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 이겨놓고 싸우는 인생의 지혜 현대지성 클래식 69
손무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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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인문학 수업 뷰티풀을 통해 ‘사서’를 즐겁게 배웠다. 그 중 특히 맹자가 인상적이었는데 무엇보다 백성들을 귀히여기는 그 중심이 크게 와 닿았고 그 덕에 유교에 대한 많은 오해가 풀렸었다. 그 수업 이후 동양고전을 더 알고 싶어서 <주역>과 <손자병법>을 장바구니에 담아 뒀었는데 이번에 <손자병법>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탐독했다.

<손자병법>은 총 13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다양한 병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중간 중간에 수록된 재밌는 부록들과 올 컬러로 실려있는 사진 및 그림들을 함께 볼 수 있는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자료들이 더 그 시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다각도로 <손자병법>을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그림들! 이야기도 재밌는데 그림이 너무 멋있어서 한참동안 감상하고 글을 읽었다. 훨씬 더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어서 몰입하기 좋았다.

이 책의 구성은 <손자병법>의 원문을 소개하고 뜻을 풀이 해준 후 각 문장의 예시들을 주로 <초한지>,<삼국지>에 있는 이야기들 안에서 가지고 와 이해하기 좋게 풀어 주었다. 그래서 <손자병법> 자체도 배우고 <초한지>와 <삼국지>의 이야기들도 같이 만날 수 있어서 내용이 더 풍성했다.



전에 <초한지>를 읽으며 한신을 대단한 장수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선명한 그림을 보며 그를 만나니 그의 위용이 더 느껴졌다.

읽어보니 전쟁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백성들의 안정과 평화를 생각하는 손자의 마음이 크게 공감이 되었다. 그가 말하는 최고의 승리는 전쟁하지 않고 얻는 승리이다. 아무리 수월한 전쟁도 일단 시작하면 희생이 생길수 밖에 없고 자원들이 소모되는데 그건 대부분 백성들이 감당하는 몫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켜서 얻어지는 승리의 기쁨보다는 전쟁 없이 평온하게 지내는 백성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훨씬 가치있음을 말한다.

그 내용은 가장 처음에 있는 [제1편 계]에서부터 나온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달린 일이므로 반드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데 그 승패를 파악하는 다섯가지 요소가 있다. ‘도’가 그 중 첫번째이다. 도는 백성들로 하여금 윗사람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공생공사하고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게 만드는 것으로 백성이 뜻을 함께 하고 힘을 실어주어야 그 전쟁이 정의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민심이 승패를 결정하므로 민심을 반드시 잘 살펴서 전쟁을 일으킬지의 여부를 결정해야하는 것을 강조한다. 전에 내가 인상깊게 배웠던 맹자의 중심사상과도 연결되어있어서 더 깊이 와닿았다.



그 밖에 실제적으로 전쟁을 이기는 데 중요한 지형이나 형세, 인재 기용 등 진짜 실전에 필요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은 세를 읽는 것과 인재를 기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들은 읽으면서 계속 머리가 끄덕여졌다. 간단히 말하면 전쟁을 이끄는 장군이 아군과 적군 그리고 전장을 제대로 통찰 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시기와 상황을 잘 파악하여 유연하게 전략을 펼치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탁월한 장군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영역에서 엄청난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공감이 되고 나 역시도 이 전쟁터같은 세상을 사는 데 필요한 지혜들이라고 생각해서 마음에 새기듯이 글을 읽었는데 마음이 편치않은 내용이 있었다. 바로 [제13편 용간]이다. 용간은 정보전이 승리에 절대적임을 강조하며 첩자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정말 첩자가 꼭 필요할까? 그들이 정말 큰 역할을 해주는 건 맞는데 첩자의 삶은 얼마나 불행할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세계에선 수많은 스파이들이 자국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고 타국에 스며들어 중요한 정보들을 빼가고 그 정보들로 자국에 큰 기회를 주거나 위험한 상황을 피하도록 돕는 큰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필요는 알겠으나 계속 주변을 속이며 살아야하는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까싶어서 안타깝게 느껴졌다.

