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어둠과 하우스의 빛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54
김연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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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을 보냈던 집에 대한 기억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늘 앞과 뒤가 뒤바뀐듯 잘못 놓인 퍼즐 조각처럼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그래서 위태롭고, 매번 다른 감정으로 기억되는 겹겹의 시간을 안고 있다. 아이들의 소곤거림이 가득하고, 서툴고 다양한 것들이 넘쳐나던 곳. 그 시절의 나는 시시각각 변했다. 어딘가에 머물고 싶었지만 이내 바람을 따라 부유했다. 하지만 해가 지고 붉은 노을이 내 눈 속까지 유난히 길게 들어오는 날이면, 엄마는 구수하고 따뜻한 냄새를 잔뜩 피우며 나를 상에 앉혔다. 그렇게 속을 데우고 마음을 데우고 이제 막 세상에 홀로 선 나를 당신이 가진 온기로 가득 채워냈다.



김연덕 시인에게 시작은
“종이를 열어 나의 오래된 집으로, 아직 죽지 않은 먼지 나는 이야기들이 방마다 파본처럼 흩어져”있는 집의 문을 여는 것이고,

그가 말하는 끝은
“그늘 속에서 편안하게 썩어나가던 이야기가
처음으로 돌아가 쉴 수 있을 때, 아무리 갈아도 입자가 거친 눈 속에 잠시 멈춰선” 채
이제 코트를 챙기고 불을 끈 후 집의 문을 닫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는 집이라는 공간에서만큼은 늘 하나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과거의 내가 때로는 미래의 나를 향한 사랑을 층층이 쌓아두는 곳이었다.

“ 상처 사이에 난 틈 사이로 들어온 ‘다친 빛’이 기억의 문이 되고, 빛의 연약함 속에서 시인은 타인과 공존한다. 빛의 동시성이란 시간의 함께함 다름 아니고, 시간의 함께함은 내가 아닌 그/녀들의 형상 속으로 들어가 기쁨과 슬픔을 함께 겪는다는 것이다. ” | 243, 작품 해설

이미 사라져버린 추억이라해도 희미해짐 그 자체로 여전히 과거의 시간에 나의 마음을 내어준다. 상실이 상실 그 자체로 존재하도록 빈 공간을 아무것으로도 채우지 않는 마음같은 것이 있다.
’오래된 집의 문을 열며’ 그 안에서 어떤 기억을 떠올렸을까. 그 기억은 아마도 “아름다운 작품”일 것 같다.



나의 안과 밖에서는 희고 난폭한 아름다움이 여전히 낭비되고 있고
눈이 오면 잠들어 있던 미래 가장자리부터
완전히 달라진 마음이 몸을 일으켜 깨어나는 곳
서로를 가족이라고 눈을 눈 나를 나라고 부르던
입술들 소리들
어두운 시간마저 고립되는 곳에서
엄마는 나를 처음 읽어준 사람이었다.
| 37, 다친 작은 나의 당당한 흰색

조용하게 살아 있는 잠에서 가끔 깨어나는 이야기는 나를 종종 따뜻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p47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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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어둠과 하우스의 빛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54
김연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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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우리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만큼은 늘 하나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과거의 내가 때로는 미래의 나를 향해 사랑을 층층이 쌓아두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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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물질 문학동네 시인선 229
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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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고 명료하게 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를 향해 끝없이 사유하고 깨닫고 마음을 내어주는 글들. 자연의 일부인 한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 모든 것이 뒤섞인 채 공존하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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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물질 문학동네 시인선 229
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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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쉬는 물질로서의 사람은
자연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나희덕 시인이 말하는 시 속의 인간은
자연의 모든 생물체와 동등한 위치에 선다.
어떤 종보다 우월하지도 않고
이 세계 위에 군림하지도 않으며
그저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해
다시금 물질과 분자, 원소로서의 인간을 상기시켜 준다.

어려운 단어나 혼미한 문장구조는 없다.
명료하고 담백하게 써내려간 글들에서
시를 통해 하고싶은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상상하고 나름의 추측을 해야 하는 단계가 생략되니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투명하게 비쳐보였다.

