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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평점 :
우리 의식은 대서양을 건너는 증기선에 몰래 든 ‘밀항자’와 같다. 이 밀항자는 발밑에 존재하는 거대한 기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여행의 공을 자기 몫으로 돌린다. — p14
카를 융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누군가가 있다.”
핑크 플로이드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 머릿속에 누가 있는데, 내가 아니야.”
어떤 위험 상황을 감지했을 때, 나도 모르게 먼저 몸을 피하게 되거나,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상황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무의식적으로 ..했어.” 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들. 그렇다면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의식’은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놀랍게도, 의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세세한 부분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일의 효율이 떨어진다. 지금 내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이 순간, 내 손가락은 머리속의 생각을 따라 알아서 움직인다. 만약 내가 손가락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의식하기 시작한다면? 나는 더이상 ‘글’에 집중할 수 없고, 그저 ‘손가락’의 감각에만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이렇듯 의식은 뇌에서 일어나는 일의 중심에 있지 않다.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의 속삭임을 먼 가장자리에서 듣기만 할 뿐이다.
“ 우리 자신의 뇌 회로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가장 먼저 간단한 교훈 하나를 얻는다. 행동과 생각과 느낌 대부분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뉴런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정글이 알아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의식을 지닌 나, 아침에 눈을 뜰 때 깜박거리며 살아나는 '나'는 뇌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가장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뇌의 기능에 기대어 내면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뇌는 스스로 쇼를 진행한다. 뇌가 수행하는 작전의 대부분은 우리 의식이 지닌 보안등급을 넘어선다. '나에게는 그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 | p13
이 책은, 스텐퍼드대학교 신경과학과 외래교수 데이비드 이글먼이 이 책의 원제 ‘Incognito인코그니토‘에서 드러나듯 ‘신분을 숨긴’ ‘익명의’ 범인, 즉 우리 무의식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 뇌에 대한 무한한 탐구다. 그는 우리의 모든 판단, 선택, 행동을 죄우하는 1.4킬로그램의 작은 머릿속 독재자가 설계한 세계를 우리에게 펼쳐보인다.
나는 왜 나 자신에게 화가 날까?
술을 마시고 하는 말은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이름이 J로 시작하는 사람이 역시 이름이 J로 시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비밀을 말하고 싶다는 유혹이 그토록 강렬한 이유는?
뇌의 막후활동과 이 모든 일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무의식의 세계에 펼쳐진 ‘나’의 비밀을 수많은 흥미로운 사례들을 통해 탐구하고 이해하기를 돕는다.
“ 세상의 중심에서 굴러떨어진 우리는 이런 식으로 훨씬 더 큰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뇌과학에서 우리가 자아의 중심에서 쫓겨난 뒤, 훨씬 더 찬란한 우주의 모습이 선명해졌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 내면의 우주로 들어가 낯선 생명체들을 탐사할 것이다. ” | 25
막연하게 무의식의 존재 정도만 이해하고 있던 내가 무의식에 이렇게 깊이 사로잡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의 모든 행동과 생각이 ‘나’라는 착각이었던 것이다. 사실은 이 ‘나’는 어디에도 관여하지 못하고 의식의 틀 안에 갇혀있는지도 모른다. 내 삶의 궤적이 나도 모르는 ‘무의식’에 의해 결정되어온 것이라면,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는가? 내 안의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한편으로 든 생각은, 그럴수록 우리의 무의식을 잘 다듬고 무의식에 관여하는 모든 생활 전반의 감각들, 나의 내면으로 주입되는 모든 input을 더 좋은 것들로 채우고, 더 바른 행동과 생각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작은 행동 같은 것들을 ‘의식’적으로 주입해야겠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쌓여서 쓰레기가 내가 된다니까.
우리의 뇌는 철저하다. 모든 감각을 흡수하고 차곡차곡 쌓아둔다. 사실 나는 지난 밤 조금 걱정했다. 뇌과학에 대한 책이기에 내가 제대로 읽고 소화한 것이 맞을까 의심도 들고 과연 무슨 말을 쓸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느꼈던 신기한 그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자, 책을 읽고 나를 깨웠던 그 친절한 사례들, 우리가 손 쓸 수 없는 무의식이 관여하는 모든 선택에 얼마나 더 신중을 기해야 하는지’. 나의 뇌는, 내가 잠든 사이, 천천히 내가 읽고 생각한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프로세싱하고 올바른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접근 가능한 결과값을 도출해두었다. 그리고는 나를 깨웠다. 생각이 정리되었으니 이제는 손가락이 움직일 차례라고. 너는 글을 써야하지 않느냐고. 무의식의 부름을 받고 벌떡 일어나, 나는 지금 이 순간 책상에 앉아있다.
어쩌면 나의 뇌가 ‘열일’한 덕분에 지금껏 유유자적하게 사유의 숲을 거닐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을 채워온 수 많은 ‘내가 아닌 나의 존재들’. 그 존재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 이 책은 분명 우리 자신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제공할 것이고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성장’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조금씩 달리진 나를 계속해서 만들어낼 것이다.
“ 우주가 이렇게 광대할 줄을 우리가 결코 상상하지 못했듯이, 우리 자신이 이렇게 대단할 줄을 직관과 성찰로 알아내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내면 우주의 광대함을 처음으로 언뜻 목격하는 중이다. 우리 내부에 숨어 있는 우주는 자기만의 목표, 책임, 논리를 갖고 있다. 뇌는 우리에게 외계의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기관이지만, 그 세세한 회로 패턴이 우리의 내면생활을 조각해낸다. 뇌는 얼마나 당혹스러운 걸작인지. 그리고 이 뇌에 주의를 돌릴 수 있는 의지와 기술이 있는 시대에 살게 된 우리는 얼마나 행운아인지. 우리가 우주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것. 그것이 뇌이고, 그것이 우리다. ” | 308
“ 우리 뇌는 광대하고, 복잡하고, 자꾸 변하는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 부품들에 거의 접근하지 못한다. 이 책은 몇 년 동안 여러 명의 다른 사람 손에서 집필되었다. 그들의 이름은 모두 데이비드 이글먼이었으나,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조금씩 달라졌다. ” | 311
(도서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