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마키아벨리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어나니머스 옮김 / RISE(떠오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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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솔직한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피렌체의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권력과 인간 본성의 진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현대 독자가 16세기 이탈리아의 복잡한 정치사나 고대 로마의 역사적 예시로 가득한 원전을 이해하며 완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책 <일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원전의 높은 문턱을 낮추고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구성한 편저서이다. 저자 '어나니머스'는 마키아벨리의 3대 대표작인 <군주론>, <로마사 논고>, <피렌체사>에 흩어져 있던 통찰을 '인간 본성, 권력의 법칙, 생존 전략, 운명과 성공'이라는 4가지 테마 정제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했다.




흔히 남이 잘 다듬어놓은 해설서나 편저서를 읽으면 글이 쉽게 읽히는 대신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이 줄어 머리에 깊이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독서의 진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글의 난이도가 아니라 독자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책이 단순히 내 안의 모호한 감정을 확인하는 거울이 된다면 기존의 생각이나 편견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독서는 끝난다. 흔히 '읽고 남는 게 없는 독서'라고 말할 수 있다. 지적 성장은 책에 담긴 통찰이 내 기존 편견을 깨뜨리는 '망치' 역할을 할 때 시작된다. 쉽게 읽히는 편저서의 해석을 받아들이면 나의 생각이 아닌 저자의 생각을 그냥 읽었을 뿐이다. 그보다는 독자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을 시작해야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지적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책의 '인간 본성' 파트에서 마키아벨리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라, 환경과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현실적인 존재로 바라보았다. 즉, 인간은 고정된 선이나 악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과 이익에 따라 선해 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하는 유연한 존재로 바라봤다. 삶의 중요한 기로에서 나의 생존을 위해 행동 방식을 바꾸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적응 과정이라 생각되어 공감되었다.




더불어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인간 본성에 대한 생각은 자연계의 진화 원리와 매우 닮아 있었다. 예측할 수 없이 불어닥치는 운명인 '포르투나'는 자연의 무작위 변이나 급격한 환경 변화와 같다. 그리고 이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생존과 성장의 기회로 바꾸는 과단성인 '비르투'는 생물학적 적응력 및 진화의 힘에 대응되는 개념이었다. 표현만 다를 뿐 진화의 선순환을 삶에 적용하는 방식은 자연의 섭리와 같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며,


<일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의 방대한 3대 저작을 단 한 권으로 엮어 사상의 전체적인 구도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고, 마키아벨리의 글을 바탕으로 한 저자만의 날카로운 해석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프레임을 배울 수 있었다.


원전만으로 본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시대적 배경을 깊이 파헤쳐야 하기에 자칫 맥락을 놓치는 독서가 되기 쉽다. 반면, 그의 사유를 현대인의 시선으로 묶어내고 소화하기 쉽게 편저된 책은 마키아벨리의 사상과 생각을 받아들이는 좋은 마중물이 되어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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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 - 관계, 마음, 나를 만나는 어느 심리학자의 인생 수업
이서원 지음 / 스틸당(STEALDANG)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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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솔직한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처음엔 가볍게 읽을 책이라 생각하고 페이지를 펼쳤다. 하지만 한 장씩 넘겨갈수록 문장마다 멈춰 서서 그 깊이를 음미해야 할 내용이 많음을 깨달았다. 한 호흡에 쭉 읽어 내려가기보다, 문장을 곱씹고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독서 후 의도적으로 생각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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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관점에서 본다면 <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글쓰기의 유익함'과 좋은 글을 쓰기 위한 기본기를 다룬 책이다. 어떻게 보면 작독법(作讀法)에 관한 책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의미를 '나로서 살기 위한 삶의 지침'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저자의 모든 경험이 내 삶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가 삶의 궤적 속에서 글을 통해 위로받고 성장해 나간 이야기는, 현재 내가 마주한 삶의 답답함을 벗어나는 데 커다란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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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는 "말할 대상이 없고, 들어줄 사람이 없는 곳은 지옥과도 같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 내가 겪었던 직장 생활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주변 환경이 나를 그렇게 몰아넣은 게 아니라, 내 스스로 마음을 닫아 지옥 같은 환경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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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택에 의해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수도 있었음에도, 당시의 나는 방어벽을 두텁게 치느라 그 현실이 지옥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외부의 힘에 의해 그 환경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낯선 공기 속에서 비로소 더 사람 냄새나는 세상을 느끼게 되었다. 말할 대상도, 들어줄 사람도 없던 곳이 지옥이었다는 이 책의 깨달음은 앞으로 내가 나아갈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나침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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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글쓰기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글쓰기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라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어쩌면 과거의 내가 마음을 닫고 동굴로 들어갔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지 모른다. 