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 김별아 치유의 산행
김별아 지음 / 에코의서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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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맨 처음 책을 마주대했을때 '산행'이라는 단어만 보고는 책 속에 산에 대한 풍경과 정보들이 가득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비산행 꼭지를 읽으면서 내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임을 깨달았다. 산에 대한 이야기는 맞되, 산을 오르는 자들에 대한 정보가 가득한 것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마음가짐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나 역시 작가가 말하는 대로 '평지형 인간'이였다. 산을 오르는 것에 극도로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중학교 때였다. 중학교 무렵, 체력을 길러주겠다며 새벽마다 아빠는 나를 산으로 데리고 가셨다. 다 커서 다시 가 본 산은, 산이라기보다 언덕에 가까운 곳이었지만 어렸을 때는 아침마다 가파른 곳을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른다는 것이 곤욕 이였다. 아침잠이 절실했던 터라 어떻게든 산에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산에서 사랑했던 것은 꾸역꾸역 정상으로 오른 뒤 날 맞아주는 시원한 바람과 새벽 공기였다. 그래서 미치도록 가기 싫은 새벽 산행 이였지만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 일주일에 한 번쯤은 저절로 눈이 떠지기도 했더랬다. 

나와 마찬가지로 네팔 포카라에 머물면서도 히말라야 쪽에 눈길도 안주었던 작가가 산에 오르게 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다. 첫 번째는 아이와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였고 두 번째는(제일 중요한 이유일수도 있는)제일 밑바닥에 마주한 자신과 마주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이 글은 산행기이되 산행기만은 아니다. 산을 오르며 쓴 글이되, 때로 산보다 더 가파르고 굴곡진 삶과 그 굽이굽이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백두대간을 오르며 산행 첫날부터 무언가를 발견하고, 내 안의 신비한 무엇을 발견했다고 호들갑스럽게 적었더라면 아마 끝까지 책을 읽어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소아우울증에서 시작된 우울한 유년기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 그리고 워커홀릭이 되기까지 적나라한 자기성찰이 산행과 함께 펼쳐졌다. 가까운 누군가의 깊은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처음에는 '아...'라는 짧은 탄식과 함께 쉽사리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결코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작가와 함께 산행을 한 것은 솔직할 만큼 자신의 어두운 부분과 함께한 작가의 용기 때문이리라. 

<그야 당연히 산을 타는 게 더 어렵죠! 공부는 하는 척할 수도 있지만 산은 타는 척할 수 없잖아요?열네 살짜리의 말이 내 마음에 묵직하게 얹혀 있던 그 어려운 질문에 대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산은 타는 척할 수 없고 삶은 사는 척할 수 없다. 죽은 척하고 살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는 척 흉내를 내면서는 단 한순간도 온전히 살 수 없다. 산을 대신 올라줄 수 없는 것처럼 무엇을 위해 사는지는 누구도 대신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니 피투성이에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악전고투 끝에 절벽을 기어올라 닿은 정상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남에게 이러쿵저러쿵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산은 오직 스스로 올라야 그 끝에 닿을지니.>
여러 사람이 있는 만큼 여러 삶이 있을 것이다. 물론, 진정 나를 위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혹은 남에게 보이는 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일까? 작가는 산을 오르며 정답을 찾아냈다. 정상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오롯이 나만 길 위에 남겨져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정상을 오르고 그리고 내려오는 것은 '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나도 문득, 산에 가보고 싶어졌다. 백두대간처럼 높은 곳은 아직도 겁이 나지만 중학교 때 올랐던 그 곳에라도 올라보고 싶어졌다. 마음 먹은 대로 살아가기 힘든 인생이지만, 내면의 자아에 충실하게 오르다보면 결국 내가 만나보고 싶은 나와 만나게 될 것이란 믿음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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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초 이야기 - 할머니 탐정의 사건일지
요시나가 나오 지음, 송수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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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주인공은 올해 일흔여섯이 된 스기하라 소우 할머니다. 소우 할머니는 커피 원두와 전통도기를 파는 아담하고 세련된 카페 고쿠라야를 운영하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가게지만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덕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는 가게가 되었다. 그 곳을 찾으면 독특한 억양으로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소우 할머니가 있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곤 했다. 그래서 비가 올때나 혹은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할 때 엄마 대신에 할머니가 찾아오고는 했다. 자신의 부모보다 조부모와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나로서는 그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할머니가 해주는 옛날 얘기가 없다는게 그렇게 서러울 수 없었던 것이다.

소우 할머니는 일찍이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을 잃어버린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따뜻하고 섬세한 마음을 가졌다. 그래서 남들은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일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세세하게 관찰한다. 그래서 부모에게 학대받는 아이를 죽음에서부터 구출했는가 하면, 떼어낼 수 없는 가족으로부터 고통받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구해내기도 한다. 뜻하지 않게 마약상에 쫓기기도 하지만, 나이 많은 노인답지 않게 침착하고 의연하게 위기를 넘긴다.

