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추상미술의 창조자인 바실리 칸딘스키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상’이라는 새로운 미술의 영토를 개척한 그는 자타공인 지식인이었습니다. 화가뿐만 아니라 미술이론가이자 교육자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팔방미인의 면모를 보여주었죠.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99

프랑스에 파리가 있었다면, 독일에는 뮌헨이 있었습니다. 좀 더 얘기하자면 파리 예술의 중심이 몽마르트르였다면, 뭔헨 예술의 중심은 슈바빙이었습니다. 몽마르트르에 서유럽권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면, 슈바빙에는 동유럽권 예술가들이 흘러들었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407

그는 파리에서 대유행 중인 아르누보(Art Nouveau, 새로운 예술을 뜻함) 운동에 영감을 얻어 1892년 뮌헨 분리파를 만듭니다. 그리고 유겐트슈틸(Jugendstil, 젊은 스타일을 뜻함) 운동의 선봉장을 자처하며 보수적인 예술계에 대항합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4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 P458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별의 기원과 진화와 그 뿌리에서부터 서로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첫째,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원자적 수준에서 볼 때 아주 오래전에 은하 어딘가에 있던 적색 거성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원소들의 원자 번호에 따른 상대 함량 비율의 분포가 별에서 합성되는 원소들의 상대 함량비율과 딱 들어맞기 때문에 그것들이 모두 적색 거성과 초신성이라는 특별한 용광로와 도가니에서 제조됐음을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 P458

유전자 코드의 형성, 캄브리아기에 있었던 생물 종의 폭발적 증가, 인류 조상의 직립 보행 등도 따지고 보면 모두 결정적 시기마다 지구 생물의 진화 역사에 개입했던 우주선과의 상호 작용에 따른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 P461

초신성 폭발의 전제 조건은 규소의 핵융합으로 철의 중심핵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엄청 높은 압력 아래서 별의 중심부에 있던자유 전자들은 철 원자핵의 양성자와 짝짓기를 강요당한다.
같은 크기의 양전하와 음전하가 만나면 전하가 상쇄되므로 별 내부가 하나의 커다란 원자핵으로 변한다.
이렇게 생성된 한 덩이의 거대한 원자핵은 자신의 구성원이던 전자와 양성자가 따로따로 있을 때보다 부피가 훨씬 작다.
작은 철의 중심핵이 내파 內破, implode되면 이를 따라 중심을 향해 돌진하던 외곽부는 중심핵에서 밖으로 튕겨서 격렬하게 외파 外破 explode하여 초신성으로 폭발한다.
은하에서 초신성이 폭발하면 그 초신성 하나가 은하의 모든 별들을 합친 것보다 더 밝게 빛을 낸다. 오리온자리에서 볼 수 있는 최근에 태어난 무거운 별들도 앞으로 수백만 년안에 모두 초신성으로 폭발할 것이다. 사냥꾼 오리온이 앞으로 벌일 불꽃놀이가 사뭇 기대된다. - P466

태양 규모의 별들은 적색 거성의 단계를 거쳐 백색 왜성으로 자신의 일생을 마감한다. 질량이 태양의 두 배에 이르면서 중력 수축 중에 있는 별은 초신성 폭발을 거쳐 중심에 중성자별을 남기는 것으로 일생을 끝맺는다. 이보다 훨씬 큰 별의 경우, 이와 다른 성격의 운명이 그를기다린다. 초신성으로 폭발하고 남은 질량이 태양의 다섯 배 이상이면자체 중력이 잔존하는 질량 덩이를 블랙홀로 몰아간다. - P469

중력이 아주 강력하면 빛조차 그 중력장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나 강한 중력장을 동반하는 천체를 우리는 블랙홀 black hole이라고 부른다. 이것이야말로 주위 상황에 아랑곳 않는 불가해한 우주적체셔 고양이인 것이다. 밀도가 충분히 높고 중력이 한곗값 이상으로강해지면 블랙홀은 윙크 한 번 하고 우주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빛이블랙홀 안에 갇혀 있으므로 블랙홀의 내부는 휘황하게 밝을 것이다. - P471

