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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이기주 지음 / 청조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제목이 평소 내가 생각했던 바와 같아서도 있지만 저자가 기자라는데 기자는 얼마나 글을 잘 쓰는가 알고 싶어서였다. 페이지마다 글자 수가 빽빽하여 숨이 막히지도 않고 또 문장이나 단어가 어렵지 않아 쉽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정형적인 잘 쓴 글이다. 누구나 쉽게 재미나게 읽을 수 있어서다. 늘 그렇듯 책의 표지도 보고 저자의 사진도 훑어보고 프롤로그며 목차도 꼼꼼히 읽어본다. 경제, 정치부 기자라던데 관련 내용은 전혀 없다. 책은 저자가 평소 일상에서 만났던 이름 모를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엮어있다. 저자의 이웃이자 어쩌면 나의 이웃일지도 모를 이들이 이야기이다.
P19 “내게 주어지는 하루를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로 여기기로 했지. 다만 결심을 했다네. 다른 건 잊어도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 같은 소중한 것들은 절대로 잊지 말자고...”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나도 평소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늘 젊은 날을 살고 싶기에 말이다. 물론 노화라는 걸 피할 수 없고 어찌 보면 오늘은 어제보다 하루 더 늙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늙어감을 한탄하는 것보다 젊을 오늘을 산다고 생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래서 김광석의 <서른 즘에> 노래도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보다 매일 만나며 살고 있다가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책에서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경비아저씨의 사연, 치매로 기억의 단절이 있으신 것이었다. 그래도 과거 기억이 옅어짐에 한탄하시지 않고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다.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라고. 메모는 아저씨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나도 아저씨처럼 적어본다.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것들을.
P55 어머니랑 존재는 어쩌면 잉태와 출산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미천한 생명으로 탄생한 우리에게, 신이 선사하는 첫 번째 행운인지도 모른다.
신이 모두를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어머니와의 인연, 그 특별한 인연은 저자가 말하는 행운인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어머니가 있는 행운아이다. 살아가며 길을 잃거나 방황하더라도 곁에 있는 것 만으로 힘이 되고 용기가 되는 사람이 어머니다. 나도 우리아이에게 그런 어머니가 되고 싶다.
책의 소재가 내 이야기 같기도 하고 내 주변의 이야기 같기도 해서 공감이 간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라서 그럴 것이다. 마트에서 희망을 굽는 아가씨의 사연을 읽으며 지난날을 떠올려본다. 나도 마트에서 행사알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재밌게 일했고 그때 나도 아가씨처럼 꿈이 있었다. 채소를 파시는 할머니 이야기도 내 마음을 두드린다. 자신의 가게를 가지겠다는 할머니의 꿈, 때론 노인에게서도 젊음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딱 맞다. 할머닌 꿈을 꾸기에 언제나 젊은이다.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꿈을 잠시 잊고 지내기도 하는데 할머니가 내게 다시 꿈꾸도록 자각시켜주셨다. 책 곳곳에서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저자의 마음씀씀이가 예쁘다.
책은 읽고 싶은데 시간은 없고 마음이 바쁘고 삭막할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돌보아야할 아기가 있어 예전처럼 마음대로 책을 읽지는 못하지만 책이 짤막짤막하게 에세이형식으로 되어있어 끊어 읽기 좋았다. 아기는 자고 라디오 들으며 책 읽는 순간, 세상에 평화가 깃들어 평온하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