직장 동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나 술자리에서의 대화는 늘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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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주체적인 이야기보다는 늘 업무 이야기나 사내 정치 같은 소음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분야에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동료들과 대화하는 시간 자체가 곤혹스러움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이 자기 내면의 이야기보다 타인의 이야기나 환경에 집중하며 살아간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 그동안 혼자 겉돌며 괴로워했던 나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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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공허함을 채워줄 가장 좋은 해법이 바로 '글쓰기'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남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내면의 목차를 채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매일 마주하는 일기장 속에서 나는 이미 그런 경험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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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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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를 지면에 풀어내면 낼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깊이 있게 알아가게 된다. 예전에는 누군가 나의 성격이나 좋아하는 것, 관심사에 대해 물어오면 머뭇거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블로그에 글이 하나둘 쌓여가면서 내가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명확하게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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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것들이 타인의 눈에 화려해 보이지 않아도 좋다. 그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감각, 그 성장의 궤적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나에게 그런 고요하고도 강력한 깨우침을 선물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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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의 99%는 장누수다
강신용 지음 / 내몸사랑연구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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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솔직한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장누수? 장에 구멍이라도 생겼다는 말인가? 장에 구멍이 생기면 장 속 음식물들이 몸 안으로 쏟아질 텐데, 그런 사람이 살 수 있는 걸까? 책 제목을 접하고 처음 든 호기심이었다. 다행히 장누수는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장에 진짜 구멍이 뚫린 것은 아니었다. 장벽의 방어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해, 느슨해진 장벽 틈으로 독소나 유해 물질이 침투하는 현상을 의미했다. 결과적으로 이 유해 물질들이 혈관을 타고 전신을 순환하며 장기와 세포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아픈 사람의 99%는 장누수다>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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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통해 섭취된 음식물은 식도를 거쳐 위에서 분해되고, 소장과 대장을 거쳐 영양분으로 흡수된다. 학창 시절에 배운 생물학적 지식은 이게 전부였다. 위에서 어떻게 분해되고 각 장기에서 어떤 영양분이 흡수되는지 구체적인 과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최근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장내 세균 환경’이었다. 흔히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 부르는 이것은, 장 속에서 다시 한번 음식물을 분해하고 영양분을 섭취하는 수많은 미생물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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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바이옴은 장누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장의 새로운 역할을 조명하고, 장내 세균의 중요성을 깊이 배울 수 있었다. 장은 위를 통과한 음식물을 최종 분해해 영양을 흡수하고 변을 배출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외부 세균을 방어하며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유지하는 거대한 방어기지였다. 몸 안으로 외부 물질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통로는 단연 ‘입’이다. 음식물과 함께 필연적으로 유해 세균이 들어오면 위에서 강력한 위산으로 1차 살균을 거치지만, 완전 박멸은 불가능하다. 결국 장에서 마지막 방어선이 뚫리지 않아야 한다. 이 방어벽 역할을 장내 유익균들이 해내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유산균 역시 이 유익균 생태계를 도와 몸을 지키는 데 크게 일조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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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담긴 방대한 생물학적 지식을 완벽하게 흡수하기란 무리다. 전문가가 아닌 관점에서는 내 몸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눈을 기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맥락 없이 텍스트만 읽어 내려간다면 다소 지루한 독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본인의 경험과 생활 습관을 토대로 내용을 하나씩 대입해 가며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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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AI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며 읽었다. 책은 아무래도 저자가 전달하려는 내용 중심이다 보니, 독자 개인의 세세한 의문까지 다 해결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평 서두에 던졌던 "장에 구멍이 뚫리면 어떻게 사람이 살지?"라는 호기심도 제미나이(Gemini)와의 대화를 통해 명쾌하게 해소할 수 있었다. 건강 서적을 읽을 때 모든 지식을 외우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식습관이나 평소 겪었던 생리적 현상들을 대입하며 읽어보자. 궁금증도 해결하고 지적 호기심도 확장할 수 있는 훌륭한 독서 여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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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는 사람들 - AI만 읽는 시대, 퇴화하는 인간 지능에 관한 경고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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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솔직한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2022년 11월, 생성형 AI가 대중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방대한 논문과 참고 자료, 수백 페이지의 보고서 더미에서 필요한 정보를 몇 초 만에 골라내고 매끄럽게 요약해 주는 AI는 혁신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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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할루시네이션(환각) 이슈가 있었지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정보의 왜곡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제 AI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던 지식 노동자들의 비효율을 걷어내 주는 구원투수로 완벽히 자리 잡고 있다. 