아인슈타인의비유를 더 밀고 나가면, ‘블랙홀은 공간에 패인 바닥 없는 보조개‘ 라고주장할 수 있다.
당신이 그 보조개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자.
밖에서 봤을 때 당신이 다 빠져 들어가는 데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렇게 강력한 중력장에서는 기계적, 생물학적 시계가 완전히 멈춘 것으로 감지되기 때문이다.
한편 빠져 들어가고 있는 당신의세계에서는 모든 시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중력에 따른 막강한 조석력과 강력한 복사를 당신이 ‘신의 특별 배려로‘ 어떻게든 견뎌 낼 수만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검은 구멍이 자전하는블랙홀이라면, (자전할 확률이 대단히 높다.) 당신은 시공간의 또 다른 점으로 출현할 것이다.
공간과 시간적으로 모처某處와 모시某時에 다시 나타난다는 말이다. - P4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네의 항해일지에 마네는 절대 빠질 수 없습니다. 1863년 〈풀밭 위의 점심 식사〉와 1865년 〈올랭피아〉. 이 두 작품으로 마네는 파리에서 욕과 칭찬을 동시에 듣는 악동이자 유명인사가 되었는데요.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려는 젊은 화가들에게 마네는 리더로 추앙받기에 이릅니다. 야심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바티뇰 거리에 있는 마네의 집으로 하나둘씩 찾아가 새로운 미술에 대해 토론을 나누었죠. 바티뇰 그룹이라고 불리는 이 무리에는 드가, 르누아르, 세잔, 바지유, 팡탱 라투르 등이 있었고 모네 역시 멤버였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32

마네와 매우 비슷해진 모네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만의 차별점 또한 그림 속에 살짝 숨겨두었습니다. 바로 ‘빛’입니다. 매우 선명한 햇빛이 캔버스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34

모네의 시선은 적의 심장부를 정조준합니다. 카메라의 원리를 파고 들어가죠. 카메라는 광학과 화학 발전의 산물입니다. 광학의 발전은 빛을 모아주는 렌즈를 낳았고, 화학의 발전은 그 빛을 담는 감광판을 낳았습니다. 카메라는 그저 빛을 모으고 담아 피사체를 정확하게 찍어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오직 ‘빛’만으로 풍경, 인물, 사물 등 모든 대상을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모네는 빛이 있어야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마치 이런 것이죠. ‘사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에 비친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물이 지닌 고유의 색은 없다. 사물의 색은 ‘빛’에 의해 변하는 것이다. 사물이 지닌 고유의 형은 없다. 사물의 형은 ‘빛’에 의해 변하는 것이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38

이로써 자연을 보는 모네의 관점은 180도 변합니다. 자연을 ‘빛의 반사로 탄생한 무수한 색채 조각의 총합’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38

모네는 광학을 자신의 회화론으로 끌어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반영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 모네 자신이 카메라가 된 것입니다. 모네의 눈은 렌즈가, 손은 바디가, 팔레트는 감광판이 됩니다. 즉, 이렇게 그리는 거죠. 자연에 방금 빛이 반사되어 색이 보입니다. 모네의 눈(렌즈)은 그 색을 빠르게 포착합니다.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모네의 손(바디)은 재빨리 그 색을 팔레트(감광판)에서 찍어냅니다. 이후 신속히 단 한 번의 붓 터치로 캔버스(사진)에 포착합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39

10여 년 항해의 끝 무렵, 모네는 드디어 미술 신대륙을 발견합니다. 1874년 1월 17일, 모네는 부댕,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시슬레, 카유보트, 모리조, 세잔 등 보수적인 살롱전을 거부하고 새로운 미술을 하겠다는 화가들과 함께 제1회 무명협동협회전을 개최합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40

원근법으로 캔버스에 실재 공간이 있는 듯한 환영을 만들려는 고정관념을 거부합니다. 대신 캔버스의 평평함을 그대로 살린 평평한 그림으로 승부합니다. 또, 수천 번의 세밀한 붓질로 실재 물체가 있는 듯한 환영을 그리려는 고정관념을 거부합니다. 대신 빛이 만든 찰나의 순간,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신속히 포착해 최소한의 붓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는 새로운 시대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죠. 1858년 이후, 그가 경험하며 깨우친 것들의 정수가 이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입니다. 마치 기념비처럼 말이죠.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43

