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딘성으로 가는 길 -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의 기억과 약속을 찾아서
전진성 지음 / 책세상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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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베트남전 참전군인이시다.

어렸을 적 집에 있던 어두운 다락에서 우연찮게 꺼낸 낡은 앨범에서 나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수영바지만 입은채 바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던 아버지와 동료들. 바나나 다발을 메고서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지와 동료들.

많은 사진들 속에서 나는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그 사진들과 함께 아버지께서 베트남에서 한국에 있는 어머니께 쓰신 편지들에도 그저 부모님과 어머니와 어머니 배속에 있던 아기를 걱정하는 애틋한 감정만이 느껴질 뿐 전쟁의 참혹함은 쓰시지 않으셨다.

게다가 고등학교때까지 배운 교육에서 베트남전은 우리나라의 용감한 군인들이 미국을 돕기 위해, 베트남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파병되어 열심히 싸웠다고만 쓰여져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베트남전의 진실을 알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우연히 잡지 '말'에서 베트남전에서 행해진 고엽제피해 특집기사를 읽게 되었다. (사실 M방송사에서도 방송되었지만 너무 참혹한 모습에 상당부분 영상화하지 못했다는 자막이 나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몇십년, 몇백년일지도 모르는 고엽제의 독성에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물론 우리나라의 참전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위험성을 알면서도 헬기로 우리나라 군인들의 맨손으로 뿌리게 했던 고엽제는 단 한가지 이유였다. 우거진 밀림이 거슬려서. 베트콩들을 더 잘 볼 수 있게 하려고.

그 일이 계기로 나는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들을 찾아보았다. (그 해에는 아마도 안정효 소설 '하얀전쟁'이 개봉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조심스레 아버지께 베트남전에 대한 이야기들을 묻게 되었다.

아버지는 베트남전 끝무렵('72~'73)에 베트남에 가게 되었다고 하신다. 사실 너무 가기 싫어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다 가게 되신 것인데 가자마자 자다가 전갈에 물려 죽다가 살아나셨다면서 그때의 기억에 몸서리를 치셨다. 아버지의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았다. 아버지는 전쟁 끝무렵이었고 후방이었고 운이 좋았다고 하셨다. 그래서였는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만약 기회가 된다면 베트남에 한번 가보고 싶으시다고 하신다.

'과연 베트남에서 아버지를 환영할까요?'

라고 속으로만 되물었다.

처참하게 쓰여진 한국군 '증오비'를 안 순간 나는 두려웠다.

베트남인들에게 명백하게 가해자인 참전군인이 과연 환영받을 수 있을런지, 참전군인이었다라는 말을 하는 순간 그들이 싸늘하고 증오의 눈빛을 보내지 않을까?



[적대감은 공포에서 오고 공포는 무지에서 오는 법이다.]

                   -빈딘성으로 가는 길 p39


이 책 '빈딘성으로 가는 길'은 고 박순유 증령의 따님 박숙경씨가 자신의 아버지가 잠든 베트남 빈딘성을 찾아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엄연히 베트남전에서 무고한 베트남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그 학살을 감행한 참전군인들이 악해서가 아니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고도로 계획된 미국의 계략으로 인해 한국 참전군인들은 그들이 가장 처리하기 싫은 일들을 노예부리듯 시켰다. 참전군인들은 자신들의 행한 일들이 나라를 구하고, 나라를 번영하게 하는 애국의 길이라고 정말로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심지어 전쟁 끝무렵이어서 베트남에서의 하루하루가 쉬웠다는 나의 아버지도 결국 고엽제의 피해자로 위암으로 고생하셨다. (정말로 쉬운 하루였다고 믿지 않는다. 아마도 아버지도 두렵지 않으셨을까? 어둠 저편에 버린 기억들은 잊었다고 생각되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일테니까.)

게다가 가스통으로 시민들을 위협하는 베트남참전군인들의 모습을 언론에서 보면 아버지는 인상을 쓰시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적어도 아버지는 그들이 보수정권의 하수인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또한 오랜세월 박정희정권이 참전했던 군인들의 고혈을 쥐어짜고 이용하고 버렸던 것을 알고 계신다. 사실 참전군인들 대부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인정하기 싫을뿐.


사과와 용서


이 두 가지는 이 세상에서 인간이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 누구도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으며, 또한 아무리 진정성있는 사과를 하더라도 그것을 용서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게다가 사과를 하는 사람도 용서를 하는 사람도 모두 망자의 길로 떠나갔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베트남에 사과해야 하며 그들에게 용서받아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그들을 마주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수없이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요구하면서 베트남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모른 척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길 중의 하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전하는 이야기는 늘 편협할 뿐이다. 과거로부터 떨어져 나온 파편들의 자의적인 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달리 어찌하랴. 이야기를 통해 이어붙이지 않는다면 그 파편들마저 이내 종적을 감추고 말테니. 다만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이야기가 결코 완결된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늘 타인의 목소리임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든 유령의 울부짖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빈딘성으로 가는 길 p150~151


이번 추석에 긴 시간을 아버지와 보내려고 한다. 서로 외면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가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아버지는 참전군인이었고, 나 또한 아버지의 자식임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오래전에 해야 했던 말을 함께 하고 싶다.


"미안해요,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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