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도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 손 안의 미술관 4
김영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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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미술관에 가는 것이 너무 지루했다. 그림은 멀리서 전체적으로 한 번 보면 끝나는 것이고, 특별한 색채나 인물이나 배경 등 내 눈을 자극하는 대상이 없으면 기억에 별로 남지도 않았다. 조금 크고 나서 미술관이 조금씩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지만, '이 그림 내 방에 어울리겠다', '이 그림 예쁘다' 정도의 코멘트를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마 내가 미술관에서 정말 작품을 '즐겁게' 본 것은 프라도 미술관이 처음이었지 않았나 싶다. 예를 들어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은 어릴 적 내가 봤다면 그냥 예쁘장한 공주와 기타 등등 다른 사람들이 그려진 작품 정도로 봤을 것이다. 그런데 프라도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이 작품을 통해서 한 작품 안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이 누구인지, 지금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그림 속 장면의 어느 위치에 있는 것 처럼 느껴지는지, 누가 그렸는지, 이 그림이 그려질 때의 시대적 상황은 어땠는지 기타 등등 작품의 디테일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빡빡한 유럽여행 일정 중에 미술관 한 곳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프라도 미술관 정도로 규모가 큰 미술관이면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장소가 부족하여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 중 일부만 공개할 정도인데, 그 공개된 작품만 해도 어마어마하니 미리 알고 가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지경이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100>에서는 이런 일정 속에서 프라도까지 갔으면 이 정도는 보고 오라고 할 수 있는 지침서다. 보기 쉽게 작가별로 정리를 해두었고, 마치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는 양 각 작품을 디테일하게 분석해두었다. 물론, 그 작품을 그린 작가의 인생과 시대적 배경도 함께 말이다. 특히 특정 작품들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프라도가 아닌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의 목록이 책 마지막에 나와 유용했다.

 

<프라도 미술관>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곳에서 봤던 작품들을 머릿 속으로 정리해둔다 생각하면 좋을 것 같고, 아직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미리 읽어보고 내가 프라도에 간다면 꼭 이것만은 보고 오겠노라고 우선순위를 정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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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아이들의 특별한 이야기 - 특수아동과 함께 하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잭 캔필드.마크 빅터 한센 외 지음, 이인경.서혜전 옮김 / 이너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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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등학교 때 우리 반에는 다리가 불편한 친구도 있었고, 시력이 정말 좋지 않아 책에 거의 얼굴을 붙이고 책을 읽는 친구도 있었으며, 어머님께서 항상 같이 다니며 돌봐주셨던 친구도 있었다. 어렸을 때는 정말 그런 친구들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느낌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그런 친구들을 안 좋게 대하는 몇몇 못된 아이들의 행위에 정말 무서울 때가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너희들 이게 뭐 하는 짓이니?' 하고 쏘아붙일 수 있었을텐데 그 때는 그러지도 못 했던, 아직은 어린 학생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우리 가족은 이사를 갔는데, 그 때 같은 아파트에 장애를 가진 친구가 살았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녀서 가끔 마을버스에서 만나기도 하고, 학교에서 만나기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같은 버스에 타면 아는 척도 하고 꽤나 친하게 지냈다. 그 친구는 술래잡기를 엄청 좋아해서, 가끔 엘레베이터에서 만나면 '우리 술래잡기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 말은, 1층에서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면 다른 사람은 뛰어 나가서 숨어있고, 남은 한 명이 1부터 10을 세고 천천히 내린 뒤에 숨어있는 사람을 찾자... 는 얘기다. 나는 항상 그 친구와 친하게 지냈지만, 어느 순간 학원에 과외에 여유롭지 못 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술래잡기 오늘은 못 해' 라고 말을 할 때 마다 설명을 해주었지만 이해를 못 하는 그 친구 때문에 섭섭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어쨌든 1, 2학년 때는 꽤나 친하게 지냈던 그 친구와는 고3이 가까워져 갈 수록 점점 멀어져갔고, 그 친구는 학교에서나 동네에서 나를 보면 '흥' 하고 토라져 가버렸다. 아마 '너 이제 나랑 술래잡기 안 해주지? 나 삐쳤어'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친구는 또래인 고 3 아이들이 아닌 1, 2학년 후배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 당시에는 막... '저 아이는 수능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겠지', '쟤네 엄마는 어느 대학교 가라는 잔소리도 안 하겠지'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수능을 1달 여 앞두고 교회에 갔던 어느 날, 그 친구네 어머님께서 단상 위에서 말씀을 하시다가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았다. 어릴 때 아이에게 병이 있다는 말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고. 그 순간 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손가락 발가락을 제일 먼저 확인했다는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릴 때는 조금만 아파도 엄마 마음이 철렁 했다는 말씀도 떠올랐다. 다른 또래 아이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고.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 어렵게, 어렵게 만번씩 반복해서 가르쳐 결국에는 아이가 해내는 모습을 보면 그 이상의 행복과 보람은 없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따라 울었다. 그리고 겨우 '수능점수 떨어져도 스트레스 안 받겠지', '엄마가 뭐라고 안 하겠지' 이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쨌든 나는 수능을 봤고, 그 친구와는 또 1, 2학년 때 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 다음 해, 그 친구네 가족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까지는.

