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만 그 방에
요나스 칼손 지음, 윤미연 옮김 / 푸른숲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여기에 한 사람이 있다. 자신만만하고 어느 정도 야망이 있는 직장인인 비에른은 다니는 직장에서 관공서로 이직한 사람이다. 자신이 합리적이고 똑똑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을만 하다고 생각하는 그는 어쩐 일인지 같은 직장안의 사람들과는 그리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복도 맨 끝에 있는 방을 발견하는데 그 방은 그에게 최고의 평온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그는 안좋은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방에 홀로 들어가서 시간을 보낸다.


["당신이 그렇게 당신만의 작은 세계에 서 있는 걸 볼 때면 다른 동료 직원들의 기분이 뒤숭숭해진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당신이 집에서 그런 짓을 하고 싶다면야 얼마든지 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직장에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다른 직원들에게 겁을 주고 있어요. 동료들과 좀 더 어울리려고 노력하는게 좋지 않겠어요? 그들 말로는 당신이 휴식을 거의 취하지 않는다더군요."  -p111]


초반에 읽을 때에는 비에른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고 타인을 평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읽어가면서 비에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옷을 입는지, 무슨 책을 읽는지, 무슨 음식을 먹는지, 무슨 말투를 쓰는지 등등.

그런 겉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가?

(하나를 보면 열은 안다, 는 속담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속담이다. 어떻게 사람을 하나의 모습을 보고 평가한다는 것인지.)

결국 바꾸어말하면 타인 또한 나 자신을 겉모습만 보고는 평가한다는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상상하는 것만큼 나 자신이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좋다. 우리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고,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고 싶어 하며, 대체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때때로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책이나 신문을 읽고 싶어 한다. 날씨가 좋기를 바라고, 집 근처에서 싸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모두 비교적 단순한 피조물이다. 어느 정도 유쾌한 파트너, 코스타 델 솔의 여름 별장이나 타임셰어 리조트를 발견하길 꿈꾼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평화와 고요를 원할 뿐이다. 때때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적당한 오락거리를.

그 이상은 헛된 가식에 지나지 않는다. -p151~152]





[라디오에서는 어떤 배우가 자기가 직접 쓴 중편소설을 낭독하고 있었다. 그 소설의 스토리는 69라는 숫자에 관한 것이었다. 배우는 그걸 뒤집으면 96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나는 쉽게 속이고 속아 넘어가는 이 세상에서 진실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오직 나 혼자뿐이라는 걸 끊임없이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문득 깨달았다.    -p160]




[방향을 돌려놓겠다고 갑자기 애쓴다고 해서 강물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다. 아무리 당신이 강하다 해도. 강은 그저 당신을 압도하고 이전처럼 끈질기게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하루아침에 강물의 흐름을 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강물과 함께 흘러가는 방법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 자체의 힘을 이용해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물길을 인도해야 한다. 굴곡이 완만하면 강은 자신이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강은 그저 평소처럼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변한 게 아무것도 없어 보이기 때문에.  - p171]


책을 덮고나서 나는 생각해보았다. 과연 비에른의 방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예전에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느냐의 이야기였는데, 자신은 신을 직접 만나지 않았으니 그 존재를 입증할 수는 없지만 아직 만나지 않은 것일지 모르니 그 신이 없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다고.)

방의 존재를 믿는 비에른과 방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 누가 옳고 그르다는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숨구멍같은 공간의 문제가 아닐까.


당신은 비에른의 방이 존재하길 원하는지, 존재하지 않기를 원하는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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