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김형석 지음 / 두란노 / 2020년 10월
평점 :
두란노 언컨택 리뷰어로 선정되서 읽게 된 새로 나온 김쌤책.
역시나 잔잔한 감동과 가슴에 뜨겁게 올라오는 사명감으로 충만한 시간을 가졌다.
기독교는 인간의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교, 사랑의 종교이기 때문에 희망이 있음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다.
<1>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인간애를 목적으로 두는 기독교가 희망이 있다.
- 현재의 기독교의 모습은 폐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뒤처져 있다.
-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독교가 버려야하는 모습은
1. 권위의식 - 권위의식 대신 선한 질서로 대체 되어야 한다. 선한 질서는 사랑과 은총, 신앙으로 되어있다.
2. 교회주의 - 교회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통로이다.
3. 교권주의 - 이것의 절정이었던 시기가 중세 시기이고 십자군 전쟁이다. 그 때를 기억하여 스스로 경계해야만 한다.
- 희망이 되는 기독교가 되기 위해서는 교리주의에 빠지지 말고 그리스도의 진리가 우선되고 선포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의 삶은 그리스도와 나, 그리고 우리 사회라는 목표로 승화해야한다.
그리스도 뜻에 따라 민족과 국가를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애를 목적으로 두는 것으로 인간을 수단화 해서는 절대 안된다.
<2>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기독교 - 인간을 사랑하고 봉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인간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공부를 계속 해야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사랑을 하기위해 이기심을 버려야한다.
- 신앙 = 앎(신학) + 실천 -> 두 요소가 균형을 맞춰져서 제대로 서있을 때 진정한 신앙이 된다.
- 신앙적 양심이란
1. 아픈자들, 소회된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참여해야하며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희생이 뒤따른다
2. 사회악의 상황에 대응할 때는 정의 + 사랑(봉사)으로 맞서야 한다. - 봉사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이다. 십자가의 희생 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은 사랑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봉사이다.
- 크리스천이 마땅히 해야할 일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인데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사랑할수 없다.
인간을 알고 이해하는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 양심과 신앙(신의 명령과 뜻을 따르는 것)의 연결점에 인간애를 두면 좋을 것 같다. - 양심과 신앙 가운데 갈등이 생길수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는 기준을 인간애 즉, 인간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두면 해결할수 있다.
- 신앙이 인간애를 통해 양심과 도덕을 더 높일 수 있으며 그것이 사회의 선한 질서를 뒷받침할 수 있다면 신앙은 현대사회에서도 희망을 안겨 줄수 있다. 양심이 법보다 우위에 있다면 신앙은 양심을 포괄하면서도 초월해 있는 것이다.
- 예수의 교훈은 일반 대중을 위한 복음이기도 하지만 학자나 사상가에게도 희망과 구원을 주는 복음이기 때문에 교회는 공부해야만 한다! - 이 챕터를 읽는데 속이 후련했음!!! 제발 공부합시다!! ㅎㅎ
- 크리스천은 세계 어딜가도 한 형제 자매인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믿을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언제 어디서나 존귀한 것이며 기독교는 그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 크리스천은 삶의 기준이 되는 자기 동일성을 지녀야 한다.
1. 성실성과 정직성 - 성실성이 없은 참다운 신앙을 가질수 없다. 성실성 안에 정직이 강조된다.
2. 이기적인 발상과 행동을 버리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 나보다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
3.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애와 인간 목적관에 결부시켜야 한다. - 크리스천은 언제나 삶과 인생의 목적을 인간적 가치 추구에 두어야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인간의 완성과 구원이 성취 될 수 있음을 믿고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 뜻을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 지으셨다.
<3> 민족에 희망을 주는 기독교
- 사회의 양극대립의 해결은 대화를 통해 열린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 우리는 인간다움을 기초로 두고 사랑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닮도록 나아가야 한다.
- 기독교가 사회에서 해야할 역할은 사회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다. 지금 사회는 흑백논리 즉, 나만 다 옳고 상대는 다 틀렸다는 자기 절대화의 병에 걸려있다.
