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 힘겨운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철학 처방전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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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한번쯤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 지구안에서 인간은 그 수많은 세기를 살아오면서 그 어떤 동물보다도 뛰어나고 그 어떤 동물보다도 강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양이가 강아지가 나무가 꽃이 잠자리가...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가 약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이 지구 안에서 인간은 가장 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사랑을 원하고, 끊임없이 살아갈 이유를 찾아야 하니까.

(자기앞의 생에서 아이가 묻는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어요?")


살아가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 살아가는, 살아내는 사람들. 우리는 그렇게 강하기도 하고 한없이 약하기도 한 존재이다.


이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는 주로 부모와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부모와의 관계로 인해 한 사람의 성격과 인생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를 여러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저자가 정신과 의사여서 자신이 상담한 사례와 우리가 아는 유명한 사람들(쇼펜하우어, 헤르만헤세, 한나아렌트, 비트겐슈타인 등)의 사례를 통해 절망이나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여러개의 길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어쩌면 한평생 '감기'에 걸린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감기 또한 완치약이 없다. 그저 완화시키거나 예방을 하는 백신, 그것도 완벽하지 않은 불완전한 약으로 견뎌내는 감기.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일평생 감기 한번 안걸리는 사람이 있을까?

마음은 속일 수 있어도 몸은 속일 수 없다고들 말한다. 그만큼 마음이 아프면 몸 또한 같이 아픈 경우가 많다.

그러다 몸이 어느 순간 자신의 면역성으로 아픔을 이겨내면 마음 또한 자신의 성숙함을 가지고 아픔을 이겨낸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닌듯.)

감기가 항상 똑같은 바이러스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의 바이러스로 온다는 사실을 보면 '절망'이나 '슬픔'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없이 절망하고 수없이 아파도 매번 새롭고 매번 다른 크기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힘을 내는 것인진도 모르겠다.


같은 방향으로 같은 길을 걷고 있더라도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풍경을 보는 것이니까. 그래서 다른 모습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요. 나무는 이렇게 대답해요. 나는 여기 있다. 바로 여기 있다."]

                                                            -p 309


[살아간다는 것은 개인적인 행위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갈 때는 필연적으로 여러 인간과 얽히게 된다. 거기서 한 사람이 빠져나가는 것이란 잡고 있던 손을 푸는 것이다. 자신이 손을 풀 때 거기에는 당연히 손을 풀린 사람이 생긴다. 자신의 슬픔이 아니라 손을 풀린 자의 아픔에 생각이 미칠 때 사람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란 것을 깨닫고 죽으려는 생각을 단념할지도 모른다. 손을 놓지마, 놓지 않을게, 이렇게 서로 의사 표시를 하는 것 외에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이 삶을 가능하게 한다.]

                                                          -p 325


당신이 지금 절망하고 슬픔의 늪에 빠지고 아픔에 허우적거린다고 하더라도 그건 당신의 인생 속의 한 걸음일뿐이라는 것을 알기 바란다. 그래서 당신이 힘을 내 그 한 걸음을 내딛고 일어서기를, 살아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모두들 행복하진 않더라도 불행하진 않기를... 힘껏 살아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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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동물학교 1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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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면 죽은 후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러면 착한 동물들은 어떻게 될까?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이 물음으로 시작된 이야기, 환생동물학교.

동물이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서 남아 있는 동물의 습성을 버리고 인간 세계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받는 곳, 환생동물학교.


한 초보선생과 여전히 주인을 그리워하는 동물친구들-고양이 쯔앙, 개 맷, 개 블랭키, 강아지 아키, 하이에나 비스콧, 고슴도치 카마라, 고양이 머루-의 이야기이다.

웃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이야기를 귀여운 그림체와 따스한 글로 채워진 책이다.


인간의 시각으로 본 동물들과 동물들의 시각으로 본 인간의 세계는 가깝고도 먼 사이같다.


특히 이 책에서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는 하이에나의 이야기였다.


[거짓말로 얻은 믿음이나 사랑은 어차피 다 진짜가 아니잖아.  -p200]


어렸을적 시골에 살았었는데 그곳에서는 몇군데 집에서 개를 키웠었다. 뭐 대부분은 일명 똥개라 불리는 누런 빛깔의 털을 가진 개였는데 그 개들은 언제나 목줄에 매여져있었고 찌그러진 양푼에 먹다남은 인간의 음식쓰레기 처리반이었다. 게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복날에 동네사람들 몸보신용으로 희생당하기도 했다.

나는 여기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인간의 잔인함보다는 개의 습성이었다.

그래, 인간이야 원래 잔인한 족속들이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할 족속이니까.

지금은 안그러겠지만 예전에는 개를 먹기 위해 고기를 더욱더 육질이 좋게 만든다는 이상한 미신으로 개를 매달아놓고 몽둥이로 팼다. 그러다 개가 우연찮게 밧줄을 풀고 도망칠 때가 있는데 그때 주인이 다시 그 개를 부르면 꼬리를 흔들면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상처투성이 몸을 이끌고 주인에게 다시 돌아온다.