나 역시 직장에서 제공하는 AI 모델을 활용해 외부 기관의 전문 리포트, 논문, 그리고 내부 보고서를 빠르게 요약하고 핵심을 파악하는 데 쏠쏠하게 재미를 보고 있다. 그 외에도 보고서를 쓰거나 이메일을 작성할 때 사용 빈도가 날로 높아지는 중이다. 그리고 이렇게 일하는 것이야말로 AI 시대에 가장 스마트하게 일하는 방식이라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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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의 <읽지 않는 사람들: Reader Bot>은 그 달콤한 효율성의 이면에 숨겨진 서늘한 진실, 즉 AI가 어떻게 인간의 사유를 잠식해 들어가는지 경고한다. 저자는 인류가 수천 년간 지켜온 인간 고유의 능력인 ‘읽기’를 기계에게 외주화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인간의 뇌는 원래 비상 상황을 대비해 평소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려는 본능이 있다. 이를 전문 용어로 '인지적 구두쇠'라고 부르는데, 이 성향이 AI라는 강력한 편리함을 만나 극대화되면서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수고로움을 AI에게 통째로 위임하는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넓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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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AI를 활용해 자료를 분석하고 발췌하는 시간을 단축하는 활동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효율성 측면에서는 전혀 문제 될 소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시작되는 ‘자존감의 잠식’이라는 심리적 위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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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편리함과 유창함을 경험할수록 우리는 자신의 경험이나 판단보다 AI를 더 신뢰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힘겹게 나만의 서사를 만드는 대신, 아무런 사유의 과정 없이 데이터만 툭 집어넣고는 "인사이트를 만들어줘", "문제점을 분석해줘", "경영층이 좋아하는 보고서로 바꿔줘"라고 기계에 요청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몇 시간을 골머리 앓아가며 만든 결과물보다 프롬프트 몇 번으로 뚝딱 만들어진 AI의 매끄러운 결과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일이 많아졌고, 나도 모르게 내 일터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혼이 텅 비어간다는 느낌이 들었고, 내면에서는 '진짜 내 실력의 밑천이 드러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패턴이 지속되고 AI의 유창함에 중독된다면,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고 AI가 요약하고 지시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는 시나리오가 결코 머지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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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간 본연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AI를 완전히 거부하고 과거의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것이 맞을까? AI로 무장한 이들이 무서운 속도로 결과물을 찍어내는 사회에서, 나의 유한한 지능과 지력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실로 진퇴양난의 딜레마였다. 저자 역시 이러한 파국을 강력히 경계했지만, 나는 이 경고를 무조건적인 기술 배격으로 수용하기보다 나만의 현실적인 경계선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I를 쓰지 않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불이 무섭다고 다시 어둠 속 동굴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기술의 거부가 아니라 ‘관계의 재정의’이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가 주도권을 쥐고 검증할 것인가에 대한 선을 명확히 긋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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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내 생각을 무작정 외주화하기보다는, 한 개인으로서 내 사고의 한계를 확장해 주는 훌륭한 파트너로 부려야 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단순 반복 작업(방대한 자료의 위치 탐색 및 초반 스크리닝)은 AI에게 과감히 맡기되, 그렇게 추려진 핵심 맥락 속에서 “이 논리는 정말 타당한가?”, “이 데이터의 이면에는 어떤 가치가 숨어있는가?”를 집요하게 의심하는 몫은 온전히 내 뇌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AI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반론을 요구하며, 최종적인 결론만큼은 나만의 시선으로 도출해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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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AI 시대에 인간으로서 고유한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AI가 만든 화려한 껍데기 속에서 오류와 편향을 잡아내는 비판적 시선, 그리고 “이 일이 왜 필요한가?”라는 근원적인 맥락을 끊임없이 되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라는 편리한 내비게이션은 적극적으로 이용하되, 목적지를 결정하고 운전대를 쥐고 흔드는 주체는 언제나 '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자아의 성장, 내면의 확장, 생각의 깊이와 같은 가치들은 숫자로 명확히 측정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그렇지만 텍스트와 치열하게 씨름해 본 이들은 자신 내면의 미세한 변화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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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요약해 준 지식은 편리하지만 내 영혼을 키우지 못한다. 질문을 던지고 의심하는 주체적인 고뇌가 생략된 자리에 자존감이 자랄 리 없다. AI가 쏟아내는 유창한 단어들에 내 사유의 영토를 순순히 내주지 않으려면, 비록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원문을 뜯어보고 행간을 읽어내는 나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편리함에 취해 내 뇌를 도태시키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핸들을 고쳐 잡고 치열하게 사유의 땀을 흘려야 할 이유를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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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나와 내 돈, 내 사람을 지키는 최소한의 법률 지식