피웅덩이와 자극적인 사건에만 익숙해져서일까. 고쿠라야의 카운터에 서있는 소우 할머니를 상상하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가까운 이웃들의 소소한 사건들을 침착하게 풀어나가는 소우 할머니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고쿠라야에 앉아 좋은 커피향을 마시며 소우 할머니의 사건일지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처음으로 미스터리물을 읽으면서 마음 졸이지 않고 편안하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나이 든 어른들을 경시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속도가 빨라진 만큼, 과거보다는 미래를 향해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의 지혜는 인터넷 지식검색이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알려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노인들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쿠라야의 소우 할머니는 우리에게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알려주고 있다. 마치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근육은 운동으로 파괴된 조직을 재생시켜 강하게 만들지. 생각해보면 우리 정신도 마찬가지야. 때로는 번거롭게 느껴지는 사람들과의 교제나 타인과의 충돌을 반복하면서 기반이 생기고 무거운 것도 들 수 있는 힘도 키워지지. 운동을 하면 근육통이 생기지만, 그것을 무서워하기만 하면 자꾸 약해지기만 해."
누군가와 부딪히기보다, 나 혼자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진 않았는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소중한 이유는 살아가며 장벽에 부딪힐 때 알게된다. 그들이 겪어온 세월이 결코 허투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 큰 박쥐우산을 들고 쓰레기를 줍는 소우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작가가 소우 할머니를 주제로 한 책을 더 많이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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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이는 자 1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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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통
인간은 누구나 내면에 '고통'을 품고 있다. 그 고통을 어떻게 얻었는지 알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기쁨이나 슬픔은 쉽게 밖으로 표출하는 반면, 살면서 겪어왔던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기 때문이다. 고통을 내보인다는 것은 곧, 내면의 약점을 내보이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은 깊숙한 내면 바닥에 묻어놓고 자신도 꺼내보지 않으려고 한다.

'속삭이는 자'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고통당한 아이들이다. 이유도 모른 채 납치당해서 왼쪽팔이 무참히 잘려나갔다. 팔이 잘려나간 고통과 엄청난 출혈에 죽어간 아이들-그리고 왼쪽팔만 묻힌 팔무덤이 발견된다. 사라진 아이들은 다섯이지만 발견된 팔은 여섯. 사라진 아이를 찾기 위해 특별수사팀에 실종아동 수색 전문가 밀라가 참여하게 된다. 그렇게 밀라는 범인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고통안으로 한 발 한 발씩 걸어들어오게 된다.

악과 선
여섯번째로 발견된 팔의 주인이 아직 살아있다는 확신을 한 수사팀은 아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은 연쇄살인범을 따라가야 아이를 찾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범인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연쇄살인범 앨버트는 사람들의 고통을 끄집어내어 속삭인다. 악의 길로 접어들라고. 귓가에 나긋나긋 속삭이는 악마의 속삭임에 사람들은 고통속에 번민하던 자신을 놓아버리고 쾌락을 선택한다. 그 결과는....사라졌던 아이들의 시신 하나에 악마를 선택한 끔찍한 살인범들의 이력 하나씩이다.

밀라는 절규한다. " 악은 지나가는 길목마다 그 흔적을 남겨놓는 데 반해, 선은 오로지 누군가의 증언을 통해서만 듣게 된다고요." 하지만 니클라는 반박한다. " 선이라는 건 눈 깜작할 사이에 지나가는 법이다. 선은 아주 깨끗하거든. 악은 더러운데 반해....선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바로 그 미소 속에 있어. 죽음에 맞서는 그들이 미소 속에."


속삭이는 자
연쇄살인범 앨버트의 흔적을 따라가며 악의 흔적을 따라가는 고통스러운 순간 속에서 밀라는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밀라 역시 어렸을때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 갇혀 모든 감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속삭이는 자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애써 부인하고, 멀리하려 해봐도 늘 선과 악의 갈림길에 서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자주 접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알고 보면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법이지."

게블러 박사는 말한다. 친구 심지어 가족마저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알고 있는게 없는 법이다. 아마 그것은 살아오면서 감내해야했던 고통과 연결되어 있는것은 아닐런지. 속삭이는 자의 속삭임에 귀기울이면 결국 고통 속에 몸을 담그고 익사하는 것이리라. 게블러 박사는 결국 익사했고 밀라는 살아남았다.

범죄를 연구하는 범죄학자의 생생한 사건 현장 묘사와 더불어 속삭이는 자의 속삭임에 넘어간 수많은 범죄자들의 범죄를 지켜보며 책을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단지 자신의 쾌락을 위해 모르는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수많은 범죄는 결국,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느냐 아니냐에 달린게 아닐까.
오늘밤엔, 쉽게 잠들지 못하고 내 고통을 곱씹어 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속삭이는 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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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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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위에 집 한채가 있다. 어렸을때, 동화책을 읽으며 떠올렸을법한 그런 아름다운 집이다. 적어도 겉에서 보기에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집이든 안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그 집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온다 리쿠가 그리는 이 집 역시 아름다운 외관과 달리, 집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연이 많은 집을 두고 우리는 보통 '유령의 집' 이라고 부른다. 그 말의 뜻은 산 사람은 그 집에서 제대로 살 수 없다는 뜻이다. 이미 유령이 살기 시작했음으로 그 집은 유령의 것이지 산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이 집을 찾는다. 저마다의 이유로 말이다.

