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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초 이야기 - 할머니 탐정의 사건일지
요시나가 나오 지음, 송수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책의 주인공은 올해 일흔여섯이 된 스기하라 소우 할머니다. 소우 할머니는 커피 원두와 전통도기를 파는 아담하고 세련된 카페 고쿠라야를 운영하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가게지만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덕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는 가게가 되었다. 그 곳을 찾으면 독특한 억양으로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소우 할머니가 있다.
예전에는 각 가정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곤 했다. 그래서 비가 올때나 혹은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할 때 엄마 대신에 할머니가 찾아오고는 했다. 자신의 부모보다 조부모와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들이 많았고,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나로서는 그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할머니가 해주는 옛날 얘기가 없다는게 그렇게 서러울 수 없었던 것이다.
소우 할머니는 일찍이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을 잃어버린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따뜻하고 섬세한 마음을 가졌다. 그래서 남들은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일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세세하게 관찰한다. 그래서 부모에게 학대받는 아이를 죽음에서부터 구출했는가 하면, 떼어낼 수 없는 가족으로부터 고통받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구해내기도 한다. 뜻하지 않게 마약상에 쫓기기도 하지만, 나이 많은 노인답지 않게 침착하고 의연하게 위기를 넘긴다.
피웅덩이와 자극적인 사건에만 익숙해져서일까. 고쿠라야의 카운터에 서있는 소우 할머니를 상상하기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가까운 이웃들의 소소한 사건들을 침착하게 풀어나가는 소우 할머니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고쿠라야에 앉아 좋은 커피향을 마시며 소우 할머니의 사건일지를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처음으로 미스터리물을 읽으면서 마음 졸이지 않고 편안하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나이 든 어른들을 경시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속도가 빨라진 만큼, 과거보다는 미래를 향해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의 지혜는 인터넷 지식검색이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알려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노인들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쿠라야의 소우 할머니는 우리에게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알려주고 있다. 마치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근육은 운동으로 파괴된 조직을 재생시켜 강하게 만들지. 생각해보면 우리 정신도 마찬가지야. 때로는 번거롭게 느껴지는 사람들과의 교제나 타인과의 충돌을 반복하면서 기반이 생기고 무거운 것도 들 수 있는 힘도 키워지지. 운동을 하면 근육통이 생기지만, 그것을 무서워하기만 하면 자꾸 약해지기만 해."
누군가와 부딪히기보다, 나 혼자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진 않았는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소중한 이유는 살아가며 장벽에 부딪힐 때 알게된다. 그들이 겪어온 세월이 결코 허투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 큰 박쥐우산을 들고 쓰레기를 줍는 소우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작가가 소우 할머니를 주제로 한 책을 더 많이 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