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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4월
평점 :
한국을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겠다.
|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한국이란 무엇인가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진다. 사실 김영민 교수가 누군지도 모르고 덜컥 책을 들었다. 제목이 ‘한국이란 무엇인가’ 아니던가. 이 시국에, 더 없이 한 나라의 정체성을 곤고히 해야할 시기에. 마치 인생일대의 과제처럼 꼭 읽어야 할 책이었다.
그보다 앞서 나는 정치의 ‘정’자도 잘 모르는 사람이라 이 글은 내게 정치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 개인의 사유를 읽는 수단이 되었다.
제목에서 퍼져나오는 아우라때문인지 한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누어 거대한 정치적 개념을 설명할까 싶어 잔뜩 긴장한 채 시작했던 우려와는 달리, 여러 주제로 익숙했던 개념을 새롭게 재정립하는데, 거기에 쓰인 말들이 거침없이 시원하게 질주하는 듯하고, 위트까지 있다. 글이 재밌어서 술술 읽힌다. 출판사에서 왜 필사북까지 만들었을까 싶었는데 필사를 부르는 문장들이 즐비해있다.
단군신화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려는 존재의 몸부림에 대해 생각을 할 줄 누가 알았던가. 웅녀가 문명화를 위해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인간, 변화를 위한 자기 통제를 해내는 인간이라니. 이 얼마나 차원을 넘어서는 정의인지.
또한 정권의 교체로 나는 또 다른 타자에의 의지를 이어가는 것은 아닌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새로운 사람이 나타났다고 나를 포함한 이 세계가 변할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나 스스로 주체적인 개인이 되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비로소 자유누리고 개인의 권리를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잃어버린 자, 그는 과연 살아있는 건가. 추구하던 가치를 잃어버린 자, 그는 과연 살아 있는 건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수장고가 파괴될 때 시인 팔라다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삶은 그저 꿈. 우리가 목숨을 부지해도 우리가 수호해온 삶의 방식은 죽어버리겠지.” — p285
|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제도 개편이 아니라 사유의 전환, 정치적 성과가 아니라 언어의 발명, 지도자의 등장보다 국가를 바라보는 시선의 재구성이다.. — 책 소개 에서
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조차도 버거울 때, 타인의 사유에 기대어 잠시 숨을 돌려도 좋겠다. 그 아늑함에 빠져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것도 잠시, 어느 새 편안한 둥지를 떠날 것이고, 자유를 갈망할 것이다. 분투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받아들이며 불안을 그대로 안고, 나 라는 한 사람의 고요한 사유를 이어나갈 것이다. ‘고통스럽더라도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고 싶어지는 새로운 분투’를 계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