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 비채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읽고 작성했습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휴식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쁘게 달려온 끝에 맞이한 소중한 휴일. 그러나 막상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잘 쉬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게으르게 보낸 것 같아 후회가 남고, 반대로 바쁘게 돌아다니면 또 그게 진짜 쉼이었나 의문이 든다. 쉬는 법을 고민하다가 오히려 지쳐버리는 딜레마에 빠지기 일쑤다.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의 저자 조니 선은 에미상 후보에 오른 시나리오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에세이스트, 설치 예술가, 연구원 등 여러 직업을 가져온 소란스러운 천재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해내며 달려왔지만 결국 번아웃과 우울감에 빠졌다. 그러다 처음으로 제대로 쉬어보기로 결심한다. 죄책감 섞인 휴식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위한 쉼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쉬는 동안에도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분주했다. 사소한 아이디어와 엉뚱한 상상, 문득 떠오르는 단상들이 쉴 틈 없이 몰려왔다. 그렇게 기록한 글과 드로잉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고, 쉬는 동안 만든 책이라는 역설적인 출발점이 탄생했다. 이 에세이는 유머와 성찰, 창작의 흔적이 어우러진 일기이자 창작 노트다.

책은 소소한 일상이 녹아있다. 식물을 가꾸는 이야기, 주방에서 계란물을 젓다가 떠오른 가족의 추억, 느릿하게 흐르는 하루 속에서 피어나는 유머와 사색. 페이지 곳곳에는 조니 선 특유의 라인 드로잉이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식물의 느린 성장과 그것을 지켜보는 시선은 우리가 꿈꾸는 쉼과 닮아 있었다.

불안은 앞으로도 내 곁을 맴돌겠지만, 그 불안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어른이 되고 싶다. 내 본가에는 작은 바닷가가 있다. 책 제목처럼, 오랜만에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바닷가로 향해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항아리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읽고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44편의 짧은 우화소설을 담고 있지만, 이야기마다 묵직한 여운을 안고 있다. 버려진 항아리, 흘러야 할 이유를 잊은 강, 그림 속 조각배 등 모두 작고 소외된 것들이지만, 그들 역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세상이 보기엔 하찮고 작아 보여도, 그들의 이야기에는 삶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흘러가지 않으면 그건 죽은 거라는 섬진강 이야기, 종 밑에 묻힌 항아리가 결국 누군가의 아름다운 종소리가 되었다는 이야기. 읽을 때는 덤덤히 넘겼던 장면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당신이 하나의 종이라면 나는 당신의 종각 밑에 묻힌 항아리가 되어 당신의 아름다운 종소리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이 작가의 말이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나조차 쓸모없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언젠가 의미 있는 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싶다. 버려진 항아리가 누군가의 삶을 채우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나도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다시 품고 나아가고 싶다.


꿈이든 관계든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에게, 《항아리》는 한 번쯤 꼭 펼쳐보기를 권하고 싶다. 대단하고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작은 존재들이 들려주는 담담한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묵묵히 걸어갈 힘을 얻는다. 다시 진심으로 책을 사랑할 마음을 품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약돌 정호승 우화소설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읽고 작성했습니다.


『조약돌』에는 총 43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항아리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가볍게 읽게 되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 이 책 또한 사람이 아닌 작은 존재들이 주인공이지만 그들이 겪는 고민과 아픔, 사랑과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오래 남은 이야기는 ‘눈사람’과 ‘썩지 않는 고무신’이었다. 두 이야기는 단순히 상상에서 그친 우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아픈 역사와도 연결되어 있었다. 눈사람 형제는 분단된 한반도를, 고무신은 5.18민주항쟁을 떠올리게 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갈라져버린 눈사람 형제의 이야기 속에는 분단이라는 아픈 현실이 담겨 있었다. 녹지 않기 위해 서로를 바라보며 버티는 그들의 모습은 단순한 우화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조약돌』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은 한 단어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조금 더 복잡하고 쓸쓸하면서도 담백한 여운에 가까웠는데, 누군가가 다정하게 등을 토닥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감정이었다.

정호승 시인의 우화소설은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쉽고 짧은 이야기 속에서 삶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조약돌』 역시 그런 책이다. 하루의 끝에서, 혹은 생각이 많은 밤에 천천히 펼쳐 읽고 싶다. 아무리 바쁘고 힘든 날이라도 그 조약돌 하나를 손에 쥐고 있는 듯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오키타 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읽고 작성했습니다.

『종달새 언덕의 마법사』는 마법보다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가 사람으로서 느끼는 슬픔, 후회, 갈망, 그리움 등의 각기 다양한 감정들이 계절처럼 순환하고, 때론 아물기도 하며, 때론 새살이 돋기도 한다. 스이는 그 흐름을 존중한다. 마녀라기보다는 친구이자 때로는 말 없는 응원자에 가깝다. 그녀는 도움을 주되, 의존하지 않도록 이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누군가에게 꼭 안긴 듯한 기분이 든다. 포근하면서도 조금은 울컥했다.

나에게 이 소설은 마법 판타지라기보다는 따스한 성장 이야기였다. 과거의 내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통해 위로받았던 것처럼, 이 책은 지금의 나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한참을 멈춰 읽은 문장이 몇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괜히 마음이 저릿해지는 날, 이 책을 꺼내어 다시 읽고 싶을 것 같다.

『종달새 언덕의 마법사』는 지친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해주는 책이다. 마녀는 우리 곁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다정한 존재가 건네는 차 한 잔과 말 한마디는, 어쩌면 우리 주변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은 그런 마법 같은 다정함을 다시금 믿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
설레스트 잉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읽고 작성했습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은 근미래의 미국을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소설이지만, 현재와도 맞닿아 있다. 경제 위기를 외부로 돌리며 특정 국가를 희생양 삼고, ’국가의 가치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자유를 통제하는 방식은 이미 낯설지 않다. 현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정책이나 성소수자 보호 정책 철폐 같은 일련의 조치들을 떠올려보면, 이 소설이 말하고 있는 세계는 더 이상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책 속에서 ’PACT(미국 전통문화 보존법)‘는 미국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아시아계 시민들 특히 중국계 미국인을 탄압하며 사람들을 이념의 틀에 가두고 공포로 지배한다. 반미국적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를 들어 부모에게서 아이를 분리하고, 그 가족의 사랑과 유대를 파괴해버린다. 이 모든 과정은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편협하고 잔인하다. 읽으면서도 이 설정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이미 현실에서 우리는 유사한 정책들을 목격해왔고, 슬프게도 소설은 우리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다.

주인공 ’버드‘와 그의 어머니 ’마거릿 미우‘는 중국계 미국인이다. 마거릿은 시인으로서 언어를 통해 저항했고, 그녀의 시는 정부의 검열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버드는 엄마가 쓴 시집 『우리의 잃어버린 심장』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녀가 왜 가족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해 나간다. 그리고 읽는 독자도 책을 읽는 내내 하나의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소설을 읽는내내, 단순히 미국에 국한돼 장면을 상상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한국 사회가 떠올려졌기 때문이다. 혐오와 차별의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산당’, ‘친중’, ‘반국가’ 등의 단어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혐오와 폭력은 일상에서 매일 마주하고 있다. 무언가를 비판하면 곧바로 사상 검열이 따르고, 경계하고 배척하는 흐름이 커지고 있다. 이에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보편적이며, 지금의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