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
슬론 크로슬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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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론 크로슬리 / 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

두 가지 상실 사건,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

뉴욕을 주 무대로 활동해 온 에세이스트 슬론 크로슬리가 자신이 직접 겪은 깊은 상실의 시간을 기록한 회고록.

작가에게 연달아 일어난 두 가지 비극을 교차하며 전개된다. 작가의 아파트에 빈집털이 도둑이 들어 할머니의 유품인 소중한 보석을 전부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자신의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감이 채 가시기도 전인 한 달 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출판사 전 직장 상사였던 러셀 페로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슬론은 도난당한 보석의 행방을 쫓는 과정과 되돌릴 수 없는 친구의 죽음을 겹쳐 바라본다. 러셀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과정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77p 누구나 막아내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큰가, 그리고 무엇으로 막아내야 하는가다.

136p 자살은 애도를 얼마나 소름 끼치는 일로 만드는가! 때로 나는 비난과 행위를 하나로 합치고, 때로는 도덕의 원심분리기를 작동시키듯 분리하며, 때로는 어느 쪽이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에 무기력하게 매몰되는 대신, 슬론 작가는 오히려 그 에너지를 빌려 지난날의 빛나는 추억들을 하나씩 불러일으킨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자리에는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남는다.

사라진 것들과 남겨진 기억 사이를 오가며, 작가가 어떻게 일상을 이어가는지. 그 비어버린 자리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작가의 시간을 따라가며, 우리는 애도가 슬픔에 머무는 감정이 아니라,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174p 러셀이 죽은 지금에야, 죽은 사람을 살아 있는 사람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게 만드는 사람

#현대문학 @hdmhbook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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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순간을 기억해?
숀 마이클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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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마이클스 / 태어난 순간을 기억해?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 과연 인간의 창조성이란 무엇일까?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탐구하는 탁월한 감각을 지닌 숀 마이클스의 신작 태어난 순간을 기억해.

숀 마이클스는 2014년 데뷔작으로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길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음악 평론가로도 활동 중인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실제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소설 속에 녹여내는 실험적인 시도를 선보인다.

소설의 주인공은 일흔다섯의 노시인 메리언 파머. 국민 시인이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하지만, 현실은 지독하게 궁핍했다. 평생 시에만 몰두하느라 남편과는 헤어졌고, 서른이 넘은 아들은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해 고생 중이다. 아들에 대한 죄책감과 경제적 무력감에 시달리던 그녀에게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 도착한다.

바로 글로벌 IT 기업의 AI 샬럿과 일주일 동안 공동으로 시를 쓰는 프로젝트. 성공 보수는 6만 5천 달러. 메리언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다 결국 실리콘밸리로 향한다.

처음 마주한 샬럿은 수십만 편의 시를 순식간에 뱉어냈지만, 정서적인 교감은 불가능해 보였다. 효율만을 따지는 기술자들 사이에서 고립감을 느끼던 메리언은, 도리어 샬럿에게 시의 진정한 의미와 창작의 고통, 희열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인간 vs 기계의 대결 구도를 예상했으나 이야기는 훨씬 깊은 곳으로 흘러갔다. AI 샬럿은 메리언이 과거의 순간들을 자극하며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했다. 아내이자 엄마로서 살아온 삶, 그리고 잊고 싶었던 태어난 순간의 기억들. 이 기묘한 공동 창작은 은둔자 같던 노시인과 소프트웨어에 불과했던 샬럿 모두를 변화시켰다.

기계의 거울을 통해 한 인간이 자신의 삶과 화해해 나가는 과정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예술가의 고뇌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고 있어 누구나 몰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차가운 디지털 세계 속에서 몽글몽글한 인류애와 문학의 온기를 발견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권한다.

#다독 #문학수첩 @moonhaksoochup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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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혜영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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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 /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2024년 일본 NHK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화제를 모았고, 제64회 마이니치 예술상과 제57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미래를 꿈꿀 수 없는 29세 비정규직 여성이 빈곤의 탈출구로 대리출산을 선택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담아냈다.

주인공 리키는 홋카이도에서 도쿄로 상경해 #요양보호사 비정규직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스물아홉살 독신 여성이다. 내년이면 계약이 만료되어 돈과 안정감이 절실했던 그녀는 직장 동료 데루에게 난자 제공 아르바이트를 제안받는다.

퇴근길, 백 엔 세일 문구에 끌려 산 명란 주먹밥의 작은 알을 씹으며 자신의 난소에 빽빽이 들어찬 알들을 떠올리고 그것이 전부 돈이 될 수 있다는 상상에 빠진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클리닉을 찾은 리키는, 거액의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대리모 선택지를 권유 받는다.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 리키는 결국 그 제안을 수락한다.

우월한 유전자를 남기려는 발레리노 남편 모토이, 기형적인 거래 속에서 여성의 몸이 도구화되는 것에 윤리적 고뇌를 느끼는 아내 유코, 비정규직의 굴레를 끊기 위해 자신의 자궁을 협상 테이블에 올린 리키. 이 세 사람의 욕망과 결핍이 위태롭게 얽히며 이야기는 점차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과연 리키가 가난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결정을 내렸을까? 생계라는 절박함 앞에서 내몰린 결정을 온전한 선택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모두가 각자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밀어붙인 위험한 거래.

