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을 때는 빛이 모여들었으니까.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22

나는 가엾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 위험하게 살았고 결국 그 위험을 피하지 못해 다리 하나를 잃었지만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그녀는 하고 싶었다.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25

창밖으로 여전히 눈송이가 흩날리는 게 보였다. 창문 크기만한 바깥의 풍경 어딘가에 장착돼 있을 태엽을 상상하며 그녀는 최대한 작게 몸을 움츠리고는 눈을 감았다. 오래전, 잠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스노볼의 태엽을 감고 난 뒤면 늘 그랬듯이.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26

태엽이 멈추면 빛과 멜로디가 사라지고 눈도 그치겠죠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35

그때 그 악기 상점의 쇼윈도를 건너다보며 그가 상상한 것은 알마 마이어가 되살아나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그런 알마 마이어를 눈으로 그려보는 상상 속 권은의 웃는 얼굴이었을까.
어쩌면 둘 다였는지도 모르겠다.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36

어쩌면 역사의 한가운데서 증언의 사진을 찍는 스스로에게 숭고함을 부여하고자 하는 욕망을 들여다보게 했던, 그 숭고함을 계속 갖고 싶고 누리고 싶어서 헌신하고 사랑하는 포즈만 취했던 지난 시간을 반추하게 했던, 나아가 그 욕망을 완벽하게 부정하지 못했기에 괴로움을 안기기도 했던 최초의 피사체라고 표현해야 맞는지도 모르겠다.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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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와인잔을 잠시 내려놓고 지유의 발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 그 어느 곳에도 발자국을 남긴 적 없는 발, 동시에 어디에까지 다다를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발…… 지유의 발바닥에서 얼굴을 뗀 뒤엔 작고 둥근 배에 살짝 손을 올려보기도 했다. 부드러웠고, 부서질 듯 연약했다. 이토록 부드럽고 연약한 살결 아래로 피가 흐르고 있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포들이 부지런히 증식중이라는 사실이 승준은 매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속에 번지던 그 작고 뜨거운 경이는 지유에게 예정된 좌절과 패배, 상실과 이별 같은 것을 상기한 순간 갑자기 식어버렸고, 대신 납 한 덩어리를 삼킨 듯 온몸이 무거워졌다.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12

오늘밤 권은이 칠 년 전처럼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모습으로 머릿속에서 재생된 건 이 아이 때문일 수도 있다고…… 어쩌면 지유가 세상에 온 순간부터 자신은 지유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친구가 자신에게 있었다고, 카메라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빛을 좇던 친구가 있었다고 말이다.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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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이 멈추면 빛과 멜로디가 사라지고 눈도 그치겠죠."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7

그녀는 빛이 피사체를 감싸는 순간의 온기가 좋아 사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도 했는데, 그 말은 승준의 마음 어딘가로 흘러와 고요하게 폭발하기도 했다.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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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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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제 역사를 관통하는 타임 슬립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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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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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참의 줄타기, 삶

성년이 얼마 남지 않은 같은 또래 청소년 셋 - 지우, 채운, 소리 - 이 각자 화자가 되어 이런 저런 조합으로 서로 연결되어 이야기가 전개 되는 방식이라 여느 성장 소설의 패턴처럼 아주 낯설진 않습니다. 근데 나름 흡입력이 있습니다.

화자 중 가장 먼저 등장하는 지우는 어릴적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내향적인 그는 그림그리기에서 해방감과 동시에 위안을 얻습니다.

“한마디로 요약되지 않고, 직접 말했을 때보다 그림으로 그렸을 때 훼손되는 부분이 적은 어떤 마음을. 그러다보면 자신도 그 과정에서 뭔가 답을 알게 될 것 같았다. 혹은 다른 질문을 발견하거나.“ (77쪽, 전자책)
-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우는 만화 속 ‘칸’이 때로 자신을 보호해주는 네모난 울타리처럼 여겨졌다. 둥글고 무분별한 포옹이 아닌 절제된 직각의 수용.” (111쪽, 같은 책)

지우가 제겐 주인공 셋 중 가장 비중이 커 보였고 무엇보다 아마도 그의 고통과 상실감의 깊이가 그를 그렇게 보이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신은 지상에 박힌 압정처럼 하나의 점으로 가까스로 존재하는데, ‘서사 그래프’에 나오는 그 약동하는 선을 가진 이들이 부러웠다.” (203쪽, 같은 책)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 작은 사건이 큰 재난이 되는 것. 복구가 잘 안 되는 것……’“ (209쪽, 같은 책)

존재의 상실이든 아니든 그들의 부모들처럼 주위 인물들의 역할이 제겐 더 생동감이 있었어요. 마찬가지로 지우에게 용식(도마뱀)이, 채운에게 뭉치(반려견)가 그런 존재였죠. 부모와 반려동물 모두 그들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설정도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중 지우의 보호자, 선호아저씨의 존재감은 그 비중에 비해 단연 압도적이네요. 그의 존재가 아이들과는 달리 이미 스스로 참과 거짓의 경계를 넘어선 듯합니다. 사실보다 중요한 게 ’당위‘, 즉 ’마땅이 그러한 것‘ 임을 알죠. 멋진 어른입니다.

“—그러니 부탁인데 지우야.
—……
—나를 떠나지 말고, 나를 버려라.” (215쪽, 같은 책)

참과 거짓이 존재를 구성하는 빛과 그림자일 수도 있겠다. 그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무언가일 수도 있겠구나. 그게 삶이구나. 짧지만 긴호흡 같은 기시감을 주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교실속에서 ‘이중 하나는 거짓말’게임으로 주인공들을 소개하는 설정처럼 스스로 이 게임에 참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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