손자병법 자체도 배울 부분이 많고 흥미로웠는데 이 책 마지막 부록에 ‘삼십육계 줄행랑’이란 말에서 들어본적이 있는 삼십육계 전술 체계에 대한 설명도 재밌었다. 그 삼십육계가 이런 전술을 의미한 것이였고 꽁무니 빼고 도망가는 것 같은 그 전술은 실제로 최상의 계책인데 후퇴는 맞으나 항복하는 후퇴가 아닌 기회를 기다리기 위한 후퇴라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모든 일엔 때가 있고 그 때를 잘 알아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 원칙은 모든 사회 생활에 적용할만한 것이리라.

오랜시간동안 많은 지도자들이 놓치지 않고 읽었던 <손자병법>을 읽어보니 사람과 사회를 통찰하는 엄청난 지혜를 만났다. 내용으로도 가슴 벅차고 그림도 아름다워서 눈이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훌륭한 그림들을 보면서 세상을 꿰뚫는 통찰력을 기르고 싶은 분들에게 이 현대지성 <손자병법>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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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코너스톤 착한 고전 시리즈 13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감수 / 코너스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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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는 5년 전에 전자책으로 처음 읽었었다. 그때는 서평을 아주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에만 쓰다 보니 이 작품을 쓰지 않았다. 이 작품 역시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인데 말이다. 처음 읽었을 때는 페스트로 많이 괴로워하며 죽는 아이의 모습과 모두 다 어려울 때 유일하게 행복했던 코타르가 크게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신을 인정하지 않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 주인공 리외의 생각에 많은 의문이 들었었다. 신이 없는데, 영원한 것에 대한 인정이 없는데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할 수가 있나?

그동안 다양한 책을 접한 후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그의 생각과 행동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알제리 해안과 마주한 프랑스의 항구도시 오랑에 갑자기 말도 안 되게 많은 쥐들이 죽는다. 사람들은 죽은 쥐를 치우는 것을 귀찮게만 여겼는데 점점 사람들도 죽기 시작한다. 펄펄 끓는 열과 딱딱해진 멍울이 몸에 생긴 채 말이다. 당국은 이 병이 전염성이 있다고 여겨 도시를 폐쇄시키고 환자들은 격리 병원에, 환자와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도 격리 시설에 수용시키기 시작한다. 의사 리외는 모든 시간을 다 쏟아서 정성껏 환자들을 돌본다. 그 지역에 방문했다가 도시로 나갈 수 없었던 신문기자 랑베르는 아내가 있는 곳으로 어떻게든 나가려고 했으나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사람들을 곁에 보고는 마음을 접고 남아 있기로 결심한다.



혼자만 행복한 것은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부끄럽지 않기로 마음먹은 랑베르는 열심을 다해 환자들을 돌본다.

자원봉사자로 열심히 리외를 돕는 타루는 리외와 서로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우정이 생긴다.



타루는 리외에게 신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왜 이렇게 헌신적인지 물어본다. 리외는 앞 일은 알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니 그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



자원봉사들 역시 자신의 삶을 헌신하면서 봉사하는 것을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고 그것을 하는 것이 너무나 마땅해서 오히려 안 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로 여긴다.

이런 그들의 모습에서 <소년이 온다>의 인물들이 생각났다. 상대방이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 본인들은 총이 있는데도 쏘지 않았던 것은 상대방이 사람이라 총을 쏘면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당연히 안 쏜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이 있다. 리외와 자원봉사자들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일들을 당연히 한 것이다.

이 어려운 시간이 혼자만의 상황이 아니라 함께 겪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힘들어도 외롭지는 않았다. 힘들어도 같이 힘들었고 거짓말처럼 갑자기 페스트가 종식되어 도시가 다시 열릴 때도 다 같이 기뻐했다. 이 와중에 범죄자여서 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지내기 힘들었던 코타르는 다 같이 우울했던 시대를 마음에 들어 하며 사람들의 불행을 기뻐했다. 그런 그만 페스트의 종식을 원치 않았으나 결국 그 시간은 와 버렸고 그는 기뻐하는 사람들을 총질까지 하고 만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격리에서 풀릴 때 사회에서 격리조치 된다. 그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더라면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참 안타까웠다.

