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바나나 - 기자의 눈으로 바라본 지구촌의 눈물과 희망 메시지
손은혜 지음 / 에이지21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향긋한 홍차 한 잔과 달콤한 바나나, 언뜻 생각해 보면 참 잘 어울리는 조화가 아닌가 싶다. <홍차와 바나나>라는 제목만 보면 맛있는 음식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책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고...하지만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전혀 달리 이 책은 6개의 나라들을 오가며 출장길에 쓴 일기를 정리 보강한 글들의 모은 한 기자님의 취재일기다. 힘이 센 강대국, 잘사는 부유한 나라, 관광객들의 천국도 아닌 조금은 위험하고 잘 알지 못했던 현실들과 이곳 저곳에 아픈 상처들이 존재하고 있는 나라들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현장보고>팀에 있는 동안엔 조금 힘들어도 전쟁지역, 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만나는 여정을 떠나보기로 결심했다는 손은혜 기자님.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가감없이 마주하다 보면 왜 전쟁을 하면 안되는지, 왜 인간의 존엄성이 철저히 존중받아야 하는지를 배워올 수 있겠다 싶으셨다고 한다. 인간 존엄에 관한 가장 당연시 되는 명제를 가지고 떠난 출장길. 3번의 출장으로 스리랑카, 파키스탄, 민주콩고, 케냐, 에콰도르, 네덜란드를 잇는 여정이었다. 취재 허가를 받지 않은 곳에 갔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 취재를 위해 20시간여를 이동하기도 하고, 먹거리나 잠자리가 불편한 것들도 감수해야만 했던 쉽지 만은 않았던 취재길이었다.

 

스리랑카에서는 내전의 현실과 사르보다야 공동체를, 파키스탄에서는 탈레반 점령 지역과 장수 마을 훈자를, 민주콩고에서는 내전 이후 성폭행 피해 여성을, 케냐에서는 소년 합창단을, 에콰도르에서는 남미지역 인디오들과 공정무역 바나나 농장 노동자를, 네덜란드에서는 공정무역 회사의 이야기들과 만날 수 있었다. 특히나 같은 여자로서 민주콩고의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참 마음이 아팠다. 남편이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반군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그런일이 벌어지고 나면 고향에서 떠나야만 했다. 무엇보다 수술을 해야 할 만큼 몸이 상했고, 그것보다 더 많이 더 아프게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유린당하고 희생되어져야 하는 여인들의 삶을 누가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새겨져 있는 건 아닐지 안타깝기만 했다.

 

내가 사는 곳 반대편에서는 이런 일도 일어나고 있구나,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나한테 평범한 일상들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꿈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걸 새삼 느꼈다. 전쟁, 가난, 눈물, 아픔으로 얼룩진 누군가가 짊어지고 가고 있는 삶들이 책으로 전해지며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여러가지 안타까운 현실들에 쓴 마음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절망만 가득할 것 같은 그 곳에도 함박 웃음을 짓는 아이들이 있었고, 선생님을 꿈꾸거나 나라를 지키는 군인을 꿈꾸며 공부하는 소녀들이 있었고,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소년들이 있었다. 화목해 이는 가정이 있었고, 그들을 돕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중에는 조금이나마 이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작은 희망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희망의 불꽃이 더 거대해져 더 많은 이들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실 위주의 이야기들과 함께 인생이나 자신의 생각들과 보고 느낀 것들 등 감상 위주의 글들도 많은 편이라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조금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나는 그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어떤 현실들을 조금 더 많이, 깊게, 상세하게 알고 싶었는데 그런 부분이 적은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도 앞으로 다른 매체들을 통해 책에서 만났던 여러 지역들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면 한번 더 귀 귀울이게 될 것 같다. 이제는 홍차 한잔의 여유를 가질 때에는 고단한 타밀족 노동자들의 손길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나나를 먹을 때에는 에콰도르 노동자들의 값진 땀 한방울을 기억할 수 있기를, 조금 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그들의 공정무역 바나나를 선뜻 고를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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