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 열두 개의 달 시화집 三月 열두 개의 달 시화집
윤동주 외 지음, 귀스타브 카유보트 그림 / 저녁달고양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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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말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그림이다]


시와 그림이 함께 있는 책.

오랜만에 읽어보는 시와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니 고등학교때가 생각났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다닌 고등학교 시절에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 우리는 엽서에 열광했었다. 우표와 동전을 모으는 취미처럼 우리는 엽서를 수집했다. 학교앞 문구점에서 새로 나온 엽서를 차곡차곡 스크랩했고,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친구에게 이쁘지는 않지만 정성드린 손엽서를 건냈고, 때로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기도 했다. 그때 당시에는 모방송국 별이 빛나는 밤에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이쁜 엽서전시회도 매년 했었다. 사람들의 솜씨로 만들어진 예쁜 엽서들은 모두 멋있고, 어여뻤다. 게다가 그 당시에 유행했던 또 한가지는 대학생들이 주점이나 카페에 휘갈겨쓴 시들과 낙서가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물론 유머와 풍자도 있었다. 지금도 가끔 주점이나 카페 벽에 낙서를 하게끔 하는 곳도 있지만 이제는 거의 포스트잇을 붙여놓는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건간에 그렇게 우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남겨놓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물론 문화재에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하지만.)


여튼 그런 과거를 생각하니 그 당시에 많은 엽서에 시가 적혀있는 형태의 엽서도 많았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 나는 작은 노트를 사서 시집을 읽고 좋은 시들은 필사해놓곤 했다. 다이어리같은 노트였는데 졸업할 당시에는 두권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졸업후 친구가 빌려달라고 해서 준 것이 아직까지 돌려받지 않게 되었지만. ^^;;


사춘기여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여서 그랬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당시에는 시집도 많이 읽고 에세이도 많이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이 책을 읽노라니 그 시절이 많이 생각났다.

시를 읽다가 울컥 했던 기억이, 음악을 듣다가 왠지 모르게 슬펐던 기억이, 그림을 보다가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들의 시와 역시나 세상을 떠난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그 많은 시간들이 덧없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시와 그의 그림은 오래도록 사랑받는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응축된 글의 아름다움과 한장의 그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치가 아닌가 한다.


이미 봄은 지나 무더운 여름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또다시 온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런 것처럼 시와 그림은 우리 가슴 속에 남아 있고,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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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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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죽음'

누구나 '죽음'에 이른다는 것.

늦든 이르든 기껏해야 100년 남짓한 생을 살다 한줌 재로 변한다.

그래서일까? 그 오랜세월 수많은 권력자들은 '생(生)'에 집착했다. 불로장생을 얼마나 꿈꾸었는가?

이 집착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하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약들, 수많은 건강식품들, 수많은 의료...


과연 오래 산다는 건 '축복'이자 인간의 '꿈'일까?

이 물음에서 시작되는 책이 바로 매트 헤이그의 '시간을 멈추는 법'이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사십대로 보이지만 실은 살아온 세월의 시간으로는 400년이 넘게 산 톰.

그는 남들보다 15배 늦게 늙는 병?에 걸렸다.(마치 조루증의 반대처럼. 참 아이러니한 것이 어떤 이는 너무 빨리 늙고, 어떤 이는 너무 늦게 늙는다.) 게다가 병에 걸리지도 않는다. (누구나 꿈꾸는 궁극의 인간형이 아닌가?! 물론 그들-톰과 같은 인간이 한명이 아니라 여러명이 존재한다. 앨버라고 스스로를 부른다. 그리고 그들과 반대인 우리는 '하루살이'라고 부르고-도 점점 나이(실제의 나이가 아닌 육체적 나이)가 들면 서서히 병도 생기지만)


톰, 그는 종교가 모든 이와 세상의 가치관을 지배하는 시기에 태어났다. 종교의 이름으로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시대. 그 마녀사냥으로 톰은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 어머니를 잃는다. (몇십년이 지나도 같은 얼굴을 유지하는 톰을 보고 어느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자신들은 늙고 추해지고 있는데 그만이 젊음을 유지하며 반짝인다면 두려움을 넘어선 질투심이 발생하지 않을까? 인간은 자신이 결코 소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집착은 무서울 정도이다. 결국에는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다면 다른 이에게도 허용할 수 없다는 마음까지 가지는 것이 아닐까?)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던 톰은 로즈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었던 톰에게 로즈는 모든 것이자 삶의 이유였다. 그래서 너무 행복했지만 너무 불안했던 나날들.

