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건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마리암
마리암 평생에 수없이 뼈아픈 말을 듣게 되지만, 그녀의 인생에 있어 가장 가슴 아픈 말을 '하라미'(후레자식)이다.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에게조차 '하라미'라는 말을 듣는다. 목요일마다 외딴 집에 찾아오는 아버지를 일주일동안 기다리며,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만 결국 아버지에게 버림받는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홀아비에게 시집을 가게 되고 아이를 갖게 되는 벅찬 순간을 맞이하지만, 신은 그녀의 편이, 하라미의 편이 아니다. 그녀는 계속 유산을 하고 남편의 학대는 시작된다. 전쟁의 포화속에서 죽어가던 소녀를 구해내지만 남편은 그녀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인다. 마리암은 소녀가 밉다.

라일라
라일라에게 어머니는 항상 그리운 존재다. 전쟁에 나간 두 오빠를 그리며, 라일라는 쳐다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일라는 타리크가 있다. 타리크는 어렸을때 지뢰 때문에 한쪽 다리를 잃었지만 든든한 모습으로 라일라의 곁에 있어준다. 하지만 전쟁은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타리크는 결국, 라일라와 짧은 사랑 후 이별을 고한다. 로켓탄이 빗발치고 아는 친구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속에서 라일라의 가족 역시 변을 당하고 만다. 라일라는 눈앞에서 부모를 잃고 자신 역시 사경을 헤매게 된다. 구두장이 라시드와 그의 아내 마리암의 보살핌으로 목숨을 건지지만 라시드는 그녀에게 결혼할 것을 요구한다. 결혼하지 않을거면 살육과 강간이 판치는 거리로 나가라고 말한다.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자신의 뱃속에서 생명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두 여자가 등장한다. 각자 살아 온 인생과 배경은 다르지만, 이슬람의 전쟁 속에 남겨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폭력과 살육과 비평등을 견뎌야만 한다. 소련군의 학살이 끝나자 무하자딘의 각 사령관들끼리 권력을 잡기 위해 로켓탄을 발사한다. 그 후 파키스탄 등 외곽에서 자라난 탈레반이 권력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번에는 전쟁이 끝나기를' '이번에는 좀 더 살기 좋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을 무참히 부숴 버리고 더 폭력적이고, 더 억압적인 정부가 들어온다.

특히 여자들은 갈 수록 억압받는데, 눈만 내놓는 부르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어야하고 혼자 외출하면 태형을 당한다. 꼭 남자가 함께 동행해야 외출할 수 있다. 집 밖으로 여자 혼자 나오면 안되고, 여자는 학교에 갈 수 없다. 여자들은 병원에조차 갈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마리암과 라일라의 우정 때문일 것이다. 처음엔 적대적이였던 두 여자가 서로의 마음을 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자식이 없던 마리암에게 라일라와 아이들은 처음으로 지켜주고 싶은 존재가 되고, 엄마의 품이 그리웠던 라일라에게 마리암은 엄마같은 존재가 된다. 그렇기에 남편의 폭력과 전쟁의 잔해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둘이 꼭 손을 맞잡고 말이다.

내게 아프가니스탄은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였다. 그들이 전쟁의 고통을 겪을 때에도 무관심했다. 전쟁은 오로지 그들의 몫이였다. 그런 이유로 책을 읽는 내내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내 무관심이 싫었고,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마음이 싫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였다. 같이 등교하던 친구가 어느새 로켓탄에 맞아 산산이 조각나 있고, 부모님 역시 폭탄으로 인해 목이 날아가버리는 처참함...전쟁 속 살육과 강간은 당연히 여기면서 여자들이 도망가는 건 큰 죄로 여기는 부당함...나란 사람은 너무나 편안하게, 감사할 줄 모르면서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사무쳤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

그들이 삶을 지속하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건 희망 때문이 아니였을까. 더 나은 내일이,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희망들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에 가면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이 자신들의 삶을 위해 빛을 발하고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요란스럽게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지원해주는 것이리라.

그러면 태양들은 더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을 발할테니까.