나는 그 습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어떠한 '악'도 없음에 경의롭다못해 슬프다.

(이 세상이, 이 지구가 평화롭기 위해서는 '인간'만 없으면 된다는 진실은 결국 '인간'이 가장 큰 '악'이라는, 하등 이 세상에, 이 지구에 필요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착하디 착한 동물들.


아무리 상처입어도 주인에 대한 사랑이 거짓이 아닌 아이들을 보노라면 그들에게 고맙다. 인간은 한없이 이기적인 동물이라 자신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행동한다. 자신은 '사랑'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학대'일 수 있음을 간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사랑'과 '애정'을 아낌없이 준다. 부모의 사랑도 자식이 못돌려주듯이 그들의 사랑도 사람들은 되돌려주지 못한다. 게다가 함께하는 시간도 너무도 짧고.


만약 이 책에서 말하는 '환생'이 있다면 서로 바꾸는 인생을 살아도 좋지 않을까. 인간은 동물로, 동물은 인간으로. 그런 세상이 존재한다면 적어도 인간들이 동물을 학대하는 일은 없을텐데 말이다.



제발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존재들과 공존해야함을 깨닫기를.


만약 지금 당신 곁에 있다면 아낌없이 애정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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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만 그 방에
요나스 칼손 지음, 윤미연 옮김 / 푸른숲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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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기에 한 사람이 있다. 자신만만하고 어느 정도 야망이 있는 직장인인 비에른은 다니는 직장에서 관공서로 이직한 사람이다. 자신이 합리적이고 똑똑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을만 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어쩐 일인지 같은 직장안의 사람들과는 그리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복도 맨 끝에 있는 방을 발견하는데 그 방은 그에게 최고의 평온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그는 안좋은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방에 홀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낸다.


["당신이 그렇게 당신만의 작은 세계에 서 있는 걸 볼 때면 다른 동료 직원들의 기분이 뒤숭숭해진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당신이 집에서 그런 짓을 하고 싶다면야 얼마든지 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직장에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다른 직원들에게 겁을 주고 있어요. 동료들과 좀 더 어울리려고 노력하는게 좋지 않겠어요? 그들 말로는 당신이 휴식을 거의 취하지 않는다더군요."  -p111]


초반에 읽을 때에는 비에른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타인을 평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읽어가면서 비에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옷을 입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무슨 음식을 먹는지, 무슨 말투를 쓰는지 등등.

그런 겉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가?

(하나를 보면 열은 안다, 는 속담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속담이다. 어떻게 사람을 하나의 모습을 보고 평가한다는 것인지.)

결국 바꾸어말하면 타인 또한 나 자신을 겉모습만 보고는 평가한다는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상상하는 것만큼 나 자신이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좋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고 싶어 하며, 대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때때로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책이나 신문을 읽고 싶어 한다. 날씨가 좋기를 바라고, 집 근처에서 싸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비교적 단순한 피조물이다. 어느 정도 유쾌한 파트너, 코스타 델 솔의 여름 별장이나 타임셰어 리조트를 발견하길 꿈꾼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평화와 고요를 원할 뿐이다. 때때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오락거리를.

그 이상은 헛된 가식에 지나지 않는다. -p151~152]





[라디오에서는 어떤 배우가 자기가 직접 쓴 중편소설을 낭독하고 있었다. 그 소설의 스토리는 69라는 숫자에 관한 것이었다. 배우는 그걸 뒤집으면 96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나는 쉽게 속이고 속아 넘어가는 이 세상에서 진실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나 혼자뿐이라는 걸 끊임없이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문득 깨달았다.    -p160]




[방향을 돌려놓겠다고 갑자기 애쓴다고 해서 강물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다. 아무리 당신이 강하다 해도. 강은 그저 당신을 압도하고 이전처럼 끈질기게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하루아침에 강물의 흐름을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강물과 함께 흘러가는 방법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 자체의 힘을 이용해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물길을 인도해야 한다. 굴곡이 완만하면 강은 자신이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강은 그저 평소처럼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변한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이기 때문에.  - p171]


책을 덮고나서 나는 생각해보았다. 과연 비에른의 방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예전에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느냐의 이야기였는데, 자신은 신을 직접 만나지 않았으니 그 존재를 입증할 수는 없지만 아직 만나지 않은 것일지 모르니 그 신이 없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다고.)

방의 존재를 믿는 비에른과 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 누가 옳고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숨구멍같은 공간의 문제가 아닐까.