로즈와 결혼한 톰은 딸 매리언을 낳고 살지만 그 시간은 오래지 않았다. 로즈와 매리언을 위해 결국 톰은 떠날 수 밖에 없었고, 그 오랜 세월 그들을 그리워하다 찾아갔지만 로즈는 전염병에 걸렸고, 딸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유는 매리언이 톰과 같은 '앨버'였기 때문이었다.

로즈의 죽음 이후 톰은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지만 로즈의 유언대로 딸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 톰은 헨드릭(소사이어티라는 조직을 만든 그는 자신들의 위협으로부터 앨버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을 만나 소사이어티에 가입?하게 된다. 헨드릭은 톰에게 딸 매리언을 꼭 찾아주겠다고 한다. 물론 여러가지 조건을 내걸었지만. 그 중의 한가지는 '사랑'이었다. 헨드릭은 톰에게 절대로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한다. 자신들이 이 세상에 살아가기 위해 가장 불필요한 것이 '사랑'이라면서.

과연 톰은 사라진 딸 '매리언'을 만날 수 있을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톰은 로즈와 사랑에 빠졌었고, 사랑을 했었다. 그 기억은 시간이 아주 오래도록 지나도 죽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톰은 다시 사랑에 빠진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어요?"


아니. 사람은 '사랑'없이 결코 살아갈 수 없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사람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결코 발전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유약한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람이기에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한다.

그렇게 미래를 만들어간다.

톰이 그렇듯이.


'시간을 멈추는 법'에 시간을 멈추는 법은 없지만 책을 덮는 순간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순간 혹은 많은 순간 시간을 멈추고 싶은 순간이 어떠한 때인지를 깨닫게 한다.

판타지이지만 결코 판타지스럽지 않은 그저 한 인간이 살아가며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그 수많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그는 이제서야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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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딘성으로 가는 길 -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기억과 약속을 찾아서
전진성 지음 / 책세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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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베트남전 참전군인이시다.

어렸을 적 집에 있던 어두운 다락에서 우연찮게 꺼낸 낡은 앨범에서 나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수영바지만 입은채 바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던 아버지와 동료들. 바나나 다발을 메고서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지와 동료들.

많은 사진들 속에서 나는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그 사진들과 함께 아버지께서 베트남에서 한국에 있는 어머니께 쓰신 편지들에도 그저 부모님과 어머니와 어머니 배속에 있던 아기를 걱정하는 애틋한 감정만이 느껴질 뿐 전쟁의 참혹함은 쓰시지 않으셨다.

게다가 고등학교때까지 배운 교육에서 베트남전은 우리나라의 용감한 군인들이 미국을 돕기 위해, 베트남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파병되어 열심히 싸웠다고만 쓰여져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베트남전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우연히 잡지 '말'에서 베트남전에서 행해진 고엽제피해 특집기사를 읽게 되었다. (사실 M방송사에서도 방송되었지만 너무 참혹한 모습에 상당부분 영상화하지 못했다는 자막이 나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몇십년, 몇백년일지도 모르는 고엽제의 독성에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물론 우리나라의 참전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위험성을 알면서도 헬기로 우리나라 군인들의 맨손으로 뿌리게 했던 고엽제는 단 한가지 이유였다. 우거진 밀림이 거슬려서. 베트콩들을 더 잘 볼 수 있게 하려고.

그 일이 계기로 나는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들을 찾아보았다. (그 해에는 아마도 안정효 소설 '하얀전쟁'이 개봉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조심스레 아버지께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들을 묻게 되었다.

아버지는 베트남전 끝무렵('72~'73)에 베트남에 가게 되었다고 하신다. 사실 너무 가기 싫어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가게 되신 것인데 가자마자 자다가 전갈에 물려 죽다가 살아나셨다면서 그때의 기억에 몸서리를 치셨다. 아버지의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아버지는 전쟁 끝무렵이었고 후방이었고 운이 좋았다고 하셨다. 그래서였는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만약 기회가 된다면 베트남에 한번 가보고 싶으시다고 하신다.

'과연 베트남에서 아버지를 환영할까요?'

라고 속으로만 되물었다.

처참하게 쓰여진 한국군 '증오비'를 안 순간 나는 두려웠다.

