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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ㅣ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읽고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44편의 짧은 우화소설을 담고 있지만, 이야기마다 묵직한 여운을 안고 있다. 버려진 항아리, 흘러야 할 이유를 잊은 강, 그림 속 조각배 등 모두 작고 소외된 것들이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세상이 보기엔 하찮고 작아 보여도, 그들의 이야기에는 삶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흘러가지 않으면 그건 죽은 거라는 섬진강 이야기, 종 밑에 묻힌 항아리가 결국 누군가의 아름다운 종소리가 되었다는 이야기. 읽을 때는 덤덤히 넘겼던 장면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당신이 하나의 종이라면 나는 당신의 종각 밑에 묻힌 항아리가 되어 당신의 아름다운 종소리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이 작가의 말이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나조차 쓸모없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언젠가 의미 있는 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버려진 항아리가 누군가의 삶을 채우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나도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품고 나아가고 싶다.
꿈이든 관계든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에게, 《항아리》는 한 번쯤 꼭 펼쳐보기를 권하고 싶다. 대단하고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작은 존재들이 들려주는 담담한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묵묵히 걸어갈 힘을 얻는다. 다시 진심으로 책을 사랑할 마음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