- 사람과의 관계가 지금은 대부분 상화관계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평등관계로 변화시켜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서로 섬기는 평등한 관계라는 인식을 알리고 실천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다. 또한 인간관계의 불평등함으로 많은 고통과 불행이 생겼다. 기독교는 사랑의 질서로 이 평등관계가 이루어질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한다.
- 온정주의과 합리주의가 둘 다 있어야 온전한 사람이 될수 있는데 이것에 대한 해결책은 둘 다(사랑과 진리)를 강조하는 기독교이다.
- 국가는 자기 결정권을 상실할때 망할수 밖에 없다. 현재 우리 민족과 정부가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1. 민족과 사회가 자기동일성을 상실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진로와 방향이 무엇인지 알수 없게 되었다.
2. 사회적 삶의 방법이 잘못된 데 있다. 가장 잘못된 것은 투쟁을 위한 투쟁이다. 투쟁을 토론으로 바뀌어야하고 토론은 대화로 바꿔야 한다. 대화를 통해서만 서로의 의견과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더 바람직한 객관적 가치를 모색한다. 중요한 것은 내 것과 네 것을 합친 더 좋은 것 모두에게 소망스러운 것을 찾아 따르는 일이다.
그 길이 바로 크리스천이 실천해야하는 길이다.
- 다른 종교는 자연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역사 종교이다. 시간과 역사는 일회적이어서 처음과 끝이있고 그 사이에 역사적 의미가 깔려있다. 일회성이라 그것은 나름대로 절대적이며 자연 시간과 역사 시간의 차이는 질적인 것이다.
자연 시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나 역사 시간을 사는 이들은 앞으로 무엇이 이루어질것인지를 먼저 생각하여 다가올 역사 사건에 대비하려 한다. 자연 질서에 따르는 자들은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가치관을 소중히 생각하나 역사속에 사는 자들은 미래에 대한 도전의식을 갖는다. 그들이 과거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창조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이고 예언들이 이루어져 역사가 완성되기를 기다린다. 미래가 있다는 것은 희망의 약속이고 그러기에 창조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 기독교는 역사 종교이며 미래지향적이다.
- 크리스쳔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중산층에 진입해서 이웃과 사회에 베풀며 살아야 하며 민족과 국가를 위한 애국적 관심과 식견을 갖추어야 하며 사회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이 선출되고 봉사한다면 모범적이고 소망스러운 나라를 일으킬수 있을 것이다. - 여기서 이상적인 목표로 제시해 주시는 것은 맞다고 생각이 드나 여러가지 이유에서 정말 노력해도 중산층에 들어가기 어려운 크리스쳔들이 있을 것이다. 그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는 마음에 좀 아픈 부분이었음 ㅠㅠ
-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의 양극 대립이 심한데 그것에 대한 해결은 개방적인 사회 즉, 열린 사회로 나아갈 때 가능해진다. 열린 사회로 가는 길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 과정에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가?
1.모든 개인이 이기적인 발상을 버리고 집단 이기적 행동을 배척하는 것이다. 폐쇄 사회로 유인하는 것은 경계할것!
2. 우리 모두가 정직과 진실을 추구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지도자일수록 더더욱!
3.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확장시켜 나가는 데서 비롯된다. 어느 누구도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규제를 받아서는 안되며 인간의 기본권은 유지 되어야 한다. 경제적, 정치적 모두!
-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뜻을 같이하는 형제자매가 되기 위해서는
1. 정치적 이념이나 목적을 앞세워 인간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 신앙적 가치관을 떠나면 안된다.
2. 기독교 신앙은 영원하지만, 정치적 활동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산상수훈의 큰 주제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종교적 신앙의 뜻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 위에 신앙적 건설이 허용되며 종교적 축복이 가능하다.
기독교적 경제관은 우리에게 주어진 경제적 부를 우리만을 위해 쓰지 않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써야 한다. 가지려고 하는 사람은 놓치게 되지만 남에게 주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된다.
예술과 철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하는 순수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인간을 위한 휴머니즘이 있어야 한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인간다움 위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사고와 삶이 기초가 된다면 그 위에 건설된 집은 어떤 모습인가?
