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초역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 현대인들의 삶에 시금석이 될 진실을 탐하다
이채윤 엮음 / 읽고싶은책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유명한 철학자 중 한 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들을 주제별로 잘 정리되어있는 책입니다. 나를 다시 돌아보고 주위 사람을 다시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해야하는게 좋을지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귀한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출판사에서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컬처블룸 서평단을 하면서 참 좋은 점은 평소엔 전혀 보지 않았던 장르들의 책들을 다양하게 볼수 있다는 점이다. 고전 매니아라서 그런 쪽 책만 몇년을 파다가 서평단 활동 이후 얼마나 독서폭이 넓어졌는지 모르겠다~ ㅎㅎㅎ

덕분에 다양한 관점들도 생기고 새로운 세상들도 접하게 되서 너무너무 감사하다 ^^

이번에는 아주 오랫만에 도전한 최근에 나오 따끈한 소설 <우주를 삼킨 소년>을 읽게 되었다.

일단 이 책은 책 디자인이 너무 예쁨~~~ 달도 소년도 새도 뒤에 숲도 그리고 환상적인 색감도... 네버랜드가 같은 꿈의 나라, 미지의 세계를 여행할 것 같은 느낌이라 달달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큰 기대감을 주었다. 그래서 받자마자 기분 좋게 달려들었는데.... 첫 인상은 웁스!!! ^^;;; ㅋㅋㅋㅋㅋ

오스트레일리아 80년대 십대 소년 엘리 벨의 이야기인데 너무 거칠어서 깜놀!!! ㅋㅋㅋㅋㅋㅋ 부모는 마약 거래를 하고 한살 많은 형은 어릴 때의 충격 때문에 말을 안하고 주말에는 살인자로 악명이 드높은 탈옥수 슬림 할아버지가 엘리의 베이비시터로 곁에 있는다. 할아버지는 같이 있으면서 거칠고 더럽고 추한 세상의 이야기를 갓 십대된 엘리가 다 이해할거라 생각한다며 아무 필터링 없이 다 얘기해줌 ^^;;;; 잘못된 가치관을 배울까봐 티비 조차 골라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내게는 정말 충격적인 설정이었다 ㅎㅎㅎ

마약거래에 얽히고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는 양육 분위기 때문에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이 책이 페이지가 거의 700페이지가 가까워서 두께에 겁을 먹었었는데 푹 빠져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었다. 정말 몰입감이 장난 아님! 다 읽고 나서 이거 영화 나올거 같다며 혼자 흥분했음 ㅎㅎㅎㅎ읽는데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장면이 그려지고 팽팽한 긴장감이 조여드는 걸 느끼며 읽었다. 방금 다 읽어서 아직도 흥분이 가시질 않음 ㅋㅋㅋㅋㅋㅋ

스토리 자체도 재미있는데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것도 참 좋았다.



전설의 탈옥수 슬림 할아버지가 엘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중에 와닿는 부분들이 좀 있었는데 시간에게 당하기 전에 시간을 해치워버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쉬지않고 변함없이 흘러가는 시간에게 속절없이 무력하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 시간을 느리게도 했다고 빨리 보낼수도 있고 해치워버릴수도 있다는 것이다.

시간을 빨리 보내고 싶을 때는 종일 열심히 살수 밖에 없도록 가능성이 충분한 목표들(성과들)을 잔뜩 정해놓고 바쁘게 살다보면 시간이 어느 새 후딱 지나가고, 종일 일한 탓에 너무 피곤한 나머지 눕자마자 잠에 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시간을 천천히 가게도 만들수 있는데 몸의 감각들을 모두 사용하여 그 순간과 그 상황을 세세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면 그 시간이 영원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참 와닿았는데 실제로 엘리와 형 오거스트가 나중에 슬림할아버지의 말들을 계속 기억해서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해 원하는 계획들을 해내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무척 인상적이다. 나 역시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몰입해서 지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내는데 그 상황 자체를 만끽하려고하면 꽤 오랫동안 머물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특히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때 그런 느낌을 더 생생히 느끼는 것 같다.


엘리는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주변사람들을 보면서 진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갖고 그 생각을 슬림할아버지와 나눈다. 할아버지가 처음에 잘 대답해주지 못했지만 나중에 엘리에게 명확히 알려준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선택이고 그게 다라고. 하... 정말 이 부분이 마음에 훅! ㅠㅠ

우리는 주변과 상황과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고 그것을 탓하지만 결국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나의 의지, 나의 선택인것이다. 그것이 선악을 가르는 기준인 것이다. 다른 이유를 대며 탓하는 사람들도 결국 그러한 핑계는 자기 기만인것을 인정할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온전히 내 책임인것을 잊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암!