베트남인들에게 명백하게 가해자인 참전군인이 과연 환영받을 수 있을런지, 참전군인이었다라는 말을 하는 순간 그들이 싸늘하고 증오의 눈빛을 보내지 않을까?



[적대감은 공포에서 오고 공포는 무지에서 오는 법이다.]

                   -빈딘성으로 가는 길 p39


이 책 '빈딘성으로 가는 길'은 고 박순유 증령의 따님 박숙경씨가 자신의 아버지가 잠든 베트남 빈딘성을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엄연히 베트남전에서 무고한 베트남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그 학살을 감행한 참전군인들이 악해서가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고도로 계획된 미국의 계략으로 인해 한국 참전군인들은 그들이 가장 처리하기 싫은 일들을 노예부리듯 시켰다. 참전군인들은 자신들의 행한 일들이 나라를 구하고, 나라를 번영하게 하는 애국의 길이라고 정말로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심지어 전쟁 끝무렵이어서 베트남에서의 하루하루가 쉬웠다는 나의 아버지도 결국 고엽제의 피해자로 위암으로 고생하셨다. (정말로 쉬운 하루였다고 믿지 않는다. 아마도 아버지도 두렵지 않으셨을까? 어둠 저편에 버린 기억들은 잊었다고 생각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일테니까.)

게다가 가스통으로 시민들을 위협하는 베트남참전군인들의 모습을 언론에서 보면 아버지는 인상을 쓰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적어도 아버지는 그들이 보수정권의 하수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또한 오랜세월 박정희정권이 참전했던 군인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이용하고 버렸던 것을 알고 계신다. 사실 참전군인들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인정하기 싫을뿐.


사과와 용서


이 두 가지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누구도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으며, 또한 아무리 진정성있는 사과를 하더라도 그것을 용서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게다가 사과를 하는 사람도 용서를 하는 사람도 모두 망자의 길로 떠나갔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베트남에 사과해야 하며 그들에게 용서받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그들을 마주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수없이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요구하면서 베트남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모른 척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길 중의 하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전하는 이야기는 늘 편협할 뿐이다. 과거로부터 떨어져 나온 파편들의 자의적인 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달리 어찌하랴. 이야기를 통해 이어붙이지 않는다면 그 파편들마저 이내 종적을 감추고 말테니. 다만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이야기가 결코 완결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늘 타인의 목소리임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유령의 울부짖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빈딘성으로 가는 길 p150~151


이번 추석에 긴 시간을 아버지와 보내려고 한다. 서로 외면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가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아버지는 참전군인이었고, 나 또한 아버지의 자식임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오래전에 해야 했던 말을 함께 하고 싶다.


"미안해요,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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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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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쓸 줄 아는 세 사람은." 오즈마가 말을 꺼냈다. "저랑 글린다, 그리고 오즈의 마법사예요. 우리 세 명은 마법을 올바르게 쓴답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제가 그렇게 판단했으니까요. 저는 이 나라의 지배자예요. 모든 일은 제 판단에 따라 결정됩니다."

"오즈마는 틀리지 않아?" 빌은 끈질기게 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이다.

마치 데스노트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데스노트의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악의 심판자 자리를 부여하게 된다. 과연 그것은 올바른 것일까?

(우리에게도 누군가가 이와 같이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나쁘다고 결정하면 나쁘고, 자신이 좋다고 결정하면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 누군가의 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정말 그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했을까? 그 결정이 옳다고 생각했을까?)


스스로, 혹은 오즈의 나라의 모든 이들이 자비롭다고 생각하는 오즈의 여왕이 지배하는 오즈의 나라.

그 나라에 불시착?한 도마뱀 빌은 말라죽을 뻔했지만 다행히 도로시 일행(도로시, 사자, 양철나무꾼, 허수아비-근데 강아지는?)에게 발견돼 위기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자신이 있는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오즈의 나라라고 하니 오즈의 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빌.

여차저차하여 많은 이들에게 '이상한 나라'에 가는 법을 묻지만 아무도 알지 못한다.

게다가 오즈의 여왕 생일파티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누구나 꿈꾸는 범죄가 없는 나라 오즈. 하지만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과연 범인은 누구?!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독특한 이야기 구성으로 (어쩌면 세심하게 추리하다보면 범인은 금방 알 수도 있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꼭 다 읽고나서 아, 그 복선이 그거였구나. 라는 깨달음이...ㅜㅜ) 즐거운 책이었다. 아니 즐겁다기 보단 현란하다고 할까?

