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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해석
클리퍼드 기어츠 지음, 문옥표 옮김 / 까치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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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사회 : 종교적 공동체들
막스 베버 지음, 최현종 옮김 / 박영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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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 종교사회학 선집
막스 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 / 나남출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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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에밀 뒤르켐 지음, 민혜숙.노치준 옮김 / 한길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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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프레데리크 그로 지음, 배세진 옮김 / 이학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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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주드프랑스와 비교적 최신 자료까지 반영하여 잘 정리한 푸코 입문서. 벤느의 책과 같이 읽을 필요가 있으며, 당연히 이 책을 읽고 푸코의 저술을 직접 읽는 것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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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 그의 사유, 그의 인격
폴 벤느 지음, 이상길 옮김 / 리시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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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를 권력비판의 ‘철학자‘가 아니라 역사를 미시적 차원으로 쪼개어 있는 그대로 탐구하고자 했던 ‘역사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귀한 작업. 푸코에 대한 낡은 지식들, 잘못된 편견을 교정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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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불평등기원론>은 루소가 살고 있던 18세기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인간의 불평등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다. 이때 루소가 서술하는 역사는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흥망성쇠 원인론>처럼 실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이 생겨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사회가 출현하게 된 경위에 대한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을 제시하는 추론적 역사(conjecture history)이다. , 역사적 탐구의 형식을 띠더라도 루소의 논의는 불평등의 진정한 기원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기보다는 불평등의 본성을 해명하는 데 더 집중한 작업이다.

루소는 두 가지 불평등을 구분한다. 첫 번째는 나이, 건강, 체력, 정신 혹은 마음의 능력으로 인해 생기는 자연적 불평등이다(41). 루소는 자연이 만든 불평등은 문제 삼지 않는다. 진정한 문제는 사회적(moral)” 혹은 정치적 불평등이다(42). 이 두 번째 불평등은 자연적 원인이 아닌 합의...동의...허용”(루소는 강도가 높은 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같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생겨났다. 합의, 동의, 허용을 만드는 것이 특권이고, 이 특권은 다시 부, 존경, 권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별 차이도 없었고, 불평등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형성되고 문명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이 생겨났다. 그래서 루소는 이 책에서 자신의 작업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세상만사가 변화해나가면서 폭력이 권력으로 이어져 자연이 법을 따르게 된 순간이 언제인지 지적하고, 수많은 경이로운 이들이 어떻게 물고 물렸기에 강자가 약자에게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인민은 실질적인 행복을 버리고 상상 속의 안녕을 얻기로 결심할 수 있게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이다.”(42-43)

이를 설명하기 위해 루소는 제1부에서 불평등이 시작되기 이전, 자연상태에 놓인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을 묘사하고, 2부에서는 인간이 본래의 조건을 상실하고 사회를 이루게 되면서 시작된 타락의 역사를 서술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루소가 말하는 이 역사란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현재의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적으로 설정된 사고실험의 장이다. 마찬가지로 제1부에서 묘사되는 야만인의 형상 역시 현존하는 인간의 상황을 대조하기 위해 창조된 개념적 가상이다. 루소의 야만인은 인위적이라 느껴질 만큼 현대인과 철저히 대조된다. 그는 어떤 기후나 계절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육체를 지녔으며, 병에 걸리는 일도 없다. 그는 본질적으로 홀로 살아가며 무리를 이루거나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교육을 받지도, 남을 가르치지도 않으며, 정교한 예술이나 사상을 발전시키는 일에도 무관심했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선했다. 타인과의 교류가 거의 없으므로 그의 언어는 지극히 기초적인 수준에 머문다. 성생활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단순한 본능의 충족에 그치며, 따라서 가족이나 결혼이라는 제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루소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자유롭고 고립된 개인으로 그린다. 17세기 이후 전개된 자연법학과 도덕철학의 전통 속에서 본다면, 루소는 인간의 자연적 사회성을 부정한 토머스 홉스의 계보에 위치한다. 실제로 루소는 제1부에서 자연법에 관해 현대인들이 내린 모든 정의에는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지적한 점에서 홉스를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81). 루소는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사회를 형성할 능력이 없다는 홉스의 전제에는 동의했으나, 자연상태의 인간이 끊임없는 전쟁상태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리바이어던이라는 절대적 주권체에게 복종하는 계약을 체결한다는 홉스의 결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홉스는 인간이 오로지 욕구에 기반하여 움직인다고 생각했기에 인간의 욕구를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을 상정했지만, 루소는 이러한 홉스의 사상을 반박하고자 인간에게는 연민이라는 자연적 감정이 있다고 주장했다. “자연상태에서 연민은 법이자, 풍속이자, 미덕의 역할을 한다.”(87) 연민은 푸펜도르프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사회성을 대체하면서도 홉스의 자연상태론의 결론도 피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연민은 일시적으로 작용할 뿐, 인간이 사회를 이루게 할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지는 않았다.