그 친구 덕에 나는 '장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대학교 다닐 때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아이들이 서로에게 '야, 너 왜 이것도 모르냐, 너 장애인이냐?' 는 말을 하곤 했었다. 솔직히, 그런 표현은 그 때 그 아이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뭔가... 사람들은 '장애'라는 말을, 마치 욕 처럼 사용하고 있다. 외국 영화에서도 똑같다. 그 때 나는 그 아이들을 모아놓고 '장애인'이라는 단어는 절대 욕이 될 수 없다는 설교를 늘어놓았다. 당시 나는 겨우 대학생이었고, 나의 수업에는 전문성도 없었고, 가끔은 아이들의 어려운 질문에 쩔쩔 거리기도 하고... 참 못 했지만 ;) 그 때 그 아이들에게 그 말은 참 잘 해주었다고 생각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특별하지 않은 아이들의 특별한 이야기>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더불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다. 그러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질병이 있는 아이를 처음 키우기 시작하는 부모가 느끼는 두려움(하지만 곧 welcoming으로 바뀌었지만), 그런 아이들을 통해서 느끼는 따뜻함, 때로는 웃음과 재미, 그리고 감동까지 두루두루 나와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 중에 가장 개인적인 issue가 되었던 것은 바로 '장애'를 가진 이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강하고, 훨씬 많은 것들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장애'라는 단어를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냥 이들은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냥 똑같은 사람들이다. 또 한 가지 issue는 이들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존과 함께한 수영 수업>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수영을 해왔고, 나도 한 때 개인강습을 10대에게 받았던 기억이 나서 더 기억에 남은 것 같았다. 자폐가 있는 잭슨을 수영 수업을 받게 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잭슨은 10대 수영선생님 존을 만난다. 잭슨 어머님은 잭슨을 자신의 손이 아닌 타인의 손에 맡기는 것에 대해 굉장한 불안을 느꼈지만, 잭슨과 존은 재미있게 잘 해나갔다. 무엇보다 잭슨에게 수영 수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읽어내리는데 정말 마음이 짠 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마 책에 나와있는 것 이상으로 잭슨에게는 큰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에 어떤 내용들이 들어있는지 살짝 본 적이 있다. 그 때, 같은 학교에 다녔던 동네친구인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님이 생각났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점점 어머님께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교회에서 울음을 보이셨던 어머님이 이 책을 읽으면 정말 힘이 많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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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권순이 지음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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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마음에 드는 책이라 서점에서 보자마자 덥썩 잡아들었다. 수수하게 예쁜 표지에, 핑크색 선생님 판서체로 쓰여진 '여학생'이라는 글씨. 그리고 난 가벼운 이 종이질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선생님을 한 때 꿈꿨기 때문인지 한참 선생님을 꿈꿀 때의 순수했던 나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너무 감동이었다. 나는 한 때 선생님을 꿈꾸다가 점점 좌절하고 실망하고 결국 다른 여러 개의 꿈을 동시에 꾸게 되었는데, 나의 생각이 너무 짧았구나, 아직 선생님은 매력적인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내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학생들' 덕분이었다. 요즘 애들이 예전같지 않다는 말이 많아도, 아무리 그래도 어른들보다 때 묻지 않고 착하고 여린 것이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권순이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내가 생각하던 그 착하고 여린 학생들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특히 선생님이 찍으셨다는 사진 중에 학생들이 칠판에 학교에 나오지 않은 친구를 분필로 그려놓은 사진이 있었는데, 그 학생들이 아무리 성숙한 고등학생이라고 해도 너무나 착하고 귀여운 발상이 아닐 수 없어 그 페이지는 아예 여러 번 다시 펴볼 생각에 접어두기까지 했다. 칠판에 친구를 그려놓고 마치 그 친구와 함께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양 생각한다니! 이 귀여운 것들.. 또 하나 생각나는 사진은 '화해의 버튼' 사진인데, 그런 버튼을 생각해내는 아이들의 머리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될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아무리 크게 싸우고 절교를 한다고 해도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보면 너무 작은 일이었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도 중학생, 고등학생 때 크게 친구와 싸워 절교를 해놓고 어른이 되어서 길을 가다 그 친구를 만나면 언제 싸웠냐는 듯이 '꺅!!!'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한다. 나는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괜히 사람들을 웃기려는 이야기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꿈꾸는 여고생들의 일상과 실제모습을 비교한 적이 많다. 아침에 늦잠을 잔 친구들은 비누를 학교까지 가져와 세수를 하기도 하고, 더운 날 체육시간이 끝나고 남학생들처럼 머리를 감는 친구들도 있었다. 밥도 엄청 많이 먹고, 매점가서 빵 또 사먹고.

