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의 작가인 빅토르 위고20는 분명히 낭만주의 작가입니다. 사실 낭만주의는 원래 문학 용어이기 때문에 회화 분야에서는 좀처럼 정의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몇 가지 키워드로 회화에서의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그 특징을 들춰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키워드는 ‘동시대성’입니다. 성경, 신화, 역사 등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사실을 그리려는 것이 낭만주의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17

‘과거의 위인보다는 지금의 자신이 더 소중하다’라는 개인주의도 들어 있지요. 그와 관련해서 지식이나 논리보다는 감각이나 감정을 중시합니다. 따라서 낭만주의 문학에는 연애 지상주의적인 작품이 많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18

그에 비해 들라크루아를 비롯한 낭만주의 화가들은 연애 지상주의예요. 낭만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그다음 키워드는 약간 까다롭기는 하지만 ‘반체제적인 민족주의’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18

〈이 세상 밖이라면 어디라도〉21라는 보들레르22의 시입니다. 보들레르는 낭만주의라기보다 상징주의 시인이지만, 들라크루아나 이어서 나오는 쿠르베를 힘껏 응원했던 사람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19

낭만주의 사람들은 대개 부르주아 출신이에요. 들라크루아도 그렇고, 보들레르도 그렇고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20

들라크루아는 17세 때 피에르나르시스 게랭26이라는 유명한 화가의 제자로 입문해서 선배인 테오도르 제리코27를 만납니다. 회화에서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제리코에게, 들라크루아는 무척 심취했죠. 그리고 제리코를 따라 22세 때 살롱에 출품한 작품이 〈단테28의 작은 배〉였습니다. 이 작품은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이라는 유명한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27

사실 낭만주의자에게 그리스 독립 전쟁은 일종의 ‘성전’이었습니다. 낭만주의에서 존경하는 사람 가운데 영국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31이 있는데, 이 사람은 "우리 서양 문화의 원천인 그리스를 구하라"라고 말하며 의용병으로 그리스 독립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33

이렇듯 그리스 독립 전쟁은 낭만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신고전주의의 중진들은 〈단테의 작은 배〉는 허용할 수 있지만 〈키오스 섬의 학살〉은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이죠.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34

적어도 19세기 초반까지의 서양 회화계에서는 ‘현재’를 그려서는 안 되었습니다. 게다가 표현이 너무 잔혹했어요. 앵그르와 달리 약동감이 있었거든요. 색채도 강렬했고요. 앵그르처럼 들라크루아도 처음부터 비판을 받으니 그다음 작품도 계속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34

빈곤한 모습이든, 추한 모습이든, 에로틱한 모습이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입니다. ‘렛잇고Let it go’40라고 할 수 있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53

낭만주의처럼 큰 사건을 극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아주 평범한 노동자의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그리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62

쿠르베는 만국박람회장 옆에 작은 방을 짓고 직접 전람회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개인전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71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수록된 시.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가 여학교를 만든 레스보스 섬은 여성 동성애의 상징이다. ‘레즈비언’은 원래 ‘레스보스 사람’을 의미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78

〈프루동과 그의 아이들, 1853년〉이라는 작품인데요, 프루동47은 무정부주의(아나키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상가입니다. 쿠르베는 프루동의 무정부주의에 이끌려 정부 따위 필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87

1871년에 일어난 파리 코뮌의 폭동48에도 참가했으니까요. 이것이 당시의 신문인데, 쿠르베가 무언가를 쓰러뜨리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뭘까요? 파리에 방돔 광장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현재 일류 브랜드 매장이 늘어서 있는 광장의 한가운데에 떡하니 기둥이 서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전승 기념비인데, 쿠르베는 "그런 제국주의의 상징은 무너뜨려버려라!"라고 이전부터 주장했지요. 그리고 파리 코뮌 폭동 때 정말로 그 기둥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90

1871년에 탄생한 노동자 계급의 첫 사회주의 정권(3.18~5.28의 72일간). 프로이센군과 정부군에 의해 ‘피의 1주일’이라 불리는 대진압을 당하여 붕괴되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90

앵그르의 신고전주의부터 시작해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와 쿠르베의 사실주의를 거쳐 마네의 인상파로 이어지는 것이 19세기 프랑스 미술의 커다란 흐름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97

