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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겉과 속이 둥글둥글하고 참한 아이, 뽐므(사과)라고 불린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뽐므, 단 둘이서 살아왔다. 어머니는 "손님이 원하시는대로 할께요"라고 말하는 수동적인 여자다. 뽐므의 아버지가 떠날때도 잡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세상이 자기에게 주어지는 대로 살았을 뿐이다. 어려운 집안 살림이였지만,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지만, 뽐므는 아름답게 자란다. 뾰족뾰족 모가 난 것이 아니라 동글동글한 마음으로 말이다.
뽐므는 미용실에서 일하면서 '마릴렌'과 친해진다. 마릴렌은 아름답기는 하나, 세상과 사람들의 이목에 신경쓰는 여자다. 뽐므의 순수함에 이끌리나, 그것을 짓밟아버리고 싶기도한 양면을 지닌 채 그녀와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곧, 그녀는 뽐므를 떠난다. 그녀의 순수함 대신 세상을 택한 것이다.
뽐므는 곧 '에므리'라는 남자를 만난다. 둘은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에 대한 마음에 확신을 갖게 된다. 다음날, 만날 약속을 하지 않고도 서로 만날것을 알고 있듯이. 둘은 서로 사랑한다. 적어도 처음은 그랬을 것이다. 에므리는 말없는 뽐므를, 순수한 뽐므를 옆에 두고 싶어하고 결국 두 사람은 동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에므리는 뽐므를 바꾸고 싶어한다. 점점 더 그녀의 침묵, 그녀의 눈빛,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 숨막혀하기 시작한다. 뽐므는 에므리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생활비를 벌어왔고, 열심히 집안일을 했으며 에므리가 싫어하면 자리를 비켜줄 줄도 알았다. 하지만 뽐므가 어떤 행동을 하던 에므리는 그녀를 내치려하고 결국 둘은 헤어지게 된다.
사과같이 둥글고 예쁘게 빛나던 뽐므는 점점 말라간다. 그녀는 아무 잘못없이, 어떤 이유도 없이 내쳐진것이다. 믿었던 친구로부터, 그리고 사랑하던 사람으로부터 내쳐진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점점 말라간다.
어떤 관계든, 그것의 시작은 '소통'일 것이다. 나와 그것이 서로 교류하며 주고받는 모든 것이 소통일진데, 뽐므는 연인과 세상으로부터 일방적일 것을 강요받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어떤 잘못도 하지 않고서도 벌을 받은셈이 되었다. 철저히 버려지는 것으로.
레이스 뜨는 여자 뽐므는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멀어져갔다. 레이스는, 얼키고 섥힘으로서 작품이 완성된다. 뽐므도 그걸 원했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의 단절이 아닌, 소통을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버림받았고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레이스를 풀어버림으로서 공허한 존재로 남고 말았다. '레이스 뜨는 여자'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끝난다. 뽐므 역시 공허한 한마디를 내뱉으며 나를 책 속으로 붙들어버렸다.
당신은 그리스라는 나라를 모르지요? 난 살로니카까지 가 봤어요. 알아요?"
그러자 어쩌면 내가 유일한 남자였으리라는 생각으로 말미암은 괴로움이 누그러졌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마치 어머니처럼 애정 어린 웃음을 머금은 채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괴로워하는 걸 헤아리고 나를 가엾게 여기는 듯 보였다. <p.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