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숲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권수연 옮김 / 포레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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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인력이 정말 장난 아님ㅋㅋㅋ 역대 그랑제 소설 중 최고일 듯! 결말이 너무 궁금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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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
쓰시마 유코 지음, 김훈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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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유코의 단편집 『묵시』를 읽었다.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담담하고 깔끔하고 고즈넉한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독립된 작품이라고는 해도 『묵시』 안의 단편들은 유기적이라 할 만큼 많이 닮아 있다. 내 바로 옆에서, 마치 내 일부인 것처럼 존재했던 대상을 잃은 후의 상실감. 지금까지 발맞춰 걸으며 함께 만들어 왔던 발자국을 이제는 혼자 찍어야 하는 외로움과 쓸쓸함. 앞으로 더 가지 못하고 계속 돌아보며 그리워하다가 쭈뼛쭈뼛 돌아가서 그 발자국 위에 내 발 하나를 슬며시 대보기도 하고 어느새 앞서가고 있는 발자국의 환영을 보기도 한다.

 

남겨진 자들은 주로 여자였다. 그리고 어머니였다.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한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의 고독에 휩쓸리는 것이 두려웠던 딸.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아 어머니 반대편으로 멀리멀리 도망쳤지만, 결국은 그 시절의 어머니와 비슷한 눈빛을 하고 그녀와 마주보는 사이가 됐다. 그림만 놓고 보면 비극적이고 비애가 서린 풍경이겠지만 그녀들이 안쓰럽거나 청승맞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상실을 겪은 여자들을 그리면서도 감상으로 빠지지 않고, 오히려 질척한 감정을 쏙 뺀 작가 특유의 담담하고 깔끔한 문체가 돋보였다.

 

욕실 창은 집안의 다른 창문과 달리 거의 밤에만 보게 된다. 그것도 벌거벗고 밤의 창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무방비한 상태로 바라보는 창이 있을까. 죽은 이가 그런 창을 놓칠 리 없다. 밤이 되고 욕실 창에 불이 밝혀지면 사자死者는 그리운 마음에 성큼성큼 다가와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 댄다. … 언제까지 찾아올 생각일까, 이젠 이쪽으로 들어올 수 없는데. 아무리 욕실 창에 붙어 있어도 이제는 결코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죽음의 의미, 그것만이라도 오빠에게 전하고 싶었다. _「욕실」 중

 

남겨진 이의 눈에는 죽은 아들의 모습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움직임이 보인다. 흐릿하지도 단편적이지도 않은, 또렷하고 아주 말끔한 모습으로. 남겨진 이는 기쁘고도 감동스러워 다른 이들을 잡고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진지하지 않은 타인의 반응에 조금 섭섭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죽은 이는 나를 위해 찾아온 것이고, 그래서 내 눈에만 보이는 거니까. 나만 알아주면 되는 것이다. 아무 소리도 내색도 없이 스치듯 주고받는 눈맞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는 것 같은 행복감. 그 모습을 은밀히 지켜보는 나(독자) 또한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마치 소설과 묵시를 주고받은 듯한 느낌이다.

 

나는 내 좁은 집에도 아들아이가 숨어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깨닫고 나니 조금도 뜻밖이 아니었다. 아들아이는 작디작은 알갱이 같아서 딸아이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세심히 주의를 기울이면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 … 나는 지금도 여전히 슬픔을 모른다. 아이가 여기저기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무어 슬퍼할 필요가 있을까. 작은 알갱이가 된 아이가 매일 내게 기쁨의 빛을 전해준다. _「슬픔에 대하여」 중

 

