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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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을씨년스러운 골목을, 코트깃을 세우고 느릿느릿 걷는 남자.

나 또한, 그 남자의 뒤를 따라 걷는다. 그 남자는 십 년 전, 자신의 과거를 깡그리 잃어버린 채 낯선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그 후로부터 그는 자신의 과거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점점 늘어나는 단서들. 그리고 사람들의 추억. 빛바랜 몇 장의 사진. 그 속에서 남자는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려 애쓴다. 한 장의 낡은 사진과 부고를 가지고 추적을 시작하고 피아니스트를, 사진사를, 멋진 정원이었을 을씨년스러운 곳에 유물처럼 남아있는 정원사를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환상으로 여겨지던 과거에 살이 입혀지게 된다. 언젠가 한 번 맡았던 향수 냄새가 손에 잡힐 듯 느껴지게 되고,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기억 한 구석에 살그머니 자리잡고 있던 장소가 눈앞에 쭉,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1940년대의 불안하고 복잡했던 파리의 모습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드니즈-아시아의 느낌을 풍기던 긴 금발머리의 그녀-는 진짜 존재했던 인물일까? 내 친구 프레디와 그의 아름다운 여자친구 게이 오를로프는 정말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일까?

 

흔히들 과거 따위는 중요치 않다고 한다.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훨씬 더 희망차고 아름답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가 없는 사람이 미래 또한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214p>

 

비록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한 과거일지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존재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는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는 중요하고, 망령처럼 내 앞에 가끔씩 나타나도 미소지으며 편안히 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진 속에 보이는 남자는 나와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

"아뇨,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는데요. 그렇지만 어쩌면..."

내가 기억하는 과거 속의 나는 과연 내가 맞을까? 그럴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그렇기에 내 낡은 박스속의 사진들을 꺼내보며 과거를 추억할 때도 서먹한 느낌과 아련한 느낌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삶이 힘들어 벽에 부딪칠 때, 내 기억의 고향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 과거가 떠오르는 건...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늘어가는 단서의 무질서함 속에서, 가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지만 책을 잃는 내내 패트릭 모디아노의 마술같은 글솜씨에 빠져들어 오랫동안 행복했다. 기 혹은 페드로와 함께 과거를 찾아가며 내 과거에 푹 빠져들어 한동안 빠져나오기 힘들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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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도서관에 끌리다 선생님들의 이유 있는 도서관 여행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서울모임 엮음 / 우리교육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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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도서관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초등학교 점심시간에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가던 발걸음이 생각난다. 그 당시 학교 도서관이 신관을 지으며 생겼었는데, 말이 도서관이지 그저 교실 안에 여러 전집들이 들어온 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새 책들이 좋아서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에 향했던 기억이 난다. 워낙 추리소설을 좋아했던지라 아르센 뤼팽의 모험이라던 지, 아가사 크리스티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푹 빠져서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중에 점차 입시와 맞닥뜨리게 되면서 도서관은 어느새 '공부'하는 곳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주말에 도서관에 가는 것은 곧 다가올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였지 책을 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하다 막막하고 힘들 때면 읽고 싶은 책이 가득한 서가로 내려가서 한창이고 서성이곤 했다. 비록 읽을 순 없어도 기억해뒀다가 언젠가 읽어야지...라는 생각만으로도 위로받던 시절 이였었다.

 

아마 '도서관'에 대한 추억은 다들 나와 같지 않을까. 책을 보며 즐거워한 것보다, 공부로 머리아파하며 힘들어했던 기억이 더 많은 곳으로 기억하며 도서관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람들이 여럿 있을 것이다. 지금도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면, 한쪽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곤 한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무엇과 본질이 바뀌었다는 생각에 씁쓸해지곤 한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선생님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북미 도서관을 방문했던 것이다. 도서관하면 한 가지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나에게 북미 도서관은 그 종류와 다양성에서부터 놀라움을 가져다주었다. 지역 주민들과 다양한 교류를 이어가는 지역 도서관, 전문적인 학술 연구가 가능한 레퍼런스 도서관, 뉴욕 공공도서관과 미의회도서관같은 대형 도서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욕구에 맞춰 쓰임새까지 다양한 도서관이 눈만 들면 여기저기 위치한다는 것이다.

