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한참동안 모니터 위의 커서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천지는 모니터 위에 깜빡이는 커서처럼 엄마에게 울부짖는 조용한 신호를 보낸다.
“엄마, 혹시 내가 죽으면, 내 사진 앞에서라도 짜장면은 먹지 마.”
“나는, 짜장면이 너무 싫어......”
엄마는 알고 있었다. 천지가 자장면을 왜 싫어하는지를. 그러나 스스로 잘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모르는 체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천지는...
“미안합니다. 이제, 갑니다.”
아이들은 두렵습니다.
학교에 가기도 두렵습니다.
집에 머무르기도 두렵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학교에서 소외당하고 따돌림 당하는 천지의 상황을 알고 있던 천지엄마는 좀 더 적극적으로 천지와 이야기하고 그 해결방법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요? 스스로 극복하리라는 아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구요? 그건 회피이자 무책임입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천지를 이용했던 화연에게 물질적 풍요로움 말고 화연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있었다면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으려고 그렇게 남을 이용하면서까지 악착같이 노력했을까요?
“화연이가 자꾸 남의 물건에 손을 대요.”
“어려서 그러지요. 좀 크면 그러겄어요?”
“화연이가 자꾸 애들을 괴롭힙니다.”
“좀 크면 나아지겄지요.”
“화연이, 학원에서 나가야겠습니다.”
그날 화연은 엄마한테 초주검이 될 때까지 맞았다.
화연부모가 막무가내로 다그치지 않고 언제부터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차근히 물어보고 지속적인 이해와 관심을 보였다면 어땠을까요? 역시 삶이 버겁다는 구차한 변명을 방패삼아 아이에 대한 폭력과 무책임, 회피가 있을 뿐입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지만 누구나 진정한 부모가 되지는 않는다. 소통이 되지 않는 가정에서 아이들은 외롭다. 현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속으로 병들어 가는 아이들을 간과하고 있다. 작가는 그러한 아이들의 현실을 눈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 가정 내에서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상처받은 아이들이 어떻게 따돌림의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되는지를 보이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선악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지 않고 가해자 역시 피해자일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는 부분은 이외 청소년 소설과 다른 차별성이 부여되는 점이다.
읽는 내내 많이 아팠다. 지금도 아프다. 아픈 마음으로 끝내라고 작가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신의 아픔뿐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눈을, 보이는 그대로가 진실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의 고단함을 핑계로 아이들에게 무관심하지 않기를, 사랑으로 보다듬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