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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세계명저 30선
시마조노 스스무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무신론자다. 그리고 특정 신앙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교 관련 책을 꽤 보는 편이다. 사실, 종교를 모르고서 사회, 문화, 역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종교를 계속 알아보게 된다.
종교 쪽도 알고 보면 흥미로운 책들이 꽤 있다. 혹시나 다른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기초적인 입문서부터 소개하고 싶다. 김나미의 <청소년을 위한 세계종교여행>, 아르눌프 지텔만의 <교양으로 읽는 세계의 종교>, 오강남의 <세계종교 둘러보기>다. 이 외에도 소개하고 싶은 재미난 책이 많지만, 여기서는 개론서만.
<종교학 세계명저 30선>은 더욱 깊어지는 관심과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기에 좋았다. 이 책은 종교학 책만이 아니라 철학, 역사학, 심리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의 명저를 소개한다. 이 책은 반드시 종교를 초점에 두지 않은 책이더라도 종교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다룬다.
즉 이 책은 종교학의 명저 하면 떠오를 법한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 엘리아데의 <종교사개론> 등만이 아니라, 흄의 <종교의 자연사>나 칸트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도 철학 분야에서 종교 쪽의 명저를 찾는다면 충분히 넣을 수 있기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사회학, 문화인류학 쪽에서는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뒤르켐의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심리학 쪽에서는 프로이트의 <토템과 터부>, 에릭슨의 <유아기와 사회>를 다룬다.
그 외에도 문화사의 명저 호위징아의 <호모 루덴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도 다룬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흐친의 <도스토옙스키 시학의 제문제>도 다룬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은 새로운 종교 이해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처음 목차만 봤을 때는 의아한 책도 있었지만, 읽고 나면 저자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고전들을 통해 종교에 대한 다각적인 이해를 시도하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견해들이 다투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나다.
이를테면, 칸트는 종교를 이성 위에 정립하려 하였다. 이른바 계몽주의 프로젝트가 만드는 이성 종교다. 그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 진영의 슐라이어마허가 나온다. 그는 종교 세계의 직관과 감정, 개인적 체험을 살려낸다. 슐라이어마허의 사상은 20세기에도 이어져 오토의 『성스러움의 의미』까지 큰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인 감정을 정당화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누구든 내 감정이 옳다고 우길 수 있지 않은가.
심리학 분야의 고전인 에릭슨의 <유아기와 사회>도 종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에릭슨은 인간에게 정체성 위기의 순간이 여러 차례 있다고 주장한다. 유아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신뢰/불신의 태도가 결정되는데, 이 단계의 경험이 종교의 신앙에 영향을 준다. 즉 신을 경외하고 따르는 것은 어머니와의 일체감과 신뢰를 반영한 것이다. 반면 신의 화를 진정시키기 위해 죄를 보상하려고 하는 태도는 유아기 시절 어머니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된다.
이들 외에도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저자는 호위징하의 <호모 루덴스>를 소개하며 놀이에서 성스러움의 관념이 생겨나는 것에 주목하기도 한다. 다채로운 내용들을 여기서 다 소개할 수는 없겠다.
이 책은 짧게나마 고수들의 사상을 보는 재미와 신선한 지적 자극으로 흥미로운 책이다.
덧붙여, 기존의 다른 책에 비해 이 책이 일본 사상가들을 꽤 소개한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내게는 이 책이 아니라면 볼 수 없던 일본 종교 사상가들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특히 도미나가 나카모토의 <늙은이의 글>이 관심을 끌었다. 유교, 불교, 신교의 치우침에 대한 지적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