1. 인간 목적관 - 하나님은 인간 목적을 실현하는데 원동력과 이념을 제시해 주신다. "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2. 사랑의 방법 - 크리스쳔이 정치하는 이유도, 기업을 운영하는 이유도, 학물과 예술에 종사하는 이유도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한다.
- 자유와 평등도 사랑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크리스쳔들은 평등을 뒷받침하는 정의는 인간을 위한 사랑이며 사랑의 정의의 질서를 높여줄 때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정의는 사랑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살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은총의 질서에 마물게 되는 길은 사랑의 실천에 있다.
- 가장 세계적인 것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1. 이성적이란 뜻이다 - 이성적 사고와 가치를 거부하거나 배제하고는 인간다움은 존립하지 못한다. 이성적 사고와 가치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과제는 넓은 의미의 진실성이다. 이 진실성은 고정된 개념이 아닌, 계속 밝혀져야 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적 삶의 진리가 포함되는 진실이 소망스러운 것이다. 진실을 지키고 사랑하는 민족과 사회가 마침내 반석 위에 집을 지을수 있는데 진실 위에서만 역사적 건설이 가능하다.
2. 인륜성이다.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생활의 바람직한 질서, 그것을 윤리 도덕 또는 인륜성이라고 한다. 어떤 민족이나 국가가 도덕적 활력을 갖출 때는 흥하고 발전하나 도덕적 생명력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일 상실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강조하셨고 계명보다 이웃에 대한 인간적 도리를 지키라고 하셨다.
선한 질서 위에 모든 정시적 삶이 성장하며 건설될 수 있는 것이다.
인륜적 질서를 파괴하는 주범이 이기적인 사고와 집단 이기주의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열린 사회의 길을 막기 때문이다. 세계사의 커다란 흐름은 개방 사회를 건설함에 있고 전인류가 공존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의지의 구현이다.
크리스천은 이러한 역사의 큰 물줄기 안에서 정직과 인간다움의 기초 위헤 열린 애국심과 인간애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4> 예수의 뜻을 실천하는 기독교
- 사랑의 인간관계에서 맡은 의무에 최선을 다할 때 가장 소망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다.
- 진정한 구원은 주님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며 사랑의 지혜로 그 뜻을 온전히 이룰때 하늘나라가 건설된다.
- 크리스천이 지녀야 할 직업관은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일을 사랑하는 것은 일의 중요성을 알고 즐겁게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 봉사의 수단으로 일하는 사람은 그 일을 통해 사람을 위하고 섬기는 가장 고귀한 임무를 다하게 된다. 보물을 하늘나라에 쌓아두라는 가르침은 바로 그런 뜻이다.
- 성경을 보면 꿈은 역사적 계시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정의의 의지와 신념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꿈, 소망과 이상을 버린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그 꿈은 미래에 대한 기대이자 약속이다.
그 약속이 하나님과 한 것이라면 이상과 소망을 넘어 영원한 실재가 된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멘!
- 경쟁은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경쟁도 있으나 개인과 사회의 성장을 보장받을수 있는 선의의 경쟁도 있다. 하지만 이 선의의 경쟁도 무한경쟁으로 빠지만 고통과 불균형이 불가피하다. 이런 경쟁 말고 사랑의 경쟁이 있는데 그것은 나를 내세우기위한 경쟁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경쟁이다. 이 경쟁은 계속 되어도 좋다.
- 하늘나라는 어디에 어떻게 이루어지나?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때에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곳에서 이루어 진다.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는 곳은 믿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이고 이 하늘나라는 지금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 머물고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나와 더불어 성취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크리스천들이 삶을 함꼐하는 신앙의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한다.
하늘나라는 나에서 시작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공동체 속에 머물러야 하며 마침내는 하나님의 뜻이 인류의 역사를 완성시킬 때까지 우리와 후손들의 사명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 하늘나라란 무엇인지 김쌤이 한번 정의해주셨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마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있는 곳, 하나님의 왕되심이 인정되어 그분의 통치하심이 온전히 있는 곳이 아닐까...
