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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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우리는 과연 10년 후, 20년 후의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했다.

그때는 아마도 현실의 지금 모습을 상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이 지금의 평범한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뭐, 물론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우울하고, 적당히 긍적적인 사람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 모습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인생의 모토는 '후회하지 말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야기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좀 더 열심히 할걸, 좀 더 열심히 공부할걸, 좀 더 열심히 일할걸, 혹은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선택을 했더라면 등등 말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선택은 다르지 않을거라고.

(물론 과거로 돌아갈 경우 기억 자체도 없는 것으로 한다면 말이다. 기억 자체가 있는 과거로의 여행이라면 물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만약(if) 이라는 설정이 싫다.


이 책 유정아 님의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를 처음 볼때는 뭐, 그저 그런 일상적인 에세이겠지. 뭐 결국 세상은 아름다워?!라는 이야기겠지. 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책장을 펼쳐 한장 한장 읽어 내려가자 나는 울고 싶어졌다.


[죽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곁에 있는 누구가를 생각해 살아보라고 말하는 건 잔인한 짓이다. 그건 죽지 말아야 할 이유일뿐, 살아야할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억지로 대학에 복학한 나를 진짜로 '살게' 만든 건 커피였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이면 학교 안 카페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한잔 사곤 했는데, 2년간 학원비와 책값을 대느라 껌 한 통도 마음 놓고 사지 못하던 내게 그 커피는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삶의 여백이었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들은 그간 내가 매몰되어 있었던 수험 생활 밖에도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다른 삶을 궁리할 수 있게 되자 의욕이 생겼다. 나는 그제야 죽고 싶다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토록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주변에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턱대고 죽지 말라며 우기는 일은 하지 않기를 권한다. 정말 도와주고 싶다면 차라리 작은 선물을 해 주거나 차 한잔 주는 게 백배 낫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삶을 버텨 내야 할 이 유가 아니라, 괴로움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작은 일상이다.]

                                      -p171~174/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죽지 말아야 하는 이유, 살아야 하는 이유 중에서)

 


절망하고 싶지 않다고, 불행하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바래도 세상은 녹록치 않아 쉽게 행복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이 넘의 짧은 인생에 행운이나 행복은 없을지도 모른다. 잠시 잠깐 즐겁고 행복할 수 있지만 그것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마치 신기루 같은 행복을 찾아서 얼마나 더 힘들어야하나? 하는 생각에 지친다.

화이팅, 열심히 해. 괜찮아질거야. 라는 이런 말들도 더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 있어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결코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의 잘못이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아무리 성실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발버둥쳐도 극복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내가 더욱더 성실해야 하며 더욱더 노력해야 하며 더욱더 발버둥쳐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시시한 사람'이라는 건 우리의 모습이다. 정말 말 그대로 시시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세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위로란 그 수많은 화이팅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옆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다만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하기로 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동경하듯 내 일상을 꿈처럼 바라보는 이들도 있으리란 것과, 내가 생각 없이 내뱉는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에 상처받을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

이유는 하나뿐이다. 최소한 내가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짓만은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못난 나라도, 그리고 앞으로 더 못나고 찌질해지더라도, 그렇게 잔인한 사람만은 되고 싶지 않아서다.]

                               -p157~158/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아무것도 아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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