하지만 사실 우리들의 생활은 그런 왈가닥 모습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책을 읽으면서 새록새록 떠올랐다. 친구네 아버지께서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게 되어서 그 친구가 학교에 나오지 않은 적이 있었다. 왜 그 친구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는지 궁금했지만, 요즘처럼 휴대전화가 보편화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께서 알아보시고 우리들에게 왜 안 왔는지 알려주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종례시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정말 친구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모른다. ㅠ.

수능시험 보기 전에는 특활반 후배들이 3학년 교실까지 찾아와 노래도 불러주고 화이팅 메세지도 전해주고, 기독교반 아이들은 함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고 또 뭐가 그리 슬픈지 한참 붙들고 울고불고 하던 기억도 나고. 어쩌면 나의 고등학생 시절의 모습은, 사람들이 꿈꾸던 그 찬란하게 아름다운 여고생 모습 그대로였을 수도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학창시절에는 몰랐던 그 때의 순수했던 마음이 새록새록 떠올라, 그리고 한 때 꿈꾸던 선생님이란 매력적인 직업과, 아직도 여리고 순수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참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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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 나를 달뜨게 했던 그날의, 티베트 여행 에세이
박동식 글.사진 / 북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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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늘 여행을 꿈꾸고 살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나라를 고르라면 단연 티벳을 고른다. 언제부터 티벳을 가보고 싶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화 <쿤둔>이나 <티벳에서의 7년>은 모두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가보고 싶은 나라라고 하면 티벳을 떠올리기 쉽지 않은 것 같다. 대학교에 다닐 때 '해외여행을 간다면 어떤 나라에 가보고 싶은가?'라 교수님께서 물어보셨는데 비유럽권 나라를 가고 싶다고 한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단 3명이었다. 그리고 그 3명 중 2명은 일본이라 대답했다. 자기가 질문을 해놓고 비유럽권 나라에 가고 싶다는 학생들의 대답에 뭔가 신기하다는 듯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던 그 교수님의 표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티벳. 가보고는 싶지만 난 티벳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 한 번 검색해서 찾아보지 않고, 이렇게 모르면 모르는대로 가만히 있는 내 자신에 만족하며 지냈다. 몇 주 전, 친구들과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열병>이란 책을 보고 바로 구입을 했다. 이래뵈도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는 티벳인데, 이 쯤 되었으면 아는 것이 한 두개는 있어야지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을 대충 훑어보니 사진들도 마음에 들었고, 얌전한 무늬의 겉커버를 벗겨내니 드러낸 알록달록한 안 커버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이 매력적인 책은 단 이틀만에 읽어버렸고 지금은 다시 한 번 또 읽고 있는 중이다. 

