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말해 만주 국가 초창기에 몽골족은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들은 군사동맹, 말 그리고 칭기즈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당화의 전통을 제공했다. 원의 옥새와 함께 수많은 민족을 망라하는 세계 제국이라는 개념, 즉 만주족 조상들인 여진의 금이나 명을 광범위하게 초월하는이상적인 통치권 개념이 함께 들어왔다. 혈연을 통한 개인적 연계와 문자를 통한 문학적(글을 통한) 관계는 두 민족을 결속했다. 누르하치는 다른 때는 서로의 차이를 부각시킬지라도, 동맹 관계를 촉진할 때는 종종만주와 몽골의 공통된 유산을 상기시킨다. 모든 몽골족이 신생 만주족국가의 우위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단지 전쟁에서의 결정적 승리가 그들을 항복하도록 설득했다. 만주 국가의 통치자들은 처음부터 서북에있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동맹들의 충성을 보장받기 위해 전쟁, 외교, 경제적 유인을 서로 결합한 전략을 만들어낼 줄 알았다. - P176

두 제국(청과 러시아)의 통치자 누구도 주권국가 사이의 평등한 협상을 믿지 않았다. 쌍방은 모두 조공, 충성, 복종 등 (상대방이 아래에 있다는) 위계적 가정 아래 행동했다. 이런 모순적인 생각 아래에서 어떻게 조약(네르친스크조약)을 협상할 수 있었던 것일까? 협상이 성공한 것은 오로지 나머지 두 당사자가 결정적인 중재자로 개입했기 때문이다. 준가르 몽골국이라는 숨겨진 존재 때문에 두 제국은 전통적 외교 의례를 조정했다. - P221

황제는 의도적으로 유능한 젊은이들을 목표로 삼았는데, 준가르라는 하나의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서였다. 체부뎅자부가 한 무리의 호이트 몽골인을 사로잡아 충성스러운 할하 몽골에 포상으로 주려 했을 때, 황제는 "강한 장정들은 선별해서 죽이고" 단지 여자들만 종복으로 주라고 지시했다. 심지어 지도자들이 패배한 후 항복한 일부 준가르 젊은이들도 살려둘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들이 ‘한때 족장이었기’ 때문이다. - P357

황제는 "식량이 떨어졌으므로 그들을 없애기는 쉬울 것"이라고 하여, 암묵적으로 고사 작전을 지시했다.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은 남겨 다른 몽골 부족들과 만주족 기인들에게 노예로 주었지만, 그들 부족의 정체성도 잃게 되었다. - P357

목표는 단순한 반란 진압이 아니라 준가르의 저항을 "뿌리째 자르는 것"이었다. 시베리아의 러시아 지사들은 만주족 군대가 장정, 여자, 어린이 할 것 없이 학살해 아무도 남겨두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 P357

학살 정책은 청이 몽골족과의 관계를 관리하던 과거의 방식과 명백히 결별한 것이었다. 이때까지 청의 통치자들은 주로 유목민 분파들을 선별적으로 지지하는, 유구한 전통을 지닌 ‘이이제이’의 외교술을 쓰거나 반란의 주모자만 처형했다. 그들은 이전에 한 번도 종족 학살을 기도하지 않았다. 이 정책으로 청은 중국의 서북 변경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는데, 이는 한 세기가량 지속되었다. 준가르 국가와 민족은 함께 사라졌고, 준가르 초원은 거의 완전한 인구 희박 지역으로 바뀌었다. - P357

최후의 학살에서 건륭제는 이빨을 드러냈다. 그는 스스로를 다양한 민족을 조화로운 영역에서 포괄하고자 하는, 모두에게 공평한 군주라고 칭했다. 그러나 황제의 포용에 저항하는 자들은 멸망을 맞았다. 이 시기부터 황제의 조서들에는 청 중기의 관대함이라는 이상과 압제라는 현실 사이의 긴장이 드러난다. - P360

투르키스탄 원정은 한 세기에 걸친 준가르 원정을 압축한 닮은꼴이다. 호자들은 그렇게 먼 거리를 발판으로 청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받는 통일 독립국가를 세우려 했지만, 오아시스 공동체들이 서로 분열한 데다 청의 병참 장교들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보급상의 성취를 거둔 결과 파멸하고 말았다. - P367

토구트의 귀환은, 러시아인들이 말했듯이, 모든 것을 포섭하는 청의 포용 아래에서 ‘민족들 끌어모으기’의 최종판이었다. 그것은 정주 제국과 초원의 천년 투쟁의 두 번째 종결이었다. 한 민족은 말살되었고, 다른 한 민족은 소생하여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말살 후에 재생이 왔고, 이는 제국의 기획으로서 만족스러운 결말이었다.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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