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약국은 그 자체로 꾸준하고 믿음직한 사람 같았다. 집에서 혹여 불쾌한 일이 있었다 해도, 자다 말고 일어나 늦은 밤에 서성대던 아내에 대한 불편한 마음마저도 약국이라는 안전문 안으로 발걸음을 들여놓는 순간 썰물처럼 밀려나갔다.

-알라딘 eBook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중에서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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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을 두고 목숨을 건 게임을 한다는 줄거리의 한국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졌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며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니콜라이에게는 투표권이 없었다. 진주에게는 투표권이 있었지만 어떤 쓸모가 있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03

예쁘고 멋있고 촉감 좋은 물건들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자아실현 같은 건 모르겠지만 견딜 만한 일을 하고,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삶. 가끔은 나란히 누워서 햇볕을 쬘 사람이 있는 삶. 이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면서도 어두운 골목을 걸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불안해졌다. 어느 날 흰 봉투가 날아와 계약 종료 통지서나 처음 들어보는 병명의 진단서를 덜컥 내놓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08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스가 체르노비츠의 예심판사 앞에 섰을 때 그녀는 추궁받았다. 왜 혁명을 선동하는 삐라를 뿌렸냐고. 그 이유를 대라고. 그녀는 일어서더니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판사가 제지하자 그녀는 더욱 매섭게 외쳤다.기립하시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이 인터내셔널이오!’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10

어쨌든 태엽을 감아주는 사람들은 계속 있었다. 진주와 니콜라이가 〈인터내셔널가〉의 작고 뾰족한 재생 버튼을 눌러본 것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밤이었다. 그리고 알고리즘은 진주와 니콜라이의 검색어를 기억했다.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11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알라딘 eBook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중에서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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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력이 허공을 배회하는 느낌,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알라딘 eBook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중에서 - P5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려다 보니, 갑자기 찾아와서 돌아가지 않는 손님처럼 어두운 기색이 그녀를 휘감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중에서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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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Thank heavens there are many of you. You‘ll find yourself on the road in two days."
He turned his back and went towards the door, but before he went through it he heard the fat man chuckling behind his back:
"But take care the rats don‘t eat you before you set out." - P35

The lorry, a small world, black as night, made its way across the desert like a heavy drop of oil on a burning sheet of tin. The sun hung high above their heads, round, blazing, and blindingly bright.
None of them bothered to dry their sweat any longer. Assad spread his shirt over his head, bent his legs, and let the sun roast him without resistance. Marwan leaned his head on Abu Qais‘s shoulder and closed his eyes. Abu Qais stared at the road, tightly closing his lips under his thick gray moustache. - P63

None of the four wanted to talk anymore, not only because they were exhausted by their efforts, but because each one was swallowed up in his own thoughts. The huge lorry was carrying them along the road, together with their dreams, their families, their hopes and ambitions, their misery and despair, their strength and weakness, their past and future, as if it were pushing against the immense door to a new, unknown destiny, and all eyes were fixed on the door‘s surface as though bound to it by invisible threads. - P63

The thought slipped from his mind and ran onto his tongue:
"Why didn‘t they knock on the sides of the tank?" He turned right round once, but he was afraid he would fall, so he climbed into his seat and leaned his head on the wheel.
"Why didn‘t you knock on the sides of the tank? Why didn‘t you say anything? Why?"
The desert suddenly began to send back the echo:
"Why didn‘t you knock on the sides of the tank? Why didn‘t you bang the sides of the tank? Why? Why? Why?"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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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다행히도 너 같은 밀입국자가 많아. 이틀 후면 넌 도로를 달리고 있을 거야."
그는 발길을 돌려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을 채 나서기도 전에 뚱보 사내가 그의 등 뒤에서 낄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출발하기 전에 쥐들이 너를 먹어치우지 않도록 조심해." - P33

알 수 없었다.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아득한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놓는 좌절의 두꺼운 장막을 그는 꿰뚫을 수 없었다. 두뇌를 소모시키는 대신 그는 차라리 걷기로 마음먹었다. 담벼락에서 몸을 떼어 군중 속으로 걷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 것을 느꼈다. - P36

조국을 위해 싸우다가 자신의 남성을 잃었노라고 그저 단순하게 고백해버릴까? 그래본들 무슨 유익이 있담? 이 염병할 세상에서그는 자신의 남성과 조국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잃었던 것이다. - P61

한밤중처럼 시커먼 하나의 작은 세계인 물탱크 트럭은 달구어진 양철 조각 위에 떨군 한 방울의 무거운 기름 방울처럼 뜨거운 사막을 가로질러 달렸다. 둥그런 태양은 그들 머리 위에 높이 떠 타오르면서, 눈이 멀 정도로 밝았다. 이젠 아무도 더 이상 땀을 닦으려 하지 않았다. 아사드는 셔츠로 머리를 가리고 다리는 굽힌 채, 태양이 자신을 굽도록 내버려두었다. 마완은 머리를 아부 카이스의 어깨에 기댄 채 두 눈을 감았다. 잿빛 무성한 콧수염 아래로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아부 카이스는 도로를 응시했다. - P77

수고로 몸이 지쳤을 뿐 아니라 각자 상념에 잠겨, 네 사람은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커다란 물탱크 트럭은 그들 모두를 도로 위로 싣고 가고 있었다. 그들의 꿈과 가족과 희망과 야망, 절망과 처절함, 힘과 나약함, 과거와 미래를 싣고 새로운 운명의 거대한 대문을 향해 트럭은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그 운명에 묶인 것처럼, 그들 모두는 그 대문을 뚫어지게 응시하였다. - P77

머릿속에서 빠져 나온 생각은 그의 혀끝으로 달려나왔다. "왜 그들은 물탱크의 측면을 노크하지 않았을까?" 그는 오른쪽으로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쓰러질 것만 같아, 운전석으로 올라와 핸들에 머리를 기댔다.
"왜 당신들은 물탱크의 측면을 노크하지 않았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도대체 왜?"
사막은 갑자기 메아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왜 당신들은 물탱크의 측면을 노크하지 않았지? 왜 물탱크의 옆구리를 쾅쾅 치지 않았던 거야? 왜? 왜? 왜?"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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