모네에 의해 자연의 미는 재발견됩니다. 지금껏 역사화, 인물화 등에 의해 천대받아 왔던 풍경화의 가치가 인정받게 된 것이죠. 또, 모네는 마네에게 배운 우키요에의 정수를 더욱 극단적으로 끌고 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합니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라는 기계에서 광학을 얻어 기계가 따라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회화의 새로운 영토를 창조합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44

인상주의를 한 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오직 빛이 보여주는 세상을 솔직하게 포착해 그린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53

인상주의는 사진 기술의 근간인 광학이 반영되었습니다. 1874년 최초의 인상주의전이 초상 사진가 나다르의 스튜디오에서 열린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53

인류 3대 사과를 아시나요? 첫째는 이브의 사과, 둘째는 뉴턴의 사과, 마지막 셋째는? 바로 ‘세잔의 사과’입니다. 물론, 세잔을 심히 존경했던 후배 화가 모리스 드니의 사심 담긴 발언입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58

19세기 중반 이후, 마네가 ‘미래의 회화로 가는 문’을 발견하고, 모네가 그 문을 열었다고 말씀드렸죠? 세잔은 모네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인상주의를 ‘세잔식’으로 업그레이드합니다. 즉, 세잔식 인상주의를 만든 것이죠. 이 세잔식 인상주의는 20세기 초입부터 빅뱅급 위력을 발휘합니다. 마티스와 피카소가 20세기 회화를 혁신하는 영감의 핵심 원천이 되거든요.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59

인상주의 매너리즘에 빠진 파리 미술계에 인상주의를 넘어 전혀 새로운 미술을 하겠다는 화가들이 등장합니다. 익히 들어온 그 이름들 쇠라, 고갱, 반 고흐, 툴루즈 로트레크, 그리고 세잔입니다. 이들을 후기인상주의자라고 부릅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62

그의 롤모델이 된 대가는 바로크 시대를 연 카라바조, 사실주의 선언자 쿠르베, 낭만주의 리더 들라크루아 등이었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64

세잔을 이해하는 핵심이기도 한 ‘무엇’은 단 두 개로 요약됩니다. ‘자연의 본질’과 ‘조화와 균형’.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74

세잔의 사과를 볼까요? 〈사과와 오렌지〉입니다. 그는 사과를 보이는 그대로 모방해 그리지 않았습니다. 모네처럼 수많은 색점을 찍어 사과를 사라지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사과의 겉이 아닌 속을 통찰하고자 했습니다. 사과에 담긴 색의 엑기스만을 추출해 담은 것이죠.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79

또 〈사과와 오렌지〉에는 그가 자연에서 추출한 ‘형태의 엑기스’가 담겨 있습니다. 그는 산, 나무, 집 등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의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통찰했습니다. ‘형태의 본질은 도형이다.’ 세잔은 모든 사물을 원기둥, 구, 원뿔 등으로 꿰뚫어보았습니다. 즉, 모든 사물의 형태에 기름기를 쏙 빼고 기본 도형으로 본 것이죠.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80

인상주의에 ‘조화와 균형’을 담자! 이것은 ‘자연의 본질’을 담자는 것과 함께 세잔의 평생 과업이 됩니다. 그는 조화와 균형을 만드는 본질마저 통찰합니다. 바로 ‘구성(Composition)’입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85

찰나의 빛에 집중하면서 인상주의가 잃어버렸던 그림 속 ‘조화와 균형’, ‘자연의 본질’을 다시 살려내려고 했죠. 이것이 바로 세잔식 후기인상주의입니다. 이런 세잔의 노력은 20세기 초 야수주의와 입체주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운동장 맞은편 끝에 색칠한 장난감처럼 서 있는 신설 중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쳤다. 매일 아침 나는 초등학교 건물을 거쳐 중학교로 갔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기도를 듣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그냥 그 건물에 들어가보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는 흡사 그냥 성당에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과 같다. 1700년대에 스페인 선교사들이 세운 이 학교는 사막 같은 환경에서도 오래 버틸 수 있도록 견고하게 지어졌다. 다른 오래된 학교들도 그곳을 거쳐가는 어린이들에게 고요하고 견고한 느낌을 주지만, 이 학교에는 그런 느낌에 더하여 선교의 평화, 성소의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97