여기에 또 인상적이었던 건 페스트가 사람들의 백신의 개발로 승리하여 종식시킨 것 아니라 사람들도 잘 모르는 이유로 어느 순간 잠잠해버린 사실이다. 결국 사람은 상황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 상황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엇일까 계속 되묻게 되는 작품 <페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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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無 교회가 온다 - 십자가 없는 MZ교회의 등장
황인권 지음 / ikp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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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세계관 수업을 들으면서 함께 수업을 듣는 분들과도 대화를 많이 했는데 나 빼고 다 젊은 목사님들이셨다. 그분들의 현재 사역지에서의 고충들을 들으며, 그리고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교회 생활을 생각하며 많은 기독교 서적에서 말하는 그 ‘믿음의 공동체’는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라는 갈망이 있는 중에 왠지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많은 팁들을 줄수 있을꺼란 생각에 무척 구미가 당겼다.


 책의 제목 5무는 십자가, 새벽예배, 성경공부, 구역, 장로가 없는 교회가 오고있고 사실은 이미 왔음을 이야기하며 현재의 주류이자 젊은이층이라고 하는데 MZ세대에 대한 이 책은 아주 세부적인 분석을 해주고 있다. 내 나이는 MZ에 아주 끄트머리에 걸려있는 나이여서 작가님이 말씀해주신 그들의 특징과 겹치지도 하지만 나는 늙었구나 싶은 내용도 꽤 많았다는 ㅎㅎㅎ

 흥미로웠던 내용은 MZ세대가 개인주의이지만 자기의 편리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친환경 제품에 관심이 많다는 부분이었다. 온라인 세계에서 전 세계의 이슈를 편하게 만날 수 있다보니 MZ세대가 전지구적인 문제를 알고 있으며 그에 관련한 해결책을 생각한다는 것은 무척 반갑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들이 기존 종교에는 멀어지고 있으나 타로나 사주에 무척 관심이 많다는 것을 밝히면서 영적인 갈망이 있음을 집어주신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이런 그들의 필요를 그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으로 우리가 채워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작가는 젊은이들이 오기 원하는 교회로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성수동에 가면 찾을 수 있다고 하면서 성수동의 여러 핫플레이스들을 자세히 글에 실었는데 그 부분들이 무척 흥미로웠고 서울에 날 잡고 가서 정말 꼼꼼히 탐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현대서울’ 백화점에 대한 내용도 MZ세대들을 잘 파악하여 그 공간이 왜 그렇게 핫플레이스가 됐는지를 잘 분석해 놓으셔서 정말 재밌게 읽었고 그곳도 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핑처치’에 대한 이야기인데 거의 20년전 YWAM 선교단체에서 운영하는 하와이 코나로 DTS 훈련을 받으러 갔을 때 여러가지 DTS 중 서핑DTS, 스케이트보드DTS 등등 그렇게 취미생활과 연계된 영성훈련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재밌다고 생각했고 저런 연계가 정말 훈련에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데 이번에 ‘서핑처치’에 대해 읽으면서 그 사역이 얼마나 영적인 부으심이 있는지 거의 부흥회라고 하신 목사님의 이야기에 감동이 되고 그런 예배에 기회가 있으면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적으로도 정말 꽉차고 디자이너이신 작가님의 역량이 잘 나타난 구성으로 정말 세련되게 책을 잘 만들었다. 색감도 쨍하니 선명하게 잘 들어오고 핵심 내용들을 잘 담고 있으면서도 예쁜 사진들이 감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너무나 내용이 트렌디하고 디자인적으로도 잘 만들어서 멋진 잡지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정보도 정말 충만했는데 읽을만한 책들도 잘 정리해서 소개되어있고 새시대에 맞는 교회들과 커뮤니티들을 사진으로, QR코드로 잘 담아놔서 내용을 바로바로 찾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읽으면서 소개해준 앱들을 실제로 몇개 깔았다. 정말 영업 능력도 탁월하신듯 ㅎㅎ


 개인적으론 정말 얼마만에 이렇게 설렘을 가득 안고 책을 읽어보는지 모르겠다. 원래 공연기획, 문화사역에 대한 꿈이 있었지만 일찍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홈스쿨러로 살다보니 내가 좋아하고 잘한다고 생각했던 능력들을 내 안 저 밑바닥에 사장시키고 살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내 안에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이 다시 반짝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가슴이 뛰었다.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잃어버렸던 나의 한 일부를 찾은 느낌이 들어서 이 책에게 너무 고맙다.


현재 교회에 대해, 현재의 믿음의 공동체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시는 분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 줄 책 <5무 교회가 온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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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I-II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1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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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100년은 더 지난 고전 작품들 위주로 많이 보는 편인데 노벨상 수상자인 욘 포세의 작품을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현대에 나온 작품 중 나름 고전의 냄새가 물씬 나는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대되었다.