평소 고전소설 위주로 읽다보니 내가 주로 봤던건 영국, 프랑스, 미국 배경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런 거친 오스트레일리아의 밑바닥 세상은 처음 경험했는데 좀 새로운 분위기였다. 그러면서도 꿈과 환상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 내용들도 계속 나오는데 무척 신비스럽고 매력적이다. 이런 내용이 아이들이 주인공이되는 작품이라 더 아름답고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범죄 소설의 긴장감과 쫄리는 맛도 있는데 무겁지만은 않고 순수함과 환상적인 분위기까지 함께 있는 작품이다.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께 추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토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출판사에서 도서협찬 받았습니다]


사르트르가 쓴 소설이고 사르트르의 철학이 잘 녹아져 있다는 소개에 컬처블룸 서평단에 신청하여 읽게 되었다.

나는 유일신을 믿는 사람이라서 무신론자들의 생각을 잘 모른다. 나에게 있어 이 세상을 사는 이유는 신의 인도하심과 그 분이 주신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신념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방향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작년에 만난 내 생의 최고의 책 <레 미제라블>의 작가가 빅토르 위고여서 프랑스에 대한 호기심도 더 생겼는데 프랑스 철학자인 사르트르의 생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다. 다 읽고 난 후 느낌은 카뮈의 <이방인>처럼 엄청 허무할줄 알았는데 이 작품은 허무로 끝나지 않고 나름 희망적으로 마무리 된것 같아 무척 신선했다! ㅎㅎ

이 책의 주인공은 앙투안 로캉탱이라는 사람인데 프랑스 항구도시인 부빌이라는 곳에서 롤르봉 후작에 대한 역사책을 쓰고 있는 기간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젊었을 때는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나름 열심히 열정을 가지고 지냈듯 하다. 그러던 중 안니라는 여자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지는데 그녀와 4년전에 헤어졌다. 하지만 아직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자신 안에 혼란이 닥쳐왔을 때 그녀를 그리워하며 같이 대화하고 싶어한다.

그는 어느날 돌맹이를 주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구토증을 강하게 느꼈다. 그 구토하고 싶은 느낌이 그때 끝난 것이 아니라 돌발적으로 자주 그를 찾아오면서 무척 혼란스러워한다. 그 느낌은 사람인 자신만 느끼는게 아니라 광물인 돌맹이도 느끼고 있는것처럼 인식되면서 느껴지는 혼란과 역겨움인듯하다. 앙투안의 혼란스러움을 보면 그는 술을 진탕 먹고 몸을 못 가누는 사람처럼 어질어질하고 또렷한 생각을 할수 없는것처럼 보인다. 그가 사람들을 볼때는 별로라고 느끼는 사람은 별로라서 별로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들은 그들이 허락도 안되있는 권리를 누리고 있다며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앙투안은 그들의 눈 감은 얼굴을 볼 때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죽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가 느끼기엔.

앙투안에게 존재는 자신뿐 아니라 주변 모든것에게도 해당되는데 그 존재의 상태를 항상 느끼는것도 아니다. 갑자기 강렬히 느꼈졌다가 사그라지듯이 느낌. 그 존재들이 강렬한데 다 쓸데 없다. 죽는것도 쓸데 없다. 그래서 그냥 살고 있기 때문에 그냥 살고 있는 것이다.

모든것은 우연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우연성은 절대적이다. 우연인데 절대적이라는 말이 넘 아이러니하다.


음... 정말 대 혼란 환장 파티 같은 이야기다 ^^;;;

나는 공황장애를 겪어본적이 있는데 그 증세는 내 몸이 평소와 같지 않은 상태라고 조금만 느끼면 모든 감각과 집중을 내몸에 하게 된다. 그러면 평소에는 절대 느끼지 못하는 미세한 마비, 절임, 고통, 왔다갔다 하는 심장의 박동, 극한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 이유는 평소보다,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오는 현상들이다.