1부에서 야만인에 대한 논의를 통해 루소는 불평등의 원인을 다음과 같다고 결론짓는다. “사실 인간들을 구분해주는 차이들 가운데, 그것이 고작해야 습관의 결과이고 사회에서 받아들인 다양한 종류의 생활방식에 기인한 것일 뿐인데, 그 여러 차이가 자연적인 것이라고 간주되고 있다는 점을 알기란 쉬운 일이다.”(94)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자연적이라고 간주하는 불평등은 사실 사회적 관습과 생활방식의 산물이다.

이제 루소는 2부에서는 자연상태를 벗어난 인간이 맞이하게 된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과 전개를 살펴본다. 지성사가 이슈트반 혼트에 따르면 초기 계몽 논자들의 사치 논쟁에서 사치는 불평등과 소유권의 부산물로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불평등기원론>은 이러한 사치 논쟁의 맥락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면서 자연적 불평등이 사회적 불평등으로 전환되는 핵심 고리로 소유권을 지적했다는 사실에서 루소가 - 주석을 제외하고 본문에서는 사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 사치 논쟁을 자신의 논의에 흡수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루소는 사치가 자신의 안락과 타인들의 존경을 탐욕스럽게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연적이지만, 국가를 망치는 가장 최악의 것으로 규탄한다(180, 저자주 9). <인간불평등기원론>은 직접적으로 사치의 기원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사치를 본문에서 거론하지 않았지만, 루소는 프랑수아 페늘롱으로부터 이어진 반 사치 전통에 속한다.




불평등의 시작은 법과 소유권의 마련이요, 두 번째는 행정관의 직의 설립이요, 세 번째는 합법적인 권력의 자의적인 권력으로의 변화이다(143). 소유권이 정부 형성 이전에 먼저 생겨나(이는 로크도 지적한 부분)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기제로 자리 잡은 이 역사는, 루소가 재구성하는 정부의 추론적 역사와 평행한다. 루소에 따르면, 자연상태의 야만인은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타인과 협력하게 되었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103-6). 인간들이 모여 살고 관계가 확장되면서 가족이 공동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남녀의 신체적 차이는 가정 내 서로 다른 성역할로 고정되었다여러 가족이 이웃하여 결속하면서 개별 국가가 세워졌다.

사람들 사이에 사회가 시작되고 관계가 세워지면서 사람들이 애초에 가진 체질과는 다른 특질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도덕이 인간의 행동에 들어서기 시작했다.”(114) 한 공간에 모여 살게 된 인간은 , 귀족 신분이나 지위, 권력, 개인적 자질”(146) 등을 기준으로 서로를 비교하기 시작했고, 이중 무엇 하나라도 우월하면 마땅히 존중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더 우월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이상한 도덕이 시작되었다. 자신의 우월함을 대중적으로 확인받고자 하는 명예욕과 동시에 인간은 더 많은 부를 차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공세적으로 토지를 경작하기 시작했다. 로크의 소유권론은 노동과 점유를 구분하지 않는 데 반해, 루소는 소유권의 기원에서 최초의 노동을 통한 소유와 점유를 구분한다. 노동을 통해 토지의 산물에 대해 권리를 갖게 되고, 오랜 시간 관습적으로 그 땅을 점유하면 소유권이 성립된다고 본다. 이러한 소유권은 자연법과는 다른 법원(法源), 즉 관습을 통해서 형성된 권리이다(119).