막 책장을 열어서 읽어나가는데 어떤 놀이가 생각났다. "시장에 가면 사과도 있고, 시장에 가면 사과도 있고 수박도 있고, 시장에 가면 사과도 있고 수박도 있고 고등어도 있고...." 짧고 간결한 문장의 무한 반복이 나를 반겨주었다.

오 이 주인공... 보통 증세가 아니다. 자신이 느끼고 상상한 것을 그대로 믿는 데 떠오르는 생각을 스스로 무한 반복하여 스스로를 각인 시켜 믿어버리게 한다. 이런 반복하는 말들이 사실도 있지만 과대망상에서 나온 것들과 뒤섞여 있있다. 이런 증상 더하기 지금 실제 옆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곁에 있다고 생생히 느끼고 그들과 대화도 한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이 겪었던 조현병, 흔히 말하는 정신분열의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그는 풍경화를 그리는데 있어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그에게 전부이다. 그에게는 절대적 기준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림을 잘 그리는 지, 못 그리는 지에 따라 그 가치를 매긴다. 표면적으로 느껴지는 1,2차원의 사고만 가능하다. 그 사고들이 끊임없이 그의 생각을 채우기 때문에 더 깊은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확신하는 것 말고는 다른 여지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 그의 멈추지 않고 계속 채워지는, 큰 의미 없는 생각들의 나열이라 자칫 지루할 수 있으나 갈 수록 그의 생각은 점점 자극적으로 변한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나는거 아니야? 라는 생각에 절로 긴장감이 형성되서 점점 지루할 틈이 없어진다.


주인공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노르웨이 작은 섬 사람인데 너무너무 가난하다. 하지만 그림에 뛰어난 소질이 있었고 후원자 덕분에 독일까지 유학을 와서 그림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가 머물고 있는 하숙집 주인 딸 헬레네와 사랑에 빠졌다. 안타까운건 헬레네가 고작 열대엿살이라는 것이다. 헬레네가 그의 방에 간다는 것을 그녀의 엄마와 아빠 대신 그녀를 돌봐주는 삼촌(아빠의 동생)이 알게 되고 그래서 라스에게 그 집에서 나가라고 한다. 이 사실을 가장 먼저 헬레네가 라스에게 전해주는데 그는 헬레네가 자신이 나가길 바란다고 생각한다. 삼촌이 그를 내쫓으려고 하는 이유는 헬레네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기 위해 쫓아낸다고 생각한다. 라스는 짐을 다 싸 들고 나갔으나 헬레네가 자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해서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오고 결국 경찰까지 출동한다.

여기에서 그는 노르웨이 화가들이 모이는 술집 말카스텐에 갔었는데 그의 온전하지 못한 정신을 가지고 친구들이 짖궂게 놀린다. 비슷한 증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비슷한 일을 겪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참 안타깝고 씁쓸했다. 무엇보다 그의 또래들은 철 없어서 그렇다고 치고 그의 재능을 알아봐준 스승 한스 구데조차 그곳에 있으면서 그를 위해 어떠한 보호 조치도 하지 않는것은 정말 더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그의 작품을 협회에 잘 팔아볼 생각만 있었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더 비극적인 상황이고...


그 다음 배경은 정신병원에 입원한 라스의 모습인데 그는 가끔 갈매기들을 생각하며 차분하게 지낼 때도 있으나 거의 쉴새 없이 자위행위를 한다. 그 행위 때문에 건강이 나빠진거고 나아지지 않으면 다시는 그림을 그릴수 없다고 그의 보호사와 원장이 경고한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건 그의 영혼에게는 사형 선고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엄청 불안해하며 반드시 병원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을 무한 반복한다. 그는 사랑하는 헬레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자신과 영원히 함께 할꺼라는 생각과 그녀과 자신의 삼촌과 계속 부적절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끊임 없는 생각으로 인해 정신분열상태로 지낸다. 이런 생각에 가득차 있는 그는 원장과 상담이 끝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자위행위를 한다.

다른 내용들은 그러러니 하겠는데 그림 그리는 것이 생명 같은 사람에게 그걸 뺐어가놓고 건강한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것이 말이 되나 싶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느끼는 그 희열과 충만한 감정을 다른 무언가로 채우지 않으면 미칠것 같은 것 같은데 그가 집착하듯이 자위행위하는 것이 넘 이해가 되었다. 잘못된 처방이 그를 더 미치게 만드는데 한 몫 한것 같아서 더욱 안타까웠다.