나는 앙투안의 이러한 혼란스러움도 과도한 집중으로 인해 느껴지는 감각들이라고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몇개는 나도 실제로 느껴봤기 때문이다. 분명 저 사람이 괜찮아 보이는데 급 우습게 보인다든지, 어떤 물체가 갑자기 줌인하는 것처럼 크게 다가와서 먼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것 같았는데 금방 사라진다던지, 내가 갑자기 스스로를 인식해서 무척 이상하고 꿈인지 진짜인지 어려운 것 같은 느낌들 말이다.... 나는 절대적 진리를 믿기 때문에 그런 혼란속에 있어도 다시 그 진리를 붙잡고 내가 있어야할 곳, 내가 마땅히 해야할것과 생각해야할 것들을 찾아서 평안을 얻고 안정을 찾고 상황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앙투안처럼 절대진리를 믿지 않는자들은 자신의 감각에만 의존할수 밖에 없고 느끼는 감각이 예민하고 깊이 집중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게 혼란에 빠지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듯 하다...


그런데 앙투안이 부빌을 떠나기 직전 흑인 재즈 여자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그에게는 아주 낯선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러면서 이 재즈 가수와 작곡가가 자신들의 작품을 기억해주는 자신덕에 구원 받은것처럼 자신도 소설을 써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누군가에게 기억되어지길 소망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구토증이 사라지면서 새 희망을 맛본다! 그게 정말 독특하고 신기했다. 무신론은 카뮈처럼 그냥 허무로 끝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작품 뒤 해설을 보니 앙투안은 이 재즈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쓸때만 강철, 질서, 필연성 과 같은 단단한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 곳에서 그는 내가 절대진리에서 느끼는 안전함을 느꼈던것 같다. 더 이상 흔들거리지 않고 흐물거리지 않는, 확실함과 분명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그러한 흔들리지 않는 반석같은 발판이 있어야지만 혼란에서 벗어나 행복감을 느낄수 있는 것이라는 걸 또한번 느꼈다.

중간중간 앙투안과 함께 정신분열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어질어질 했지만 그만큼 사르트르의 철학을 제대로 맛 본것 같아서 무척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사르트르와의 찐한 만남을 원하시는 분에게 추천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컬처블룸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받게 된 책.

따뜻하고 밝은 유화의 그림이 맨 처음 눈에 띄었고 유명한 작가이신 박와서님의 에세이라는게 와 닿았고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는 제목이 무슨 얘기일지 궁금했다. 직접 받은 책은 화면보다 더 예쁜 표지라 행복했고 내용은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었다.

작가님의 소탈한 유머가 끊임없으면서도 삶의 무게를 그대로 표현하고 자신의 흠들을 가리지 않고 보여주시니 계속 웃음이 나오면서도 뭉클뭉클 마음이 올라왔다.



혼자 걷는게 좋은 것은 걷는 기쁨을 내 다리하고 오붓하게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P.13

이 부분에 씨익 웃음이 ^^

내 다리인데 내가 인식 못해줄때가 얼마나 많은가

보통 정말 다리가 아프거나 불편할 때나 거기 있었구나 함 ㅠㅠ

등산하면서 느끼는 기쁨을 나의 몸과 함께 누린다는 말이 풍성히 누리고 있다고 마음이 간질간질 참 좋았다 ^^



길은 사람의 다리가 낸 길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이 낸 길이기도하다. 누군가 아주 친절한 사람들과 이 길을 공유하고 있고 소통하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내가 그 길에서 느끼는 고독은 처절하지 않고 감미롭다. -p.15

작가님이 등산을 하다가 집 열쇠를 잃어버려서 고생하신적이 있는데 그 열쇠를 찾으려고 땅만 보고 다니다가 결국 못 찾고 스페어 열쇠를 자녀들에게 받으셨다. 그 후 더 이상 찾지 않고 평소처럼 등산을 하셨는데 눈높이에 있는 나뭇가지에 열쇠가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신 후 쓰신 글이다. 나도 얼마나 마음이 훈훈하던지 ㅠㅠ 정말 스윗한 등산 이웃이심~~~

정말 이럴 때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따뜻하고 감사하고 풍요로운 마음이 가득해지는것 같다.



이 스토리도 너무 위안이 되고 따뜻했는데 작가님이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힘들어 하고 계실 때 부산에서 이해인 수녀님이 자신이 있는 수녀원에서 쉬고 가라고 초대를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 가시게 되었고 작가님은 그분들의 환대가 너무 따뜻했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혼자 있을 수 있어서 회복하기 더 좋았다고 하시는데 정말 공감한다! 나를 너무 사랑하고 아낀다고 옆에서 아무리 잘해줘도 오롯이 혼자 쉴수 없으면 그 대접조차 피곤함 ㅠㅠ 적당한 거리를 두고 혼자 쉴수도 있고 그렇다고 너무 오래 혼자 있지도 않고 적절히 사랑 가득한 따뜻한 얼굴로 바라볼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떤 고통도 스르르 녹을수 밖에 없는 듯 하다. 이곳에 너무 좋아서 그 다음부터는 매해 한번씩을 들리시게 된다고 하시는데 그런 쉼의 공간이 있으신게 무척 부러웠다! 나도 그런 곳이 있었으면 하고 소망해본다.



