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로 철학하기 - 에드거 앨런 포에서 정유정까지
백휴 지음 / 나비클럽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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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추리소설을 접했던 시기는 중2 생일때였다. 지금이야 많은 출판사에서 다양한 장르소설책들을 번역하지만 이십년전만해도 장르소설은 문고판서적으로 오타와 오역이 난무하는(마치 해적판 일본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책들이어서 몇권 읽으면 피로감이 밀려왔다.

여튼 그러다보니 나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추리소설이란 오락성 소설이라는 생각이 깊었다. 쉽게 읽히고 빠르게 기억에서 사라져버리는 한없이 가벼운 소설들. 하지만 이십대 중후반에 다시 읽게 된 추리소설은 나에게 '다름'과 '특별'을 선사해주었다.

내가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소설에 매몰되기 시작한 이유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반사회적인간, 즉 사이코패스를 이해할 수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이란 여러가지 욕망덩어리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단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욕망만이 아닌 타인을 위한 이타적인 욕망도 있고, 어려운 문제를 끈질기게 풀어내려는 욕망도 있는 등 다양함도 포함된 욕망인 것이다. 그래서 스릴러소설에 나오는 사이코패스는 나에게 있어 이해대상이 아니라 그 소설속에 나오는 형사나 탐정이 이해대상인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이십년이 넘게 장르소설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랑하는 추리소설을 철학의 용어로 설명하는 이 책은 한마디로 쉬운 듯 어렵다. 마치 눈앞에 아주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있어 침을 흘리고 있는데 앞에 앉은 요리사가 음식을 해체하면서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무엇이 들어갔는지 그래서 무슨 맛이 나는지, 무슨 효용이 있는지 등등 요리사의 용어로 설명하는 듯하다. (돼지고기, 생강, 소금, 후추 등등 용어는 알지만 어떤 방식으로 구웠는지, 무슨 비법을 설명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물론 전문가는 필요하다. 어떤 것이든 평가는 필요한 법이고, 그 평가로 인해 가치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물건에 감정인이 필요한 것처럼)

그래서 이 책은 어쩌면 '추리소설'의 가치를 격상시키기 위한(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낮은 곳에 위치한) 고마운 책이다. (예전에 '곡성'이라는 영화를 짝꿍과 보고는 너무도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그 영화를 자세히 설명한 리뷰를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보고서야 주인공 주변의 설정이라든지, 캐릭터들의 이미지와 성격,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로 백휴의 전문적인 추리소설의 해부?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깝다. 그래서 추리소설의 팬으로서 지은이에게 고맙다.

그건 그거고, 그래도 여전히 나로서는 장르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우선은 '재밌다', '흥미롭다'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로 사건이 발생하면 우선은 가장 가깝고, 이익을 가장 크게 보는 사람을 의심하게 되었고, 코난 도일의 소설로 관찰력을 기르게 되었고, 수많은 추리소설로 인해 이성과 논리와 과학적인 사고력을 배웠다. 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아주 잔인하고, 무섭고, 이해불가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이야말로 그 모든 토대의 가장 위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 점이다. 현실 사회야말로 인간이 쉽게 '괴물'이 되어버린다. 내가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아직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책은 추리소설을 애정하는 이들의 책장 한 구석을 차지하여 가끔 꺼내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 또한 이 책으로 인해 우리 곁에 있는 추리소설가들의 책들을 읽어보게 싶어졌다. 또한 다시 한번 고전의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다시 한번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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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
드로 미샤니 지음, 이미선 옮김 / 북레시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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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처음 소개되는 이스라엘 최고 범죄 소설이라는 책소개로 흥미를 자아냈다. 표지를 보면 전혀 위험하거나 범죄와는 상관없는 오히려 로맨스가 어울리는 표지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서늘한 냉기와 공팜내가 풍기는 지하실이나 오래된 낡은 빈집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1. 몇달전 남편의 바람으로 인해 이혼하게 된 오로나는 장애가 있는 아이와 함께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내연녀와 결혼했고, 아이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상담을 받고 있다. 오로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존재다. 하지만 삶의 힘듦과 외로움으로 인해 이혼한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앱에 들어가 한 남자를 만난다.

