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재단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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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유독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바닷가에 가도 바닷물에 들어가기 보다는 모래사장 파라솔밑에서 책을 읽거나 태닝을 하거나 한다.

계곡에 놀려가도 나무가 우거진 시원 자리를 찾아 맑은 공기를 마시는것에 집중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바다나 계곡에 물놀이를 하러 가지만 나는 그렇치 않다.

내가 네다섯살 되던해 여름에 동네 냇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적이 있었다는 말을 엄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내 기억속에는 물에 빠져 허우적되던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

어린나이에 강제적으로 지워 버렸던지. 정말 기억에서 저절로 사라졌든지. 결론은 물에 빠진 기억은 없지만 물에 빠진 경험은 있다

이렇게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험으로 인해 나는 물을 싫어 한다.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트라우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강렬하게 남아 있는 좋지 않는 기억으로인해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도 잔상의 기억들로 인해 하지 못하는 것. 나의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는 그런 잊지 못하는 나쁜 기억들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따라다닌다.

일본소설[여름의 재단] 책속 주인공 치히로 역시 어릴적 좋지 않은 경험으로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여자로서 겪어야 했던 수치심.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아픔. 여러 남자들을 만나면서 헤어지고 상처받으면서 스스로를 갇혀 놓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점점 자신이 만들어 놓았던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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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익히지 않으면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될 거야.

작가인 치히로는 편집사 시바타를 좋아한다.

하지만 시바타는 치히로를 가지고 놀고 있는듯. 치히로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종잡을수 없는 시바타의 행동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던 치히로는 결국에는 큰 상처를 받고 본가 집으로 내려와 재단을 하기 시작한다.

재단이란. 책을 자르는 일이다. 싹둑 잘라서 데이터로 컴퓨터에 저장한 후에는 폐지로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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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는 건 약하다는 말과 동의어라는 것을. 흔들리지 마, 이 이상 흔들지 말라고. 기억 나게 하지 말라고.

시바타는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치히로에게 병적으로 보일정도의 오락가락 감정을 내비친다.

머리를 쓰담다가도 다시 밀쳐버리고 치히로가 다가서면 도망가 버리고.

책을 읽는내내 감정이입이 되어서 치히로에게 "그남자는 아니야!"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제멋대로인 남자 시바타는 여자를 행복하게 해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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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씨 때도 나는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 거부하지 못하는 나약함을 혐오할 만큼, 빼앗긴 걸 되 찾으려 필사적이었다.

치히로는 처음부터 시바타와의 관계가 잘못된 관계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시바타의 알수없는 행동을 거부할수 있는 용기도 없었다.

아마도 그만큼 시바타를 좋아하기도 했고, 1%의 가능성에 쉽게 놓치 못했을 것이다.

모든것이 지나고나면 눈에 보인다.

우리 역시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아픈 사랑을 해보기도 하고, 안되는 일에 끝까지 집착을 보이며 포기하지 못한다.

모든것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보여지는것들이 그때는 왜 그렇게 거부할 수 없을 만큼 필사적이 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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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걸, 지금의 나라면 조금은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씩 자신의 세계에서 나오고 있는 치히로는 본가를 떠나 도쿄로 간다.

이 소설은 4단락. 4계절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작가로서 책을 재단한다는 것은 손가락을 잘라내는 고통과도 같다고 한다.

이 책에서 여름은 고통을 참아가면서 책을 재단하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상처받는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그리고 가을에 만나는 스쳐지나가는 남자들. 겨울에 만난 남자 그리고 봄의 결론. 치히로가 받았던 사람들로 인한 상처가 계절이 지나면서 어떻게 치유되고 성장되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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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이 정도는 보통이고, 당연한 거라고 믿으려 했지만 몇 번이고 위화감이나 불쾌감, 공포를 느꼈는데, 역시 잘못된게 아니었다. 그렇게 말해도 된다는 걸 배운 기분이었다.

우리는 너무 세상이 정해진 틀속에서 곧이 곧대로 살아가고 있다.

보이는 것만 믿게 되고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치히로 역시 어릴적 격은 일이 아무도 잘못된 일이라고 말해주지 않았기에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정작 치히로 마음은 깊은 상처로 남아 인간관계에서 부터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잘못된게 아닌 란걸 알게 되고 이제는 그렇게 말해도 된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조금씩 그녀만의 세상에서 나오고 있는 치히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레 정리되어 가는 인간관계들. 그리고 또다른 만남들. 그 속에서 알게되는 많은 깨달음.

트라우마 속에 갇혀 살던 그녀의 변화되어가는 이야기에 빠져 단숨에 읽어 버린 [여름의 재단] .

#장편소설#일본소설#나오키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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