이 이야기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정말 보면서 내내 미소가 떠나질 않았음 ㅋㅋㅋㅋㅋ 얼마나 손자가 귀여운지 ㅋㅋㅋㅋㅋㅋ 콩 부딪혀서 할머니한테 호오 호오 해달라는 그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ㅠㅠ

이 '호오 호오' 입김은 신체를 낫게하는 능력은 하나도 없지만 심리적으로는 정말 직효인듯하다! 그 사랑 가득한 입김을 불어주면 이 상처는 반드시 낫는다는 아이의 믿음이 정말 이쁘고 사랑스럽다 ^^

나도 두 딸들을 키우고 있는데 둘 다 아프거나 불안한 일이 있을 때 어쩔 줄 몰라하다가도 내가 '괜찮아. 큰일 아니야'하고 말해주면 마법의 주문이라도 걸린듯 방금 비실비실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쌩쌩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이쁜지 모른다 ㅎㅎㅎ 정말 이런 사랑의 믿음은 그것을 믿는 아이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그것을 준 어른은 그 사랑스러움을 깊이 느끼게 되는 놀라운 마법 같다.



이 이야기는 내게 큰 희망과 용기를 준, 선물과 같은 이야기였다!

작가님은 40세 여성동아에서 여류 장편소설 모집에 당선이 되면서 소설가의 길이 열렸다. 그런데 그 때까지 작가님은 글을 쓰신적도 없고 체계적인 공부하거나 이것에 대해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심지어 당선이 되었는데도 내가 이 길로 가야하나 고민하셨다고 ^^;;;; 평범한 주부로 지내시다가 공고를 보고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냥 하셨다는 거다. 이 이야기가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는 30대 후반인 나에겐 얼마나 큰 위로인지.... ㅠㅠ

나에게 아직 안 늦었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 열정 갖고 하는 것을 계속 하면 되라는 마음이 들었다.

올 해 코로나로 집에만 있게 되면서 작년부터 불어왔던 독서에 대한 열정이 폭풍처럼 내게 와서 많은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올해 읽었던 책의 양은 여태 살면서 읽었던 책보다 훨씬 많았다. 여러 종류의 책을 읽긴 했으나 거의 고전문학 위주로 읽었는데 내겐 정말 새로운 경험이고 도전이었다. 책만 읽는다고 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읽은 책들을 모두 서평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기록들을 계속 하게 되면서 이렇게 서평단으로써 활동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나의 삶을 응원해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벅찼다!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진심을 담아 한다면 좋은 열매가 될꺼라 확신이 든다 ^^



마지막 장은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작가님의 남편은 작가님이 돌아가시기 20년도 더 전에 투병 생활을 하다 돌아가시고 남편의 죽음 이후 3개월 만에 아들이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게 되었다고 한다. 하... 어떻게 사셨을 까....

아마 제정신으로 지내실수 없었던것은 확실하셨을 듯 하다... 아들이 공부도 참 잘하고 서울대 의대생이고 레지던트로 성실히 일하던 수재였던데 정말 아까운 인생임 ㅠㅠ

그렇게 너무 힘들어서 정말 죽고 싶었고 이렇게 괴로워하다가는 죽겠지 하면서 사셨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음식 냄새를 맡고는 식욕이 돌았고 그런 본인에게 모멸감이 들었으나 결국 식욕에 굴복하셨다고 한다. 정말 그게 인생이고 인간이지... 너무나 솔직하고 인간적인 이야기라서 그 마음이 와닿았고 계속 끄덕끄덕 하게 됨.

먼저 간 아들 때문에 죽음과 가까워지는게 반갑고 설레셨다는 말이 뭉클했다. ㅠㅠ 그렇게 생각하면 당장 죽음을 껴안고 싶으면서도 죽고 싶어하지 않은 육체의 본능에서의 갈등...그런 솔직한 고백이 이해되서 나에게도 위안이 되었다.

