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와인잔을 잠시 내려놓고 지유의 발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 그 어느 곳에도 발자국을 남긴 적 없는 발, 동시에 어디에까지 다다를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발…… 지유의 발바닥에서 얼굴을 뗀 뒤엔 작고 둥근 배에 살짝 손을 올려보기도 했다. 부드러웠고, 부서질 듯 연약했다. 이토록 부드럽고 연약한 살결 아래로 피가 흐르고 있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포들이 부지런히 증식중이라는 사실이 승준은 매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가슴속에 번지던 그 작고 뜨거운 경이는 지유에게 예정된 좌절과 패배, 상실과 이별 같은 것을 상기한 순간 갑자기 식어버렸고, 대신 납 한 덩어리를 삼킨 듯 온몸이 무거워졌다.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12

오늘밤 권은이 칠 년 전처럼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모습으로 머릿속에서 재생된 건 이 아이 때문일 수도 있다고…… 어쩌면 지유가 세상에 온 순간부터 자신은 지유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친구가 자신에게 있었다고, 카메라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빛을 좇던 친구가 있었다고 말이다.

-알라딘 eBook <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중에서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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