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옥의 핸드드립 커피
권대옥 지음 / 이오디자인(eodesign)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매일 빠지지 않고 마시다 보니, 종류별로 다 마셔보게 된다. 확실히 산지별로 맛과 향의 차이가 난다. 어떤 커피는 다른 커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향이 인상적이기도 하다.

핸드드립을 하다보면, 같은 커피도 맛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통해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선 볶은지 얼마나 지났느냐에 따라 다르다. 갓 볶은 커피는 향은 좋으나 맛의 깊이가 없고, 숙성된 커피는 맛과 향의 복합적인 매력이 있어 최고의 숙성 포인트를 찾는 것이 노하우다. 오래 지나서 산패된 커피는 향의 손실이 크고 맛은 진해지지만 매력이 없는 커피가 된다. 보통 숙성되는데 6일 정도가 걸린다. 볶은지 6일 지나면 최고의 맛과 향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볶음도에 따라 숙성의 정도가 다르다. 약볶음의 경우 완만하게 숙성되고 완만하게 산패된다. 그러니까 맛과 향이 오래간다. 반면 강볶음의 경우 급속히 숙성되었다가 급속히 산패된다.

추출할 때는 잡미, 거품, 미분을 제거하고 액기스만 추출하는 테크닉을 연마하면 깔끔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뜸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뜸은 본추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인데, 한방울씩 똑똑 떨어져야 최적의 뜸이다. 과다하게 뜸을 들이면 본추출은 과소 추출이 되고, 부족하게 뜸을 들이면 본추출은 과다 추출이 된다. 적절한 뜸이 완벽한 추출을 위해 필요하다. 책을 통해 뜸부터 제대로된 노하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껏 항상 같은 방식으로 핸드드립을 했는데, 이 책을 보니 최고의 맛과 향을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핸드드립시 뜸과 추출 시간의 차이는 볶음도와 숙성 정도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산화탄소 함량과 수분 차이 때문에 일정하게 정할 수는 없다. 추출 시간을 늘리고 줄이고 하는 방법은 볶음도와 물줄기의 굵기, 입자의 분쇄도를 명확히 이해하여 좋은 성문을 뽑아내는 시점을 찾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노하우가 담겨 있다.

그런데 하나의 커피도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맛과 향에서 미묘한 차이가 난다. 강볶음일 경우 약볶음을 경우가 다르다. 약볶음을 최적의 포인트로 두는 이유는 커피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향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중볶음을 최적의 포인트로 두는 이유는 복합적인 향은 조금 줄지만 다소 무거워진 맛과 향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다. 강볶음을 최적의 포인트로 두는 이유는 약볶음이나 중볶음에서 찾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향, 깊이 있는 맛, 점성이 느껴지는 촉감 때문이다.

약볶음으로 하여 복합적인 맛과 향을 표현하는 것이 추세이기는 하나, 특정한 커피를 강볶음으로 표현햐여 흔하게 맛볼 수 없는 강한 맛과 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새로운 재미가 될 수 있다.

커피는 산지별로 맛과 향이 차이가 난다. 그러나 하나의 커피도 다른 맛과 향으로 마실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 이 책은 커피의 맛과 향을 제대로 맛보게 도움을 주는 책이다. 핸드드립 커피를 공부하고자 하는 초보자에게 맞춤한 책이 아닐까 한다. 핵심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계 맺기의 심리학 -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박대령 지음 / 소울메이트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관계 맺기의 심리학>은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철학과 관점으로 쓰인 책이다. 이 책은 심리적인 고통의 대부분이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 책은 다양한 관계를 돌아본다. 1부는 자신과 관계 맺기, 2부는 타인과 관계 맺기, 3부는 환경과의 관계를 다룬다. 그리고 4부에서는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소개한다.