2. 리가에 살던 에밀리아는 이스라엘로 취업비자를 받고 왔다. 라훔의 간병을 하던 에밀리아는 라훔의 죽음 이후에 요양원에서 힘겹게 일한다. 리가에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이스라엘에 계속 머물고 싶은지 알 수 없는 에밀리아는 안정된 직장을 갖고 싶어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라훔의 아내가 소개해준 한 남자의 아파트 청소를 하게 된다.

3. 몇주전 3째를 출산한 엘라는 뒤늦은 대학수업의 논문을 쓰기 위해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공부한다. 보수적인 남편과 육아에 지친 엘라는 하루에 몇시간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만이 유일한 숨쉬기인데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한 남자를 만난다.

이 세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나중에 이 책의 작가분이 남성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웠다. 왜냐하면 이 책의 시점이 3자의 시점이 아니라 여성들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세 여성들의 감정의 변화와 갈등, 남자를 바라보는 여러가지 감정들을 매우 섬세하게 쓰여졌다. 끌림, 두려움, 배신감 등등.

이름이나 지명때문에 낯설긴 하지만 잘 읽히는 책이었다. (피가 난무하거나 잔혹한 장면은 하나도 없지만 책장을 덮으면 안타까움과 슬픔이 밀려온다. 정말이지 옛말 틀린 게 없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마지막에 왜 '범인'의 심리가 없을까?라는 의문점이 있었는데 조금 생각해보니 '범인'의 모습은 (성격이든, 심리든) 세 여자의 말과 글 속에 있었다. 왜 '그'가 여자들을 만났는지를.

'sns' 속의 자신도 거짓으로 꾸며낼 수 있지만 오프라인 속의 자신도 거짓으로 꾸며낼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인듯.

새로운 형식?과 낯선 나라의 심리 스릴러를 읽어보고 싶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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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연극 킴 스톤 시리즈 4
앤절라 마슨즈 지음, 강동혁 옮김 / 품스토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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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연말에 한꺼번에 이런저런 일이 닥치고, 생계의 일까지 가득 밀려터져 일주일에 몇페이지씩 읽다보니 한달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책을 다 읽었다. 참으로 책이라는 것은 한번에 쉼없이 주욱 읽어야 재미지는 건데 속세의 사람이란 일도 해야 하고, 사람관계도 해야 하기에 항상 취미는 뒷전이 되어 버린다. (젊을때-10대,20대에는 하루밤 꼬박 세면서도 잘만 읽었건만 이제는 아무리 클라이막스 절정에-범인이 밝혀지기 한페이지 전임에도 불구하고 자는 시간이 되면 저절로 책이 손에서 떨어진다. 오호 통재라! 여튼 이 책이 재미없어서 늦게 읽은 건 아니라는 말이우다.

재미로 따지자면 앞의 시리즈를 읽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돌김언니는 매력이 넘쳤고, 주변 캐릭터들도 한 매력을 담당하였다. 읽는 내내 살아움직이는 캐릭터들로 인해 마치 범죄 미드 시리즈를 보는 듯 했다.

서로가 뱉어내는 말들은 가벼워 보였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몇십년 전만 해도 (혹은 아직도 여전할지도 모르지만) 어떠한 흉악한 사건이 일어나면 매스컴과 전문가들이 나와서 하는 말은 '가정교육'이 문제라고 했었다. 한부모 가정이어서, 부모가 없는 고아기 때문에 불량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말로 통계적으로 보면 많은 범죄사건의 대부분은 정말이지 평범한 가정의 한 구성원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통계적 진실은 외면당하고 묻혔다. 왜냐면 평범한 가정의 구성원이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가정만으로 패닉이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포'는 순식간에 '혼돈'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끔찍한 편견과 오해로 사람을 재단하고, 또 다른 괴물들을 만들어냈다.

