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를 좋아한다. 다른 독자들처럼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거침없이 까발리는 그녀의 신랄함도 좋아하지만, 나는 그보다도, 뺏는 사람도 뺏기는 사람도 그걸 지켜보는 사람도 모두 죄의식의 늪으로 떨어뜨리는 그 가혹함이 좋았다.

 

<좀비>, <멀베이니 가족>으로 오츠를 먼저 만났지만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건 <대디 러브>였다. <대디 러브>는 어린아이를 유괴한 남자와 아들을 잃은 부모의 시점이 번갈아 서술되며 그들과 아이의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이 책을 만나고 참 많은 날을 앓았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내 아이를 빼앗아갔고 그로인해 많은 것이 변했다. 나쁜 건 납치범이고 부모나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이나 책을 읽는 우리는 죄가 없지만, 작가는 우리 모두를 죄스럽게 만든다. 자식을 잃어도 우리는 죄인이고, 기도밖에 할 수 없기에 죄는 더 깊어진다.

 

이번에는 오츠의 단편집이다. 내면의 우울을 헤집는 작가의 스타일이 잘 드러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작품들이 450여 페이지의 두툼한 책 속에 빼곡하다. 이번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화석 형상>과 <알광대버섯>, <옥수수 소녀>. 그리고 <도움의 손길>이다.

 

<화석 형상>과 <알광대버섯>은 쌍둥이 형제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영양분과 산소를 나누며 자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묶여 있지만 덮어놓고 사랑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불순하기까지 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마음 놓고 증오하기에는 나와 외모도 욕망도 너무나 비슷한 분신 같은 존재. 자신의 유일한 형제이자 가족이면서도 계속 의식이 되고 신경 쓰이는 쌍둥이 형제 사이의 오묘한 질투와 욕망, 증오, 애정 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옥수수 소녀>는 <대디 러브>를 떠오르게 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적’이고 ‘힘 센’ 악인이 아니라 ‘삐뚤어진’ ‘연약한’ 악인이 등장한다. 악인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봤을 때 주디는 자존심 강하고, 약하고, 애정 없는 삶에 너무나 익숙해 지쳐버린 아이였으니까. 열세 살 주디가 열한 살 머리사를 납치한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그것을 궁금해하겠지만 책에는 그 이유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오츠는 아이를 납치한 이유보다 납치한 아이 자체(그의 결핍)에 더 주목했던 게 아닐까. (이마저도 콕 집어 알려주는 건 아니라서 우리의 상상력이 개입할 자리를 충분히 만들어 준다.) 또한 납치라는 소재에 인디언의 제물 의식이 합해졌는데, 촛불을 켜고 제물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신성하고 경건하기까지 한 모습은 충격과 공포를 배가시키고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도움의 손길>은 정말 강추하고 싶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읽고 어떻게 느꼈을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도움의 손길>의 주인공인 중년의 미망인 헐린. 그녀가 답답하고 이기적으로 느껴진 것도 사실이지만, 과연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지, 누가 그녀의 편에 잠깐이라도 서지 않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면서도 헐린의 모습에 나를 대입해 내 호의에 상처받은 이, 내 이기적인 애정에 아파했을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오츠 작품의 매력은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 같다. 너는 이들처럼 약하지 않아? 너는 이들의 불온한 감정을 욕할 수 있어? 이들과 선을 그을 수 있어? 묻는다. 그 물음은 나를 콕콕 찌른다. 찌르면서도 소설이라는 장르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러니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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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라 2014-10-2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빛 님의 리뷰에 완전 공감하며...덧글은 안 남길 수가 없었어요! 느낌표 백개를 숨긴채 공감 덧글을 남깁니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