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 일기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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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기를 잘했다.”


일부러 멋진 말을 하지 않아도, 수식어가 많은 글을 쓰지 않아도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무게감. 그것은 인생 백년을 지내온 노신사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올해로 만 100세를 맞은 철학자 김형석님의 이 책은 조선일보에서 ‘100세 일기’로 연재한 내용을 엮은 것으로, 각각의 글들이 그때그때 심정과 시점에 따라 변화되어 더 좋다. 그의 100년을 이렇게라도 조각조각 맞추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한번 멋지게 살아보는 건 어떨까?”


가벼운 말 한마디가 결코 가볍지 않음은 그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온몸으로 겪어온 한국역사의 산증인으로, 또 때로는 인생의 선배로 잔잔하게 들려주는 그의 이야기는 하나도 허투로 들을게 없다. 나이 듦, 건강, 가족, 그리움, 신앙, 사랑, 사회, 소박한 일상 등의 주제를 담은 70편의 글들은 그보다 아직 젊은 나에게 용기를 준다. 삶은 그럭저럭 살아볼만하다고 말이다.


“인생은 과거를 기념하기 위한 골동품이 아니다. 항상 새로운 출발이어야 한다.”


그보다 아직 젊은 나는 반성을 해본다. 백년의 세월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돈과 명예보다는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인생의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오늘만 오늘만’을 외치며 하루하루를 좀 먹는 나의 불성실함과는 너무나도 대조된다. 만약 나도 그의 나이가 되는 날이 온다면, 저런 후덕함과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본다. 그의 책을 고이고이 간직하련다. 그랬다가 언제고 다른 나이가 되어 이 책을 다시 펼쳐들면 또 무언가를 알 수 있을 날이 올터이니...



📚 책 속에서...
내 나이 100세. 감회가 가슴에서 피어오른다. 산과 자연은 태양이 떠오를 때와 서산으로 넘어갈 때 가장 아름답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100세에 내 삶의 석양이 찾아들 때가 왔다. 아침보다 더 장엄한 빛을 발하는 태양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

📚 책 속에서...
1947년 8월 광복절 후에 나는 일곱 달 되는 아들애를 업은 아내와 같이 탈북을 단행했다. 모친은 눈물을 훔치면서 말이 없었다. 부친은 맏손자 얼굴이나 한 번 더 보자면서 잠들어 있는 손자의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그것이 부친과 손자의 마지막 이별이 될 줄은 몰랐다.

📚 책 속에서...
한 여학생은 “교수님도 고등학생 때 연애해보셨어요?” 한다. 내가 윤동주 시인과 함께 공부한 100세 교수라고 소개됐을 때는 손뼉 치면서 함성을 질렀던 학생들이 지금은 나를 ‘좀 나이 많은 친구’로 보는 것 같았다. 덕분에 젊어진 기분이다. 그래서 선생은 한평생 학생들을 떠날 수 없다.

📚 책 속에서...
바로 언덕 아래에는 내가 즐겨 올려다보곤 하는 활엽수가 있다. 봄철이 되니까 잎사귀가 대부분 떨어져 있었다. 싹이 피기 위해서는 자리를 양보해야 하고, 낙엽이 되어서는 다른 나무들과 숲을 자라게 하는 비료가 돼야 한다. 모든 인생과 나도 그래야 하듯이….

📚 책 속에서...
지금의 나이가 되어 깨닫는 바가 있다. 내가 나를 위해서 한 일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지난 99년을 이웃들의 도움과 사랑으로 살아왔는데 한 책임을 잘 감당했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과 뜻을 전해온다.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인가. 내 인생 모두가 사랑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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