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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기에
로랑스 타르디외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한 남자가 미친듯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는 누군가에게 도착하기 위해 액셀레이터 위에 발을 올리고 쉼없이 달리고 있다.
<난 죽어가고 있어 뱅상 난 죽어가 보고 싶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보고 싶어 당신을 보고 만지고 당신 목소릴 듣고 싶어 보고 싶어 뱅상 난 죽어가>
15년만에 받은 편지. 이 편지로 인해 남자는 하염없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주느비에브, 그녀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남자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행복했던 두 남녀는 결혼을 했고, '클라라'라는 예쁜 딸아이까지 낳았다. 그들은 매 순간 기쁨과 행복을 경험했다. 하지만, 불행의 그림자는 어느 날, 어느 순간 예고도 없이 그들을 덮쳤다.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딸, 경찰에 신고, 그리고 매 순간 피말리는 기다림.....그것이 행복했던 연인들이 불행해지는 순서이자 과정이였다.
뱅상과 주느비에브는 서서히 자기 자신을 잃고 無로 빠져든다. 왜 내가 살아 숨쉬어야 하고, 왜 내가 존재해야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지고 서서히 클라라가 없는 현실이 그들을 죄어오기 시작한다. 둘은 서로 사랑한만큼 고통에도 같이 맞서야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뱅상은 철저히 모든 것을 잊고자 했고, 주느비에브는 그 모든 현실을 온전히 떠안고자 했다. 그래서 둘은 이별했다.
그렇게 이별했음에도 둘은 언제나 함께였다. 사랑의 기쁨을 함께 나눈 연인에서, 아이를 잃은 고통을 함께 한 동지로서 말이다. 비록 이별해서 몸은 떨어져 있었으나 이 세상 어딘가에 서로가 존재함을 앎으로서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주느비에브의 죽음을 계기로 둘은 다시 만나게 되고, 클라라를 잃어버린 순간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된다. 클라라의 웃는 모습, 학교에 처음 등교하던 모습, 예쁜 원피스를 입은 모습....뱅상은 그렇게 잊고자했던 과거앞에 마주하게 되고 결국 그 과거를 받아들이게 된다.
"의사가 나한테 마지막이라고 하는 거야. 난 마치 긴 꿈에서 갑자기 깨어난 사람처럼 자신에게 물었지. 이제 나한테 남은 게 무얼까 하고. 그것은 당신이었지.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것, 뱅상, 우리 두 사람의 사랑, 그리고 클라라, 그애의 실종…… 이게 내 삶이야. 이 삶이 누린 기쁨과 상처. 나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왜 삶의 밝은 면만 기억해야 하는 걸까? 빛을 눈부시게 만드는 건 어둠인데 말이야. 만일 우리가 클라라를 잃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난 순간의 가치를 몰랐을 거야. 슬퍼하지 마, 뱅상. 영원은 시간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깊이 속에 있기 때문이지. 그것이 주는 현기증 속에 있어."
주느비에브는 뱅상의 품 안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주느비에브는 자신의 모든것을 뱅상이 기억해주리라는 믿음으로 편하게 마지막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과거에서 도망치기만 했던 뱅상 역시, 주느비에브의 죽음을 계기로 한 줄기 빛을 발견하게 된다. 비로소,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사랑도, 고통도, 슬픔도, 기쁨도 없다. 하지만 주느비에브의 말처럼 영원은 깊이 속에 존재하는게 아닐까. 그렇기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믿으면서도, 찾으려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잃어버리면서 정지해버린 그들의 삶은 서로에 대한 기억으로 다시 이어졌다. 깊이 속에 존재한 영원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죽음조차 갈라놓지 못한 것이 바로 그것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