<열병>을 읽고 느낀 것을 요약하자면 티벳의 참매력이다. 신비스러움으로 똘똘 뭉친 티벳은 내 주변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람들 중에도 단 한 명도 다녀오지 않은, 나에게는 그야말로 저 먼 우주와도 같았다. 뉴스를 통해서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는 티벳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티벳은 엄연한 독립국이라 주장하면서도 티벳의 이야기는 현실의 이야기처럼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 속 티벳은 욕심 하나 없는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만 떠올리게 하는 그런 이미지들로 가득하지 않았던가 싶다. 실제로 티벳인들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가는지, 어떤 이름들을 사용하는지, 어떤 밥을 먹는지 궁금하기만 했었다. 

책 속에서 글쓴이가 여행 중 만난 티벳인들을 보면 친근하고 따뜻했다. 특히나 지나가다 들린 2층에 법당을 두고 있는 집에서 사시는 할아버지 댁에서 잠시 머물 때 그 할아버지께서 손님들에게 따뜻한 물 한 컵을 대접하였다는 이야기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시리즈를 보는 듯 했다. 그 멀리, 신비로움으로 가득 찼던 환상의 티벳 이미지가 차츰 녹아들었다고나 할까. 또, 어느 땐가 라싸가 관광지화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상인화되어가고 있음을 한탄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열병> 속의 라싸는 그렇지 않았다. 글쓴이가 사원을 다녀오는 길에 찾은 3위안 백반집의 아저씨와 딸, 사진 한 장 찍어달라는 소박함, 마주보고 웃어주면 수줍어서 도망가버리는 사람들. 참 착하고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일요일 아침마다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요즘도 해주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유명인들이 외국에 나가서 그들의 문화를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한 번은 티벳에 가서 순례를 체험하면서 그들의 장례방식인 조장이 소개되었는데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큰 독수리들이 가득한 조장터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티벳의 조장은 한 동안 잊고 있었다가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생각났다. 아주 섬세하고 예리한 묘사 덕분에 나의 머리 속은 이미 조장터를 상상하고야 말았다. 그 날 티비에서 자세히 보여주지 못 한 작은 부분까지 묘사하여 주었는데, 읽으면서 '징그러워'를 연발하던 내 자신이 참 부끄러웠다. 어디까지나 그들의 문화인데. 떠나가는 사람에 대한 작별인사인데. 

티벳하면 생각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눈이 가득 쌓인 가파른 산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카일라스. 성스러운 산이란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사진 한 장만 봐도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카일라스까지 가는 길도, 가는 길에 만난 사람들과, 카일라스의 순례자들도. 정말이지 꿈만 같던 사진과 글 속의 카일라스, 그리고 이 곳을 찾는 수 많은 순례자들은 중국의 세력에도 '티벳'과 '티벳스러움'을 지키는 듯 했다. 난 욕심도 샘도 많은 평범한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이 카일라스에 한 번 가볼 수 있다면, 그 장엄함을 실제로 볼 수만 있다면 아마 내려오지 못 할 듯 싶었다. 혹은 이 곳을 한 번 더 찾게 되겠지 싶었다. 적어도 이 순간을 오래 오래 간직하려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대겠지, 난 그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이니까. 