“ 사람은 결코 혼자 살 수 없다는 것.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자연이라는 관념을 벗어나 생태계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것
인간만이 세상의 주체라는 믿음을 벗어나는 것 ”
| 126

+ 생물학, 생태학 같은 여러 저서를 참고하여 쓰여진 글들이 자주 등장해서 사실은 그런 분야를 연구하시는 분인가 싶기도 했는데 (전혀 아니었고) 이 시들은 작가가 이뤄낸 사고의 확장이며 독자와의 소통과 메세지를 전하는 매개체가 였다. 덕분에 우리가 지켜야할 자연과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 한 편의 시가 폭발물도 독극물도 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수많은 시가 태어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세상에서, ” p66

#느좋 컨셉도 물론 좋고, #텍스트힙 도 좋지만
꼭 생각해봐야 할 주제를 던져주는 글과
그것을 통해 생각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지루하지만 애써서 지켜내고 끊임없이 쌓아야 하는 시간들,
‘나’라고 한정된 바운더리를 더 넓혀가는 과정은
‘느낌 좋은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시를 읽는 것도, 시를 통해 사고를 확장하는 것도
나를 갈고 닦아 더욱 유연하게
이 세상과 합을 맞춰나가는 일임을 깨닫는다.

“ 세상에 무엇을 건넬 것인가.
나희덕 시인이 그리는 삶의 자세는
인간을 포기하거나 인간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넓히고 인간 그 이상으로 다시 그리는 일에 가깝다.
시인의 ‘마음 한 조각’을 버리고 얻는 것은
다시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림이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향해
자기 마음까지 증여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자신을 내던질 때
비로소 인간은 인간 그 이상일 수 있을 것이다. ”
| 143

#시와물질
#나희덕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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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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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

|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한국이란 무엇인가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진다. 사실 김영민 교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덜컥 책을 들었다. 제목이 ‘한국이란 무엇인가’ 아니던가. 이 시국에, 더 없이 한 나라의 정체성을 곤고히 해야할 시기에. 마치 인생일대의 과제처럼 꼭 읽어야 할 책이었다.

그보다 앞서 나는 정치의 ‘정’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이 글은 내게 정치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 개인의 사유를 읽는 수단이 되었다.

제목에서 퍼져나오는 아우라때문인지 한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누어 거대한 정치적 개념을 설명할까 싶어 잔뜩 긴장한 채 시작했던 우려와는 달리, 여러 주제로 익숙했던 개념을 새롭게 재정립하는데, 거기에 쓰인 말들이 거침없이 시원하게 질주하는 듯하고, 위트까지 있다. 글이 재밌어서 술술 읽힌다. 출판사에서 왜 필사북까지 만들었을까 싶었는데 필사를 부르는 문장들이 즐비해있다.

단군신화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려는 존재의 몸부림에 대해 생각을 할 줄 누가 알았던가. 웅녀가 문명화를 위해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인간, 변화를 위한 자기 통제를 해내는 인간이라니. 이 얼마나 차원을 넘어서는 정의인지.

또한 정권의 교체로 나는 또 다른 타자에의 의지를 이어가는 것은 아닌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고 나를 포함한 이 세계가 변할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나 스스로 주체적인 개인이 되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비로소 자유누리고 개인의 권리를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잃어버린 자, 그는 과연 살아있는 건가. 추구하던 가치를 잃어버린 자, 그는 과연 살아 있는 건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수장고가 파괴될 때 시인 팔라다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삶은 그저 꿈. 우리가 목숨을 부지해도 우리가 수호해온 삶의 방식은 죽어버리겠지.” — p285

|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제도 개편이 아니라 사유의 전환, 정치적 성과가 아니라 언어의 발명, 지도자의 등장보다 국가를 바라보는 시선의 재구성이다.. — 책 소개 에서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조차도 버거울 때, 타인의 사유에 기대어 잠시 숨을 돌려도 좋겠다. 그 아늑함에 빠져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것도 잠시, 어느 새 편안한 둥지를 떠날 것이고, 자유를 갈망할 것이다. 분투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받아들이며 불안을 그대로 안고, 나 라는 한 사람의 고요한 사유를 이어나갈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고 싶어지는 새로운 분투’를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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