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는지는 수 세기에 걸쳐 확인된다. 이집트 피라미드, 그리고 거기 안치된 미라를 봉인하는 데도 차 르가 쓰였다. 라틴어로 석유를 뜻하는 페트롤레움petroleum 은 ‘돌 기름‘이라는 뜻으로, 16세기에 처음 등장했다. 참으로 적 절한 이름이 아닌가. 19세기까지만 해도 주로 바위에서 스며져 나오는 원유를 걷어내 사용했으니 말이다. 1800년대 등불에는 주로 고래 기름을 썼지만, 1850년경 캐나다 지질학자 에이브러임 게스너Abraham Gesner가 석유에서 새로운 연료인 등유를 증류해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등유는 고래 기름보다 싸고 깨끗한데다, 생명을 죽이지 않아도 됐다. (131-132p)
산업화는 석유에 대한 엄청난 갈증을 유발했다. 미국 펜실이니아 타이터스빌에서 다량의 원유가 최초로 발견됐다. 최초의 상업용 유전인 스핀들탑Spindletop이 1901년 처음 가동됐는데, 항공기와 자동차를 탄생시킨 내연기관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다. 석유는 현대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동시에, 그 힘은 세계를 장악해갔다. (132p)
오늘날 자동차나 제트기가 제일 선호하는 휘발유는 완벽하게 정제된 경질유다. 다른 제품에서는 희석되었다는 의미일지 몰라도, 석유에 경질light 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더 순수하다는 의미다. 정제가 덜 된 중질유는 플라스틱이나 화학제품을 만드는 데 쓰이거나, 선박이나 발전소 연료, 난방유 등으로 사용된다. 아스팔트에는 정제되지 않은 부산물이 사용된다. 인도 정부가 관심을 두는 석유가 이 제품이다. (132p)
매일 전 세계에서 약 1억 배럴의 중급유가 소비된다. 다른 에너지를 하나도 쓰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모든 인구가 각자 하루2리터 이상 쓰는 셈이다. 용도는 다양하다. 석유 소비량은 미국인들이 가장 많은데, 1인당 하루 평균 10리터를 사용한다. 대개 자동차 연료와 난방에 쓴다. 2위는 공장을 많이 가동하는 중국이다. 인도와 일본이 3위 자리를 다투고, 러시아까지 가세하면 5대에너지 소비국이 완성된다. (133p)
석유의 측정 단위는 중세 영국에서 유래했다. 42갤런 혹은 159 리터에 해당하는 배럴은 옛 영국에서 포도주를 담던 나무통을일컫는 말이었다. (134p)
석유는 여전히 막대한 부를 약속한다. 특히 2조 달러(2,350조원)로 평가(2019년 12월 기업공개)되는 사우디 국영회사 아람코Aramco에게 그렇다. 아람코의 자산 가치는 오늘날 최고의 기업으로 꼽히는 애플과 구글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크다. (143p)
새롭게 자원이 발견되면 그 경제적 불똥이 엉뚱한 곳까지 미치는 경우도 있다.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은 생물학적 전염병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1959년 엄청난 매장량의 천연가스가 발견된 다음,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1970년대 초 천연가스 수출이 늘자, 네덜란드 통화인 길더 수요가 급증했다. 변동 환율제를 유지하던 터라, 환율이 급등하자 엉뚱하게도 피해는 농업과 제조업 종사자에게로 돌아갔다. 상품 가격이 너무 올라서 해외에서 경쟁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971년부터 1977년 사이, 실업률이 4배 이상 증가했다. 결국 아무 관계없는 이들이 오랫동안 대가를 치러야 했다. (145p)
1980년대 후반, 기업가정신을 장려하는 새로운 정책 하에서 탄생한 것이 러시아식 자본주의의 주역이자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oligarch들이다. (161p)
루블화든 달러든, 모든 화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자체만 으로는 본질적 가치가 없다는 점이다. 모든 화폐는 장부의 차변에 놓이든 대변에 놓이든, 사실상 일종의 약속에 불과하다. 달러는 본래 그걸 가진 사람에게 금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달러는 보증서인 셈이다. 실제 1934년까지는 모든 지폐에 쓰인 만큼 소지자에게 지불할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1971년 브레턴우즈 협정이 종료되고 달러와 금의 가치가 연동되지 않게 되면서, 그런 의미는 사라졌다. (164p)
남미에서는 왜 그렇게 달러의 인기가 높을까? 하나는 무역 때문이다. 에콰도르와 엘살바도르는 사실상 자국통화가 없다. 이들은 2000년 달러화를 공식 선언했는데, 이들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음을 고려할 때 달러를 사용하는 편이 더 간편하고 실용적이라고 판단했던 듯하다. 달러의 안정성에 기대면 자국 경제가 흔들릴 위험이 적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신뢰할 만한 통화를 보유하면,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 (168p)
도이치은행은 미러 트레이딩mirror trading 시스템을 고안해냈는데, 이를 활용하면 부유한 러시아인들이 루블화를 다른 통 화로 손쉽게 바꿀 수 있었다. 방법은 이렇다. 우선 고객 명의의 루블화로 러시아 주식을 매입한다. 매입 금액은 미화로 수십만 달러에 해당하는 액수다. 동시에 그 주식을 다른 지역에서 달러나 파운드로 매각한다. 이 주문은 역외 페이퍼컴퍼니 이름으로진행한다. 이렇게 세탁된 돈은 올리가르히들의 자녀 유학자금등의 명목으로 지급되어 현금화된다. (176p)
ECB가 유로존 기준금리를 정해놓았기 때문에, 갑작스런 금융 경색에 빠진 국가들이 자국 금리를 인하할 재량이 없었다. 금리를 재빨리 인하했더라면 소비가 늘어 경기부양 효과를 누릴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 위기 여파로 어려움에 빠진 국가들은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유로존 경제의 1/5분밖에 안 되는 마이너리티들이었다. 이들의 이니셜을 모으면 PIGS라는 조합이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노릇이다. (196p)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한 국가의 인구가 진화하는 방식을 ‘인구통계학적 전환epidemiological transition’라고 한다. (202p)
"부의 집중 현상이 계속되면서, 국경을 넘어 부동산을 소유하고자 하는 흐름은더욱 확산될 것이다. 돈은 바야흐로 전 세계 곳곳을 이동한다. 모 투자자나 정부가 FDI를 통해 돈을 굴리듯이, 도 더 큰 이익을 찾아서 해외로 눈을 돌린다." (221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