자신과 관계 맺기부터 보자. 이는 가장 중요한 것이고 모든 관계의 시작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억압된 욕구, 해결되지 않은 분노, 해소되지 않은 슬픔, 충족되지 않은 애정 등이 있다. 이것을 똑바로 보고 해결하는 사람과 외면하고 방치하는 사람이 구별될 뿐이다.

해결하지 않고 외면하는 사람들은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아버지에 대한 해소되지 않은 적개심이 타인에게 투사되어 대인관계가 어려워질 수 있고, 어머니로부터 충족하지 못한 애정욕구를 억압해온 사람은 타인의 애정욕구에 차갑게 반응할 수 있다.

또 감정접촉을 추구하는 극단적 형태로 몸을 자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감정 접촉이 절실하기에 벌이는 일이다. 흔히 성격이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내면의 상처를 방치했기 때문이다.

상처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으면 인간은 유사한 자극에 몹시 예민하게 반응한다. 반면 상처가 아물면 더이상 상처를 방어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몸에는 긴장이 풀리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이 여유만큼 상대의 말과 행동을 적절한 수준에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더 상황을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적절하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면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신체감각, 생각, 감정, 욕구, 행동패턴, 내면의 미해결 과제들을 잘 알 필요가 있다. 이것들을 잘 알아차리며 사는 사람은 선명하고 생생한 삶을 살 수 있다.

자신을 잘 알려면, '차단행동'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차단행동은 마치 피가 잘 흐르고 있는 팔을 손으로 꽉 쥐어 피가 통하지 않게 하는 것과 같이 몸을 긴장시켜 숨을 쉬기 어렵게 하고 피를 잘 돌지 못하게 한다.

차단행동은 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마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게슈탈트 심리학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영역으로 본다. 명상을 하듯 천천히 몸과 마음을 살펴보는 훈련을 하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다. 차단행동을 알아차리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자신과 관계가 좋은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고 힘든 일을 겪어도 잘 대처해나간다. 삶이 힘들다면 자신을 들여다볼 용기를 갖기를. 그러면 이전에 느낄 수 없던 감각이 깨어나며 커다란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상처가 아물고 긴장이 풀리면 이완 상태를 즐길 수 있다. 그 상태에서는 여유가 생기고 감각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시야가 넓어지고 소리나 냄새도 더 잘 알아차리게 된다.

타인과 제대로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다. 타인이 제시하는 기준이나 요구에 의해 살아가지 않고 내 감정과 욕구에 따라 내자신으로 있을 때 다른 사람들과 더 잘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병이라고 이름붙이는 것을 경계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병이라는 이름을 붙여 낙인을 찍고 수치심을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오늘날 새로운 병이 계속 규정되는 것은 의학의 상품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병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본질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어떤 학생에게 ADHD장애라는 이름을 붙이면 의사의 치료 대상이 된다. 그렇지만 그 학생의 장애를 가져온 것은 선생님, 친구, 부모다.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쏙 빼고 학생과 의사의 문제로만 만든다. 이는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도 큰 잘못이다. 이런 저자의 견해에 크게 공감한다.

이 책의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세상과 관계 맺기까지 나간다는 점이다. 보통 심리학 책들은 자신과 주변의 타인까지 나가는 정도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을 넘는다. 여느 심리학 책과 다르게, 역사, 사회, 대안문화까지 논의가 펼쳐진다. 저자는 내가 살고 있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스스로 안전한 공간과 대안적인 문화를 만들어나가라고 주문한다. 이 점에서 저자의 노력이 더욱 기대된다.

오랜만에 자신을 돌아보는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해 준 책이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열어줄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신 자유주의 시대, 복지정책의 딜레마
아스비에른 발 지음, 남인복 옮김 / 부글북스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한국 사회에 복지국가 담론이 한창이다. 이 책은 우리 사회 복지국가 논의에 수준을 높여 줄 책이다. 이 책이 주로 논의하는 복지국가는 가장 수준 높은 단계에 이른 북유럽 복지국가다. 북유럽 복지국가는 공정할 뿐만 아니라 생산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단적인 예를 들면, 덴마크는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데, 단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가장 높다.