사실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중요한 것임을 항상 잊는다. '환경'이 '길'을 만들어내고 보여줄 수 있지만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결국 '사람'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 본 영화 '조커'가 생각났다. (호아킨이 열연한)

끊임없이 어렸을 적부터 가스라이팅한 어머니로 인해 배트맨의 부모를 죽인 조커. 과연 누가 더 가여운가?로 동생과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동생이 말하길 자신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복수'를 정당화하면 안되기에 조커로 인해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배트맨에게 한표를 준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조커에게 한표를 주었다. 왜냐면 영화 속의 '조커'는 정말이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이들이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그것'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 선택을 한 것을 동의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연민이 더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참 어렵다. 산다는 것은.

돌김언니가 말하듯이 이상적인 어린시절을 보내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사실은 참혹한 현실이다. 가족은 가장 안전한 울타리인 동시에 가시돋친 둥지일지도 모른다. 이상은 그저 동화책 속에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참혹한? 어린시절을 보낸 돌김언니가 멋지고 매력적이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했듯이 상처투성이 어린이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행복하진 않더라도 불행하진 않기를 바란다.

어떨결에 2024년에 읽은 첫 책이 되어버린 돌김언니의 '죽음의 연극'은 한마디로 '좋았다'. 앞의 시리즈를 사서 읽어보려고 한다.

모두들 2024년 한해를 찰지게 보내시길. 이 세상에 가장 공평한 것이 있다면 '시간'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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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홍콩 - 우리가 '홍콩'이라 불렀던 것들의 시작과 끝에 대하여 아시아 총서 46
류영하 지음 / 산지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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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중국의 속사정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책!! 비단 홍콩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상황과도 대입해 읽는다면 더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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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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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처음 접했을 때 순식간에 빨려드는 흡입력과 릴리의 넘치는? 매력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추천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이 재밌다고 했다. 그 후에도 피터 스완슨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게 되었는데 엄청나게 실망한 케이스는 없었다. ^^ 여튼 애정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리스트의 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보니 사실 '살려 마땅한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갈팡질팡했다. (처음부터 시리즈도 아니었고, 전작의 흥행으로 인해 속편이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아온 터라) 여튼 빨리 읽어보고 싶은 심정에 설레임과 두려움 반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이런, 결과는 반반이다. (마음 속 투표결과는 정확히 반반은 아니었지만, 51대 49라고 할까?)

처음 1부는 사실 지루했다. 쭉쭉 읽히기는 했지만 탐정 헨리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니 뭔가 어설프고 흐리멍텅하고, 우유부단한 글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2부부터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흥미롭고 재밌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관찰자'가 생각이 난다. 제3자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랄까, 아니면 그런 기분을 즐겨보는 것도 괜찮을듯. 관찰자의 시점에서 소설 속 인물들을 분석하고, 감상하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

마지막 3부는 태풍이 물러가고 널려있는 잔해를 치우는 기분이었다. 글 자체는 재미있었는데 힘이 빠져버린 느낌이랄까? 여튼 이리저리 잡생각이 많아지는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 잡생각이 나쁘지 않았다. 한번쯤 뒤돌아볼 수 있게끔 했다.)

여튼 기대감없이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은 꽤 괜찮은 책이다. (속편치고는 그래도 나쁘지 않다. 처음엔 헨리의 성격이 별로였지만 끝으로 갈수록 헨리가 현명하고, 사려깊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내 취향은 아니지만.)

-몇년 전에 '콜롬바인'이라는 논픽션 책을 읽었었다. 꽤 분량이 많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잘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총기난사사건에서 범인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이름'이 영구히 남는 것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마치 자기과신형 연쇄살인범들이 세상이 자신들의 '이름'을 잊지 않을거라고,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마치 세상의 중심이 자신인 것인양. 하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닐까. 우주의 먼지 크기도 안 되는 지구 안에서 뭔 '이름'이다냐. 그래서 나는 '콜롬바인' 총격사건의 범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되지 않는 '이름'이야말로 가장 큰 '복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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