남동생을 잃고 홀로 된 딸아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죽은 동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거나 그를 환기시키는 무엇을 볼 때, 엄마는 슬그머니 딸의 눈치를 한 번 더 보게 되지만 딸아이는 무덤덤하고 무신경한 척 제 인생을 살아간다. 아들아이를 잃은 일로 딸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덩달아 높아지긴 했지만, 무신경한 척 하려는 아이를 부러 자극할 이유도 없을 터. 어느새 훌쩍 자란 딸아이를 한 발짝 멀찍이서 지켜볼 뿐이다. 자식을 소유하려 하지도 미화하려 하지도 않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인정. 이것이야말로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은근하고 완벽한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도 부모의 묘한 꿈이 자기 몸으로 파고들었음을 깨닫고 반발, 혹은 동의하면서 자신이 부모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부모와 아이가 연결되어 있다면 끈은 그것뿐이다. 부모라 해도 결국 아이들에게서 자신의 꿈을 뽑아내는 게 고작이다. … 이 아이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와 함께 이 세상을 살고 싶었다. _「‘신비한 소년’」 중

 

『묵시』는 대상뿐 아니라 죽음 그 자체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매일매일 죽은 이를 회상하며 그리움 속에 빠져 살지 않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하고 억지로 힘을 쥐어짜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살아간다. 오늘은 오늘대로 내일은 내일만큼, ‘지금’과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충실히 살아가는 결연한 발걸음이 느껴진다.

그만큼 자주, 오래오래, 죽은 이를 꺼내어 보고 생각하며 울고 웃고, 다시 또 그리고 좌절하다가 초연해졌을 날들이 상상돼 사실은 마음이 아프지만, 나에게 안타까워할 자격이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말도 마음도 아끼게 된다. 소설이 보여주었듯, 나도 이 소설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만이 말 못 할 나의 마음을 전하는 길이리라.

 

『묵시』는 화장기 없는 어머니의 말끔한 맨 얼굴 같은 소설이다.

그래서 더 정겹고, 소중하고, 시시때때로 울컥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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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 양장본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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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오래된 책이기도하고, 이문열의 아우라와 <사람의 아들>이라는 기세등등한 제목. 거기에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주제라 살짝 겁을 먹었는데 이거 정말… 물건이다!(이렇게 말하기엔 이미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다. 하핫^^;)

 

물론 신념과 종교에 관한 주제이긴 하지만, 살인사건과 추리, 그리고 일기(소설)를 훔쳐보는 방식이다보니 흥미진진하더라. 특히 초반에 같은 사람에 대해 다르게 기억하고 증언하는 사람들을 보며 영화(난 만화를 못 봤으니까) <이끼>가 떠올라 더 재밌었다. 물론 남경사 나올 때가… 흑. 아하스페르츠 나올 땐 조금 지루해서, 남경사가 문서를 펼치려하면 막고 싶었다. 흑흑.

 

이 책은 신화(와 종교)에 관한 수업을 들을 때 추천 받은 작품이다. 수업 덕분에 수메르 신화를 비롯한 온갖 신화와 신들에 대해 (한때는) 열심히 공부해서 그나마 조금 알았는데, 그래도 이 작품의 재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신화와 종교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럼 정말정말 흥미진진한 소설일 듯! 그런 거 보면 이문열 작가가 얼마나 많은 자료조사와 사색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엄청난 공부와 사색, 소설을 재밌게 끌고가는 구성까지! ‘역시 이문열’이구나!

 

종교나 역사, 사상에 관련된 주제는 인간의 아주 근원적인 부분과 연관돼 물론 아주 흥미롭고 이야기할 가치도 충분하지만, 그러면서도 꼭 지금 당장 건드려야 하는 부분은 아니기에, 무엇보다도 워낙 말이 많은 부분이라 어떤 생각을 내비추기가 어려울 텐데. 남의 시선을 엄청 의식하는 나로서는 작가의 용기도 참 대단했다. 진실을 볼 줄 아는 눈과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나는 내 입으로 계속 말하면서도 사실 난… 자신 없다. 흑흑흑.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맨 마지막 부분! 역시 사람의 신념이나 믿음이라는 건 참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을 지탱해주니까. 이것은 어쩌면 ‘나는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야’ 라는 인간이라는 종의 자부심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인간은 정말 나약하고 여린 것 같다. 왜 우리는, 존재 자체로 살아갈 수 없을까. 인간에게 살아갈 이유라는 거, 부빌 언덕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

 

글을 쓰며 내 마음의 구원은 뭘까 생각해봤다…

 

 

재미없게도, 그리고 이기적이게도 나 자신인 것 같다.