책을 사랑하는 방법

침대와 책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정혜윤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침대

나에게 있어 침대는 무엇일까?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을 읽으며 문득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1)일단 눕고보는 곳-하루 일과가 고될수록 나의 침대가 그리워진다. 일단 가서 눕고 보자.....라는 생각으로 이를 앙다물고 힘든 일을 견딘다. 그리고 나서 집에 오면 가방을 내팽겨치고 침대로 뛰어든다. '아~좋다' 2)그리고 나서 컴퓨터를 하는 곳-노트북으로 컴퓨터를 바꾸고 나서는 침대에 컴퓨터를 척, 올려놓고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게 되었다. 뒹굴뒹굴 하면서 그날 기사를 검색하기도 하고 친구들의 블로그에 가서 글을 읽기도 한다. 역시 '아~좋다' 3)정갈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 곳-일단 심신이 안정되면 정갈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에서 꿀맛같이 읽는 책의 맛이란...'아~좋다'

 

책

나에게 있어 책이란 무슨 의미일까? [오늘 내 꼴이 추레하고 처량할 때] 나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외로운 날 꼭 듣고 싶은 한 마디]를 조용히 들려주기도 하며, [꿈은 있지만 꿈에 이르는 길을 몰라 불안할 때] 조언자 역할을 해준다. 그래서 책은 내 방 사방곳곳에 조용히 놓여져 있으면서 내가 필요로 할 때 득달같이 달려와준다. 가장 오래된 내 친구는 바로 책이다.

 

침대와 책

책이 삶의 지혜와 평안을 준다는걸 알았지만, 정혜윤 PD처럼 상황에 맞는 책과 구절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조근조근 들려주는 사람이 있을까?하고 생각해봤다. 그런 의미에서 침대와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내가 읽었던 책은 또 다시 읽고 싶어졌고, 내가 읽지 못한 책은 표시해놓고 다시 읽고 싶어졌으며, 읽다가 포기한 책은 용기를 얻어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무작정 책을 짝사랑하던 나에게, 책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책, 그리고 작가가 바로 '침대와 책'과 정혜윤 PD가 되겠다. 그래서 자타공인 독서광들은 더욱 더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수많은 책들과, 안락하고 편안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정혜윤 PD가 사랑스럽고 달콤한 목소리로 이야기 해줄테니 말이다.

잘나가는 그녀들의 영어 노하우

잘 나가는 그녀는 무슨 영어를 할까? - 성공을 꿈꾸는 여성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어책 ㅣ 잘나가는 그녀 2
김미선 외 지음, 태인영 감수 / 21세기북스 / 2007년 12월

 
색다른 영어책을 만났다.
소위 잘나간다는 네 명의 여성들이 모여 자신들의 영어비법을 풀어놓았다.
'도대체 영어 잘하는 여자들은 뭐하는 여자들이야?' 라고 비아냥섞인 물음을 던진 나를 머쓱하게 만든 그녀들. 바로 그녀들이 쉽고 재미있게 따라할 수 있는 영어를 알려주고 있다.

책은 각 주제에 따라 네가지 파트로 분류되는데, 먼저 그녀들의 diary로 시작된다. 일상생활을 일기로 적듯 영어로 쭉 적어내려간 부분을 한 번은 눈으로 천천히, 그 다음은 소리내어 천천히 읽어 내려가면 이해가 된다. 영어에 젬병인 나도 쉽게 이해가 되니,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다.

그 다음 부분은 expression 파트. diary부분에서 눈에 익은 부분들과 함께 일상에서 쓸 수 있는 영어 문구들을 공부할 수 있다. 4-5개 정도의 문장을 외우고 있으면 필요할 때 요긴할게 쓸 수 있을만큼 실용적이다.

그리고 실제로 대화에 사용되는 real talk 부분, 실제 대화로 이루어진만큼 상대편과 호흡을 맞춰 영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부분은 <she said>란 부분인데 네 명의 잘나가는 그녀들이 일상, 회의, 프로젝트등에 필요한 노하우등을 간단한 tip으로 마련해서 알려준다. 나도 몰랐던 부분들이 많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사회 초년생이나 대학생들이 본다면 실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점은, 귀로 들을 수 있는 영어CD가 없다는 점이다. 그녀들의 육성과 함께 들으면 영어 학습 능률이 두 배로 오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24시간 생활영어라는 부제에 맞게, 네 명의 여성들이 돌아가며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동시에 영어도 공부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아주 어려운 난이도의 영어책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은 적합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나처럼 영어젬병이거나 영어에 흥미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처음 시작하기에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테오와 빈센트의 이야기