나는 아직까진 직계가족 중 먼저 떠나보낸 사람이 없지만 힘든 삶을 보아도 삶에는 그리 희망이 없고, 나에게 가장 큰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생각에 죽음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으나 실제적 죽음을 조금만 상상해도 너무나 두려운건 어쩔수 없는것 같다.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지금 있는 자리에, 지금 해야할 일을 성실히 하는 수 밖에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없는 듯 하다.

이 밖에도 작가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신여성으로 키우고 싶으나 정작 본인은 구시대적 여성관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여성의 삶을 강요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시고 작가님도 역시 그러는 자신을 발견하셨던 이야기... 나도 그 이야기에 정말 공감한다.

그리고 삶속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들, 뒷이야기가 넘 알고 싶은데 하고 결말을 알수 없어서 아쉬웠던 이야기 등등 작가님의 소탈함과 따뜻한 진심가운데 나오는 글이 참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김형석 지음 / 두란노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란노 언컨택 리뷰어로 선정되서 읽게 된 새로 나온 김쌤책.

역시나 잔잔한 감동과 가슴에 뜨겁게 올라오는 사명감으로 충만한 시간을 가졌다.

기독교는 인간의 종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교, 사랑의 종교이기 때문에 희망이 있음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다.

<1>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인간애를 목적으로 두는 기독교가 희망이 있다.

- 현재의 기독교의 모습은 폐쇄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뒤처져 있다.

-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독교가 버려야하는 모습은

1. 권위의식 - 권위의식 대신 선한 질서로 대체 되어야 한다. 선한 질서는 사랑과 은총, 신앙으로 되어있다.

2. 교회주의 - 교회가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통로이다.

3. 교권주의 - 이것의 절정이었던 시기가 중세 시기이고 십자군 전쟁이다. 그 때를 기억하여 스스로 경계해야만 한다.

- 희망이 되는 기독교가 되기 위해서는 교리주의에 빠지지 말고 그리스도의 진리가 우선되고 선포되어야 한다.

모든 인간의 삶은 그리스도와 나, 그리고 우리 사회라는 목표로 승화해야한다.

그리스도 뜻에 따라 민족과 국가를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애를 목적으로 두는 것으로 인간을 수단화 해서는 절대 안된다.

<2>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기독교 - 인간을 사랑하고 봉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인간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 인간에 대한 공부를 계속 해야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사랑을 하기위해 이기심을 버려야한다.

- 신앙 = 앎(신학) + 실천 -> 두 요소가 균형을 맞춰져서 제대로 서있을 때 진정한 신앙이 된다.

- 신앙적 양심이란

1. 아픈자들, 소회된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참여해야하며 그들을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희생이 뒤따른다

2. 사회악의 상황에 대응할 때는 정의 + 사랑(봉사)으로 맞서야 한다. - 봉사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이다. 십자가의 희생 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은 사랑이며 그것을 실천하는 봉사이다.

- 크리스천이 마땅히 해야할 일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인데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사랑할수 없다.

인간을 알고 이해하는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 양심과 신앙(신의 명령과 뜻을 따르는 것)의 연결점에 인간애를 두면 좋을 것 같다. - 양심과 신앙 가운데 갈등이 생길수 있는데 이것을 해결하는 기준을 인간애 즉, 인간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두면 해결할수 있다.

- 신앙이 인간애를 통해 양심과 도덕을 더 높일 수 있으며 그것이 사회의 선한 질서를 뒷받침할 수 있다면 신앙은 현대사회에서도 희망을 안겨 줄수 있다. 양심이 법보다 우위에 있다면 신앙은 양심을 포괄하면서도 초월해 있는 것이다.

- 예수의 교훈은 일반 대중을 위한 복음이기도 하지만 학자나 사상가에게도 희망과 구원을 주는 복음이기 때문에 교회는 공부해야만 한다! - 이 챕터를 읽는데 속이 후련했음!!! 제발 공부합시다!! ㅎㅎ

- 크리스천은 세계 어딜가도 한 형제 자매인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믿을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언제 어디서나 존귀한 것이며 기독교는 그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 크리스천은 삶의 기준이 되는 자기 동일성을 지녀야 한다.

1. 성실성과 정직성 - 성실성이 없은 참다운 신앙을 가질수 없다. 성실성 안에 정직이 강조된다.

2. 이기적인 발상과 행동을 버리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 나보다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

3.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애와 인간 목적관에 결부시켜야 한다. - 크리스천은 언제나 삶과 인생의 목적을 인간적 가치 추구에 두어야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인간의 완성과 구원이 성취 될 수 있음을 믿고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 뜻을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 지으셨다.