앵그르의 고전주의는 현실에는 없는 이상적인 미를 그린 거예요.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도 고전주의와는 또 다른 부분에서 개인적인 이상을 좇는 것이지요. 하지만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이상을 좇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만 그리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01

서양 회화의 전통에서는 역사화나 종교화가 격이 높고, 동시대의 삶을 그리는 풍속화는 격이 낮았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자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나 쿠르베의 사실주의처럼 동시대의 현실을 그리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마네의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풍속을 그렸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21

근대 도시의 풍속을 재빠른 터치로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네의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네의 신선함이 일약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풀밭 위의 점심 식사〉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22

라파엘로의 제자인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8가 스승의 작품을 판화로 찍은 그림입니다. 라파엘로의 원작은 분실되었지만 판화는 남아 있습니다.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25

신화는 아니지만,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라는 꽤 유명한 작품입니다. 마네는 이런 고전을 답습해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그렸지만, 이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네는 단순히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던 것이 아니라, 고전을 어떻게든 현대에 되살리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27

서양 회화의 특징은 경계선이 없는 매끄러운 그러데이션과 원근법을 구사해서 입체적으로 그리는 데 있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 회화의 특징은 확실한 윤곽과 평면성입니다. 서양 회화와 일본 회화는 방향성이 정반대인 셈이지요. 마네는 일본 미술의 영향으로 서양 회화의 기본인 원근법과 음영법을 부정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인상파를 앞장서서 이끌었습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의 색채에서는 스페인 회화의 영향도 느껴지지 않나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33

특히 검은색이 스페인다운 느낌을 자아내는데, 마네는 검은색을 자주 사용하는 작가입니다. 이 점이 인상파와는 크게 다른 부분이지요. 인상파는 반대로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34

그 바티뇰파의 화가들이 살롱에 작품을 출품해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전람회를 개최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지요. 그래서 화가, 조각가, 판화가 등의 미술가들이 ‘공동 출자 회사’를 만들어서 1874년에 제1회 전람회를 개최했습니다. 그곳에 모네가 출품한 작품이 〈인상: 해돋이〉였고, 그 제목을 따서 그들을 ‘인상파’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37

마네를 집대성한 작품으로 불리는 만년의 대작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폴리 베르제르 술집〉은 마네가 줄곧 그려왔던 동시대 파리의 풍속을 우키요에 풍의 대담한 구도와 독자적인 재빠른 터치로 담아낸 작품인데, 이미 사진을 초월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38

원근법적인 사실성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화면을 구성한 것입니다. 이 점이야말로 마네의 새로운 면이고, 근대 회화로 향하는 위대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39

모네는 아카데미 쉬스17라는 미술학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피사로 등과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샤를 글레르18의 미술학교에서 르누아르, 드가, 시슬레와도 만났습니다. 이들이 모두 함께 술을 마시는 중에 "마네 선배님이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마네의 아틀리에가 위치한 바티뇰 거리의 카페 게르부아에 모여 바티뇰파라는 그룹을 형성했습니다. 그것이 후에 인상파가 되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76

모네는 필촉분할(색채분할)이라는 기법을 확립했습니다. 이 작품은 모네가 르누아르와 함께 파리 근교의 ‘라 그르누예르’라는 유원지에 가서 그린 작품입니다. 이미 필촉분할 기법을 엿볼 수 있지요. 여기서 필촉이란 붓놀림, 즉 붓의 터치를 뜻합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78

이전의 서양 회화는 터치를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매끄러운 음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터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색채 블록을 연속성 없이 늘어놓는 필촉분할은 서양 회화의 전통을 정면으로 부정한 셈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79

필촉분할의 또 한 가지 혁명적인 요소는 물감을 섞지 않고 튜브에서 나온 그대로의 색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물감을 섞어서 색을 만드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의 뇌 속에서 색이 섞이는 ‘시각 혼합’을 이용한 것이지요. 오늘날의 4색 컬러 인쇄19와 같은 원리입니다. 물감을 섞지 않는 이유는 밝기 때문입니다. 물감은 섞으면 섞을수록 색이 탁해지고 어두워집니다. 하지만 인상파는 외부의 밝은 빛 아래에서 반짝반짝 옮겨가는 순간적인 빛의 변화를 포착하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밝은 빛과 색채를 표현할 수 있는지 고민한 결과, 필촉분할이라는 방법에 도달하게 된 것이지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80