나의 형 빈센트 반 고흐 ㅣ 아트 픽션 2
쥐디트 페리뇽 지음, 성귀수 옮김 / 아트북스 / 2007년 12월

반 고흐의 이야기나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의 후원자이자 동생인 테오가 언제나 궁금했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 결국 테오 역시 정신 이상을 보이며 죽어갔다는 짧은 지식만 가지고 있었기에 궁금증이 더 커져갔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빈센트가 죽은 뒤 테오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해 그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빈센트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도 그의 괴로움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후원자이자 동생이였던 테오는 그의 죽음을 믿을수도, 이해할수도 없었다.

 

비록 빈센트는 점점 괴로움에 빠지고, 테오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꾸리며 둘의 생활이 어긋났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영혼은 항상 이어져있었다. 그래서 빈센트의 죽음은 테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래서 테오는 형을 위해 전시회를 준비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아직 빈센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큰 미술상들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테오는 자신이 전시회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형이 그렸던 그림들을 하나하나 꼼꼼이 점검해 나가고 빈센트의 그림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내게 남은 마지막 기력이 빠져나가고 있다. 마치 그림 속 색채들이 나의 혈관에서 푸른빛을, 내 볼에서 창백한 장밋빛을, 내 눈동자에서 초록빛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것 같다. 내 목을 낚아 채, 나를 앗아가는 것 같다. 내가 빈센트의 그림 모델이 되어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 요구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한데 이제 와 그의 모습 안에서 흡사 거울을 바라보듯 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147p>

 

성인이 되어 서로 엇갈린 길을 가게 된 형제일지라도, 두사람은 아마 한 영혼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빈센트 반 고흐가 죽은지 6개월만에, 마비증세와 신경증을 앓다가 테오 역시 죽을 걸 설명할 길이 없을 거다.

 

빈센트 반 고흐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아름다운 동반자였던 테오도뤼스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의 밑바탕엔 테오의 영혼 역시 숨쉬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게 될 때마다 테오의 모습도 함께 찾게 될 것 같다.

퀴즈쇼, 젊음에게 고함

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기사를 하나 읽게 되었는데, 이십대들에 관한 내용이였다. 놀라운 능력을 가진 10대들이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김연아 or 박태환...) 안정적으로 사회에서 자리잡은 30대들이 위에서 버티고 있고, 그래서 이십대들은 중간에서 끼어버렸다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해가는 88만원 세대가 되어버린 서글픈 이십대들에 대한 내용을 읽으며 나또한 서글퍼졌다. 인생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이십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어쩌다 제일 서글픈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퀴즈쇼에 등장하는 민수 역시 서글픈 이십대로 나온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는 사생아인데다, 피붙이 하나 없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살고 있던 집까지 뺏기다 싶이 해서 고시원으로 쫓겨난다. 수중에 가진 돈 하나없이 백수로 전락한 모습...뉴스와 신문에서 그리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힘없는 이십대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십대는 젊다. 그렇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라고 늘 생각해왔다. 물론 어렸을때부터 목표와 꿈이 확실하다면 제일 좋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사회생활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가도 충분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사회는 그런 이십대들에게 냉담하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차갑게 말하면서, 정작 자신을 추스를 시간조차 주지 않는 곳...그곳이 바로 사회이다. 퀴즈쇼에서 링위에 올라 퀴즈를 풀어야 하는 민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문제가 주어지면 정답 or 오답만 남는 냉정한 세계, 바로 그곳이 퀴즈쇼 속의 링이고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학교실습 때문에 고시원에서 방을 얻어 살아보기도 했고, 인터넷상의 내 아바타를 꾸미며 익명의 다른 아바타와 즐겁게 대화도 나눠본 기억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책의 내용이 너무 가볍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책의 내용이 가볍다고 생각하는건 이십대라는 나이가 깃털같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다. 누구나 자신의 이십대를 찬란하다고 생각하듯이, 사회의 벽 사이에 끼어버린 우리의 이십대 역시 찬란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손에 잡힐 듯 재미있게 써준 작가가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