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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이야기 - 마트와 편의점에는 없는, 우리의 추억과 마을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곳
박혜진.심우장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4월
평점 :
'뭐든지 소식정보를 들으려면 여기를 와. 여기를 한 일주일간 빼먹잖아? 그러면 마을에서 초상나도 몰라.' <책 속에서...>
예전에는 어딜 가든 동네를 대표하는 구멍가게가 있기 마련이었다. 마치 랜드마크처럼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였으며, 누구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발빠른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막걸리 한 병에도 반찬 다 리필해주고 그렁께 사람들이 그 맛에 오지. 한마디로 시골 인심이다 이거지." <책 속에서...>
구멍가게 이야기라니 퍽이나 재미난 소재이다. 편의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동네 구멍가게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저자들은 사라지는 구멍가게를 우리의 근현대사 삶의 바탕이 된 곳이라고 하며 곳곳을 찾아다녔다. 아직 발전이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 오십여곳을 약 3년에 걸쳐 인터뷰하였는데, 그야말로 '전원일기' 같은 인간미가 묻어져 나온다.
지금에야 예전만큼의 시골인심을 기대할 수 있으랴만, 여전히 시골동네의 인심은 도시의 그것과는 다르다. 마을 공동체의 삶의 중심지가 되었던 구멍가게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으며, 생생한 삶의 현장이었다.
"구멍가게는 단순히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 내의 다양한 관계들이 연결되는 지점인 동시에 외부세계와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네트워크의 결절점, 즉 허브(hub)다." <책 속에서...>
단순히 물건 파는 곳이 아니라 마을의 중심역할을 하는 하나의 허브(Hub)였다. 운송대행사이기도 했고, 돈을 빌려주는 마을의 은행이자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이기도 했다. 무한리필이 되는 막걸리집이기도 했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멀티플렉스라 할 수 있겠다.
"저가 농협 있잖아요. 저리 가믄 다믄 십 원이라도 싼 건 사실이여. 근디 구태여 그리 안 가지. 여기서 가져가. … 긍께 나도 모르겄어. 저리 가믄 싸고 그렁게 간단헌디. 나도 모르겄어. 미스테리여." <책 속에서...>
지금에야 동네 인심은 팍팍해지고, 삶이 힘겨워지다보니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되는 곳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그 많던 구멍가게들은 하나둘 사라져가고 인심도 사라져가는 지금, 그때의 추억을 부여잡고 기억하는 것조차 아쉬워진다.
이 책은 예전 우리의 문화, 그 중심에 있던 구멍가게를 추억하고 기억하고 싶어한다. 언젠가 추억 속에만 남을지 모를 몇몇의 남은 구멍가게들이 다시 부활하여 인간 중심의 세상에 살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인간은 사라지고 기계만 남지 않기를, 인간이 다시 세상에 존재할 수 있길를 말이다.
나에게도 동네 구멍가게에 대한 추억이 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유치원생이었던 나는 반친구들과 함께 택시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지금같으면 애들끼리 보낸다는 것 자체가 큰일날 일이지만, 그때만 해도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마중나온 아이의 엄마들이 내미는 차비를 받아든 택시기사님은 퍽이나 신나 보였다. 내가 마지막 타자였는데, 엄마는 없었고, 차비를 못받아 흥분한 택시기사는 나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서러움이 폭발했고, 마침 나를 발견한 집앞 구멍가게 주인아저씨가 택시비를 치르고 나를 한참을 달래주셨다.
엄마는 곧 나를 찾아왔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니 그때의 충격이 꽤나 컸던 듯 하다. 니딸 내딸이 아닌, 우린 동네 식구나 다름없었던 시절이었다. 지금 그 집은 휑하고 편의점만이 훤하게 길가를 밝히고 있지만 구멍가게 과자쇼핑을 하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