루소에 따르면 소유는 사회적 관습을 통해 권리로 고착화되었다. “야금술과 농업”(115)과 같은 기술의 진보는 신체적으로 강건한 자와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울어졌고, 자연적 불평등이 소유의 차이를 만들어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행하게 되었다(<에밀>이나 <신엘로이즈>에서 루소는 농업을 예찬하는 듯하지만, 농업에 대한 루소의 태도가 간단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과 사회는 소유와 불평등의 법을 영원히 고정해버렸고...그것을 확정된 권리로 만들었다(127). 이제 부자가 빈자를 예속하고 지배하게 되었으며, 가난한 인민은 자신들의 예속이 당연한 상황이라고 기만당한다. 정부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생겨났다. 불평등 위에서 생겨난 정부에서, 처음에는 선출직인 행정관은 세습화되며, 여기서 강자에 의한 약자 지배가 허용되었다.

최초의 사회적 불평등에서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발생하고, 이후에 강자와 약자의 상태가 발생했다면, 정치상의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흐르게 된 결과가 군주제이다. 전제정에서는 단 한 명의 지배자와 신민 사이에 주인-노예 상태가 성립된다. 주인의 의지에 대한 복종 외에는 그 어떤 법률이나 정념도 사라져버린 이러한 사회는 두 번째 자연상태로, 그 최종 귀결은 혁명에 의한 정부의 완전한 해체(루소는 분명하게 이를 지지하지 않았다)이거나 합법적 제도의 등장(이것이 <사회계약론>의 주제일 것이다)이다. 군주제에 대한 루소의 설명은, 군주제 사회에서는 불평등과 사치가 필요악으로서 있어야 한다는 몽테스키외의 주장과 대조된다. 루소가 보기에 사치와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군주정은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자연 상태로의 회귀가 불평등에 대한 최종 해결책일까? 그렇지 않다. 애시당초 루소 자신이 그러한 해법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정념으로 인해 최초의 단순성을 영원히 잃었던 나와 같은 사람들은 이제 더는 풀과 도토리를 주식으로 살아갈 수 없고, 법 없이 수장들 없이 살아갈 수 없다.”(184, 저자주 9) 역설적이게도 1부에서 길게 전개되었던 자연상태의 야만인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이상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근대인이 현재 어떠한 조건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루소는 근대의 상업사회라는 현실을 비관적이지만 진지하게 응시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다. 루소는 특권적 지위를 독점하는 소수(혹은 일인)에 의해 사회가 운영되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에, 사회 운영 원리를 전혀 다르게 만들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합법적 제도의 등장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계약론>이 불평등이 아닌 다른 원리(공공의 이익)로 운영되는 사회를 구상하는 텍스트라면, <에밀>은 사회상태에서도 부패하지 않는 인간형을 구상하는 책이다.





























cf. 루소의 사상을 비교할 수 있는 텍스트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인간이 사회에 들어가면 타인의 의견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가 된다는 루소의 비판에 대한 응답이다. 혼트의 <상업사회의 정치사상>이 루소와 스미스의 입장을 쟁점별로 상세하게 해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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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태생의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르는 예일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저지대 국가들의 산업 성장과 스태그네이션, 1800-1850'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으며, 이후에도 경제사가로서 산업혁명, 유용한 지식(useful knowledge)이 유럽의 경제 성장에 미친 영향을 등을 연구해왔다. <성장의 문화>는 그러한 모키르의 문제의식과 관심사를 보여주는 제목이다.