 

특히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학교나 새로운 도시가 생기면 으레 도서관이 생긴다는 것이다. 으리으리한 주상복합 아파트가 생겨도 도서관은 쳐다도 안보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새로운 일일 수 있지만 그들에게 도서관은 24시간 편의점처럼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도서관이 지역 주민들과 깊이 맞닿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것이리라.

 

영유아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장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 어르신들을 위한 큰글자책 서비스, 그리고 학생들이 도서관을 이용하여 과제를 수행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프로그램까지 부러워할 과정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도서관이 그저 책을 빌리고 빌려주는 수동적인 공간을 넘어서서 누군가에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곳이구나...라는 생각도 들게 해주었다.

 

우리나라의 도서관 역시 조금씩 조금씩 새로운 희망을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다만 북미 지역처럼 일상적인 일이 되려면 조금 더 시일이 걸리겠지만 그리 멀지 않다고 본다.

<나는 대중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기관으로 도서관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스스로 찾는 이에게만 그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카네기>

북미 도서관을 부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좋은 점을 보고 배우고 우리에게 접목시켰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선생님들의 일부러 그 먼 곳을 찾아가 잠도 안자며 열심히 보고 배워오셨을테니까 말이다. 미래를 위한 희망은, 그리 멀지 않다. 가까운 곳의 아주 작은 점부터 실천한다면 부러워만하던 그들의 도서관이 어느새 우리 곁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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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세계화, 자본은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아주 특별한 상식 NN 11
셰린 우스딘 지음, 추선영 옮김 / 이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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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롭게 공부하고 있는 내용이 있는데,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를 연도별로 꼼꼼하게 훑어보는 것이다. 강제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전 국민 건강보험체제로 전환되면서 병원을 찾기가 쉬워진 건 사실이다. 부작용 사례를 찾아보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의료 세계화, 자본은 우리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를 읽어가며 우리나라에 태어난걸 새삼 감사하게 되었다. 걸어서 5분 내에 내과, 이비인후과, 치과 등이 위치해서 불편한 증상이 있을 때 손쉽게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천국처럼 느껴질 수 있다 는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을 외계인이 방문한다면 그는 모선에 지구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쩔쩔맬 것이다. 시민 X가 화려한 펜트하우스에서 생수를 마시는 동안 시민 Y의 어머니는 물 한 방울이라도 더 얻으려고 더러운 물웅덩이 앞에 엎드려 있어야 하는 곳이 지구이기 때문이다.>

 

외계인이 보기에도 이해하기 힘든 광경-그것이 바로 현재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처참한 현실이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하는 의,식,주가 파괴된 사람들. 그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하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고 그래서 수많은 질병으로 죽어간다.

 

절대 빈곤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부유한 나라들이 나름 묘안을 짜내서 돕고자 하지만, 독재정치 자나 부패한 관료들에 의해 그 돈은 사라지거나 혹은 전달되더라도 아주 가난한 형태로 남게 된다. 결국 악순환의 반복이며 빈곤은 가난과 절대 떨어지지 않게 된다.

 

'새천년개발목표'같은 보이기 위한 제목만 발표하는 유엔이나 국제사회는 그럴듯한 의견을 늘 내놓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다. 왜 그들이 의료의 손길 한 번 받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어 가는지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책다운 대책이 나오고, 전 세계인의 도움도 체계적으로 전달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보는 것은, 현재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자 하는 착한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아프리카로 의료 봉사를 떠났더랬다. 나도 가고자하는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여러 가지 여건을 핑계로 떠나지 못했었다.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고자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언젠가는 세계불평등 또한 해결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에서 말하고자하는 요점 역시 바로 그것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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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여행 - 영혼의 휴식을 찾아 떠나는
미라 레스터 지음, 서은미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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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healing - (몸이나 마음의) 치유

 

방송의 여파인지 여기저기 '힐링'이라는 말이 쓰이는 것 같다.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인터넷을 검색하며 힐링의 뜻을 찾아보았다. 역시, 내가 짐작했던 대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게 힐링이란다. 그러고 보면, 현대인들은 참 상처받기 쉬운 삶을 사는구나....라고 멋대로 생각해버렸다. 어쨌든 나 역시 현대인이고 늘 상처받고 그 상처가 낫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에 얼룩지니 말이다.