이 집의 마지막 주인은 작가 'O'이다. 그녀는 첫장부터 무례한 사람들의 방문을 받는다. 유령 동호회 사람들로부터 신기한 현상들을 수집하는 사람들까지 그녀의 평온한 일상을 무시하고 들이닥친다.
"정말 무서운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다, 죽은 사람은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우리는 대개 유령들이 산 사람들을 해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막연하게 그들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평온한 일상을 어지럽히는건 산 사람이지 죽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온다 리쿠는 여러 유령들이 공존하는 언덕 위 집을 창조하고 이끌어 나간다. 무섭고 기시감이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처음 집을 지은 주인은 사고로 아내와 갓난 아들을 잃고 자살했고(멋있는 당신), 그 뒤로 이사해온 사람들도 차례차례 불행한 일을 겪는다. 구두쇠 노파의 유산을 가로채 집을 구입한 자매는 서로를 칼로 찔러 죽고(우리는 서로의 그림자를 밟는다), 눈 먼 주인을 모시는 여자 요리사는 아이들을 납치해 토막 내서 주인에게 그 고기를 먹인다(나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노인들을 살해하고 도망치던 소년은 이 집의 그늘에서 사는 소녀 유령을 발견하고 매혹된 나머지 그녀의 곁으로 가기 위해 자살한다(내 마음에 드는 사랑스러운 너).

이렇듯 서로 이어지는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온다 리쿠는 어디선가 들어봤고 느껴봤을법한 오묘한 공포감을 선사한다. 마냥 무섭고 떨리기 보다는, 유령들의 사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것이 아마 온다 리쿠의 필력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령은 당연히 무섭다,라는 공식을 약간 비튼 온다 리쿠의 세계에 초대된 나는 기시감과 공포감을 즐기며 집들이를 마쳤다. 많은 사람들의 상념과 눈물이 깃들어있는 언덕위의 낡은 집 - 어쩌면 바로 고개만 돌리면 그 곳에 존재하고 있는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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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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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꽃병 속 시든 꽃을 대할때의 기분을. 아름답게 활짝 피어난 꽃은 이미 그 자태로도 기쁨과 향기를 선사하지만 오래지않아 시들고 만다. 꽃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시든 후의 꽃까지도 아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꽃이 시들어도 곧장 내다버리지 않고 조금 더 바라본다.

'회귀천 정사' 안에는 다섯편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별개지만 사랑과 꽃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있다. 꽃이 풍기는 향기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회귀천 정사안에 간직한 각각의 단편들은 꽃 향기 외에 아련한 무엇인가를 더 내포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 떠오르는 그 향기는 형언할 수 없지만 언젠가 맡아본듯한, 그래서 더 가슴이 아련해지는 그러한 향기다.

'사랑'을 쉽게 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또한 '사랑'의 형태 또한 개개인의 숫자만큼 다양하고, 열렬하다. 렌조 미키히코는 그것을 잘 아는 작가였다. 그래서 미스테리와 사랑 이야기를 꽃의 향기에 잘 조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독자들은 책을 읽어 내려가며 범인이 누구일까 추리하고 또한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지 추측하게 된다. 보통의 독자가 추측한 범위를 넘어서 그 앞까지 내다보는 작가에게 마법이라도 걸려버린듯한 느낌이였다. 각각의 단편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아~~'하고 탄식을 해보긴 처음이였으니까.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꽃입니다."
지지 않고 남은 꽃, 피기 전에 버려진 꽃, 진흙탕 속에서 짓이겨진 꽃, 피로 그린 꽃, 사람 피부에 스며든 먹물 빛의 꽃……. 그리고 쓰고 싶었던 세계는 탐정물이므로 트릭으로서의 꽃, 복선에 사용된 꽃, 죽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꽃, 흉기가 된 꽃…….
……선택한 꽃들은 지금은 잊힌,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것들뿐입니다. 배경도 제가 태어나기 전인 상상 속에서만 아는 시대뿐입니다. 글자로만 배운 역사라는 어두운 세계에 한 포기 또는 한 송이 피어 있는 꽃들을 각각의 살인 사건을 빌어 흩뜨리려고 합니다.

활짝 핀 꽃은, 어떻게 보면 죽음과 맞닿아있다. 활짝 피었기 때문에 당장 내일이라도 시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꽃은 경계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꽃을 사랑하려면 그 죽음까지도 껴안을 수 있어야한다. 내일과 사후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꽃을 가까이에 두고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보면 알 것이다. 그 경계가 무엇인지.
작가는 꽃을 주인공으로 사랑과 사람에 대하여 써내려갔다. 작품 여기저기 흐트러진 꽃 향기를 맡으며 아득해짐을 느낀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렌조 미키히코가 내게 건 마법일 것이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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