<3> 민족에 희망을 주는 기독교

- 사회의 양극대립의 해결은 대화를 통해 열린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 우리는 인간다움을 기초로 두고 사랑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모습을 닮도록 나아가야 한다.

- 기독교가 사회에서 해야할 역할은 사회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다. 지금 사회는 흑백논리 즉, 나만 다 옳고 상대는 다 틀렸다는 자기 절대화의 병에 걸려있다.

- 사람과의 관계가 지금은 대부분 상화관계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평등관계로 변화시켜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서로 섬기는 평등한 관계라는 인식을 알리고 실천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다. 또한 인간관계의 불평등함으로 많은 고통과 불행이 생겼다. 기독교는 사랑의 질서로 이 평등관계가 이루어질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한다.

- 온정주의과 합리주의가 둘 다 있어야 온전한 사람이 될수 있는데 이것에 대한 해결책은 둘 다(사랑과 진리)를 강조하는 기독교이다.

- 국가는 자기 결정권을 상실할때 망할수 밖에 없다. 현재 우리 민족과 정부가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원인은

1. 민족과 사회가 자기동일성을 상실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진로와 방향이 무엇인지 알수 없게 되었다.

2. 사회적 삶의 방법이 잘못된 데 있다. 가장 잘못된 것은 투쟁을 위한 투쟁이다. 투쟁을 토론으로 바뀌어야하고 토론은 대화로 바꿔야 한다. 대화를 통해서만 서로의 의견과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더 바람직한 객관적 가치를 모색한다. 중요한 것은 내 것과 네 것을 합친 더 좋은 것 모두에게 소망스러운 것을 찾아 따르는 일이다.

그 길이 바로 크리스천이 실천해야하는 길이다.

- 다른 종교는 자연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역사 종교이다. 시간과 역사는 일회적이어서 처음과 끝이있고 그 사이에 역사적 의미가 깔려있다. 일회성이라 그것은 나름대로 절대적이며 자연 시간과 역사 시간의 차이는 질적인 것이다.

자연 시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나 역사 시간을 사는 이들은 앞으로 무엇이 이루어질것인지를 먼저 생각하여 다가올 역사 사건에 대비하려 한다. 자연 질서에 따르는 자들은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가치관을 소중히 생각하나 역사속에 사는 자들은 미래에 대한 도전의식을 갖는다. 그들이 과거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창조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이고 예언들이 이루어져 역사가 완성되기를 기다린다. 미래가 있다는 것은 희망의 약속이고 그러기에 창조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 기독교는 역사 종교이며 미래지향적이다.

- 크리스쳔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중산층에 진입해서 이웃과 사회에 베풀며 살아야 하며 민족과 국가를 위한 애국적 관심과 식견을 갖추어야 하며 사회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이 선출되고 봉사한다면 모범적이고 소망스러운 나라를 일으킬수 있을 것이다. - 여기서 이상적인 목표로 제시해 주시는 것은 맞다고 생각이 드나 여러가지 이유에서 정말 노력해도 중산층에 들어가기 어려운 크리스쳔들이 있을 것이다. 그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는 마음에 좀 아픈 부분이었음 ㅠㅠ

- 우리나라는 진보와 보수의 양극 대립이 심한데 그것에 대한 해결은 개방적인 사회 즉, 열린 사회로 나아갈 때 가능해진다. 열린 사회로 가는 길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 과정에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가?

1.모든 개인이 이기적인 발상을 버리고 집단 이기적 행동을 배척하는 것이다. 폐쇄 사회로 유인하는 것은 경계할것!

2. 우리 모두가 정직과 진실을 추구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지도자일수록 더더욱!

3.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확장시켜 나가는 데서 비롯된다. 어느 누구도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규제를 받아서는 안되며 인간의 기본권은 유지 되어야 한다. 경제적, 정치적 모두!

-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뜻을 같이하는 형제자매가 되기 위해서는

1. 정치적 이념이나 목적을 앞세워 인간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 신앙적 가치관을 떠나면 안된다.

2. 기독교 신앙은 영원하지만, 정치적 활동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산상수훈의 큰 주제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종교적 신앙의 뜻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삶 위에 신앙적 건설이 허용되며 종교적 축복이 가능하다.