당신은 비에른의 방이 존재하길 원하는지, 존재하지 않기를 원하는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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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
최민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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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보니, 보라, 창백한 말이라. 그 위에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지옥이 그와 함께 따라다니더라.]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은 장벽을 사이에 두고 면역자와 보유자로 나뉘어 살아가고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로 나뉘어도 될듯싶다)

시체(좀비)에 물려도 상해만 입을 뿐인 면역자와 시체에 물리면 시체가 되어버리는 보유자-그래서 보유자는 뼈빠지게 일해서 비싼 돈을 주고 약을 사서 복용해야만 시체가 되지 않는다.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시체에 물리지 않아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시체가 된다-

새로운 신분제도로 작용하는 면역자와 보유자. 그리고 장벽. 장벽 안과 장벽 밖뿐만 아니라 장벽 위의 사람들도 있다. 


내가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교묘하게 비틀어 비판하는 점이다. 이 책 '창백한 말' 또한 비현실적인 소재이지만(사실 수많은 sf영화나 소설을 보면 그런 세계가 아주 먼 일도 아닌 일인 것 같아 무섭기도 하다. 누구 말대로 내가 죽은 뒤에 오면 안되나?라는 생각도. ^^;;;) 내용면에서 본다면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여서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책의 결말이 최선일 것 같아서.


책 속의 한사람 한사람의 캐릭터도 잘 설정되어 있고, 구성이나 결말도 좋았다. 물론 벌려놓은 것에 비해 갑자기 우르르 몰아서 결말로 치달아서 좀 그랬지만 (조금 더 긴 이야기여도 좋았지 않았나 싶었다)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편집자님의 말처럼 정말이지 가독성이 좋아서 하루만에 읽어버렸다. 

우리나라 장르소설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어서 벅차다. 이제 이웃나라 일본을 부러워만 하지 않아도 되어서. ^^


[개인적인 일?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딨어? 먹고, 자고, 싸고, 전부 남한테 폐 끼치는 일이야. 그걸 인정 안하면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라고. 사람한테 개인적인 일이란 건 없어.]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사람답게 사는 게 어떻게 사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고 어떤 이에겐 절박한 일이 어떤 이에겐 귀찮은 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가 마지막 글귀였다.


[그들은 시체의 의무를 다하려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걸었다.]


감정적으로 치우칠 수 있었던 것을 모두 무마시킨 최선의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궁금하시면 바로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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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시대의 철학
김정현 지음 / 책세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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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스마트폰은 이미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되어버린 요즘 카페나 술집 풍경을 보면 누구도 서로의 눈을 보며 입을 열어 대화하지 않는다.
바로 옆자리에, 앞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스마트폰으로 채팅하는 모습은 솔직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눈을 보는 것이, 입을 여는 것이 귀찮은건가? 피곤한건가? 그럴거면 왜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시는거지?
요새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부모와 자식이 카톡으로 대화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스마트폰의 중독의 문제일뿐인가, 라는 의문점을 갖는다.
당신은 어떠한가. 서로의 눈을 보며 대화하는 것이 편한가, 아니면 스마트폰으로 쳇을 하는 것이 편한가.

'소외'
낯선 공간이나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낯섬을 느끼는 것은 '소외'가 아니다.
낯익은 공간이나 낯익은 사람들 속에서 '낯섬'을 느끼는 것이 '소외'이다.

나는 과연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소외'되지 않았는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현대인은 삶의 의미나 자기 존중감, 자기 존재 의식 등을 둘러싼 자아 정체성의 문제를 겪고 잇다. 자신과 정신적으로 관계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타인과 인간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삶을 의미 있게 이끌어나가는 능력의 야과는 현대인에게서 두드러져 보인다. 현대인은 분주함과 부산함, 자아 몰입과 무정신성, 자아의 약화와 관계의 불통 속에서 고통을 느낀다. 슬로터다이크는 현대인의 문제를 '자기 관계성'의 위기로 규정하며, '나는-누구인가-신경증'이라고 부른다. -p93

이런 소진시대의 자아를 치유하기 위해서 우리가 '사색의 삶'과 '영혼의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필자는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나는 사색의 삶에 주목하고 싶다.
인간은 혼자 있으면 외롭다. 그래서 항상 타인들과 관계하며 지내고 있다. 직장이든, 가정이든.
하지만 '외로움'과 '고독'은 구분해야 한다.
외로움은 극복의 대상이지만(사실 아무리 극복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고독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즐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자신을 오롯이 볼 수 있는 시간이 바로 고독의 시간, 사색의 시간이 아닐까?
자신이 누구인가,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행복한지, 불행한지 등등.
자신을 거짓없이 바로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니체철학의 필자는 니체적 의미의 행복론을 말한다.

니체적 의미의 행복이란 자신과 삶을 긍정하고 창조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능동적 인간에게서 찾을 수 있는 자각적 저인 활동이자 체험이다. 행복이란 세속적 의미의 가난이나 실패 혹은 가치 평가가 아니라 삶에 대한 성실함, 진지함, 깨어있음, 삶에 대한 긍정, 사랑과 감사의 가치를 인지하는 인생의 가치인 것이다. - p247


과연 니체가 보기에 소진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행복해보일까?
아니, 당신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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