앞으로의 나는 지금보다 더 잘 될 거라는 믿음.

더 자유롭고 행복한 내가 될 거라는 기대감과 이런 나를 남들한테 보여주고픈 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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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아리 장편소설
전아리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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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게 좋은 작품을 만나 기분이 좋다. 내가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혀 모르던 작가이거나 우연히 책을 집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앤>의 작가 전아리는 일단 어리고, 예전부터 백일장을 독식하며 문학천재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나역시 글을 쓰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그 모습을 그냥 좋게 볼 수도 없었다. 솔직히 부럽기도 했고 고깝기도 했다. 대학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은 백일장 나름의 공식이 있어 거기에 맞춰 매끄럽게 잘 쓰면 상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내가 읽어본 백일장 수상작도 다 비슷비슷하게 어른스럽고 깔끔하고 훈훈했다. 또 내가 바로 전에 <날짜변경선>을 읽은지라, '이거 뭔가 있는거 아니야?' 하면서 괜히 삼류 추리극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앤>은 나의 못된 시기심과 선입견을 깨준 고마운 책이었고, 이렇게 재밌게 이야기를 잡아당기는 젊은 작가를 알려준 고마운 책이었다. (잇힝)

 

<앤>은 굳이 분류하자면 추리? 미스터리? 쯤으로 볼 수 있을까? (그냥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장르 덕도 있겠지만, 작가가 소설을 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 술술 읽히거니와 다음 장을 빨리 넘기고 싶어 나 혼자 안달했다. 읽으면서 김영하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캐럴>!) 생각이 많이 났다. 냉소적인 시각과 현실 비판적인 스토리, 그리고 이기적인 주인공이 겹쳐서 그랬던 것 같다.

 

 

유성은 왜 내게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나. 그는 내가 자신을 밀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던 걸까. 아닐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호소해도 내가 동요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안다는 것은 바로 그런 거였다.

 

 

 

<앤>에는 좋은 비유도 많이 눈에 띄지만 정곡을 찌르는 문장들이 있어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작품은 또한,  현재와 과거를 적절하게 오가며 지루하지 않으면서 쓸슬하고도 애잔한 정서를 남긴다. 거칠고 빠르게 달리는 카레이싱 무대 같지만, 곳곳에 어디서 본듯한 예쁜 숲길을 만들어놓아 숨쉴 곳을 만들어준달까.

 

주인공 '해영'이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영은 지 혼자 잘난 맛에 엄마, 아빠, 동생, 봉다리, 기완, 황정혁을 무시하고 세상을 내리깔며 거만하게 구는 점이 싫었는데, 그 속에서도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아 놀랐다. 무서웠다. 나 또한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속물적 마음이 자꾸 내비쳤다.

 

그렇지만 현실을 달관한 것 처럼 보이는, 그래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그려지는 '유성'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분명, 착하고 따듯한 마음이 있었지만, 유성은 다른 의미로 무서웠다. 유성 처럼 속내를 알 수 없게 사느니, 난 차라리 속이 빤히 보이는 사람이고 싶다. 차라리 멍청한 내가 좋다.

 

조금 작위적이라 느껴진 부분도 있었다. 작품의 초중반에 해영이 생각한대로 일이 척척 풀리는 부분이나, 필요한 정보를 엿듣는 것 같은. 그러나 '너무' 과해서 불편한 것 까지는 아니었으므로, 패스!