이 이야기 뒤는 대략 100년 후 라스의 이야기로 글을 쓰려고 하는 그의 먼 친척 작가 비드메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까지가 1편이다. 비드메는 사제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히 나누고 싶어했는데 자기 속한 곳의 교구가 여사제 마리아다. 정식 사제도 아니고 대리로 그 일을 맡고 있었는 데 자신의 설교 들으러 오진 말고 대화하고 하고 싶을 때 언제든 다시 자기 집으로 오라며 그에게 차와 와인을 대접한다. 비드메는 다신 연락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마리아의 집에 나온다. 하지만 예쁜 가슴에 아름다운 얼굴을 언급하며 그녀의 매력적인 외모를 강조하는 걸로 봐서는 또 다시 그녀의 집에 가도 이상하지 않을것 같은 분위기로 이야기는 끝난다. 여기선 재밌게도 작가의 종교에 대한 생각들이 나오는데 아직 고민 속에 있는 현재 상태가 잘 나타난다.


2편은 라스의 누나 올리네가 나이가 많이 들어 치매 증상이 심하고 발의 통증도 심해서 정말 사는게 힘든 데 그 와중에도 예전의 라스에 대한 기억만큼은 또렷이 가지고 있고 그에 대해 계속 회상한다. 어렸을 때 부터 특이했던 라스. 천재였지만 너무 안타깝게 빨리 간 라스. 너무 멀쩡하고 잘 지내다가 갑자기 눈빛이 바뀌며 화가들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라스. 이런 동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하나 정작 올리네 본인은 지금 화장실에서 배변하는 것 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급하게 마려운것 같으면서도 막상 변기에 앉으면 안나오고 자기도 모르게 배설물들이 새서 속옷이 젖어있으나 그것 조차 모른다. 급기야 둘째 남동생 쉬버트가 위독하여 누나가 보고 싶으니 꼭 오라고 평소엔 얼굴도 안보는 올케 시그네의 청도 잊고 있다가 늦게 쉬버트를 만나러 가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다. 동생의 죽음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자신의 아픈 발만 생각하고 식사 준비만 생각하다가 쉬버트를 만나러 오라고 했었나 할 만큼 기억력이 없다. 그러다 배에 불편함을 느끼고 화장실에 앉아서 평안을 느끼며 라스 곁으로 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2편은 올리네의 화장실 문제로 괴로워하는 모습들이 정말 리얼하다. 아주 튼튼한 장을 가지지 않았다면 대부분 사람들이 이런 화장실 문제로 힘든게 얼마나 괴로운것인지 공감할 수 있을것이다. 가기도 꺼려지고 안가기엔 불안한 그 찝찝한 느낌이 들 때의 괴로움...

쉬버트가 자신과 정말 친했던 동생이었다고 올리네는 설명하나 정작 머릿속엔 라스에 대한 추억만 가득해서 쉬버트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녀에게 크게 들어오지 않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물론 현재 상태가 심한 치매라 방금 일어난 일을 잊어버릴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회상하는 내용에서조차 쉬버트 이야기는 거의 없는 것이 쉬버트에겐 슬프고 참 서운할듯 싶었다.


주인공 라스 헤르테르비그는 실존 인물이며 실제로 이런 정신 질환을 앓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검색해보니 이 책 표지 그림을 포함하여 그의 풍경화들은 신비스럽고 몽환적인데 분명한 힘도 느껴지고 정말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여서인지 보통 사람의 시선이 아닌 글 임에도 진실된 글에서 나타나는 힘이 느껴졌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크게 인상적이었던 건 갖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라스의 마음이 너무나 잘 전달되었다는 점이다. 그가 왜 더 깊이 생각할 수 없는지, 그가 왜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고 계속 같은 생각들을 하며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지, 그 마음이 느껴져서 그런 증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삶을 강렬하게 체험한 기분이었다. 이런 많은 반복적인 구절들을 이렇게 밀도 있게 쭉 끌고 간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힘인 것 같다. 왜 사람들이 욘 포세에 대해 극찬하는지 알 수 있었던 작품 <멜랑콜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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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I-II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1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민음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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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가에 담긴 사랑과 예술에 대한 욘 폰세의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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