 제조한 마약을 미국 내에 유통하게 해주고, 그 돈으로 미국 무기를 구입하게 해서, 공산정권을 전복시키는 쿠데타를 일으키게 했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21/374p)
미국이 벌이는 ‘마약과의 전쟁’은 뜬금없게도 남미의 자연 환경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콜롬비아는 독특한 자연환경으로 세계 생물 다양성의 15퍼센트를 책임지고 있습니다.6 산림도 풍부해 지구의 허파 역할도 하죠. 그런데 미국의 마약시장이 거대해지면서 콜롬비아의 마약제조업자와 가난한 농부들이 숲에서 마약을 재배하기 시작합니다. 마약이 그나마 수익이 괜찮으니까, 그들은 공권력의 눈을 피해 숲속 깊이 들어와 숲을 밀어버리고 코카밭을 만듭니다. 콜롬비아의 산림 파괴 중 절반 이상이 이런 마약재배 때문에 일어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32/374p)
에스코바르가 그의 아들에게 해줬다는 조언으로 이 장을 마무리하죠.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은 그것을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다.
Valiente es el que no la prueba.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265/374p)
<레퀴엠> 마약 영화의 종결자
원제: <Requiem For A Dream> 개봉: 2000년 등장 약물: 엑스터시, 코카인, 헤로인, 메스암페타민, 대마초
※ 경고: 이 영화는 충격적인 장면과 보는 이의 기분을 바닥 끝까지 떨어뜨리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관람에 주의하세요. 안 보셔도 괜찮습니다. 정말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썼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 영화만은 찾아보겠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34/374p)
<카르텔 랜드> 마약범죄 아래에서의 삶 원제: <Cartel Land> 개봉: 2015년
현장감이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쓰러진 카메라 앞으로 진짜 총알이 날아다니죠. 제작진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통을 받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영화에서 살아남은 이가 지나가듯 읊조리는 대사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상황이 이 대사 같은지도 모르겠네요.
우린 운이 좋은 거예요. 일단은요.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51/374p)
우리 사회가 마약에 갖고 있는 태도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도핑을 검사하는 일을 하면서 불법적인 도핑을 도왔던 그리고리처럼, 국가의 통치 아래서 우리도 이런 이중성을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는 국민을 휘어잡을 ‘마약은 아니지만 마약 같은 것’을 찾으려고 하고, 그 속의 개인은 ‘마약은 안 했지만 마약 한 것 같은 기분’을 꿈꾸죠.
영화 속에서 계속 인용되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두가 거짓을 수용하면, 거짓은 역사의 일부가 되어 진실이 된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56/374p)
우리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금단현상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지 않다. 부정적인 주변 환경이 우리가 금단현상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만들 뿐이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61-362/374p)
빨갱이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헤겔의 『법철학 강요』를 비평하면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 한마디로 이후 전 세계 공산국가에서 종교가 탄압을 받게 됩니다. 끔찍한 일도 많았죠.
하지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에서 아편은 마약이라기보다는 진통제로 보아야 합니다. 당시에 실제로 아편은 인민들의 진통제 역할을 했으니까요. 그렇게 보면 공산국가의 종교 탄압은 원인과 결과가 완전히 뒤바뀐 정책이었던 거죠.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64/374p)
마지막 인사는 네덜란드 훌스만 보고서의 한 문장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죠.
국가는 국민의 어떤 행위에 대해, 국가 권력이 생각하는 삶의 개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동의하지 못한다는 관점에 서서는 안 된다.
네, 그렇답니다. 우리의 국가는 그렇습니까?
아니 그 이전에, 우리는 국가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65-366/374p)
다음 책이 나올지 안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남들 하는 건 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함께 방송을 만들었던 지사, 준태, 멍부, PAIN, 길냥이, 스꿩크, 브람스, 무민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그들의 앞날이 코카인처럼 자극적이고, LSD처럼 환상적이길 바랍니다.
책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든 J와 M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책 한 권씩 강제로 보낼 테니, 냄비 받침으로 쓰세요. 언젠가 대마초 합법화되는 날, 한 모금씩 나눠 피워요.
또 (자식이 이런 책을 쓴지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부모님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딱히 효자는 아니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마약성 진통제는 아낌없이 넣어드릴게요. 늘 건강하세요.
쏟아지는 원고 더미 속에서 이 글을 건지고 다듬어준, 하명성 에디터와 동아시아출판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히로뽕처럼 팔려나가서 출판 시장의 한 획을 그으시길 기원합니다. 그 외에도 몇 군데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는데, 함께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정말 며칠 밤을 고민했어요(그러니 제발 다음에 제 원고를 거부하지 말아주세요).
마지막으로 이런 시시콜콜한 잡담까지 읽어준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책을 구매하셨다면 두 번 전합니다. 제 글을 읽는 동안 마약 한 것 같은 기분이었길 바랍니다.
궁금한 사항이나 책 후기, 오류, 출판 문의, 강연 문의, 불우이웃 성금, 아르바이트 제의, 고백, 기타 잡담은 todayohoo@gmail.com으로 주세요. "마약 어디서 사요?" 같은 질문은 스팸 처리하겠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 중에서 (373-374/3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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