책 제목이 어쩌면 강렬한 이미지를 가득 풍길지도 모르는 <열병>이다. 지은이가 앓았던 열병이 이 열병인지, 어떤 열병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티벳을 향한 열병은 티벳을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 한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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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중해식 인사
이강훈 글.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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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동네 서점에 들렀다가 껍데기부터 나의 마음을 자극하는 책이 있어 당장 샀다. 제목까지 나의 마음을 자극한 이 책이 바로 <나의 지중해식 인사>였다. 지중해...는 사실 나에게 가까운 곳도 아니고 친근한 곳도 아니었다. 해외여행하면 처음으로 유럽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지중해는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지 않나 싶다. 내 주변에선 딱 한 사람을 빼놓고 '지중해'를 보고 왔다는 사람은 없고 지중해나 지중해의 작은 섬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몇 해 전 조수미가 불렀던 '낙소스 아리아드네'란 곡의 낙소스가 섬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어쩌면 관심이 없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적은 관심 때문이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그리스의 산토리니만 해도 너무 멀게만 느껴졌고,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너무나 달라보여서 아무튼 조금 신비롭고 나의 일상과는 많이 다른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책은 다른 여행에세이와 다르다. '여기서 이걸 보고, 저기서 이걸 먹었다'는 식의 에세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르다. 아주 깊은 일상을 다루고 있고, 또 빠른 걸음으로 구경하기 바쁜 여행이 아니라 자리잡고 앉아서 눈으로 이것저것 다 담아낼 수 있는 여유가 느껴지는 여행을 상상하게 된다는 점에서 달랐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낯선 지중해의 작은 섬들에도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일상은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다. 

첫번 째 이유로 쉽게 친구가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단지 타국으로 여행을 온 외국인이란 이유만으로 그렇게 친근하게 다가갔다면 우리나라 사람들도 배워야 할만큼의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책 중간 쯤 지중해 어느 섬의 항구 앞 작은 교회 벤치 앞에서의 대화를 들어보면 그들끼리도 관심을 가져주고 친구가 되고 여하튼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친구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이사를 자주 다녀서 그런지 동네친구도 한 번 가져본 적이 없고, 또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도 자주 보는 초등학생 여자아이 한 명을 제외하고 누가누가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지 잘 알지 못 하는 나에게는 참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생각해보니 몇 해 전 학교 선배가 신혼여행으로 그리스 산토리니에 다녀온 뒤 나에게 해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을 때 부터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말을 걸어주고 '너희 신혼부부니? 그렇다면 여기 근처에 있는 해변에 가봐', 혹은 '신혼부부라면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있으니 꼭 먹어봐,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어', 심지어 기념품 가게 주인아저씨도 '여기로 신혼여행을 왔으니 꼭 오래오래 행복해야한다'며 사랑이란 단어가 가득 담겨있는 기념품을 선물로 주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관심이 지나쳐보이지도 않았고, 간섭한다는 느낌도 전혀 들지 않았으며, 정말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알려준 해변도 가보고, 음식도 먹어보고 그러면서 고마움도 느꼈고 또 금새 친구가 되었다고 자랑을 했었다. 그래서 나도 꼭 다음에 신혼여행을 가거든 산토리니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났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산토리니의 이아마을에는 주소가 없다고. '무슨 마을 김씨 아저씨 댁'이라고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실제로 지은이는 그렇게 적어준 주소로 한국에서의 소포를 받았다고 했다. 아! 정말 인간적으로 너무나 마음에 드는 발상이었다. 중, 고등학교 때 학교에서 정해준 반, 번호로 죄수번호같이 개개인마다 다른 번호를 만들어놓고 예쁜 이름 대신에 '몇 반 몇 번'으로 불리는 것이 너무 억울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건 너무 인위적이라고 생각했다. 비인간적인 짓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나는 숙제를 안 해왔거나 선생님께 뭔가 말씀드려야 할 때 '몇 반 몇 번입니다'라고 하지 않고 '몇 반 아무개입니다'라고 했었다. 소심한 나만의 반항(?)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반번조차 인위적이라고, 비인간적이라고 그렇게 싫어했었는데! 무슨 마을 김씨 아저씨 댁이 주소라니!  얼마나 이상적인가!

이 책 표지에 보면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의 배낭 속 그림엽서 같은 이야기'란 글이 있다. 정말 한장한장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아주 차분한 어조로 그린 일상생활과 잘 어울리는 그림들이었다. 한 장 한 장 내 머리 속에 꼼꼼하게 넣어놓고 싶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그림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지중해'하면 내가 떠올릴 이미지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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