- 집을 지하실과 일층과 이층으로 나눌수 있는데 지하실엔 창고, 이층은 책을 읽거나 쉬는 곳, 일층은 가족의 공동 생활공간이다. 우리의 소유가 몰려있는 지하실에 요즘 사람들이 주로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곳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지나치게 이층에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경건함은 귀하나 나만의 경건은 헌신적 의미가 약하고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향상 시킬수는 있으나 나와 인간, 이유과의 유대를 단절시킬수 밖에 없다.
- 가장 소망스러운 삶은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모든 의무와 책임을 인간관계에서 전개해 나가는 일이다. 가족관계를 화목하게 이끌어가고 이웃과의 관계를 선하고 아름답게 유지해가며 민족과 국가에 대한 사회적 임무를 건설적이고 보람있게 발전시켜가는 일이다. 모두 서로를 위해 충실히 봉사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 예수께서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셨다.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양을 치며 공직을 계속하되 새로운 목적과 방법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것이다.
- 크리스천 정치인들은 새로운 발상과 도덕관을 갖고 정치에 임해야한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크리스천이 변화해야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주꼐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 역사를 건설하는 법이다.
- 성경은 도덕적으로 선과 악의 대립적인 위상이 아니라 죄와 구원의 차원에서 인간을 재평가하고 있다. 인간은 얼마나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냐에 따라 좀 더 선해지고 악해질 수는 있으나 그 선악 판단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양심은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는 알려주지만 그 죄악을 저지른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후회와 고통의 짐을 더해줄 뿐이다 - 아는 것만으로는 해결할수 없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도덕을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구원을 맏는다는 뜻이다. 어떻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가능할까?
도덕과 윤리는 인간과 인간 관계에서 성립되나 종교와 신앙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필수적이다. - 그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로 구원이 가능한것이다.
인간적인 선과 악은 세례 요한까지의 문제로 하늘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것에 속한다. 그리스도 이후에는 인간의 완성과 구원을 위한 믿음이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 된다.
- 제도화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훈 및 정신과 일치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 기독교의 본질에 어긋나거나 비기독교적인 일에 치우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종교개혁 사건이 있다.
교회는 기독교 공동체의 대표적 존재이기는 하나 교회 밖에 기독교 공동체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은 적절하지 못한다. 기독교와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라고 볼 수 는 있다. 그러나 기독교가 곧 교회여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 주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의롭고 축복받는 나라를 만들라는 요청을 수도 없지 하셨지만 크고 훌륭한 교회를 위해 노력하라는 교훈은 거의 없다.
-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중요한 것은 교회제도를 위한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진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전 중심의 교회관에서 벗어나야한다. 예배당은 교회가 머물기 위한 공간, 교회가 필요로 하는 그릇과 같은 기능으로 족하다.
- 교회는 목표가 아닌 과정이며 목적이 아닌 방편이다. 모든 신도들이 교회를 통해 진리를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받아들인 후에는 제각기 사회에 나가 맡은 일에 충성과 봉사를 다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를 통해 민족의 역사를 바꾸며 인류에 희망을 줄 수 있다.
- 교회는 인간이 중심이 되면 기독교 본연의 사명을 다하기 어려워진다.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면 교회보다 큰 하늘나라를 위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기독교는 교회보다 크지만 하늘나라는 기독교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 우리가 아무리 좋은 기도를 드린다고 해도 주의 기도 이상은 드릴수 없을 것이다.
주의 기도의 마지막은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되어 있다. 악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 곧 주의 품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나를 구해주옵소서'가 아니라 '우리를 구해주옵소서'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우리란 뜻과 믿음을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다. 인간으로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악에서 구해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인 것이다.
- 이 부분을 읽고 주기도문을 음미하며 묵상했더니 정말 은혜스러웠음 ㅠㅠ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을 다 넣어서 만들어주신 예수님께 감사!
- 목적이 선한다고 하더라도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대답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위한 이기적인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기 쉽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쓰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수단과 방법이 아닌 사랑의 지혜이다.
100년이 지나도 희망을 주는 기독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그대로 체화하여 실천하는 길 밖에 없다.
-(총정리) 사랑과 봉사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늘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 이것이 크리스천인 우리가 마땅이 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