복지국가에 대해 논의하려면 우선 복지국가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부터 점검해야 할 테다. 이 책은 복지국가에 대한 정의부터 깔끔하다. 복지국가는 복지 재정이나 몇 가지 정책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지국가는 강화된 민주주의와 활발한 노동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투쟁의 결과물이다. 자본과의 격렬한 투쟁을 통해 마침내 얻어낸 성과물이다. 자본은 노동을 파괴할 수 없고, 노동은 자본의 고지를 넘어설 수 없는 교착 상태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합의다. 즉 노동과 자본 사이의 권력 균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핵심은 권력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있는 것이다. 자본 우위에서 자본과 노동의 합의로 권력 관계의 변화가 복지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다. 그래서 자본의 힘에 대한 규제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균형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계급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소련 사회주의 사회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본의 욕망은 통제되었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불황 없는 자본주의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북유럽 복지국가가 성장하던 시절과 상황이 다르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복지국가도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본의 힘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지난 2, 30년간 복지국가는 강력한 경제적,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왔다. 그 결과 권력 균형은 깨지고, 자본은 날뛰었다. 이내 많은 복지 정책이 후퇴했으며, 일부 보편적 복지가 선별적 복지로 후퇴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노동시장과 사회에 참여할 기회를 배제당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었다. 노동은 자본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동시에 민주주의도 훼손되었다. (북유럽 복지국가의 복지 수준이 후퇴했다고 해도, 우리나라 상황과 비교해 보면 완전 천국처럼 보인다.)

자본의 힘도 영원할 수는 없다. 자본이 그토록 활개를 치고 다니다가 급기야 파국을 몰고왔다. 맑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는 그 속성상 공황이 주기적으로 올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 예측이 다시 한번 맞았다. 고삐 풀린 자본이 활개 치고 다니다가 2008년 급기야 공황을 몰고왔다. 거품이 급속히 꺼졌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파국을 몰고왔음에도 여전히 사회는 변하지 않고 있다. 문제를 만든 투기 자본에 대한 견제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자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자본의 힘을 규제하고 복지국가를 회복하기 위해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방향을 제시한다.

한편 이 책은 유럽연합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움직였다고 본다. 유럽연합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봐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다. 살펴보았듯이, 복지국가를 세우려면 그 사회의 권력 관계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능할까? 강화된 민주주의와 활발한 노동운동이 뒷받침이 되어 있는가? 이 책은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피터 드러커가 직장 생활을 한다면? - 경영학의 아버지에게 직장인의 기본기를 배우다
모리오카 겐지 지음, 한혜정 옮김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피터 드러커의 경영 혁신의 알짜를 단숨에 접할 수 있는 책이다. 요약 정리가 무척 깔끔해서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전에 피터 드러커의 책을 직접 읽은 적이 있었지만, 잘 와닿지 않았다. 이 책을 보고 나니 이 책을 입문서 삼아 먼저 읽고 나서 드러커의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인 그림이 그려지니까 와닿는 것이 확실히 달랐다. 이전에 읽은 피터 드러커의 책이 맥락지어지면서 새롭게 다가왔다.

 

사실 피터 드러커의 경영 사상은 한국에서 굉장히 혁신적이고 진보적일 수 있는 사상이다. 한국처럼 완전 저질 천민자본주의 기업문화를 상식적이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업의 목적이 고객 창조라고 말한다. 고객 창조에는 고객이 제품을 통해 새로운 자아상이나 새로운 인생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쉽게 말해, 사업의 목적은 단순히 이윤 추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각기 전문 분야를 가진 상하관계가 없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기업에는 사회적 책임이 수반된다는 것, 회사의 규모 확대와 성장은 다르다는 생각, 경영자가 지나치게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은 윤리에 반한다는 주장 등은 한국의 재벌들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말들이다.