-독특했던 구조는 거울의 이쪽과 저쪽 이랄까? 지구의 누군가가 오즈의 나라에 있는 누군가의 아바타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구의 이모리는 도마뱀 빌의 아바타라인 것이다. 게다가 더욱 독특한 설정은 오즈의 나라에 있는 존재가 죽으면 지구에 있는 그 존재의 아바타라는 죽지만 지구에 있는 아바타라가 죽어도 오즈의 나라에 있는 존재는 죽지 않는다, 라는 설정은 결국 본질은 지구가 아니라 오즈의 나라에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여튼 오즈의 나라에서의 살인이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오즈의 나라와 지구에서는 각자가 살인의 전모와 범인을 찾기 시작하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과연 유토피아는 있을까?

있다면 그곳은 정말 완벽한 유토피아일까?

그리고 그 완벽한 유토피아에서 산다면 행복할까?


가벼울 것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도마뱀 빌이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에 깊은 생각을 하게 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책이었다.

(이 책을 처음 읽으면 역주행한다고 하던데 정말이지 역주행하게 된다. 나 또한 앨리스 죽이기와 클라라 죽이기를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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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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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우리는 과연 10년 후, 20년 후의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했다.

그때는 아마도 현실의 지금 모습을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지금의 평범한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뭐, 물론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우울하고, 적당히 긍적적인 사람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 모습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인생의 모토는 '후회하지 말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야기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열심히 할걸, 좀 더 열심히 공부할걸, 좀 더 열심히 일할걸, 혹은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선택을 했더라면 등등 말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선택은 다르지 않을거라고.

(물론 과거로 돌아갈 경우 기억 자체도 없는 것으로 한다면 말이다. 기억 자체가 있는 과거로의 여행이라면 물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만약(if) 이라는 설정이 싫다.


이 책 유정아 님의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를 처음 볼때는 뭐, 그저 그런 일상적인 에세이겠지. 뭐 결국 세상은 아름다워?!라는 이야기겠지. 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책장을 펼쳐 한장 한장 읽어 내려가자 나는 울고 싶어졌다.


[죽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곁에 있는 누구가를 생각해 살아보라고 말하는 건 잔인한 짓이다. 그건 죽지 말아야 할 이유일뿐, 살아야할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억지로 대학에 복학한 나를 진짜로 '살게' 만든 건 커피였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이면 학교 안 카페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한잔 사곤 했는데, 2년간 학원비와 책값을 대느라 껌 한 통도 마음 놓고 사지 못하던 내게 그 커피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삶의 여백이었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들은 그간 내가 매몰되어 있었던 수험 생활 밖에도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다른 삶을 궁리할 수 있게 되자 의욕이 생겼다. 나는 그제야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토록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주변에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턱대고 죽지 말라며 우기는 일은 하지 않기를 권한다. 정말 도와주고 싶다면 차라리 작은 선물을 해 주거나 차 한잔 주는 게 백배 낫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삶을 버텨 내야 할 이 유가 아니라, 괴로움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작은 일상이다.]

                                      -p171~174/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죽지 말아야 하는 이유, 살아야 하는 이유 중에서)

 


절망하고 싶지 않다고, 불행하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바래도 세상은 녹록치 않아 쉽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이 넘의 짧은 인생에 행운이나 행복은 없을지도 모른다. 잠시 잠깐 즐겁고 행복할 수 있지만 그것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마치 신기루 같은 행복을 찾아서 얼마나 더 힘들어야하나? 하는 생각에 지친다.

화이팅, 열심히 해. 괜찮아질거야. 라는 이런 말들도 더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 있어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결코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의 잘못이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아무리 성실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발버둥쳐도 극복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내가 더욱더 성실해야 하며 더욱더 노력해야 하며 더욱더 발버둥쳐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시시한 사람'이라는 건 우리의 모습이다. 정말 말 그대로 시시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세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위로란 그 수많은 화이팅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옆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다만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하기로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동경하듯 내 일상을 꿈처럼 바라보는 이들도 있으리란 것과, 내가 생각 없이 내뱉는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에 상처받을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

이유는 하나뿐이다. 최소한 내가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짓만은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못난 나라도, 그리고 앞으로 더 못나고 찌질해지더라도, 그렇게 잔인한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아서다.]

                               -p157~158/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아무것도 아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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