임호균 지음 / 모티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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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솔직한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법이란 위험한 사람들을 벌하고, 사회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살인, 폭력, 사기와 같은 위험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고, 평범한 사람은 법에 저촉되거나 법에 휘말리는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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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며 지킬게 많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내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들이라면 내가 아는 상식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만 여겨왔다. 여전히 법은 위험한 사람을 벌하기 위한 장치이고, 나는 법을 활용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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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읽으며 부모님의 품에서 독립하고 혼자 속앓이 했던 사건과 시간들이 떠올랐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고, 불안함과 억울함이라는 감정들이 섞여 있었다. 어떤 사건은 혼자 끙끙 앓았고, 어떤 사건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 크고 작은 금전적, 정신적 피해가 있었다. 그 당시 나의 기억은 '그나마 다행이었다.'라며 생각하며 속으로 삭혔던 것 같다. 1년 치 헬스장 회원권을 1개월도 사용 못 하고 폐업해 종이 쪼가리가 된 일, 중고나라에서 맥북 사기당한 일, 보이스 피싱으로 조리돌림 당한 일 등등... 그냥 액땜했다 생각하며 넘긴 적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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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저자가 한 말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다. 우리는 아프면 병원 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진료받고, 약 처방도 받는데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변호사를 찾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플 땐 병원, 의사 선생님을 찾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마주한 사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법, 변호사를 떠올리지 못했다. 왜였을까? 가장 큰 이유는 변호사에게 연락하거나 자문을 구하는 일은 비싸다는 선입견이 컸었다. 그리고 내가 당한 자잘한 사건보다는 큰일이 있을 때, 큰돈을 지불하고 만나는 게 변호사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 변호사의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된 영향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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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일상 속 작은 분쟁에도 법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변호사의 상담도 받는 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예를 들어 층간 소음 문제, 자녀 학교 폭력 문제, 온라인 중고 사기와 같은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결하기보다는 변호사 또는 법적인 프로토콜을 이용하는 게 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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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우면, 반대의 경우도 알게 된다. 법을 이용해 나를 공격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기술 말이다. 때로는 절제하고, 역공을 당하지 않기 위한 기술이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어떤 사건에 휘말려 화가 난다 하여 당사자에게 표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꼬투리 잡히는 행동이나 언행은 유리한 입장에 있음에도, 전세가 역전당할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책에 소개된 사례를 보면 그 상황에서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는 내용들인데, 역으로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실제로 나는 자녀 문제 때문에 역으로 당한 경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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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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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현재 소유 중인 오피스의 임차인이 3개월 임대료를 내지 않아 계약 해지를 하기 위한 내용증명을 쓰기 위한 목적에서 읽었다. 아쉽게도 책에 상가 임대차 분쟁에 관한 내용은 없지만 유사하게 가압류, 떼인 돈 받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에서 도움 될 이야기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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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일상생활에서 언제 마주할지 모르는 상존하고 있는 위험 요소들이 무엇이 있고, 어떤 것을 대비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사례를 배울 수 있었다. 더불어 변호사와 상담하는데 상담하는데 드는 비용과 무엇을 준비해야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상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보통은 30분 상담에 5만 원 ~ 1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한다. 생각보다 큰 비용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큼 잘 준비해 가느냐에 따라 시간을 줄일 수 있었고, 금전적/정신적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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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문에서도 말했지만 아프면 병원 가는 게 당연하듯, 법적 분쟁에 휩싸이면 변호사를 찾아가는 게 자연스럽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했다. 한 사건에 가해자/피해자로 얽힌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변호사를 통해 대응했고 다른 사람은 스스로 대응한 경우가 있다고 해보자. 본인 생각에는 본인이 피해자임이 분명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법의 판단 기준은 다를 수 있다. 오히려 피의자에서 가해자의 신분으로 바뀔 수도 있고, 정당하다 생각한 사실들이 증거 불충분으로 본인의 당위성을 입증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차이를 가르는 중요한 지점은 법을 아느냐/모르느냐의 차이다. 법을 안다/모른다의 의미는 법의 판단 기준은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과는 갭이 클 수 있다는 점이다. 갭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변호사이고, 같은 상황에서도 변호사의 도움으로 상황이 크게 역전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이런 역설적인 상황을 봐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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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을 개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법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현명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배웠고, 괜한 일에 감정적 정신적 소모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배웠다. 법적인 분쟁은 발생하지 않을수록 좋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지킬 것이 많아진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성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책에는 많은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현재의 나와는 무관한 것들이 많다. 하지만, 언제 나의 상황이 될지는 예상할 수 없다. 책에서 소개된 모든 사례를 읽어가며 미리 걱정을 쌓아두라는 말은 아니다. 우선은 나의 상황에 가장 가깝게 마주한 사례 중심으로 책을 읽어보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준비하는 태도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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