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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천 정사 ㅣ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꽃병 속 시든 꽃을 대할때의 기분을. 아름답게 활짝 피어난 꽃은 이미 그 자태로도 기쁨과 향기를 선사하지만 오래지않아 시들고 만다. 꽃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시든 후의 꽃까지도 아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꽃이 시들어도 곧장 내다버리지 않고 조금 더 바라본다.
'회귀천 정사' 안에는 다섯편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각각의 이야기는 별개지만 사랑과 꽃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있다. 꽃이 풍기는 향기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회귀천 정사안에 간직한 각각의 단편들은 꽃 향기 외에 아련한 무엇인가를 더 내포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 떠오르는 그 향기는 형언할 수 없지만 언젠가 맡아본듯한, 그래서 더 가슴이 아련해지는 그러한 향기다.
'사랑'을 쉽게 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또한 '사랑'의 형태 또한 개개인의 숫자만큼 다양하고, 열렬하다. 렌조 미키히코는 그것을 잘 아는 작가였다. 그래서 미스테리와 사랑 이야기를 꽃의 향기에 잘 조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독자들은 책을 읽어 내려가며 범인이 누구일까 추리하고 또한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지 추측하게 된다. 보통의 독자가 추측한 범위를 넘어서 그 앞까지 내다보는 작가에게 마법이라도 걸려버린듯한 느낌이였다. 각각의 단편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아~~'하고 탄식을 해보긴 처음이였으니까.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꽃입니다."
지지 않고 남은 꽃, 피기 전에 버려진 꽃, 진흙탕 속에서 짓이겨진 꽃, 피로 그린 꽃, 사람 피부에 스며든 먹물 빛의 꽃……. 그리고 쓰고 싶었던 세계는 탐정물이므로 트릭으로서의 꽃, 복선에 사용된 꽃, 죽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꽃, 흉기가 된 꽃…….
……선택한 꽃들은 지금은 잊힌,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것들뿐입니다. 배경도 제가 태어나기 전인 상상 속에서만 아는 시대뿐입니다. 글자로만 배운 역사라는 어두운 세계에 한 포기 또는 한 송이 피어 있는 꽃들을 각각의 살인 사건을 빌어 흩뜨리려고 합니다.
활짝 핀 꽃은, 어떻게 보면 죽음과 맞닿아있다. 활짝 피었기 때문에 당장 내일이라도 시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꽃은 경계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꽃을 사랑하려면 그 죽음까지도 껴안을 수 있어야한다. 내일과 사후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꽃을 가까이에 두고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보면 알 것이다. 그 경계가 무엇인지.
작가는 꽃을 주인공으로 사랑과 사람에 대하여 써내려갔다. 작품 여기저기 흐트러진 꽃 향기를 맡으며 아득해짐을 느낀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렌조 미키히코가 내게 건 마법일 것이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