 

주홍을 잘 안다고 지켜줘야 한다고 계속 합리화시키는 해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주홍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 폭력은 물리적일 뿐 아니라, 사실은 주홍을 가두고 무시하는 정신적인 폭력이다. 그런 해영은 역겹고 재수없기도 하지만 왠지 안쓰러워 보인다. 그런데 그런 주홍의 세계가 산산조각 나버려서 너무 깜짝 놀랐다.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없는 유일한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앟는 것이다. 나는 주홍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상황 파악에 서투르고 세상 앞에서 쩔쩔매기만 하던 계집아이를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게끔 보호해 온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했다. 알게된 지 얼마 된지 않은 남자가 자신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이라니. 이런 모자란 부분이야말로 내가 계속 그녀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증거였다.

 

<앤>은 재미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을 생각할 수 있게 해줘서 좋았다. 나 역시도 <앤>을 읽으며 폭력이나 관계 뿐만 아니라 대중을 지배하는 매스컴이나 그런 매스컴의 정치적인 논리, 쇼맨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무 각성도 비판도 없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중에 대한 일침을 가하기도 가하기도 했지만, 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되는 현실이 서글프기도 하더라.

 

"살면서 머리 좋은 게 제일 잘나고 대단한 것 같지만, 천만에. 그 머리 위에서 나는 놈들은 따로 있다. 똑똑한 놈보다 무서운 건 자기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인간이야. 이성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아주 다른 인간처럼 보일 수 있는 놈들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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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양식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5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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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의 새 작품이 나왔다. <인생의 양식>. 축음기와 여자가 같이 있는 클래식하면서도 여성스러운 표지는 역시 예쁘다. 표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은 음악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음악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지닌 버넌 데어. 버넌 데어는 어느 날 음악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열망을 느끼고 음악 공부를 하지만 불안해하는 연인을 위해 하던 공부를 접고 회사에 다니며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버넌은 음악이 만들어내는 패턴의 환상 속에서 혼자 괴로워하고, 끌릴수록 대상을 부정하고 피하려는 그의 성격은 결국 자신에게 온 진정한 사랑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고 지우지 못할 후회를 남긴다. 모든 일이 명확해진 뒤 버넌 데어는 견딜 수 없는 격렬한 회한을 느끼지만, 결국에는 그 회한과 자책의 힘을 끌어모아 음악에 투신한다. 이 책은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이자 위대한 한 예술가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예술가소설이다.

 

 

애거사는 십대 시절에 파리로 넘어가 성악과 피아노 등 예술 교육을 받았는데 그때의 경험과 관심이 음악이라는 낯선 소재에 도전하게끔 한 걸까? 애거사를 좋아한 이후 작가에 대한 정보를 주워듣고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애거사의 삶을 작품에 연관 지어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또 이 스페셜 컬렉션 시리즈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조금씩 반복되는 말을 발견하게 되는데, 애거사가 당시 이런 의견을 가졌었구나, 생각하면 작품에 푹 빠져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딸은 딸이다>를 읽으면서는 사춘기에 접어둔 딸을 두고 재혼을 결심한 애거사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었고, 애거사의 자전적 소설인 <두번째 봄>을 읽으면서는 그녀가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이런 결심까지 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인생의 양식>은 음악을 소재로 하지만 음악을 ‘창작’이나 ‘예술’이라는 관점을 좀 넓게 보면 애거사가 이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추측하게 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술가로서 감내해야 하는 ‘희생’이다. 꼭 이 책을 연관 짓지 않더라도 세계대전 중에 책을 펴내는 작가이자 아내로서, 또 엄마로서 애거사는 아마 많은 것을 희생했을 것 같다. 여러 역할을 하는 만큼 신경 쓸 것도 많고 책임감도 배로 느꼈을 테니. 그리고 글에는 작가의 욕망이나 강박관념 등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작가를 장악하는 것들이 녹아 있을 테니. 대작가의 생각, 감정, 욕망을 따라가는 일은 즐겁다. 이렇게 줄거리까지 재밌는 책이라면 훨씬 더 즐겁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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