기독교적 경제관은 우리에게 주어진 경제적 부를 우리만을 위해 쓰지 않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써야 한다. 가지려고 하는 사람은 놓치게 되지만 남에게 주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된다.

예술과 철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하는 순수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인간을 위한 휴머니즘이 있어야 한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인간다움 위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건설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사고와 삶이 기초가 된다면 그 위에 건설된 집은 어떤 모습인가?

1. 인간 목적관 - 하나님은 인간 목적을 실현하는데 원동력과 이념을 제시해 주신다. "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2. 사랑의 방법 - 크리스쳔이 정치하는 이유도, 기업을 운영하는 이유도, 학물과 예술에 종사하는 이유도 사람을 위해서 해야 한다.

- 자유와 평등도 사랑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크리스쳔들은 평등을 뒷받침하는 정의는 인간을 위한 사랑이며 사랑의 정의의 질서를 높여줄 때 진정한 평등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정의는 사랑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살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은총의 질서에 마물게 되는 길은 사랑의 실천에 있다.

- 가장 세계적인 것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1. 이성적이란 뜻이다 - 이성적 사고와 가치를 거부하거나 배제하고는 인간다움은 존립하지 못한다. 이성적 사고와 가치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과제는 넓은 의미의 진실성이다. 이 진실성은 고정된 개념이 아닌, 계속 밝혀져야 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적 삶의 진리가 포함되는 진실이 소망스러운 것이다. 진실을 지키고 사랑하는 민족과 사회가 마침내 반석 위에 집을 지을수 있는데 진실 위에서만 역사적 건설이 가능하다.

2. 인륜성이다. -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생활의 바람직한 질서, 그것을 윤리 도덕 또는 인륜성이라고 한다. 어떤 민족이나 국가가 도덕적 활력을 갖출 때는 흥하고 발전하나 도덕적 생명력을 잃게 되면 모든 것일 상실하게 된다. 예수께서는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강조하셨고 계명보다 이웃에 대한 인간적 도리를 지키라고 하셨다.

선한 질서 위에 모든 정시적 삶이 성장하며 건설될 수 있는 것이다.

인륜적 질서를 파괴하는 주범이 이기적인 사고와 집단 이기주의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열린 사회의 길을 막기 때문이다. 세계사의 커다란 흐름은 개방 사회를 건설함에 있고 전인류가 공존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는 의지의 구현이다.

크리스천은 이러한 역사의 큰 물줄기 안에서 정직과 인간다움의 기초 위헤 열린 애국심과 인간애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4> 예수의 뜻을 실천하는 기독교

- 사랑의 인간관계에서 맡은 의무에 최선을 다할 때 가장 소망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다.

- 진정한 구원은 주님과의 관계에서만 가능하며 사랑의 지혜로 그 뜻을 온전히 이룰때 하늘나라가 건설된다.

- 크리스천이 지녀야 할 직업관은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일을 사랑하는 것은 일의 중요성을 알고 즐겁게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 봉사의 수단으로 일하는 사람은 그 일을 통해 사람을 위하고 섬기는 가장 고귀한 임무를 다하게 된다. 보물을 하늘나라에 쌓아두라는 가르침은 바로 그런 뜻이다.

- 성경을 보면 꿈은 역사적 계시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 정의의 의지와 신념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꿈, 소망과 이상을 버린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그 꿈은 미래에 대한 기대이자 약속이다.

그 약속이 하나님과 한 것이라면 이상과 소망을 넘어 영원한 실재가 된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멘!

- 경쟁은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경쟁도 있으나 개인과 사회의 성장을 보장받을수 있는 선의의 경쟁도 있다. 하지만 이 선의의 경쟁도 무한경쟁으로 빠지만 고통과 불균형이 불가피하다. 이런 경쟁 말고 사랑의 경쟁이 있는데 그것은 나를 내세우기위한 경쟁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경쟁이다. 이 경쟁은 계속 되어도 좋다.

- 하늘나라는 어디에 어떻게 이루어지나?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때에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곳에서 이루어 진다.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는 곳은 믿는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이고 이 하늘나라는 지금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 머물고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가 나와 더불어 성취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크리스천들이 삶을 함꼐하는 신앙의 공동체 안에 있어야 한다.

하늘나라는 나에서 시작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공동체 속에 머물러야 하며 마침내는 하나님의 뜻이 인류의 역사를 완성시킬 때까지 우리와 후손들의 사명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 하늘나라란 무엇인지 김쌤이 한번 정의해주셨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마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온전히 있는 곳, 하나님의 왕되심이 인정되어 그분의 통치하심이 온전히 있는 곳이 아닐까...