 

보통 경영학이라고 하면 기업의 이윤을 높이거나 규모를 확장하는 활동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의 사상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다. <넥스트 소사이어티>,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와 같은 거시적인 비전이 밑바탕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식정보 시대의 거대한 변화에 맞물린 것이기도 하다.

 

그가 지닌 문제의식은 어떤 조직, 어떤 사회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과 관계된다. 그래서 그의 경영 혁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주장하는 넥스트 소사이어티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 그가 말하는 경영 혁신은 새로운 사회를 구축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고방식이다.

 

사실 이 책이 피터 드러커 사상의 입문서는 아니다. 이 책은 실무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편집된 책이다. 그래서 자기 혁신, 조직 혁신, 회의 진행 방법, 팀 운영 방식, 팀장과 팀원의 관계 등에 귀기울여 들을 말들이 가득하다. 애초 목적에 충실한 책이니 피터 드러커의 조언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훌륭한 멘토가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피터 드러커가 참 위대하다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피터 드러커의 사상에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는 직원이 회사의 최종 책임자와 같은 기업가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이야 참 아름답다. 문제는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축이 기울어져 있다. 그럼에도 피터 드러커의 사상은 우리가 귀기울여 들어야 할 뛰어남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 오래된 지식의 숲,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철 지음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 국사 교과서에도 나와 책 이름을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한번도 본 적은 없는 책.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라는 책이 나와, 덕분에 <지봉유설>의 일부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의 중요 대목 (또는 흥미로운 대목)을 골라 인용하고 해설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지봉유설>이 왜 가치 있는 책인지 느끼게 해 주는 미덕이 있다. <지봉유설>은 당대 학문과 지식의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최초로 서양의 지리 정보와 학문을 소개하고 있으며, 불교와 도교 등 유교 외의 사상도 긍정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흥미롭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담고 있기에 이른바 정통 역사 자료에서 볼 수 없는 시각과 자료를 얻을 수 있어 역사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한편 이수광이 최초로 서양의 정보를 소개하기는 했지만, 당대 선입견이나 유학의 학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기예, 식물, 동물, 곤충 등 생활과 자연 분야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놀랍다는 것은 그러한 모습은 이후 18세기에나 가서야 볼 수 있는 지식 경영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수광은 무려 2세기나 앞선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수광이 실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유도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수광이 관심을 갖은 주제가 무척 다양하고, 서양의 과학기술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으며, 고증적인 연구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수광은 "의심을 적게 하면 적게 진보하고 의심을 크게 하면 크게 진보한다."는 주자의 말을 인용하며 개혁적인 자세를 지녔다고 한다. 이는 후대의 학풍과 저술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른바 실학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이렇게 이 책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이 왜 의미 있는 책인지 느끼게 해주는 미덕이 있다.

 

그 외에도 그 자체로 재미를 주는 사례도 꽤 있다. 예를 들면, 담배가 조선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남녀노소 상하귀천 구별없이 피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간, 공간 관계없이 아이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서로 마주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가 유교 윤리가 적용되어 구별이 생겨났다고 한다. 재미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의 남성 양반들이 허난설헌을 질투했던 사실도 흥미롭다. 허난설헌은 조선보다도 중국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중국보다 조선이 여성을 더욱 차별했기 때문이다. 질투만 한 것이 아니다. 당시 양반들은 난설헌의 시가 대부분 표절과 위작이라고 주장하기 일쑤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표절 시비, 위작 시비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여러 사례들은 이 책을 읽는 쏠쏠한 재미를 준다. <지봉유설>은 조선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런 컨셉의 책(<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은 중요 대목을 골라내는 편집력과 저자의 적절한 평설이 중요하다. 안타까운 점은 사이다처럼 톡쏘는 평설이 없다는 점이다. 저자의 평설은 그냥 무난한 편이다. 그럼에도 감히 접할 수 없었던 <지봉유설>을 읽을 수 있게 한 점은 매우 큰 미덕이다. 이런 책을 써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