 

그래서 책을 받기도 전에, 여행지에서 저자가 보고 겪은 힐링 체험이 즐비하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받고 보니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책은 100곳의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산과 호수, 섬과 바다, 고대문명의 유적지,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 등 모든 종교의 사원과 성지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인간이 생기기도 전부터 존재했던 거대한 자연이라던 지, 신 앞에 한 없이 작아지는 인간을 느끼며 겸손한 마음으로 만든 유적지들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그와 더불어 옛 성자의 말씀이나 속담을 어우러지게 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과연 무엇에 상처받고, 무엇 때문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가.

 

어쩌면 수박 겉핥기 식의 여행지 소개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100곳 모두에게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여행지도 있었고, 처음 소개 받는 곳도 있었다. 사진 한 장과 짧은 소개 글이 다였지만, 책읽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사진 속 담긴 저자의 힐링 테라피를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마침 100곳 중 내가 다녀온 곳이 한 곳 있었다. 바로 앙코르와트다.

 

 

 

 

 

 

 

앙코르와트에 다녀온 것은 정말 예전일이지만, 사진을 하나하나 넘겨보며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마, 여행이 주는 힐링이란 이런 것이겠지.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여행지에서 받았던 치유를 떠올리면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는 것.

 

 

치유의 기술은 의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있다.

그러므로 의사들은 마음을 열고 자연에서 시작해야 한다.

- 필리푸스 아우레올루스 파라켈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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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은 숲요일
김수나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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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에 가보든, 초록색 잎을 가진 화분이라던 지, 화단이라던 지, 아니면 책상 위 미니화분이라도 식물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식물에서 위안을 얻는 것일까. 식물이 co2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보낸다는 과학시간에 질리도록 들은 사실 때문에 식물에서 위안을 얻는 것일까. 아니, 내 생각은 좀 다르다. 태초부터 인간은 자연과 함께 살도록 만들어졌다. 지금이야 편히 산다고 나무들을 마구 잘라내지만, 결국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그것이 바로 숲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일 것이다.

 

'수요일은 숲요일'의 저자는 나와 같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자다. 그렇기에 도시인의 찌든 삶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수요일에 ㅍ 하나만 붙이면 숲요일이 된다. 이렇게 간단한 발상만으로도 찌든 삶을 하얗게 바꿀 수 있다. 가까운 숲이나 공원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북한산 둘레길, 부암동 백사실 숲, 남산 공원, 삼청 공원길 등 우리가 한 번쯤 가봤을 곳을 저자 역시 거닐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것은, 정복하듯 빠르게 걷는 우리와 달리 천천히 숲을 즐기며, 담아가며, 느끼며 걸었다는 점이다. 때로는 친구들과 함께 때로는 도시락을 싸서 걷는 저자의 걸음걸이는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함께 걷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져 있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사계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때론 여름의 더운 열대야를 이겨내야 하기도 하고 겨울의 추운 눈보라를 견뎌야하기도 하지만, 시원한 소나기라던지, 겨울날 새벽 예고도 없이 조용히 내린 하얀 눈송이들은 강한 감동을 준다. 이 책 역시 사계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내가 느꼈던 감동은 저자 역시 함께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며 남모를 위안을 얻었다.

'아, 역시 사람들은 크게 다르지 않아'

 

도시의 비정한 삶속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위안 받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런 도시인들의 힐링캠프가 되어줄 곳은 과연 어디일까. 가까운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 시원한 과일주스 한 잔, 엄마가 차려주는 집 밥....그리고 가까운 숲이 있지 않을는지.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일 년 다이어리를 읽는듯하다. 읽으면서 부러워만 하지 말고 가까이 있는 숲을 거닐어보면 어떨까. 주먹밥 하나 싸들고 숲이 주는 위안에 귀기울이다보면, 어쩌면 그곳이야말로 나의 힐링 스팟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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