에코리브르는 이 책을 유럽과 중국의 경제적 격차를 주로 설명하는 책인 것처럼 홍보한다. 실제로 이 책의 제 5부 '동서양의 문화 변화'는 중국과 유럽의 서로 다른 문화적 기반이 경제적 차이로 이어졌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이 내용은 전체 17개의 장에서 단 두 개의 장만을 차지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모키르는 <성장의 문화> '감사의 글'에서 저작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현대 경제학은 역사와 세상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지난 50여 년 동안 경제학의 경계선 밖에 있던 문화와 제도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이 책에서 나는 콜럼버스의 항해부터 뉴턴의 <프린키피아> 출간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문화와 제도를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이런 변화가 근대적 경제 성장의 조건을 어떻게, 그리고 왜 조성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p. 9)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모키르의 관심사는 중국과 유럽의 대분기라기보다는, 문화와 경제의 관계라는 훨씬 더 크고 복잡한 주제를 다루려 하고 있다.

모키르는 문화를 "유전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전달되며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 공유하면서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신념, 가치, 선호의 집합체"로 정의한다. 이때 신념은 우리가 사는 환경을 포함하여 사회적 관계나 세계에 대한 실증적 명제를 가리키는데, 신념에는 성문화된 지식과 암묵적 지식, 대인관계와 능력도 포함된다. 가치는 사회와 사회적 관계에 대한 규범적 명제이며, 선호는 개인적 사정에 대한 규범적 명제이다. 문화는 제도의 토대를 놓는다. 특정 집단의 제도는, 그 집단에서 용인되는 문화 위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모키르는 경제 제도를 묻는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그 경제 제도를 가능케 하는 문화적 요소를 묻고 있는 것이다(실제로 "The Institutional Origins of the Industrial Revolution"라는 에세이에서도 모키르는 18세기 기술 발전을 촉진한 문화를 중요하게 거론하고 있다) <성장의 문화>는 이처럼 경제와 문화를 핵심 축으로 삼아 경제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링크: https://share.google/aBFg7tfdvSUwAIYR2

책은 총 다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1부는 유럽에서의 경제발전을 설명하기 위한 문화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후의 논의는 1부의 이론을 바탕으로 전개되므로 이 책을 읽는다면 1부만 읽어도 무방하다. 2부와 3부는 17세기 유럽에서 정초된 '성장의 문화'를 다루고 있다. 2부는 프랜시스 베이컨과 아이작 뉴턴 등 소수의 창조적 개인에 의해 혁신적 생각들이 파생되어 현장으로 전파되었다고 주장하며, 3부는 포커스를 넓혀 문예공화국(국역본에는 편지공화국이라고 번역되었지만, republic of letters에서 letters는 편지가 아니라 문예나 문필 정도의 의미이다)으로 대변되는 유럽의 자유로운 경쟁과 다원주의적 문화 속에서 '유용한 지식'이 차근차근 다듬어지는 양상을 서술한다. 4부는 "장인의 독창성"과 "과학적 방법 및 발견"을 통합한 계몽주의가 경제성장과 기술발전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산업계몽주의'는 진보에 대한 신념, 실용기술의 발전을 중시하는 문화, 그리고 실용기술과 같은 유용한 지식이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관념을 고조함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생산기술을 향상시키는 문화를 만들어놓았으며, 이것이 산업혁명의 문화적 토대를 정초했다. 사실상 결론에 가까운 4부가 지난 뒤에야 모키르는 5부에서 중국의 사례를 꺼내어 유럽의 경우와 비교한다.