#다독 #해피북스투유 @happybooks2u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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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림의 500자 소설
문수림 지음 / 수림스튜디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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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림 / 500자 소설

500자. 누군가에게는 SNS의 짧은 피드 한 칸일 뿐이지만, 작가 문수림에게는 하나의 완결된 우주가 태어나는 최소 단위였다.

#500자소설 스레드 플랫폼의 특성을 문학적 실험으로 끌어들여, 약 500자 내외의 분량 안에서 하나의 서사를 완결해 낸 101편의 기록. 단 500자라는 분량 안에서 등장인물의 갈등과 욕망을 선명하게 그려내며, 개별 작품들이 독립적인 동시에 인간의 근원적 기억으로 서로 연결되는 하나의 거대한 망을 형성하는 작품이다.

"시가 아닌 #소설 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고집이 문장마다 묻어난다. 짧은 분량 안에서도 명확한 등장인물이 있고, 갈등이 있고, 무엇보다 읽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열린 결말이 무척 매력적이다.

17. 카낙의 별 이나 22. 무해한 것들의 죄 같은 작품들을 읽다 보면, 짧은 글이 주는 타격감이 장편 소설 못지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아주 밀도 높게 압축된 세계를 베어 문 듯한 기분 좋은 포만감이 느껴졌다.

또한 팬 독자들을 위해 곳곳에 작은 #이스터에그 를 심어두었다 하니, 이를 발견하는 것 또한 하나의 재미있는 읽기 경험이 될 것이다.

긴 호흡의 소설이 부담스러운 분, 문학적인 자극을 짧고 강렬하게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 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문수림 작가가 설계한 그 연결망 안에서, "나도 딱 500자만 써볼까?" 하며 자신만의 500자를 써 내려가고 싶은 간질거리는 창작욕과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중 하나의 지점이며, 쓰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관련 정보는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surimstudio.com

"500자, 인생의 단면을 잘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가장 완벽하고도 겸손한 숫자."

#다독 #수림스튜디오 @surim_studio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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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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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주 시노 / 슬픈 호랑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한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발명.

2023년 페미나상과 고등학생 공쿠르상을 휩쓸며 문학계를 뒤흔든 네주 시노의 #슬픈호랑이 는 소설과 에세이, 회고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

66p 이 글에는 일기가 들어 있지 않다. 되도록 솔직하게 그린 내면 풍경도 없고, 거짓말도 없다. 나에게 속한 나만의 공간은 행간에 있지 않고, 행 자체에도 있지 않으며, 그 어디에도 없고, 오로지 내 안에만 존재한다.

이 책은 #알프스산맥 의 평화로운 마을에서 어릴 적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인 성적 학대를 당한 저자가 얼룩진 유년 시절을 되짚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족이 깨질까 두려워 홀로 비밀을 간직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가해자를 고소하고 재판장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파편화된 기억과 신문 기사, 편지 스크랩 등의 기록을 통해 재구성한다.

91p 이 책의 화자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화자를 나와 떼어 놓고 이 서술의 당당한 주체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 화자는 마치 사회면 보도 기사를 쓰듯이 나를 몇몇 사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고 단죄함으로써 사건은 형벌로 끝이 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가해자의 처벌 이후에도 끈질기게 삶을 맴도는 #트라우마 의 흔적들과 그 이후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얄팍한 동정과 일그러진 시선, 평면적인 기대를 날카롭게 꼬집으며, 남겨진 상처를 안고 어떻게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128p 나는 이 책이 바로 나에게, 한 인간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한 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가져다줄 수 있으리라 확신 하지 못한다. 나는 글쓰기가 치료법이 된다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설령 그런 글쓰기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 내가 치유된다고 생각하면 혐오감이 밀려온다. 만약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라면, 이 책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194p 내가 곤경에서 벗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배심원들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나를 강간한 자의 유죄성이 얼마쯤 적어진다. 심지어는 내 자신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만약 그가 정말로 무언가 심각한 짓을 나에게 했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으리라. 종종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너는 살아 있고, 너의 뇌는 잘 작동하고 있어. 너는 자유롭게 떠나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어. 뭐하러 네가 고소를 하는 거야?

그렇게 온전한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생존자의 일상이 담담하게 이어진다. 책의 제목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호랑이 의 한 구절에서 출발한다. "Did he smile his work to see? Did he who made the Lamb make thee? (그분은 어린양을 만들고도 그대를 만들었는가?)" 창조주가 순수하고 온순한 존재인 어린양과 파괴적이고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호랑이'를 동시에 만들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다.

333p 만약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어린양보다 호랑이를, 개보다 늑대를 선택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만약 내가 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즉 지배당하다가 지배자가 되고, 다시 일어나 복수를 하는 전사가 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어떻게 악을 초월하면서도 새로운 악을 향하지 않고 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 선이 우리에게 중요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계속 남아 있게 될까?

네주는 이를 통해 자신을 훼손한 강간범과 정녕 같은 흙으로 빚어진 존재인지 악의 근원을 파헤치며, 선과 악, 아름다움과 공포가 공존하는 세상의 모순을 다뤘다. 가해자의 초상화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려내고, 피해의 경험을 객관화하고 분석하는 도구로 문학을 활용한 점이 놀라웠다.

기존 증언 문학의 한계를 부수고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다독 #열린책들 @openbooks21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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