이전의 화가는 집 밖에서 스케치하는 경우는 있어도, 유화로 마무리하는 작업만큼은 아틀리에 안에서만 했거든요. 그런 점에서도 인상파는 혁신적이었습니다. 그런 혁신적인 바티뇰파의 화가들이 낡은 가치관에 얽매여 있는 살롱에 출품해봤자 결과가 신통치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전람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기념할 만한 제1회 전람회에 모네가 출품한 작품이 바로 〈인상: 해돋이〉입니다. 제목을 얼른 정하라는 재촉을 받은 모네가 "그럼 〈인상〉으로 하지요" 하는 가벼운 느낌으로 붙인 제목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그림을 본 비평가가 "제목 그대로 인상밖에 전해지지 않는 졸작"이라는 혹평을 했고, 그때부터 바티뇰파의 화가들은 ‘인상파’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481

인상파의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는 외부의 빛 아래에서 그리는 것이었는데, 드가는 인공조명을 좋아했습니다. 단순히 ‘눈부심 병’ 때문만이 아니라, 자연에 흥미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풍경화를 좀처럼 그리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그렇다고 인물화에 흥미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드가는 개성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인상파에 가세한 이후에는 그런 경향이 더욱 현저해져서 인물의 개성을 의식적으로 없애는 방향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즉 드가는 인물의 개성이 아니라 익명성을 그리고 싶어 했습니다. 이 익명성은 ‘등을 좋아하는’ 드가의 또 한 가지 변태 포인트로 이어지므로 기억해두기 바랍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528

모네가 빛의 순간적인 변화를 포착하려고 수행을 거듭했다면, 드가는 인체의 순간적인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데 비정상적인 집념을 불태웠습니다. 게다가 방금 말한 ‘흐트러진 옷’처럼 파탄이 생겨나는 순간을 스냅 사진처럼 포착하려고 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528

그런 이색적인 인상파 드가가 독자적인 방향성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대상이 바로 ‘무용수’였습니다. 인공조명 아래에서 이름 없는 익명의 무용수들이 옷을 흐트러뜨리면서 순간적인 움직임을 거듭하지요. 이는 실로 드가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그림 소재지요. 게다가 발레는 드가 시대에 급성장한 새로운 예술이었습니다. 발레에는 이전에 없던 근대적인 에로틱함이 들어 있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529

이 그림이 에로틱한 그림이 아니라, 사회파 저널리즘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무용수들의 급여가 너무 싸서 부자의 애인이 되지 않으면 생계를 이을 수 없다는 착취 사회의 현실을 폭로했다는 주장이지요. 드가는 사실주의인 쿠르베처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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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를 중시하고 안정된 구도로 이지적으로 그리는’ 앵그르의 신고전주의와 달리, 들라크루아의 낭만주의는 ‘색채를 중시하고 역동적인 구도로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이 두 방향성의 대립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의 사이가 나빴던 원인도 이와 비슷합니다. 역시 서로 자신에게 없는 것, 자신과 정반대의 것을 배제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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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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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낯선 작가, 이상욱의 소설집을 처음 접합니다. 교유서가에서 가제본으로 받아 읽는 것 입니다.  표제작인 <기린의 심장> 포함하여 9편의 중단편으로 되어 있습니다. 작가나 작품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책을 펼쳐 보는데, 첫 작품 <어느 시인의 죽음> 부터 몰입을 하게 됩니다.  


식인외계인들과 정치적으로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은 지구는 이른바 사회적으로 낙오된 부류의 인간 중 희생자를 선정하여 식재료로 바칩니다. 그 식재료인 인간을 조달하는 일을 처음 맡은 (이혼남) 대수는 등록금을 필요로 하는 외동딸을 위해 한 고등학교에서 존재감 없는 용천을 추천(?)받게 됩니다. 처음 맡은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 가운데, 딸과 동갑내기인 용천의 시를 읽어보면서 결국 (먼저 불치병으로 죽은 아내를 따라)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자신을 용천대신 식재료로 희생합니다. 여기까지는 SF 호러물 같은 소재를 담담하게 그립니다. 그런데, 가장 마지막에 반전이 있습니다. #3이라고 하는 치명적 바이러스를 스스로 주입하고 식인외계인들을 멸절시키는 영웅이 될뻔한(?) 대수는 몰랐습니다. 그건 외계인들이 그들의 식재료에게 어떤 고통을 가하는 지와 그걸 못느끼게 하려는 일종의 마취제였다는 것을...