당연히 모키르의 책은 훨씬 더 많은 논점들로 가득 차 있으며, 저자는 다양한 요소를 함께 고려함으로써 자신의 논의가 단순화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모키르가 성취한 업적이 있다면, 경제학의 용어로 슘페터적 성장, 즉 기술발전에 따른 경제성장을 역사적 지평으로 끌어와 문명 발달을 설명하는 기제로 보편화했다는 것이다. 이는 아제몰루나 포메란츠의 모델과 구분되는, 정신문화와 문명/경제 사이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려는 야심찬 시도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역사학의 관점, 특히 근대 초기 서양 지성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 책은 여러모로 미묘한 인상을 준다. 우선 이론적 차원에서, 제2부에서 제시된 ― 소수의 창의적 학자와 기술자로 구성된 엘리트 집단으로부터 지식이 다수에게 전파된다는 ―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모키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부분의 문화적 사업가는 개인적으로 문화의 선택지에 미미한 변화만을 초래하지만, 그중 일부는 문화의 선택지에 눈에 띄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그들은 사회의 신념, 가치, 그리고 선호를 바꾸어놓았다.”(102) 모키르가 말하는 ‘문화적 사업가’란 서로 다른 신념을 조정하고 지배적인 기성문화에 도전하며, 결국 다수에게 새로운 문화적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문화를 변화시키는 인물들이다. 그는 이러한 문화적 사업가들의 활동을 통해 혁신이 전파된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문화가 일대다(一對多)의 방향으로 전달된다는, 곧 소수 엘리트로부터 다수에게로의 전파라는 전제에 의존한다. 이는 모키르가 아무리 논증하려 해도 입증하기 어려운 일종의 신념에 가깝다. 만약 문화와 신념의 변화를 소수의 천재적 인물들이 미친 영향의 확산으로 이해한다면, 수용자들 — 곧 그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다수 — 는 어떠한 이유로, 어떤 사회적·지적 맥락 속에서 엘리트의 대안을 수용하게 되었는가? 또한 엘리트들이 문화적 대안을 제시할 때, 그들의 의도는 기존 권위에 맞서는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애초에 권위에 대한 저항이나 설득 자체에 관심이 있기는 했는가? 모키르의 서술만 놓고 보면, 마치 몇몇 영웅적 인물들이 창조적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는 역사적 현실을 지나치게 평면화하고, 결과적으로 목적론적 해석으로 기울 위험이 크다. (그런 점에서 모키르가 문화적 사업가의 예시로 드는 아이작 뉴턴은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후대 엘리트 문화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p. 152)

모키르가 제시하는 역사적 설명도 재고할 여지가 많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보겠다.

  1. "베이컨과 그의 추종자들은 오늘날 산업계몽주의라고 알려진 현상의 씨앗을 뿌렸으며"(128) 이는 다소 비약이 있는 과장된 진술이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를 살다간 베이컨과 18세기의 계몽주의 사이에는 너무나 긴 시간적 장벽이 있고, 사상적으로도 과학에 대한 계몽주의의 태도는 베이컨으로만 소급될 수 없는 여러 요소들이 존재한다.

  2. "보수적인 반동 세력은 반종교 개혁 시기에 다시 힘을 모았고, 예수회는 남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새로운 과학 혁신의 확산과 계몽주의의 발생을 늦췄다. 영국의 토마스 홉스와 프랑스의 보쉬에 같은 영향력 있는 보수적 사상가들은 필사적으로 지적 혁신과 싸웠다."(236) 홉스와 보쉬에를 보수적 사상가로 낙인찍는 근거는 제시되지 않고 그저 선언되고 있다. 나는 이렇게 반동/진보를 선험적으로 정의하여 과거의 논쟁 구도를 구획하는 것보다 실제 논적으로 삼았던 대상, 그 이유, 실제로 오갔던 논쟁이 무엇이었는지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시사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3. "진보 관념은 계몽주의 유럽의 특징이었으며, 유럽이라는 혁신 창출 기계에 문화적 윤활유가 되었다. 하지만 진보는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냐 한다는 믿음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럴 거라고는 보장하지 못한다...이미 확립된 기존의 지식 체계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지대를 추구했던 사람들은 새로운 과학을 강력하게 반대했다."(344-346) 얼마 전 내가 번역해서 올린 드미트리 레비틴의 서평만 읽어도, 모키르가 얼마나 낡은 도식을 반복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모키르의 책은 중요한 물음을 담고 있다. 모키르는 경제성장에서 문화의 차이 대신 지리적 요인을 중시하는 케네스 포메란츠와 캘리포니아학파류의 설명을 배척하고, 문화와 경제 사이의 관계라는 큰 주제에 대해 야심찬 대답을 시도하려 한다. 문화를 사회에서 공유하는 신념, 가치, 선호의 총체로 보는 모키르의 정의도 수용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재료들을 통해 모키르가 내놓은 답변이 과연 그 질문의 무게를 얼마만큼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더 읽어볼 책

로버트 앨런 <세계경제사>

케네스 포메란츠, <대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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