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적은 말한다 -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
구본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이번주 '뉴스 후'를 보고 여러가지를 생각했다. 미실이 등장한다는 <화랑세기>는 필사본으로 그 진위의 여부 때문에 미실의 존재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 이 <화랑세기>는 일본에서 적어왔다는데 일본에 원본이 있다는 이야기? 이토 히로부미가 규장각에서 빌려간 (대출목록엔 이름이 등재되어 있지 않으니 엄밀히 말하면 훔쳐간) 고서가 3000권이고 그 연체료만 해도 37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어림잡아 일본에 있는 한국고서는 5만권에 이른다고 한다. 이럴수가. 정조는 다독가였다고 한다. 책수집이 취미여서 신하들이 청에서 진귀한 책들을 구해오면 몹시 기뻐했다고 한다. 정조가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지키지 못한다는 건 큰 죄다. 이제라도 우리의 문화재들을 돌려받도록 힘써야지 않을까.  

  이토 히로부미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렀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우리 지폐에 안중근 의사가 선정된다면 어떻게 될까. 외교에 지장이 있으려나. 개인적으로 5만원권 도안인물에 신사임당 말고 유관순 열사가 선정되었으면 했는데. 신사임당 위인인 것은 인정하는데 시대상에는 조금 부적합한 것 같다. 21세기 진취적인 여성상이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뉴스 후'를 통해 기록이란 것에 대해 재고를 해보았다. (고문서 읽으시는 여성분 멋지셨어요. 나 한자 잘 못하는데 다시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리고 우연히 이 책과 마주쳤다. 필체는 사람의 특징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은 알고 있었던 터라 더욱 구미가 당겼다. 이 책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도 안중근 의사의 글씨도 다 만나볼 수 있다. 친절도 해라.  

  저자의 직업은 검사라고 한다. 증거 모으듯 모으는 것이 버릇이 된 것 같다. 검사가 되기 전에도 수집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니 직업적 특징이 아니고 작가의 본질적인 특징일지도. 나는 수집하는 것을 좋아지 않으나 (정리를 못해서 싫어한다. 책도 소장안한다.) 수집에 소질이 있는 저자 덕분에 평소 존경했던 인물들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어 고마웠다.  

  저자는 수집하기엔 간찰이 비교적 가격적인 면에서 저렴하다고 했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 글씨의 아름다움이란 정말 소장의 가치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왜 싸지? 아이러니하게 말이다. 아직은 저자의 말처럼 간찰의 가치가 낮게 형성되어 있는 것 같다. 저자에겐 고맙고도 애석한 일이다. 처음엔 무턱대고 수집하던 저자는 항일과 친일이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수집을 하게된다. 자신의 수집을 재미를  더하기위한 방편이었던 것이 이 책의 모티브가 된 것이겠지.  

  뇌의 지문, 뇌의 흔적 글씨를 살펴보면 사람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단다. 글자체로 성격을 분석하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잘 적어두었다. 난 평소 지나치게 글씨를 작게 쓰는 경향이 있어 소심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고민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책에선 항일과 친일한 인물들의 글씨를 꼼꼼히 비교해 주었는데  대체적으로 항일 운동가는 글자의 크기가 작고 모양이 정사각형으로 균형이 잡히고 유연성은 떨어지며 글자간격이 좁고 행의 간격은 넓고 규칙성이 있으며 글을 쓰는 속도는 떨어진다고 한다. 약간 바른 생활형이라고 할까. 한마디로 글자를 또박 또박 쓰는 타입. 친일파들의 글은 항일 운동가와는 반대로 크기가 크고 모양이 좁고 긴 형태이며 유연하고 글자의 간격이 넓으며 행의 간격이 좁고 규칙성이 없고 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유연성이 뛰어나다고 할까. 자유분방하달까. 항일은 좋고 친일은 나쁘다. 그러나 항일의 글자는 좋고 친일의 글자는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대체적인 그런 특징을 보였다는 것. 그리고 그런 특징을 벗어나는 인물들도 있다. 내가 놀란건 이완용이 당시 명필가였다는 것. 서체라면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의 눈에도 잘 써 보였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 때문에 현재 높게 평가되지 않는단다. 오적이지만 잘 썼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단정한 글도 인상적이다.  끝까지 독립운동에 힘쓴 여운형 선생과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로 돌아서는 몽양의 동생 여운홍, 두 형제의 글씨체를 비교 하는 것도 재미있다. 친일관료 조민희씨의 글씨는 불안정하고 혼란스럽댔는데 내가 받은 느낌은 부드러움과 자유로움이었다. 

  저자는 따뜻한 사람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친일한 자들도 가련하게 보는 눈을 가졌으니. 최린은 기미독립운동에 참여하지만 훗날 변절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된다. " 민족 앞에 죄지은 나를 광화문 네거리에서 사지를 찢어 죽여라", '자결하거나 망명하거나 일제에 협조할 수밖에 없던 사면초가의 상황' 어쩌면 그를 욕할 자격이 내게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상황에서 장담을 못하겠기에. 변절이란 인간의 나약하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반면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을 나의 아이의 머리에, 가슴에 새겨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글씨 수집 방법까지 자세히 알려준다. 부록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글씨체 설명과, 역대 대통령의 글씨체 분석까지 저자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글씨는 그 사람의 또 하나의 모습이구나란 생각이 들어 예쁘게 적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기록의 섬뜩함도 느꼈다. 별별 것이 다 기록되고 보관되고 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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