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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평점 :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남은 이들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더욱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면 그 상실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민트빛의 표지와 옅은 베이지톤의 종이로 채워진 이 책은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매일의 삶과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문구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는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의 죽음을 애도하며」로 글을 시작합니다. 37년 전에 만나 사랑하며 부부가 된 둘 다 작가입니다. 그러기에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토론하며 다투기도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을 정도로 서로에게 녹아들어가 있는 부부입니다. 폐암으로 사별하게 된 남편 후지타 요시나가를 애도하며 보낸 시간들을, 오랜 망설임 끝에 죽은 남편에 대한 글을 연재해 보자는 편집자의 제안을 수락하고 2020년 초부터 2021년 6월까지 50회가량 연재한 에세이입니다.

달빛이 아름답거나 해서 밖으로 나가 보게 되는 밤, 올빼미 우는 소리가 들리는 날이 있다. 암수 서로 호응하며 숲에서 내내 울고 있는 것이다. ......달빛 가득한 숲, 저 깊은 곳에서 올빼미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올빼미가 운다>p.13
만약 내가 죽으면 이렇게 너의 꼬리를 잡을게. 좋은 곳에 데려다주렴. 가끔 고양이에게 그런 말도 했다. 그 상상은 오래도록 나의 내부에서 따뜻한 것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어느 해 가을인가, 의기양양 외출에 나섰던 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내 손에서 꼬리가 사라졌다./<고양이의 꼬리>p. 58
상실의 형태는 백이면 백 전부 다르다. 상대와의 관계, 둘 사이에 흐르던 시간, 슬픔의 양상까지 무엇 하나 같은 것이라고는 없다. 상실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다. 다른 누구와 진정으로 그 감정을 공유하기란 불가능하다.
/<각자의 슬픔>p. 77
그러나 남편 앞에서는 봄바람이 되지 못했다. 너무 많은 것을 공유했기 때문이리라. 그의 절망은 나의 절망이었고, 그의 죽음은 어떤 의미에서 내 지나간 시간의 죽음이기도 했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는 37년이란 오랜 시간 부부로, 같은 일을 해 온 동료로 지내다가 갑작스런 병으로 죽음에 이른 남편을 떠나 보낸,자신처럼 상실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담아 내어 적은 애도 에세이입니다. 글 속에는 37년이라는 긴 결혼 생활, 같은 작가라는 직업, 끊임없이 서로 이야기하고 다투고 삶을 공유한 부부작가이기에 남편의 어떠함이 베어있지 않은 부분이 없었습니다. 2018년 남편의 폐암 선고로 인해 작가의 삶은 '그날 이전'과 '그날 이후'로 나뉘게 되며, 전혀 연결되지 않는 별개의 것처럼 느껴진다고 작가는 말을 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멈춰버렸고, 완벽하게 낯선, 상상할 수 없는 시간들이 펼쳐져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작가의 심정은 글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를 잃은 상실감과 좌절감은 어떠한 것으로도 극복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폐암의 재발로 인해 현저히 나빠져가는 남편.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때론 불평하며, 때론 슬퍼하며, 아쉬워하며, 죽음 앞에 서 있는 남편의 모습도 글 속에서 봅니다.
여러 편의 글 가운데서 남편의 서재 안에 쉬지 들어가지 못하는 작가, 고양이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심정, 남편이 들려주던 피아노와 노래, 남편의 죽음의 시간을 전해 들었을 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울며 먹던 컵라면 등. 삶의 어느 한 부분도 남편과 하지 않은 것이 없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함께 슬퍼하게 됩니다. 집안 곳곳에 남겨진 남편의 흔적들은 그리움과 후회, 슬픔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봅니다. 타인의 슬픔은 자신이 똑같은 경험을 해 보지 않는다면 많은 부분 이해하기 힘들다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시선은 흘러가는 시간과 반복해서 바뀌어가는 계절의 변해가는 모습들을 담담히 바라보며 남편의 죽음의 시간을, 그리고 죽고 난 이후의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창밖에 펼쳐져 있는, 변해가는 계절과 삶을 살아가는 동물들, 식물들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 속에서, 어쩌면 사람의 말로는 위로할 수 없는 부분들을 시간 속에 맡겨두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왠지 모를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글 속에는 작가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 그때의 순간들과 향기까지 차분하게 느껴지며. 남편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가득 담겨져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심정을 어느 누구도 허투르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살았던 사람의 죽음이라면 더욱 자신의 죽음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어느 땐 위로의 말이 그들의 마음에 위로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음을, 그저 시간 속에 함께 살아내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임을 새삼 상기하게 되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슬픔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어떻게 다시 살아 내는지, 그 방법을 나는 모른다.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렇게 모르는 채로, '모른다는 것' 그 자체를 쓰고자 했고, 그렇게 써 왔다." 라고.
거대한 상실은 극복되지 않는다. 매일의 삶과 함께하는 것이다 라는 문구가 더욱 마음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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