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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 오래된 지식의 숲,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철 지음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 국사 교과서에도 나와 책 이름을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한번도 본 적은 없는 책.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라는 책이 나와, 덕분에 <지봉유설>의 일부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의 중요 대목 (또는 흥미로운 대목)을 골라 인용하고 해설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지봉유설>이 왜 가치 있는 책인지 느끼게 해 주는 미덕이 있다. <지봉유설>은 당대 학문과 지식의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최초로 서양의 지리 정보와 학문을 소개하고 있으며, 불교와 도교 등 유교 외의 사상도 긍정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흥미롭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담고 있기에 이른바 정통 역사 자료에서 볼 수 없는 시각과 자료를 얻을 수 있어 역사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한편 이수광이 최초로 서양의 정보를 소개하기는 했지만, 당대 선입견이나 유학의 학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기예, 식물, 동물, 곤충 등 생활과 자연 분야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놀랍다는 것은 그러한 모습은 이후 18세기에나 가서야 볼 수 있는 지식 경영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수광은 무려 2세기나 앞선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수광이 실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유도 알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수광이 관심을 갖은 주제가 무척 다양하고, 서양의 과학기술을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으며, 고증적인 연구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수광은 "의심을 적게 하면 적게 진보하고 의심을 크게 하면 크게 진보한다."는 주자의 말을 인용하며 개혁적인 자세를 지녔다고 한다. 이는 후대의 학풍과 저술 태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른바 실학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이렇게 이 책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는 이수광의 <지봉유설>이 왜 의미 있는 책인지 느끼게 해주는 미덕이 있다.
그 외에도 그 자체로 재미를 주는 사례도 꽤 있다. 예를 들면, 담배가 조선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남녀노소 상하귀천 구별없이 피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간, 공간 관계없이 아이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서로 마주 앉아 담배를 피웠다. 그러다가 유교 윤리가 적용되어 구별이 생겨났다고 한다. 재미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의 남성 양반들이 허난설헌을 질투했던 사실도 흥미롭다. 허난설헌은 조선보다도 중국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중국보다 조선이 여성을 더욱 차별했기 때문이다. 질투만 한 것이 아니다. 당시 양반들은 난설헌의 시가 대부분 표절과 위작이라고 주장하기 일쑤였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표절 시비, 위작 시비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여러 사례들은 이 책을 읽는 쏠쏠한 재미를 준다. <지봉유설>은 조선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런 컨셉의 책(<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은 중요 대목을 골라내는 편집력과 저자의 적절한 평설이 중요하다. 안타까운 점은 사이다처럼 톡쏘는 평설이 없다는 점이다. 저자의 평설은 그냥 무난한 편이다. 그럼에도 감히 접할 수 없었던 <지봉유설>을 읽을 수 있게 한 점은 매우 큰 미덕이다. 이런 책을 써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