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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는 사람들 - AI만 읽는 시대, 퇴화하는 인간 지능에 관한 경고
나오미 배런 지음, 전병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으나, 솔직한 생각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2022년 11월, 생성형 AI가 대중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 신세계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방대한 논문과 참고 자료, 수백 페이지의 보고서 더미에서 필요한 정보를 몇 초 만에 골라내고 매끄럽게 요약해 주는 AI는 혁신 그 자체였다.
초기에는 할루시네이션(환각) 이슈가 있었지만,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정보의 왜곡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제 AI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던 지식 노동자들의 비효율을 걷어내 주는 구원투수로 완벽히 자리 잡고 있다. 나 역시 직장에서 제공하는 AI 모델을 활용해 외부 기관의 전문 리포트, 논문, 그리고 내부 보고서를 빠르게 요약하고 핵심을 파악하는 데 쏠쏠하게 재미를 보고 있다. 그 외에도 보고서를 쓰거나 이메일을 작성할 때 사용 빈도가 날로 높아지는 중이다. 그리고 이렇게 일하는 것이야말로 AI 시대에 가장 스마트하게 일하는 방식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의 <읽지 않는 사람들: Reader Bot>은 그 달콤한 효율성의 이면에 숨겨진 서늘한 진실, 즉 AI가 어떻게 인간의 사유를 잠식해 들어가는지 경고한다. 저자는 인류가 수천 년간 지켜온 인간 고유의 능력인 ‘읽기’를 기계에게 외주화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인간의 뇌는 원래 비상 상황을 대비해 평소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쓰려는 본능이 있다. 이를 전문 용어로 '인지적 구두쇠'라고 부르는데, 이 성향이 AI라는 강력한 편리함을 만나 극대화되면서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수고로움을 AI에게 통째로 위임하는 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넓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처음에는 AI를 활용해 자료를 분석하고 발췌하는 시간을 단축하는 활동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효율성 측면에서는 전혀 문제 될 소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시작되는 ‘자존감의 잠식’이라는 심리적 위협이었다.

AI의 편리함과 유창함을 경험할수록 우리는 자신의 경험이나 판단보다 AI를 더 신뢰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힘겹게 나만의 서사를 만드는 대신, 아무런 사유의 과정 없이 데이터만 툭 집어넣고는 "인사이트를 만들어줘", "문제점을 분석해줘", "경영층이 좋아하는 보고서로 바꿔줘"라고 기계에 요청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몇 시간을 골머리 앓아가며 만든 결과물보다 프롬프트 몇 번으로 뚝딱 만들어진 AI의 매끄러운 결과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일이 많아졌고, 나도 모르게 내 일터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영혼이 텅 비어간다는 느낌이 들었고, 내면에서는 '진짜 내 실력의 밑천이 드러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패턴이 지속되고 AI의 유창함에 중독된다면,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고 AI가 요약하고 지시하는 대로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는 시나리오가 결코 머지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인간 본연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AI를 완전히 거부하고 과거의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것이 맞을까? AI로 무장한 이들이 무서운 속도로 결과물을 찍어내는 사회에서, 나의 유한한 지능과 지력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실로 진퇴양난의 딜레마였다. 저자 역시 이러한 파국을 강력히 경계했지만, 나는 이 경고를 무조건적인 기술 배격으로 수용하기보다 나만의 현실적인 경계선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I를 쓰지 않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불이 무섭다고 다시 어둠 속 동굴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핵심은 기술의 거부가 아니라 ‘관계의 재정의’이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가 주도권을 쥐고 검증할 것인가에 대한 선을 명확히 긋는 일이다.
AI에게 내 생각을 무작정 외주화하기보다는, 한 개인으로서 내 사고의 한계를 확장해 주는 훌륭한 파트너로 부려야 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단순 반복 작업(방대한 자료의 위치 탐색 및 초반 스크리닝)은 AI에게 과감히 맡기되, 그렇게 추려진 핵심 맥락 속에서 “이 논리는 정말 타당한가?”, “이 데이터의 이면에는 어떤 가치가 숨어있는가?”를 집요하게 의심하는 몫은 온전히 내 뇌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AI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반론을 요구하며, 최종적인 결론만큼은 나만의 시선으로 도출해내야 하는 것이다.

결국 AI 시대에 인간으로서 고유한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AI가 만든 화려한 껍데기 속에서 오류와 편향을 잡아내는 비판적 시선, 그리고 “이 일이 왜 필요한가?”라는 근원적인 맥락을 끊임없이 되묻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라는 편리한 내비게이션은 적극적으로 이용하되, 목적지를 결정하고 운전대를 쥐고 흔드는 주체는 언제나 '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실 자아의 성장, 내면의 확장, 생각의 깊이와 같은 가치들은 숫자로 명확히 측정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그렇지만 텍스트와 치열하게 씨름해 본 이들은 자신 내면의 미세한 변화를 분명히 느낄 수 있다.
AI가 요약해 준 지식은 편리하지만 내 영혼을 키우지 못한다. 질문을 던지고 의심하는 주체적인 고뇌가 생략된 자리에 자존감이 자랄 리 없다. AI가 쏟아내는 유창한 단어들에 내 사유의 영토를 순순히 내주지 않으려면, 비록 효율적이지 않더라도 원문을 뜯어보고 행간을 읽어내는 나만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편리함에 취해 내 뇌를 도태시키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핸들을 고쳐 잡고 치열하게 사유의 땀을 흘려야 할 이유를 찾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