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나 자신이 관습적인 비평 같은 것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알았다. 내가 떠올린 것을 일깨웠던 은유와 직유는 음악 속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점점 부족함을 느꼈다. 더욱이, 가장 간단한 직유마저도 허구의 기미를 만들어 냈기 때문에 머지않아 은유는 한 편의 이야기와 장면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그럼에도 동시에 이 장면들은 하나의 곡 혹은 음악가의 특별한 성격에 대한 기록이 되기를 의도했다. 그러니 이제 당신이 읽게 될 내용은 허구인 동시에 상상적 비평이라고도 할 수 있다. - <그러나 아름다운>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6717 - P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글 대신 사진을 읽는 것을, 자세히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실제 비평이 역사적 뿌리에서 개인의 이야기를 먼지처럼 털어버리고 텍스트를 뽑아내는 반면, 문학 작품 자체와 그 저자가 처한 문화적·역사적 상황에 대한 감각, 즉 전통에 대한 감각은 텍스트의 내용뿐 아니라 텍스트 자체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는 내가 사진을 배우면서, 점점 늘어 가는 수많은 전통 안에 있는 역사를 바라보려고 시도하면서 얻는 이득 중 하나였다. 이런 시도는 세잔에 관한 릴케의 편지에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 "좀 더 잘 알아볼 수 있게 그림 앞에"1 서 있으려는 시도 말이다. - <인간과 사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6702 - P14

비평은 어떤 작품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해명하는 기회가 아니라, 작품에 내재한 진실을 드러낼 의도로 그 반응을 명확하게 표현해서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는 기회다. - <인간과 사진>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6702 - P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판타지와 SF를 구별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기로는 ‘장르 문학’과 ‘주류 문학’을 구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에게 소설이란 손쓸 수 없을 만큼 변칙적이고 무분별한 현실보다 은유의 논리를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논리란 대개는 은유의 논리이므로. - <종이 동물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7063 - P5

우리는 남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며 평생을 보낸다. 그것은 기억의 본질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 무감하고 우연적인 우주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러한 습관에 ‘이야기 짓기의 오류’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의 일면에 닿지 않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야기는 속에 있는 은유를 좀 더 선명하게 구현할 뿐이다. - <종이 동물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7063 - P6

모든 의사소통 행위는 번역이라는 기적이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서, 내 신경 세포 속의 변화하는 활동 전위들은 특정한 배열과 유형과 사유로 분출한다. 그들은 내 척수를 타고 흘러내려 내 팔과 손가락으로 갈라져 들어가고, 결국에는 근육들이 움찔거리면서 사유가 동작으로 번역된다. 키보드의 조그마한 지렛대들이 눌리고, 전자들의 배열이 바뀌고, 종이 위에 기호들이 찍힌다. - <종이 동물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7063 - P6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이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 떠올렸던 생각과 똑같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당신과 나, 우리는 서로 다르고, 우리가 지닌 의식의 특질도 우주 양 끝의 두 별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내 사유가 문명의 미로를 지나 당신의 정신에 닿는 기나긴 여정에서 번역을 거치며 아무리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나는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리라 믿고, 당신은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이해한다고 믿는다. 우리 정신은 어떻게든 서로에게 닿는다. 비록 짧고 불완전할지라도.

사유는 우주를 조금 더 친절하게, 좀 더 밝게,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그런 기적을 바라며 산다.

- <종이 동물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7063 - P7

우리는 단지 인드라의 그물을 이루는 그물코에 지나지 않는다. - <종이 동물원>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77063 - P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제로 아가시가 쓴 글을 보면 그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26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5067 - P55

꼭 집어 말하자면 아가시는 자연 속에 신의 계획이 숨겨져 있다고, 신의 피조물들을 모아 위계에 따라 잘 배열하면 거기서 도덕적 가르침이 나오리라고 믿었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5067 - P55

아가시가 보기에 어떤 위계들은 아주 명백했다. 예를 들면 자세가 그렇다.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직립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드러내지만, 물고기는 "물속에서 엎드려"28 있다. 그런가 하면 모호한 위계들도 있다. 앵무새, 타조, 명금류가 그렇다.29 이 가운데 어떤 새가 사다리에서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아가시는 그 답을 알아낼 수 있다면 신이 더 중요시한 것이 무엇인지, 그러니까 언어인지, 크기인지, 노래인지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5067 - P56

아가시는 신에 이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부용 메스를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껍질을 가르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내부야말로 동물들의 "진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며, 그들의 뼛속과 연골, 내장 속이야말로 신의 생각이 가장 잘 담겨 있는 곳이라고 했다.32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5067 - P57

"인간의 육체적 본성이… 어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인간이 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고 도덕적으로 얼마나 졸렬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33 아가시가 충격적이라고 느낄 만큼 인간과 유사한 어류의 골격 구조(작은 머리, 척추골, 갈비뼈를 닮은 돌출 가시)는 ‘인간’에 대한 경고였다. 어류는 인간이 자신의 저열한 충동들에 저항하지 못하면 어디까지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비늘 덮인 존재였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5067 - P58

그는 그날 갑판 위에서 파닥거리던 물고기들의 이름은 단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 그에게 물고기들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자, 남은 평생 맞춰야 할 퍼즐로 그를 손짓해 부르는, 반짝이는 비늘로 된 실마리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55067 - P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년만의 신간 단편집. 시간을 소재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그의 필력이 가볍지 않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