그들은 영어와 스페인어, 힙스터 방언을 섞어 말하면서 철조망 울타리에 기대 소리 없이 웃었다. 여학생들은 감청색 교복을 입었다. 그들은 깃털을 다듬은 새처럼 머리를 쫑긋 세운 남학생들과 소리 죽여 노래하는 새처럼 시시덕거렸다. 남학생들은 눈부신 주황색, 노랑색, 청록색 페그레그 팬츠를 입었다. 상의는 맨몸에 단추를 풀어헤친 검은색 셔츠나 브이넥 스웨터였다. 그들의 매끄러운 갈색 가슴에서 빛나는 십자가 목걸이……. 멕시코계 10대 불량소년들의 십자가. 그들의 손등에는 십자가 문신도 있었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99

모국어 수준의 내 스페인어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링가’가 자기들 부모만큼, 심지어 그들보다 스페인어를 더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로서는 놀라운 일이던 것이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끼리 하는 음란한 말이나 마리화나, 경찰을 은어로 어떻게 부르는지도 아는 것을 보고 감명받았다. 그들은 열심히 공부했다. 스페인어는 그들에게 친밀하고 중요한 과목이었다. 그들은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뚱한 복종과 기계적인 반응은 나에게 모욕적이었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100

교실이 조용해졌다. "엘 팀이다!"

* El Tim의 el은 정관사로, 사람 이름 앞에 쓰는 것은 틀린 용법이지만 별명이나 친한 사람 앞에 쓰이기도 한다.

그는 문간에 서 있었다. 복도 쪽에서 비치는 채광을 등지고 있어 로드 수녀님처럼 검은 윤곽으로 보였다. 그는 검은색 옷을 입었고, 셔츠는 단추를 허리까지 풀어놓았다. 바지는 홀쭉한 엉덩이에 낮게 착 달라붙었다. 투박한 체인에 건 금 십자가가 반짝였다. 그는 어중간하게 미소를 지으며 로드 수녀님을 내려다보았다. 속눈썹이 그의 수척한 뺨에 삐죽삐죽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머리는 검고 긴 직모였다. 그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새처럼 빠르게 머리를 쓸어 뒤로 반듯하게 넘겼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104

체호프의 「슬픔」이 일인칭으로 쓰였다고 상상해보자. 한 노인이 방금 자기 아들이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는 당혹스럽고 불편한 기분이 들 것이다. 이 단편의 마차 요금 이야기가 그렇듯이 심지어 따분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체호프는 삼인칭의 공평한 목소리로 노인에게 품위를 불어넣는다. 우리는 노인을 향한 작가의 동정심을 흡수한다. 그리고 꼭 아들의 죽음 때문이 아니더라도 노인이 말에게 말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우리도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 때문에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116

하지만 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매주 토요일, 그녀는 빨래방에 갔다가 장을 본 뒤 일요일판 《크로니클》을 샀다." 그러면 사람들은 삼인칭으로 쓰였다는 이유 하나로 충동적이고 강박적이고 따분한 이 헨리에타라는 여자의 소소한 인생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이 따분한 여자에 대해 들려줄 만한 뭔가가 있다면 그런가 보지 뭐,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계속 읽어보자, 라는 식의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117

헨리에타는 어서 월요일이 왔으면 한다. 신장전문의인 B 선생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많은 간호사와 사무장은 ‘그들의’ 의사 선생님을 사랑한다. 일종의 델라 스트리트 증후군이라고나 할까.

* 미국 드라마 〈페리 메이슨〉의 원작 소설에서 형사법 전문 변호사 페리 메이슨과 로맨틱한 긴장 관계에 있는 그의 비서(사무장) 이름.

-알라딘 eBook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지음, 공진호 옮김) 중에서 - P1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네는 1862년 22세에 용킨트를 운명처럼 만납니다.
모네는 용킨트의 뜨거운 풍경화를 보며 ‘주관적 감성을 담은 풍경화’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더불어, 빛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이를 빠르고 섬세하게 담아내는 용킨트의 기법을 보며 큰 영감을 얻습니다.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906133 - P3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