- 집을 지하실과 일층과 이층으로 나눌수 있는데 지하실엔 창고, 이층은 책을 읽거나 쉬는 곳, 일층은 가족의 공동 생활공간이다. 우리의 소유가 몰려있는 지하실에 요즘 사람들이 주로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곳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지나치게 이층에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경건함은 귀하나 나만의 경건은 헌신적 의미가 약하고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향상 시킬수는 있으나 나와 인간, 이유과의 유대를 단절시킬수 밖에 없다.

- 가장 소망스러운 삶은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모든 의무와 책임을 인간관계에서 전개해 나가는 일이다. 가족관계를 화목하게 이끌어가고 이웃과의 관계를 선하고 아름답게 유지해가며 민족과 국가에 대한 사회적 임무를 건설적이고 보람있게 발전시켜가는 일이다. 모두 서로를 위해 충실히 봉사하려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 예수께서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셨다.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양을 치며 공직을 계속하되 새로운 목적과 방법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것이다.

- 크리스천 정치인들은 새로운 발상과 도덕관을 갖고 정치에 임해야한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크리스천이 변화해야한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주꼐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 역사를 건설하는 법이다.

- 성경은 도덕적으로 선과 악의 대립적인 위상이 아니라 죄와 구원의 차원에서 인간을 재평가하고 있다. 인간은 얼마나 양심적이고 도덕적이냐에 따라 좀 더 선해지고 악해질 수는 있으나 그 선악 판단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양심은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는 알려주지만 그 죄악을 저지른 인간을 구원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후회와 고통의 짐을 더해줄 뿐이다 - 아는 것만으로는 해결할수 없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도덕을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구원을 맏는다는 뜻이다. 어떻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가능할까?

도덕과 윤리는 인간과 인간 관계에서 성립되나 종교와 신앙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필수적이다. - 그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로 구원이 가능한것이다.

인간적인 선과 악은 세례 요한까지의 문제로 하늘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것에 속한다. 그리스도 이후에는 인간의 완성과 구원을 위한 믿음이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관점에서 재평가 된다.

- 제도화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훈 및 정신과 일치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 기독교의 본질에 어긋나거나 비기독교적인 일에 치우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종교개혁 사건이 있다.

교회는 기독교 공동체의 대표적 존재이기는 하나 교회 밖에 기독교 공동체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은 적절하지 못한다. 기독교와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라고 볼 수 는 있다. 그러나 기독교가 곧 교회여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 주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의롭고 축복받는 나라를 만들라는 요청을 수도 없지 하셨지만 크고 훌륭한 교회를 위해 노력하라는 교훈은 거의 없다.

-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중요한 것은 교회제도를 위한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진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전 중심의 교회관에서 벗어나야한다. 예배당은 교회가 머물기 위한 공간, 교회가 필요로 하는 그릇과 같은 기능으로 족하다.

- 교회는 목표가 아닌 과정이며 목적이 아닌 방편이다. 모든 신도들이 교회를 통해 진리를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으로 받아들인 후에는 제각기 사회에 나가 맡은 일에 충성과 봉사를 다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를 통해 민족의 역사를 바꾸며 인류에 희망을 줄 수 있다.

- 교회는 인간이 중심이 되면 기독교 본연의 사명을 다하기 어려워진다.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면 교회보다 큰 하늘나라를 위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기독교는 교회보다 크지만 하늘나라는 기독교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 우리가 아무리 좋은 기도를 드린다고 해도 주의 기도 이상은 드릴수 없을 것이다.

주의 기도의 마지막은 '우리를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되어 있다. 악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 곧 주의 품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나를 구해주옵소서'가 아니라 '우리를 구해주옵소서'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우리란 뜻과 믿음을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다. 인간으로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악에서 구해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인 것이다.

- 이 부분을 읽고 주기도문을 음미하며 묵상했더니 정말 은혜스러웠음 ㅠㅠ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을 다 넣어서 만들어주신 예수님께 감사!

- 목적이 선한다고 하더라도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일은 옳지 않다고 대답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위한 이기적인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기 쉽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쓰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수단과 방법이 아닌 사랑의 지혜이다.

100년이 지나도 희망을 주는 기독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을 그대로 체화하여 실천하는 길 밖에 없다.

-(총정리) 사랑과 봉사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늘나라를 건설할 수 있다. 이것이 크리스천인 우리가 마땅이 해야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