두번째 작품 <라하이나 눈(Lahaina Noon)>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습니다. 내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유일한 탈출구로 달리기를 시작한 주인공 나는 서로 다른 육체를 동기화 하는 기술이 비즈니스가 되는 세상에서 돈을 벌기위해 베타가 됩니다. 돈을 지불하는 알파와는 사이버자본주의사회에서 마치 주종관계 같습니다. 알파가 먹고 즐기는데 축적되는 칼로리를 없애기 위해 베타는 죽어라 달립니다. 자유가 없어졌습니다. 같은 베타였던 성재라는 동생이 결국 과도한 베타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사고로 죽고, 그의 누이였던 성주와 결혼하게 됩니다. 왠지 불길할 예감이 결국 적중합니다. 불치병을 앓다 먼저 세상을 뜬 아내에 대한 상실감에 희망을 잃고 더 이상 그림자를 피하기 위해 달리지 않습니다. 두달만에 체중이 배로 늡니다. 유골함에 든 성주를 데리고 그림자 없는 섬으로 떠나기로 하지만, 공항에서는 그 마저도 허용하지 않고 실랑이 끝에 유골함을 깨지고 134kg 거구의 나는 넘어지고 얼굴에 유골이 덕지덕지 뭍습니다. 구치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인적이 드문 길 위에 눕습니다. '조금 쉬어야겠다. 힘든 하루였으니까.' 그리고 인천공항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그런데 역시 마지막에 반전이 있습니다. 그의 고객으로 그의 몸을 축냈던 알파와 그 두 아들의 '탈출한 돼지(나)' 시체에 대한 대화 장면은 소모품처럼 버려지고 교체되는 베타의 삶을 민낯으로 증언하는 것 같습니다.  


표제작인 <기린의 심장>은 마치 중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계열의 소설 같습니다. 주인공인 작가 나가 실랑이 끝에 한 파출소에서 밤을 보내게 되면서 경찰관 K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액자소설(소설속 소설) 양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심장이 좋지 않은 엄마를 위해 기린의 심장이 필요하다는 소녀, 그 소녀를 없애려는 동물원의 관리인 두 노인, 그리고 19번째 시험자인 젊은 경찰 K 가 주요등장인물의 다 입니다. 아, 물론 기린도 있군요. K는 시를 노래하고, 소녀와 장기를 두면서 가까와 집니다. 물론 그 이전의 18명의 마음이 지워진 시험자들처럼 함정에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하지만요. 비가 많이 오고 이번엔 K가 소녀를 구합니다. 관리인의 소녀를 죽이라는 명령을 듣지 않고. 아 참 마지막 대목에 무명의 필 레이먼드라는 60년대 흑인 록 가수가 등장하는군요. 왠지 관리인으로 부터 동물원을 해방시키고 싶어하는 동물원 주인 같습니다. K는 소녀에게 비몽사몽간에 열두살때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헤어진 여자친구 이야기를 합니다. K는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기린과 동물원이 상징하는 것은 인간의 얼룩진 욕망과 좌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린(작은 관리자?)은 마침내 K의 총에 쓰러지고 농구공만한 '기린의 심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무의 주목도 끌지 못합니다.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동물원이 이 세상 어딘가에 진짜로 있을 것만 같았다.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과 오래된 오두막이 있고, 마음이 지워진 이들이 작은 언덕에 묻힌힌다는, 그 동물원 말이다.'(119p)


낯익은 동네 경상북도 문경에 살던 서른넷 공시생이 예지력을 갖는다. 그것도 원전 차폐막에서 흘러나온 방사선을 맞고. 그럼 <마왕의 변> 환경소설인가? 싶었는데, 환타지 소설이네요. 그의 기묘한 꿈을 기록한 예언서 속의 주인공 '마왕'과 용사, 그리고 용사의 수행원 '철만'과 '가인'까지 등장인물들만 보면 마치 게임속 캐릭터들 같습니다. 

"단순히 눈을 떴다고 마왕이 되는 게 아니야. 스스로 자각을 갖고 악을 선택해야만 비로소 마왕이 되지. 그런데 악이라는 건 관념이 아니라 실천이거든. 물론 선도 마찬가지지. 차이가 있다면, '선'은 의식적이고 가역적이고, '악'은 충동적이고 비가역적이라는 점이야. 충동적이고 비가역적인 악행. 그게 뭐겠어?"(135p)

그런데, 역시 독자의 허를 찌르는 이야기의 전개가 펼쳐집니다. 살인본능을 누르면서 강원도 시골에 부하들과 같이 농사를 짓고 책을 읽는 '마왕'의 모습이 오히려 '용사'와 그의 일행들 보다 더 인간적인 것은 왜일까요?

마지못해 용사 일행과 대적하던 마왕이 시공간의 문을 엽니다. 예전 마왕의 악행을 보여주다, 갑자기 '용사(심지)'의 과거를 보여줍니다. 거기서 소환되는 상규 삼촌과 아버지의 죽음.

"상규 삼촌과 네 아버지를 죽인 건 누구였지?" 마왕이 물었다.
"사람보다 돈을 아까워하던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들." 심지가 대답했다. (146p)

마왕은 심지에게 대적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자고 하나, 심지의 일행(가인)의 설득에 결국 마왕을 벤다. 

그것은 충동적이고 비가역적인 죽음이 틀림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심장에서 작은 얼음 조각이 깨어났다. (150p)

반전.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마왕을 죽임으로서 심지가 마왕이 됩니다. 그리고 예언이 성취됩니다. 아이러니 같은 결말 입니다. 


처음 뱀이 된 건 열두 살 때였습니다.(155p)

<허물>의 화자는 죽음을 암시하는 유언을 남기면서 뱀으로 변신했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릴적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시골 외할머니댁에 맡겨졌을때의 동심속 이야기에서 이혼한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와서 대학진학과 그와 비슷한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아들을 얻을 때까지 이야기는 평이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죽습니다. 그 아들의 친구들도 영안소에서 마주합니다. 7년전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깊디 깊은 슬픔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아내와 그 뒤를 따르려는 남자. 마침내 그도 아내를 따라 허물(육신)을 벗고 훌훌 털고 가려합니다.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따라 뱀의 길을 가려 합니다.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과 절망에 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 저도 아내를 따라 이 낡은 육신을 버리려 합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할 생각입니다. 제 걱정은 마십시오.(176p)


전반부 네 작품에 비해 <허물>을 포함하여 후반부 다섯 편의 이야기는 그 결이 좀 달라 집니다. 유산과 이혼, 낙태를 무심히 다룬 <하얀 바다>, 아내의 죽음과 소원한 부녀관계속 고독이 드리운 <경계>, 왼손의 상실과 의도치 않은 죽음과 그 복수를 한 편의 연극 무대처럼 그린 <연극의 시작>, 마지막으로 생명의 탄생과 죽음의 상실이 짙게 드리운 <25분>까지 읽다보면 그 건조한 문체가 상처같은 앙금처럼 남습니다. 

환타지와 리얼리즘을 넘나들면서 자본주의와 인간의 삶을 아이러니와 비판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반전의 작가, 이상욱님의 다음 이야기들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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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심장 - 교유서가 소설
이상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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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냄새가 스멀스멀 난다. 주인공은 마이너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고 극단적인 경험을 한다. 그 중 하나가 죽음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렇지만 장르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의 흡입력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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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는 너무 난폭했고, 테네브리즘에 너무 치우쳤어요. 루벤스는 돈을 너무 많이 벌었고, 통통한 여자를 너무 좋아했지요. 아이도 너무 많이 낳았고요. 그리고 렘브란트는 너무 교만했어요.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52

서양 회화가 급변하는 19세기 전반을 중심으로 앵그르와 들라크루아와 쿠르베 등 세 명의 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19세기에는 미술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급변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57

단순히 스폰서가 왕에서 시민으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 시장이 탄생했다는 것도 커다란 변화였습니다. 그 결과, 화가는 남들에게 의뢰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작품을 그려 시장에서 파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60

또 한 가지 서양 회화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은 사진의 등장입니다. 이전까지 서양 회화는 무조건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존재 의미였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63

사실과 똑같이 묘사한다는 부분에서는 사진을 당해낼 수 없다는, 이른바 사실성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처럼 두 가지 커다란 혁명의 결과, 사회 전체가 격변해나가는 와중에 회화도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19세기 이후 서양 미술의 중심은 프랑스가 되었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63

에콜 드 보자르를 졸업하고 로마 상을 받고 살롱에서 입선해서 최종적으로는 미술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는 것이 당시의 출세 코스였습니다. - <변태 미술관>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5238102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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